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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9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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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
김낭기 논설고문 ngkim@ajunews.com
  • - 아주경제 논설고문
    - 前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 前조선일보 논설위원
  • [김낭기의 관점] 신뢰 잃은 헌법재판소, 갈등 해소는커녕 더 불붙일까 걱정

    헌법재판소는 지금 최대의 위기 상태에 놓였다. 신뢰의 위기다.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나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전국지표조사 결과에 따르면 탄핵 심판을 진행하는 헌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0%를 넘나든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52% 전후이다. 헌재가 정치권으로부터 자기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반발과 비난을 산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민 다수에게 불신을 받은 적은 없었다. 아무리 정치적 양극화가 심하다고 하더라도 국민 40%가 불신한다는 사실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다수 국민이 헌법재판소를 불신하는 이유는 헌재가 중립적이거나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심판 절차와 내용 모두에서 그렇다. 우선 내용을 보자. 대표적인 사례가 감사원 감사 대상 기관에 대한 결정이다. 헌재는 감사원이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할 권한이 없다고 결정했다. 선관위가 헌법상 행정부 산하 기관이 아니라 독립기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관위를 감사 대상에 넣으면 선관위 업무인 선거 관리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감사원법 규정과 어긋난다. 감사원법 제24조 ③항은 감사 대상 예외 기관으로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3개만을 규정했다. 선관위는 없다. 그러나 헌재는 이 규정은 열거 규정이 아니라 예시 규정이라고 해석했다. 감사 대상 예외 기관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놓은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규정에 선관위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해서 선관위가 감사 대상 기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아가 선관위를 감사 대상 기관으로 넣는 쪽으로 감사원법을 개정하는 것도 위헌이라서 안 된다고 했다. 헌재 결정은 숱한 법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헌재 결정에 법적 논란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헌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공정성·중립성 논란 자초 헌재 결정은 법적 논란을 떠나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감사 내용은 선관위의 채용 비리이다. 선관위 고유 업무인 선거 관리에 관한 게 아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선관위 간부 자녀와 친·인척 특혜 채용이 잇따라 벌어진 사실이 드러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전국 17개 시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10년간 291차례 경력직 채용에서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878건에 달했다. 시도 선관위를 감독해야 할 중앙선관위는 감독하기는커녕 ‘우리는 헌법기관이니 법령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불법·편법 채용을 부추겼다. 선관위 내에서는 중앙·지역 선관위 인사 담당자들이 “선관위는 가족회사”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헌재는 감사원이 선관위를 감사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헌재 결정이 설사 법 형식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결정을 누가 옳다고 여기겠는가? 어떻게 헌재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선관위 공무원의 채용 비리를 감사한다고 해서 어떻게 선거 관리의 공정성이 침해될 수 있는가? 선관위 고유 업무인 선거 관리는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더라도 일반 행정 업무는 포함시켜야 한다는 게 많은 국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헌재는 국민의 상식을 벗어난 결정을 했다. 헌재는 절차 측면에서도 신뢰를 잃는 일을 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 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를 임명하지 않아 국회 권한을 침해했다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소한 사건에서다. 헌재는 당초 이 사건을 지난 2월 3일 선고하려 했다. 그런데 선고 예정 2시간을 앞두고 돌연 선고 일정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예정된 선고를 불과 2시간 전에 연기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자체가 헌재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선고 연기 이유였다. 지난 1월 22일 열린 재판에서 최 권한대행 측이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의결 없이 단독으로 (국회 권한을 침해했다고) 심판 청구한 것은 부적법해 각하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지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다. 그러나 헌재는 최 대행 측 요구를 각하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선고를 하려 했다. 그러다 ‘졸속 재판’ ‘절차적 흠결’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선고를 연기하고 지난 2월 10일 다시 변론을 열었다. 이날 변론에서 또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국회 측이 “이번 심판의 흠결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보완하겠다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국회 측은 “국회에서 (사후) 의결할 준비”라고 답했고, 문 권한대행은 “본회의 의결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되물었다. 이후 나흘 뒤인 지난 2월 14일 국민의힘 불참 속에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마은혁 임명 촉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결국 헌재는 지난 2월 27일 마은혁 재판관 임명 보류는 잘못이라고 국회 측 손을 들어줬다. 민주당과 '짜고' 한다는 의심까지 ‘마은혁 임명 보류’ 사건은 두 가지 점에서 헌재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하나는 헌재가 ‘국회 의결 필요 여부’라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을 놓친 채 변론을 끝내고 바로 선고를 하려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점이다. 국회 의결 필요 여부가 핵심 쟁점임을 진작에 파악했다면 선고 일정을 잡기 전에 그 문제를 심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 대행 측 문제 제기를 계기로 논란거리가 되자 뒤늦게 다시 재판을 열어 이 문제를 심리한 것이다.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가 뭔가 허술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또 하나는 문형배 소장 대행이 ‘사후 국회 의결’로 국회 측 절차상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이다. 이는 헌재가 국회 측과 ‘짜고’ 했다는 의심을 사게 할 수 있다. 그런 의심은 중립성과 공정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헌재는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빼는 과정에서도 중립성과 공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회 측 변호인은 ‘내란죄 삭제하겠다. 그게 재판부께서 저희에게 권유하신 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인은 논란이 되자 ‘권유’라는 표현은 잘못이라고 취소했다. 그러나 ‘재판부께서 저희에게 권유하신 바’라고 한 말이 실수로 나왔는지, 변호인이 마음속으로 그렇게 인식해서 나왔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후자라면 적어도 국회 측이 듣기에 헌재가 민주당 측에 내란죄를 빼는 게 좋겠다고 힌트를 준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다. 제3자 지위에 있는 심판관인 헌재가 어느 한쪽에 유리한 듯 여겨지게 한 모습 자체가 헌재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 밖에도 헌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리 과정에서 신속한 결정을 앞세워 절차를 너무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증인 한 명당 질문·답변 시간을 일률적으로 90분으로 제한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했다는 지시가 사실인지는 국헌 문란 목적 여부를 가리는 핵심 쟁점이다. 그런데도 헌재는 이에 대해 충분한 심리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 심판에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유무죄를 다투는 형사 재판처럼 증거를 엄격히 살피고 당사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헌재는 과연 그렇게 했다고 할 수 있나? 헌재 심리 과정에 공정성이나 중립성에 실질적인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 심리 절차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지면 공정성과 중립성을 의심받기 쉽다. 재판은 실제로도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그 겉모습도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은 사법 윤리의 기본이다. 탄핵 찬반 흥분과 열기, 더 폭발할 수도 헌재를 비롯한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불린다. ‘선출된’ 권력인 입법부나 행정부와 다른 점이다. 선출된 권력은 국민에 의해 선출됐다는 사실 그 자체로 정당성을 확보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는 국민이나 다른 국가기관이 사법부의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르고자 할 때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사법부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르려면 무엇보다 사법부 결정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헌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헌재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르게 되기가 어렵다. 종국에는 ‘이런 헌재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이 생겨날 수 있다. 헌재의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신뢰를 잃은 헌재는 헌법과 법률에 따른 갈등 해소라는 본연의 역할도 할 수 없다. 이미 우리 사회는 탄핵 찬성과 반대로 쫙 갈라져 있다. 친구나 직장 동료 사이는 물론 가족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찬반 양쪽 모두 흥분과 열기에 가득 차 있다. 이 흥분과 열기를 가라앉히려면 헌재가 갈등 해소라는 제 기능을 다해야 하고 그러자면 무엇보다 국민 신뢰를 받아야 한다. 헌재에 대한 높은 불신을 지켜보면서 탄핵 심판 결정이 흥분과 열기를 식히는 게 아니라 더 뜨겁게 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김낭기의 관점] 신뢰 잃은 헌법재판소, 갈등 해소는커녕 더 불붙일까 걱정
  • [김낭기의 관점] 윤석열 수사로 드러난 법의 허점들…재정비 안 하면 사법 신뢰는 요원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현행 법 곳곳에서 허점과 구멍이 드러났다. 이 허점과 구멍은 윤석열 대통령 수사와 체포 및 구속 과정에서 숱한 적법절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라 전체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치르지 않아도 될 홍역을 치르게 했다. 그 허점을 보완하고 구멍을 메워 온전한 법 체계를 이루는 게 우리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허점과 구멍이 가장 많이 드러난 법은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대표적인 게 검찰과 공수처의 업무 관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번에 서울중앙지검은 공수처로부터 윤 대통령 내란 혐의 사건을 넘겨 받은 뒤 서울중앙지법에 윤 대통령 구속 기간을 연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을 기소하려면 공수처 수사 자료만으로는 부족하고 검찰이 보완 수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법원은 구속 기간 연장 신청을 기각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그랬다. 공수처와 검찰 업무 분담 모호 법원은 기각 이유로 공수처가 넘긴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보완수사를 할 수 있다는 명시적 규정이 공수처법에 없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법원이 공수처법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이 생긴 이유는 공수처법 규정의 허점과 구멍 때문이다. 공수처법 제26조는 공수처 검사가 사건을 수사한 뒤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지체 없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송부하고, 이 경우 서울중앙지검은 ‘공수처장에게 해당 사건의 공소 제기(기소를 의미) 여부를 신속하게 통보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공소 제기 여부를 신속하게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의 의미다. 법원은 이 규정을 검찰이 보완 수사 과정 없이 공수처 수사 자료에 근거해 기소 여부를 신속히 결정한 뒤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반면에 검찰은 필요하면 보완수사를 하고 그걸 토대로 기소 여부를 결정한 뒤 그 내용을 공수처에 신속히 통보하면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검찰의 보완 수사권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이처럼 현행 공수처법은 공수처가 넘긴 사건에 대해 검찰에 보완 수사권이 있는지 없는지가 모호하다. 이는 경찰의 경우와 대비된다. 경찰도 공수처처럼 범죄 사건을 수사한 뒤 검찰에 넘긴다. 이 경우 검찰은 넘겨받은 사건을 자체적으로 보완 수사할 수 있고 필요한 때는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게 형사사소송법의 규정이다. 그런데 공수처가 넘긴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자체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는지, 공수처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이다. 검찰과 공수처의 보완 수사에 관한 애매한 관계가 문제된 것은 윤 대통령 경우뿐이 아니다. 공수처는 15억8000만원 뇌물 수수 혐의로 감사원 3급 공무원을 수사해 2023년 11월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2024년 1월 ‘수사가 불충분하니 추가 수사하라’며 사건을 공수처에 다시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공수처는 ‘검찰이 자체 보강 수사를 거쳐 기소 여부를 결정하라’며 사건 받기를 거부했다. 이 바람에 공수처와 검찰 간 ‘사건 핑퐁’이 300일 넘게 이어졌다. 결국 검찰은 ‘언제까지 사건을 방치할 수 없다’며 직접 보완 수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은 불구속 사건이라 구속 기간 연장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 서울중앙지법 해석대로 공수처가 넘긴 사건에 대해 검찰의 보완 수사권이 없다면, 검찰은 불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셈이 된다. 공수처 수사권 범위 어디까지 공수처 수사권도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공수처법에는 각각 경찰, 검찰, 공수처의 수사 대상 범죄가 규정돼 있다. 경찰은 모든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 검찰은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범죄 중 특정 범죄(직권남용, 뇌물 등등)만 수사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내란죄 수사는 경찰만 할 수 있다. 검찰도, 공수처도 할 수 없다. 다만 검찰이나 공수처는 각자 법에 정해진 범죄를 수사하다가 그와 밀접히 관련된 범죄가 드러나면 이를 수사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번에 공수처는 이 규정을 근거로 윤 대통령에 대해 직권남용죄를 수사하다가 그와 관련된 범죄인 내란죄로 수사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은 내란과 외환죄를 빼고는 재직 중 소추할 수 없게 헌법에 규정돼 있다. 소추란 엄밀히 말하면 기소를 뜻하지만 넓게 봐서 수사도 포함한다는 해석도 많다. 즉 현직 대통령은 내란, 외환죄를 빼고는 기소는 물론 수사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수처가 애초 윤 대통령에 대해 직권남용죄를 수사한 것은 불법이고, 직권남용죄와 관련된 범죄로 내란죄를 수사한 것도 당연히 불법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 수사권을 거부하면서 경찰이 수사한다면 응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비상계엄 직후 윤 대통령 내란 혐의를 수사하다가 공수처의 이첩 요구에 따라 사건을 공수처에 넘겼다. 내란죄 수사권 시비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뜨거운 감자’라 여겨 공수처 요구에 응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는 수사권 논란 우려를 예상하지 못한 채 이번 사건을 현직 대통령을 구속해 공수처 위상을 높일 기회로 여겨 사건을 넘기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 경찰에 맡겼다면 적법절차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든 공수처이든 ‘관련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는 규정을 좀 더 명확하게 고칠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내란죄와 관련해 수사권 논란이 불거졌지만,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검찰과 공수처 사이의 업무 관계나 공수처 및 검찰 수사 대상의 애매성 같은 문제는 문재인 정부 때 검수완박을 내세워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인 탓이 크다. 지금껏 없던 국가 수사기관을 만들면서 검찰 권한을 줄이는 데만 급급해 졸속으로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졸속 입법의 후유증을 지금 겪고 있는 것이다. 구치소 수감 피의자 강제 구인 가능한가 구치소 수감 피의자의 강제 구인 문제도 논란이 됐다. 공수처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 대통령이 공수처 소환 요구에 불응한다고 몇 번이나 구치소로 찾아가 윤 대통령을 강제 구인하려고 했다. 공수처 수사실로 강제로 끌고오려 한 것이다. 공수처가 수사를 거부하는 피의자를 굳이 강제 구인하겠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강제 구인할 권한이 있느냐이다. 공수처는 과거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구속된 피의자를 구치소에서 강제 구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강제 구인할 수 있는지에 관한 명시적 법 규정은 없다. 이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을 두는 게 적법절차 논란을 없애기 위해 필요하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대통령 관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 과정에서는 판사가 특정 법 조항의 적용을 임의로 배제할 권한이 있는지가 논란이 됐다. 형사소송법 제 110조와 111조는 ‘군사상·공무상 비밀 장소는 책임자 또는 기관 승낙 없이는 수색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서부지법 영장 담당 판사는 공수처가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이 두 개 조항의 적용을 배제한다고 영장에 기재했다. 이 때문에 판사가 월권을 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사위 현안 질의답변에서 “그 당시 영장판사는 주류적인 견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천 처장은 “형사소송법 주석서를 비롯해 다수 학설도 ‘물적 압수수색과 인적 체포 수색을 달리 취급하는 것이 맞다’는 견해로 알고 있다”며 이같이 답했다. 증거물을 압수수색하는 경우와 달리 피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수색할 때는 군사상·공무상 비밀장소라도 책임자 또는 기관의 승낙 없이도 압수 수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판사가 영장에 이런 취지의 내용을 기재했다고 해서 월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판사의 특정 법 조항 적용 배제 월권 논란 그렇다면 이런 해석을 법 조항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게 옳다. ‘군사상·공무상 비밀 장소라도 피의자를 체포하기 위한 목적일 때는 영장에 기재가 있으면 책임자 또는 기관 승낙 없이도 압수 수색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그런 예가 있다. 형사소송법 제126조는 ‘압수수색 영장에 야간 집행을 할 수 있다는 기재가 없으면 야간에는 압수수색을 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야간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판사가 영장에 ‘야간에도 집행할 수 있다’고 기재하면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법에 명시하면 적법절차 논란을 피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논란이 된 법적 문제는 많다.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할 때 헌법 상의 대통령 권한을 그대로 행사할 수 있는지, 국정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도 범위 내에서 행사해야 하는지가 그 하나이다. 국회가 대통령 대행 국무총리를 탄핵 소추할 때 의결 정족수가 대통령과 같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인지, 일반 공무원대로 2분의 1인지도 논란이 됐다. 국회의장이 국회를 대표해 정부나 대통령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때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지도 그렇다. 이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이라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헌재 결론은 ‘무엇이 위헌이다 또는 위헌이 아니다’를 결정하는 것이지, ‘무엇이 최선이다’라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나오든 합헌 결정이 나오든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는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다. 윤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현직 대통령이 사법체계를 부정하는 후진국가인 것처럼 세계에 비쳤다. 정치적 혼란과 갈등이 극에 달했다. 사법부는 물론 법 자체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했다. 이 모든 일이 법 규정의 허점과 구멍으로 인한 적법절차 논란에서 빚어졌다. 이대로 가면 사법 불신, 법치 불신은 피할 수 없다.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라는 위상도 되찾을 수 없다. 하루 속히 법 정비에 나서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김낭기의 관점] 윤석열 수사로 드러난 법의 허점들…재정비 안 하면 사법 신뢰는 요원
  • [김낭기의 관점] 탄핵 인용도 기각도 설득력이 문제

    지금 한국을 통치하는 기관은 헌법재판소이다. 대통령 운명을 비롯해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많은 일들의 향방이 헌재 결정에 달려 있다. 헌재가 지금처럼 막중한 역할과 책임을 떠맡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만큼 헌재 결정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탄핵 찬성파도, 반대파도 승복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느냐가 핵심이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다양한 사건들을 심리하거나 심리를 앞두고 있다. 지난 3일 기준으로 탄핵 심판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 사건을 비롯해 무려 10건이나 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최재해 감사원장,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지호 경찰청장,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 조상원·최재훈 검사 사건이다. 대통령 권한 대행 국무총리까지 탄핵 심판대에 오른 것은 전례가 없다. 정치 무능을 헌재가 떠안아 탄핵 심판뿐이 아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 국무총리의 탄핵 소추 정족수가 일반 공무원대로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인지 대통령처럼 3분의 2인지, 한덕수 대행이나 최상목 대행의 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헌재 재판관 임명을 보류한 것이 위헌 또는 국회 권한 침해인지도 헌재 심판대에 올라 있다. 이 역시 전례 없는 일이다. 우리에게 대통령 탄핵 심판은 익숙한 풍경이다. 이미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 탄핵 소추 정족수나 헌재 재판관 임명 보류 같은 사건은 이번에 처음 접하는 것들이다. 과거에 없던 사건들이 헌재 심판대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정치가 유례없는 분쟁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고 헌재가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증거이다. 헌법재판소가 정치 갈등의 중심에 선 지금의 현실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정치에서 생긴 문제를 정치 스스로 풀지 못하고 사법부에 떠넘겨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이다. 정치의 본령은 대화를 통한 협상과 타협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실패하고 실종됐다는 징표이다.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법에 의한 갈등 해결은 ‘전부 아니면 전무’식이다.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나눈다. 패자와 승자의 상생은 없다. 형사 재판에서 결론은 유죄 아니면 무죄이다. 탄핵 심판에서도 탄핵 인용 아니면 기각이다. 그 중간은 있을 수 없다. 패자의 마음속에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정치에 의한 해결은 ‘서로 주고 받기’식이다. 나도 양보하고 상대도 양보한다.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나누지 않는다. 그러니 패자 마음속에 앙금이 남을 일도 거의 없다. 법에 의한 해결보다 진정한 화합의 길이 열릴 가능성이 커진다. 정치에서 생긴 문제를 사법부에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선진화의 한 모습이다. 헌재가 정치 갈등 해결의 중심에 선 현실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민주당 "내란죄 철회" 조기 대선 의식? 다만 헌재가 정치 갈등 해결의 중심에 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측면도 있다. 그만큼 법치주의가 성숙해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법치주의는 정치 갈등과 분쟁을 헌법과 법률 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방식이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공산당 독재국가는 물론이고 과거 우리의 유신체제나 전두환 독재 체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는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기무사 같은 정보기관에서 정치인들을 그냥 잡아가 협박하고 고문까지 했다. 무법천지였다. 지금은 이런 방식이 통할 수 없다. 법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됐다. 헌재의 탄핵 심판은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이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에 놀라면서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평화적으로 수습하는 방식에 또 한번 놀라고 있다. 문제는 법치주의에 의한 갈등 해결이 패자의 마음속 앙금을 풀 만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냐이다. 정당성은 절차와 내용 모두에서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관심사로 떠오른 문제가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대상에서 내란죄 부분을 빼는 문제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 측은 지난 3일 탄핵 심판 대상에서 “형법상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당초 민주당 주도로 작성한 탄핵 소추안에는 탄핵 사유로 ‘내란죄’가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이를 ‘군·경찰 동원 국회 방해 행위’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행위가 헌법에 위반하는지만 따지고 내란죄에 해당하는지는 따지지 않겠다는 취지이다. 민주당은 내란 혐의의 핵심이 ‘군·경찰 동원 국회 방해 행위’인 만큼 실질적인 탄핵 사유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내란죄가 2대 탄핵 사유였는데 이제 와서 내란죄를 뺀다면 당초 국회의 탄핵 소추 결의가 무효가 된다며 국회 탄핵 결의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탄핵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탄핵 소추안에서 내란죄를 제외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국민을 기망하는 처사”라고 했다. 국회측 대리인은 내란죄 주장 철회 이유를 ‘탄핵 심판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국정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서는 대통령 탄핵 심판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 옳다. 내란죄 여부를 따지려면 많은 증인을 헌재 법정으로 불러 심문해야 해 심판 기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탄핵 심판 종료 시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 시점과 맞물려 나라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 대표 선고가 나오기 전에 탄핵 심판을 끝내고 조기에 대선을 치르는 게 유리하다. 그래서 탄핵 심판을 되도록 빨리 끝내려고 내란죄 주장을 철회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내란죄 주장 철회는 법 논리로나 현실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로나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법에 탄핵 사유 철회에 대한 명문의 규정은 없고, 이 부분은 재판부에서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내란죄 주장을 탄핵 사유에서 철회해도 되는지는 재판부가 판단한다는 말이다. 헌재가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중 어느 쪽 주장을 받아들이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 왜 그런 결론을 냈는지를 많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헌재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게 된다.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헌재가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그 결과 역시 패자 쪽에서는 승복하기 어려워진다. 마음속에 앙금을 품게 된다. 패자 마음에 앙금 남으면 화합 요원 탄핵 심판 과정에서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 선포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주장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헌재 법정에 출석해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KBS, MBC,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은 대략 26%, 찬성하는 여론은 70% 수준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탄핵 소추 남발 같은 국정 방해의 방지가 계엄 선포보다 더 큰 문제라고 여긴다. 대통령이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게 이들의 정서이다. 물론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어떤 수단이든 용인될 수는 없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국정 방해 사태의 해결이라는 계엄 선포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는지, 인정된다면 계엄 선포라는 수단이 적절한지를 따지게 된다.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 및 적절성 여부에 대한 헌재 결정 이유를 탄핵 찬성파이든 반대파이든 마음으로 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목적이 부당하다면 왜 부당한지, 목적은 정당하지만 계엄 선포라는 수단이 부적절하다면 왜 부적절한지, 나아가 목적도 부당하고 수단도 부적절하다면 왜 그런지를 탄핵에 반대하는 ‘26%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도 적절해서 탄핵 대상이 안 된다면 왜 그런지를 탄핵에 찬성하는 ‘70%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 1588년 ~ 1679년)는 ‘법은 입이 없다. 사람의 입을 통해 말할 뿐이다’라고 했다. 법에는 허점도 있고, 구멍도 있고, 불명확한 것도 있다. 그래서 항상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 허점과 구멍과 불명확성을 채워 넣고 명확하게 하는 건 그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해석과 적용에 따라 법의 의미가 달라진다. 즉 ‘무엇이 법인지’가 결정된다. 이게 홉스의 말에 담긴 뜻이다. 법 규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헌재 재판관은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탄핵 심판을 통해 ‘무엇이 법인지’를 선언하게 된다. 그 선언을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이든 찬성하는 국민이든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화합과 통합을 이룰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패자의 마음속에 앙금이 남는다. 법치주의는 효용성을 잃고 갈등과 대립은 지속된다. 탄핵 심판에 임하는 헌재 재판관들의 ‘입’을 주목하는 이유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김낭기의 관점]탄핵 인용도 기각도 설득력이 문제
  • [김낭기의 관점] 윤석열 탄핵 심판도 이재명 선거법 재판도 '법대로'가 해법

    우리 역사상 지금처럼 사법부가 정국 혼란과 갈등 수습의 중심에 선 적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탄핵심판’을 다루고 있고, 법원은 ‘이재명 선거법 사건 재판’을 다루고 있다. 헌재와 법원이 각자 언제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정국은 물론이고 나라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법부의 올바른 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순간이다. 그 결정의 기준은 다름 아닌 법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이 대표 공직선거법 재판 선고 시점은 대선 구도를 뒤흔들 최대 변수이다. 탄핵 인용 결정이 나와 대통령이 궐위되면 그날로부터 60일 이내에 대선이 실시된다. 이 대표가 대선일 전에 대법원에서 선거법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피선거권이 박탈돼 대선에 출마하지 못한다. 민주당으로선 이른 시일 안에 대선이 실시되도록 탄핵 결정은 최대한 앞당기고, 선거법 판결은 대선 이전에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늦추는 게 유리하다. 이 대표가 대선에서 당선되면 선거법 재판은 중단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탄핵 심판 결정은 최대한 늦추고 선거법 유죄 확정 판결은 최대한 앞당겨 대선 실시 전에 이 대표가 피선거권을 잃도록 하는 게 유리하다. 지금 나라는 이처럼 계산을 달리하는 정당과 그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한쪽에선 탄핵심판 빨리 하라고 외치고, 다른 한쪽에선 이 대표 재판 빨리 하라고 외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재판소에 “윤 대통령 파면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달라”고 촉구했다. 일부 의원은 ‘내년 2월까지 탄핵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시점까지지 못 박아 주장한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지난 16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부의 빠른 판결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에서 국민의힘은 “사법부는 민생과 국가질서를 위협하는 범죄 사건에 대해 법률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흔들림 없이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며 “지난 11월 15일 1심 선고가 나온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법 규정대로 (1심 선고일로부터 3개월인) 내년 2월 15일까지 2심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갈등하고 대립하는 상황에서 문제를 합리적으로 푸는 방법은 법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3일 윤 대통령이 느닷없이 선포한 비상계엄을 두 시간 반 만에 평화적으로 무효화하고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라는 헌법 절차를 따른 덕분이다. 탄핵 심판과 선거법 재판을 둘러싼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법 절차를 따르면 된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권력은 법의 제한을 받는다. 이게 법치주의이다. 대통령 탄핵은 청구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기각 또는 인용 결정을 내리도록 헌법재판소법에 정해져 있다. 헌재는 과거 사례에서 이 같은 법정 기한을 지켰다. 탄핵심판 청구 때부터 기각 또는 인용 결정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2개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3개월 만에 끝냈다. 헌재는 지난 16일 이미 청구된 다른 탄핵 사건보다 최우선적으로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당연한 일이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 청구된 사람에 대해 탄핵 사유와 같은 이유로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일 때 피청구자가 원하면 형사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탄핵심판 절차를 정지할 수 있게 돼 있다. 실제로 ‘고발 사주 의혹’으로 탄핵이 청구된 손준성 검사장의 경우가 그랬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기소되면 탄핵 심판 절차 정지를 신청할 수도 있다. 헌재가 이를 받아들이면 절차가 정지된다. 그러나 그 경우 대통령직 공백 상태가 지속돼 국정 혼란과 불안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 헌재가 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설명을 하는 게 중요하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27일 첫 번째 탄핵심판 변론 준비 기일을 열기로 했다. 변론 준비 기일이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청구한 국회와 탄핵 청구를 당한 윤 대통령이 주요 쟁점과 증거 등을 정리하는 절차이다. 준비 기일은 양측 주장에 따라 앞으로 몇 차례 더 열릴 수 있다. 준비 기일 절차가 끝나면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간다. 헌재는 지난 16일 윤 대통령에게 탄핵 심판 서류를 여러 경로로 보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서류를 수령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류가 송달되지 않으면 27일 첫 변론 준비기일을 비롯해 탄핵심판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서류를 끝내 수령하지 않을 경우 법에 정해진 다른 송달 절차를 밟아서라도 탄핵 심판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 대표 선거법 2심(항소심) 재판도 서류 송달 문제로 지체되다 겨우 진행되게 됐다. 서울고법은 소송기록 접수 통지서를 지난 9일과 11일 이 대표에게 우편으로 발송했지만, 이사를 갔거나 집이 닫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송달되지 않았다. 이에 법원은 집행관을 통해 인편으로 이 대표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 등에 서류를 전달했고 지난 18일 이 대표의 의원회관 사무실 비서관이 서류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이라는 제목 아래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前審·1심과 2심을 의미)의 판결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 이를 흔히 ‘6·3·3법’이라고 한다. 법 조항에 ‘강행 규정’이라는 제목을 단 사례는 거의 없다. ‘반드시’라는 문구를 사용하는 사례도 드물다. 그러나 이 조항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 대표도 2022년 9월 기소된 뒤 2년 2개월 만인 지난 11월 15일에야 1심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270조 규정을 ‘훈시 규정’으로 여겨 왔다. 훈시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 할 강행 규정이 아니라 가급적 지키라는 가이드라인이라는 의미다. 법 조항 제목이 ‘강행 규정’이라고 돼 있는데도 훈시 규정으로 여기고 지키지 않았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9월 선거법 위반 재판과 관련해 '선거법 강행규정을 지켜달라'는 권고문을 일선 법원에 보냈다. 법원행정처의 조치는 “법원부터 선거 재판 기간을 규정한 선거법을 지켜야 한다”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평소 지론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조 대법원장은 “공직직선거법에 명문화된 6·3·3 규정을 법관이 훈시규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법 해석이다. 문언대로 ‘강행규정’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 선거법 사건 재판이 얼마나 빨리 진행되느냐는 재판부 의지에 달려 있다. 대법원은 2002년 6월 25일 재판부 의지와 관련해 큰 의미를 갖는 판결을 했다. ‘항소심법원이 일정한 선고기일을 염두에 두고 공판기일을 정하여 진행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자의적인 재판 진행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 판결이다. 재판부가 선고 기일을 머릿속에 정해 두고 이에 맞춰 재판을 서둘러 진행해도 문제 없다는 뜻이다. ‘270조 규정을 최대한 준수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판결대로 이 대표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 기일을 미리 정해 놓고 이에 맞춰 재판 절차를 서둘러 진행하면 법정 시한인 내년 2월 15일 이내에 판결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2심 뒤 열릴 대법원 재판도 마찬가지로 내년 5월 15일 이내에 마칠 수 있다. 만약 윤 대통령 탄핵 결정으로 조기 대선이 실시되고 그때까지 이 대표 선거법 재판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자체가 정국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대표가 대선에서 낙선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당선되면 큰 혼란이 따를 수 있다. 재판이 지연되지 않았다면 유죄 판결이 확정돼 이 대표는 대선 출마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었는데 재판이 지연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는 반발과 비판 여론이 비등할 수 있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직선거법 270조의 6·3·3 규정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나라가 조속히 안정과 질서를 되찾느냐, 계속 혼란과 갈등에 빠지느냐가 사법부 결정에 달려 있다. 권력 눈치를 보거나 권력에 영합한다면, 그래서 법치주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혼란과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온 국민이 사법부를 주시하고 있다.

    [김낭기의 관점]윤석열 탄핵 심판도 이재명 선거법 재판도 법대로가 해법
  • [김낭기의 관점] 탄핵 정국 대립 핵심 요인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 셈법 차이

    ‘즉각적인 직무 정지’와 ‘질서 있는 조기 퇴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자 윤석열 대통령 퇴진 해법으로 주장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탄핵을 통한 대통령직 배제를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아직 명확한 방법을 내놓지는 않았으나 개헌을 통한 대통령 임기 단축 등을 거론하고 있다. 두 당은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려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명분이다. 그러나 그 명분 뒤에는 차기 대권 싸움에서 서로 유리한 고지에 서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각자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계산이다. 그 계산의 차이가 탄핵 정국 해법을 두고 민주당과 국민회의가 대립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즉각적인 직무 정지는 민심 호응을 명분으로 한다. 이번 계엄 선포는 헌법에 정해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선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헌법 제77조 ③항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특별 조치 대상에 국회는 빠져 있다. 그럼에도.국회에 군인을 출동시켜 국회 활동을 막으려 하고 계엄 포고령 제1호에서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려 했다. 이런 행위는 내란죄에 해당하고 내란죄 혐의를 받는 사람이 대통령직을 유지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게 민심이다. 민주당은 '민심 호응', 국민의힘은 '혼란 방지' 앞세워 윤 대통령은 식물인간 상태다. 국정 수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조속히 직무에서 배제하는 게 국정 혼란을 막기 위해서도 시급하다. 이 역시 민심이고, 즉각적인 직무 정지라는 민주당 주장의 명분이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은 혼란 방지를 명분으로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탄핵은 실제로 (국회에서)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불확실성이 상당한 기간 진행된다”며 “그 과정에서 극심한 진영의 혼란이 예상된다”고 했다. 탄핵은 헌재 결정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시점과 결과가 불확실해 혼란을 야기한다. 그래서 일정 시점을 지정하고 그때에 맞춰 조기 퇴진하는 것이 국정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한 대표 주장이다. 한 대표는 탄핵에 버금가는 즉각적 직무 정지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국무총리가 국정 운영을 직접 챙기고 대통령은 뒤에 물러나 있게 하면 된다고 했다. 대통령이 궐위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무총리가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야당은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국정농단 상황에서 우원식 현 국회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총리에게 전권을 맡겨라’고 말했다. 그때 그 솔루션(해법)을 나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자 명분을 앞세워 자기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명분이 전부는 아니다. 그 뒤에 깔린 계산을 봐야 양측의 속내를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다. 민주당은 가능한 한 빨리 윤 대통령을 퇴진시키려 하고 국민의힘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자리를 유지하게 하려 한다. 왜 그럴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문제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李 사법 리스크' 현실화 막으려 이 대표는 지난 11월 15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만약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이 대표는 피선거권이 박탈돼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문제는 대법원 판결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대표 입장에서는 대법 판결이 나오기 전에 대선을 실시하는 쪽이 유리하다. 그러자면 대선 날짜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그 방법이 탄핵이다. 국회 탄핵안 가결에서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은 3개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2개월 걸렸다. 대통령이 궐위되면 헌법 제68조 ②항에 따라 그로부터 60일(2개월) 이내에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탄핵되면 헌재 탄핵 심리에 걸리는 기간 2~3개월과 탄핵 결정 뒤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하는 기간 2개월을 합치면 앞으로 늦어도 4~5개월 이내에 대선이 실시될 수 있다. 이 기간 내에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윤 대통령 탄핵이 헌재에서 결정되면 법원은 비상한 정치 상황을 맞아 이 대표 재판을 연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선 전까지 대법 판결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대법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이 대표는 피선거권 제한을 받지 않아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지금 분위기로는 이 대표 당선 가능성이 크다고 볼 것이다. 이 대표가 당선되면 대통령 임기 동안 재판은 중단될 것이다. 이게 이 대표가 바라는 최상의 상황일 것이다. 민주당이 ‘매주 탄핵안 발의’라는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데는 이런 ‘시간 싸움’의 고려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 국민의힘 계산은 이와 정반대이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이 대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대선을 실시하는 게 유리하다고 볼 것이다.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오면 이 대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은 다른 대선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 이 대표 말고 다른 후보가 나오면 국민의힘은 승산이 있다고 볼지 모른다. 이런 상황을 노려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명분으로 시간을 벌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현실화하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들에게 “이대로 당장 대통령을 탄핵해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에 정권을 헌납할 수 없다”고 했다. 박정훈 의원은 SNS에 “이재명 대표가 법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현 정부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며 “대통령 탄핵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썼다. ‘탄핵=이재명 정권 등장’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민주당이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최대한 피하려는 반면에 국민의힘은 이를 최대한 이용하려 한다. 민주당이 즉각적인 직무 정지를, 국민의힘이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주장하는 이면에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와 관련한 서로 다른 셈법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희망 사항에 빠져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면 헌법재판소에서 반드시 탄핵 결정이 날 것으로 전제한다.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기각될 수도 있다. 만약 기각되면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복귀하고 조기 대선은 물 건너 간다. 대선은 윤 대통령 임기 종료 뒤인 2027년 3월에야 실시된다. 그 안에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건 확실하다. 그리 되면 이 대표는 대선 출마 꿈을 접어야 한다. 국민의힘은 대법원에서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에 유죄가 확정될 것으로 전제한다. 이 역시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 무죄가 나오면 이 대표의 대선 행보에는 거칠 게 없어진다. 아무리 대선을 늦춰도 이 대표 출마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희망 사항에 근거해 자신만의 탄핵 정국 해법에 몰두할 일은 아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서로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욕심에서 벗어나 상대방 입장에서 해법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여야, 제3의 해법 찾을 수 있을 텐데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 집단 불참으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폐기되자 탄핵 의결이 될 때까지 매주 본회의를 열고 탄핵 소추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집단 불참으로 탄핵안이 폐기됐으면 그것으로 일단 국회 절차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 의사는 탄핵 불발로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매주 탄핵안을 발의한다면 법이 아닌 힘으로 자기들 뜻을 관철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어긋난다. 민주당의 매주 발의에 국민의힘이 집단 불참으로 맞서면 나라는 안정될 수 없다. 탄핵안 표결이 이뤄질 때마다 거리에는 탄핵 찬성 시위와 반대 시위가 벌어져 갈등과 혼란만 커진다. 국민의힘이 표결에 참여해 반대하지 않고 표결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정상적인 국회 운영은 아니다. 국민의힘은 집단 불참도 의사 표시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이 양곡관리법이나 노란봉투법을 강행 통과시킬 때 표결에 집단 불참했다. 그때는 국민의힘이 표결에 참여해 반대한다고 해서 이들 법의 통과를 저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집단 불참은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에 항의한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탄핵안은 다르다. 국민의힘이 반대하면 탄핵안 통과를 막을 수 있다. 국민의힘이 참여해 부결시키면 민주당이 더 이상 탄핵안 발의를 되풀이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할 명분이 없다. 그럼 탄핵 논란을 끝낼 수 있다. 만약 그 뒤에도 민주당이 또 탄핵안을 발의한다면 그때는 국민의힘이 집단 불참으로 폐기시켜도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물론 탄핵안 통과를 막은 행위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앞으로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심판을 받게 될 수 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 활용이라는 계산에만 빠져 있지 않으면 의외로 탄핵 정국을 풀 해법이 나올 수 있다. 민주당은 탄핵안을 한 번만 더 발의하겠다고 약속하고, 국민의힘은 표결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지되, 탄핵안이 부결되면 민주당이 다시는 탄핵안을 발의하지 않기로 여야가 합의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면 어떨까. 윤 대통령이 이른 시일 내에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구속될 수도 있다. 구속되면 물론이고 불구속 기소되더라도 그 즉시 대통령직 사퇴는 피할 수 없다.꼭 탄핵이 아니라도 직무 정지나 배제의 길이 열려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김낭기의 관점] 탄핵 정국 대립 핵심 요인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 셈법 차이
  • [김낭기의 관점] 법에 매달리는 윤석열ㆍ법을 무시하는 이재명…둘 다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에 매달려 이치를 무시하다 민심의 쓴맛을 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힘만 믿고 법을 우롱하다 법의 무서움을 맛봤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문제로 지탄을 받고,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게 그렇다. 법에만 매달리는 것도, 법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이다. 물론 문제의 성격이 다르긴 하다. 윤 대통령의 경우는 야당 공세와 비판 여론에 대한 대응이라는 정치력의 문제이다. 반면에 이 대표의 경우는 법치주의 훼손이라는 기본 원칙의 문제이다. 그만큼 심각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 여론 조사에서 부정적 평가 요인으로 빠지지 않는 게 김 여사 문제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김 여사 문제는 최근까지 5주 연속 부정 평가 최상위를 차지했다. 지난 12~14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직무수행의 부정 평가 이유로 ‘김건희 여사 문제’(16%)가 1위로 꼽혔다. ‘경제/민생/물가’(13%), ‘소통 미흡’(7%) ‘경험·자질 부족/무능함’ (이상 6%)을 훨씬 앞섰다. 민심보다 법을 앞세우는 윤 대통령 대응방식의 대표적 사례가 검찰의 김건희 여사 방문 조사 특혜 논란이다. 검찰은 김 여사의 도치이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를 검찰청사로 소환하지 않고 경호처가 제공한 외부 장소에서 조사했다. 검찰의 김 여사 무혐의 판단 못지않게 방문 조사도 큰 논란거리가 됐다. 김 여사 방문 조사 특혜 논란에 '특혜 아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 “저도 검사 시절에 전직 대통령 부인, 영부인에 대해 멀리 자택까지 직접 찾아가서 조사를 한 일이 있다”고 했다. “(검찰) 조사 방식은 정해진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로 하는 거면 (검찰청사에서 조사를) 하겠지만, 모든 조사는 원칙적으로 임의조사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조사 방식, 장소를 정할 수 있다”고 했다. 방문 조사가 특혜가 아니라는 말이다. 법적으로야 윤 대통령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말이다. 많은 국민들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일수록 일반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하물며 대통령 부인에게는 더 말할 게 없다. 검찰이 스스로 김 여사를 검찰청사로 소환하는 결정을 하긴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검찰청사로 소환해 조사하라고 할 수도 있었다. 대통령 부인이라도, 아니 대통령 부인이기에 더욱더 일반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이게 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래서 김 여사가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서고 기자들 질문을 받고 나아가 ‘물의를 일으켜 국민께 죄송하다’고 했더라면 김 여사를 향한 민심은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두고두고 국정의 발목을 잡히게 되지는 않았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른바 ‘명품 백’ 사건에서도 민심을 놓쳤다. 윤 대통령은 법률 전문가이니 내심 김 여사가 무죄라고 판단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눈은 다르다. 다수 국민들은 대통령 부인이 덥석 선물을 받는 것은 법적 유·무죄를 떠나 잘못이라고 여긴다. 대통령 부인이라면 처신이 일반인과는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민심이다. '명품 백'사건, 진작 딱부러지게 사과했어야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김 여사를 감싸고 도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건이 지난해 11월 처음 터지고 나서 3개월이 지난 올해 2월에서야, 그것도 ‘특별 대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입을 열었다. 시기와 방식도 문제이지만 내용은 더 큰 문제였다. 사과나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백을 건네 준 최재영 목사가 사무실로) 자꾸 오겠다고 해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된다”고만 했다.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며 인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몰카에 의한 정치 공작’이라는 말도 강조했다. 사과보다는 변명에 가까운 말들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사건 초기에 스스로 나서서 ‘대통령 부인으로서 선물을 받은 것은 그 경위야 어떻든 명백히 잘못한 일이다. 이 점에 대해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 사건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즉각 사과하지 않은 데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윤 대통령 내심의 법적 판단도 결코 작지 않은 요인이 됐을 것이다. ‘법적으로 무죄인데 뭐가 그리 큰 문제냐’하고 생각했을 수 있다. 실제로 언론 보도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도 있었다. 김 여사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윤 대통령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을 때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는 보도이다. “(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중대한 실책이 없는데도 여론이 요구한다는 이유로 국면 전환 인사나 조치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안다.” 법적 판단을 민심에 따른 판단보다 우선하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지난 15일로 예정된 공직선거법 1심 판결을 앞두고 대규모 거리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김 여사 특검 촉구라는 등의 명분을 댔지만 1심 판결을 앞둔 세 과시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민주당 내 몇몇 조직들이 모두 나서 이 대표 ‘무죄 촉구’ 시위를 하거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대표 열렬 지지자들은 ‘이 대표 무죄 탄원 100만명 서명 운동’을 벌였다. 일부 의원은 법원이 유죄 판결을 하면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무죄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은 법정에서만 할 수 있다. 법정 밖에서, 그것도 대규모 집회와 시위, 서명을 통해 주장하고, 게다가 탄핵까지 운운하면 법원에 대한 겁박이 될 수밖에 없다. 무죄를 선고하라고 판사를 협박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행위는 재판의 근본을 해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여간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 대표 무죄' 시위, 재판의 근본 훼손 민주법치국가에서 재판의 근본은 ‘자유심증주의’이다. 어떤 증거를 유죄 증거로 볼지, 무죄 증거로 볼지는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긴다는 말이다.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법관도 신이 아닌 이상 유·무죄 판단을 잘못할 수 있다. 유죄를 무죄로, 무죄를 유죄로 오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기는 이유는 그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법관이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압력을 받지 않고 양심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게 여러가지 재판 제도 중 가장 낫다는 인류의 오랜 경험과 전통에 의한 것이다. 그 대신 3심 제도나 재심 제도 등 오판을 최대한 막기 위한 제도를 두고 있다. 법원이 이 대표에게 공직선거법 위반죄를 인정해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이 대표와 민주당은 법원이 검찰의 억지 주장만 받아들여 유죄 판결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 측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 주장을 반박하며 무죄라는 주장을 수없이 폈다. 판사는 양측 주장을 다 듣고 나서 이 대표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어느 쪽 증거가 더 타당한지는 판사의 자유 판단에 따른다는 자유심증주의에 의한 판결이다. 이 대표가 자유심증주의를 존중한다면 앞으로 2심에서 자기한테 유리한 새로운 증거를 내세워 판사가 무죄 심증을 갖도록 하면 된다. 그게 법 절차를 지키는 길이다. 그러지 않고 법원을 향해 무죄 압박 시위를 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훼손하는 일이다. 판사에게 양심껏 하지 말고 민주당 힘을 보고 재판하라는 말이다. 검은 것을 희다고 하라는 말이다. 이 어찌 재판의 근본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 민주당은 이 대표 수사 검사를 탄핵하겠다고 국회에서 청문회를 여는 등 법석을 떨었다. 이 대표를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를 보복하려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검사가 정말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다면 탄핵을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표를 수사하고 기소했다는 이유로 탄핵 운운하는 것은 힘을 앞세워 법을 우롱하는 또 하나의 법치 무시일 뿐이다. 명백한 위법 없는데도 수사 검사 탄핵 추진 민주당은 검찰이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자 수사를 지휘한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탄핵 소추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다 취임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이 사건을 지휘할 수 없었던 검찰총장까지 탄핵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의 반박에 밀린 듯 검찰총장은 탄핵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장 등 간부 3명 탄핵은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검사가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할 때 무혐의 처분하는 것은 합법적 권한 행사이다. 그 판단이 반드시 옳은 판단이었느냐 하는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합법적 권한 행사인 이상 법 위반은 아니다. 따라서 탄핵 대상도 될 수 없다. 탄핵 추진은 법 무시 행위일 뿐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대놓고 법원을 겁박하고 법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국회 다수당이라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힘을 앞세워 법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임을 모를 사람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무죄를 ‘확신’하고 ‘촉구’해도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법의 엄정함을 피해가지 못했다. 민주당은 1심 유죄 판결을 ’사법 살인’ ‘정치 재판’이라고 주장한다. 힘을 앞세워 법을 무시하는 행위가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는 말이 있다. 억지는 이치를 못 이기고, 법은 권세를 못 이기고, 권세는 하늘을 못 이긴다는 뜻이다. 법을 앞세워 민심을 거스르는 윤 대통령은 억지가 이치를 못 이긴다는 말을, 힘을 앞세워 법을 무시하는 이 대표는 권세가 하늘을 못 이긴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김낭기의 관점] 법에 매달리는 윤석열ㆍ법을 무시하는 이재명…둘 다 문제다
  • [김낭기의 관점] '명태균 입'에 휘둘리는 한국 정치의 가벼움

    , 명태균씨 소동을 보면서 한국정치가 얼마나 경박한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명씨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치권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국정감사에서 공방을 벌인다. 특히 국민의힘은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명씨에게 했다는 ‘오빠’가 친오빠냐 윤석열 대통령이냐를 놓고 싸우는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명씨 폭로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우리 정치가 휘말려들어야 하는가? 그 난리를 쳐야 하는가? 명씨가 언론 인터뷰나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폭로한 내용의 핵심은 그가 대선 전 윤 대통령 부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윤 대통령 부부에게 많은 정치적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명씨는 아크로비스타 306호 윤 대통령 자택에 “셀 수 없이 갔다”며 “제가 거기 연결이 된 거는 (2021년) 6월 18일”이라고 했다. 명씨는 “6개월 동안 매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며 여러 조언을 했어요. 가끔 낮에도 여러 번씩 통화했어요. 스피커폰으로 아침에 전화 오세요. 두 분이 같이 들으시니까.” ‘6개월’이란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때인 2021년 6월~11월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명씨 폭로의 핵심 정리해 보니 명씨는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에도 조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때 대통령 내외분이 전화가 오셔서 말씀하시길래 오늘 그냥 입당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내외분이 ‘7월 30일’, ‘8월 3일’, ‘8월 6일’, ‘8월 15일’ 말씀을 해서 제가 말씀드리고 나서 바로 (입당하러) 가셨다”고 했다. 그는 “제가 말해서 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제가 말씀드리고 나서 바로 입당하신 거는 사실”이라고 했다. 명씨는 2022년 1월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결별 원인으로 꼽히는 ‘후보는 우리가 해준대로만 연기만 좀 해달라’는 김종인 위원장 발언도 자신이 한 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에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은 제로였으나 제가 얘기한 게 투자자, 배급사가 국민의힘이고, 감독이 누구냐, 김종인이며, 연출은 누구냐 이준석, 시나리오는 내가 짜줄게. 후보는 연기나 잘하시면 됩니다. 이거였다”고 했다. 명씨는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갈등을 빚을 때 자신이 나서서 중재를 한 듯한 주장도 했다. 명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김건희 여사와 주고받은 카톡메시지 캡처본에 따르면, 명씨는 김 여사에게 “내일 준석이를 만나면 정확한 답이 나올 겁니다, 내일 연락 올리겠습니다”라고 썼다. 이에 김 여사가 “넘 고생 많으세요!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주세오(요) 제가, 난감 ㅠ”, “무식하면 원래 그래요. 사과드릴게요”라고 썼다. 여기서 말하는 ‘오빠’가 김 여사의 친오빠냐 윤 대통령이냐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대통령실이 설전을 벌였다. 명씨는 대선 당시 윤 대통령 부부를 만나 국무총리를 추천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이력서(서류심사)도 자신이 봤다고 했다. 명씨는 인수위(2022년 3월~5월) 때 김 여사가 자기에게 ‘인수위 인사들을 면접봐 달라’고 했다고 했다. 김 여사 '철없는' 행위는 개탄스럽지만 명씨의 폭로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풍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폭로가 사실이라면 우선 김건희 여사 처신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 기간 중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김 여사가 명씨를 통해 이 문제에 관여했다는 게 그 하나다. 아무리 대선 후보의 아내로서 남편을 돕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아내가 이처럼 남편 정치 문제에 관여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은 아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인수위 사람들 면접을 봐 달라’고 했다는 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김 여사는 대통령 당선자 부인이지만 사적 신분이다. 인수위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된 공식 기구이다. 사적 신분의 김 여사가 법적 공식 기구에서 일할 사람들 선발에 개입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을 지칭하는 듯한 맥락에서 ‘철없이 떠든다’고 했지만 실제 ‘철없는’ 사람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서는 김 여사가 아닌가? 그러나 명씨 폭로가 전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김 여사 처신의 ‘철없음’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될 만한 게 뭐가 있는지 의문이다. 명씨가 대선을 전후해 윤 대통령과 자주 연락하며 조언을 했다는 게 문제가 되나? 선거판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명씨도 그런 사람의 하나일 뿐이다. 국정 개입이나 농단 같은 건 없어 윤 대통령이 명씨 조언의 일부를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명씨 외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조언을 들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문제라고 할 수 있나? 대통령 후보가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조언을 얼마나 가려들었는지는 후보의 안목이나 신중함의 문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비리나 불법 부당의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를 자주 만나고 조언을 했다는 시점은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대선 운동 기간이다. 모두가 윤 대통령 취임 이전이다. 정말로 문제가 된다면 명씨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에 개입하거나 윤 대통령이 명씨에게 불법 부당한 특혜를 줬을 경우이다. 그러나 명씨가 대통령을 팔아 이권에 개입하거나 검은 돈을 받았다는 등의 사실은 밝혀진 게 없다. 대통령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거도 없다. 윤 대통령이 명씨에게 휘둘려 국정을 함부로 했다는 증거도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정치는 명씨가 엄청난 비리나 불법, 국정 개입이나 국정 농단을 폭로하기라도 한 듯이 그이 입에 휘둘리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하면 할수록 대통령 부부에 대한 의혹과 불신은 커져가고 정권의 몰락은 앞당겨질 뿐"이라고 했다. 대통령 부부와 명씨 사이에 정권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의혹이 있는데도 숨기고 있다는 투다. 지금까지 드러난 명씨의 폭로 중에 그렇게 의심할 만한 내용이 뭔가? 국민의힘은 정치 브로커의 활동을 막는 ‘명태균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정치 브로커의 입을 어떻게 법으로 막을 수 있다는 건가. 명씨는 “아직 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며 “대선 때 내가 한 일을 알면 모두 자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내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검사에게 '(나를 구속하면) 한 달이면 (윤 대통령이) 하야하고 탄핵될 텐데 감당되겠나. 감당되면 하라'고 말할 것”이라고도 했다. 자기를 구속하면 윤 대통령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내용보다 더욱 엄청난 내용을 폭로하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온 정치권이 난리 만약 명씨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20분의 19’를 전부 폭로하고, 거기에 정말로 윤 대통령이 탄핵될 만한 내용이 있다면 윤 대통령에게 엄정한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으면 된다. 국민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이 나오기 전까지는, 더구나 그런 내용이 사실이라는 증거나 정황이 나오기 전까지는 명씨 입에 휘둘릴 일이 아니다. 한 언론 표현대로 “거간꾼인지 협잡꾼인지 ‘듣보잡’ 인물”의 경박스러운 폭로에 휘둘리는 것은 그보다 더 경박스러운 일이다. 명씨가 여론조사를 조작하거나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명씨가 어떤 불법을 저질렀다면 그건 그것대로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명씨의 불법 행위를 처벌하는 것과 명씨 입에 휘둘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10월 16일 실시된 부산 금정구청장과 인천 강화군수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야당 후보를 큰 득표율 차이로 이겼다. 이 두 곳은 국민의힘의 전통적인 텃밭이라고 불린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명씨 소동이 하루도 그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을 지지했다. 국민들은 명씨 소동이 말 그대로 가십성 소동일 뿐 정부 여당을 심판해야 할 만한 사건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뜻 아니겠는가? 국민이 정치권보다 더 사안의 본질을 바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 부부가 명씨 소동을 계기로 되돌아봐야 할 게 있다. 김 여사의 ‘철없는’ 처신이 갈수록 걱정과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그 하나다. 김 여사는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 직후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한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57분간 통화했다고 이 인사가 밝혔다. 김 여사는 대선 때는 인터넷 매체 직원과 7시간 45분 동안 통화한 내용이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팬클럽에 보내고, 친북 인사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도 휩싸였다. 이런 일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반복되니, 이러다 정말로 무슨 큰 사고라도 치는 게 아닌가 가슴을 졸이게 하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 부부에게는 '쓴 약' 돼야 부인 일에 두루뭉술 넘어가기만 하는 윤 대통령의 엉거주춤한 자세도 되돌아 봐야 할 일이다. 윤 대통령이 그런 자세를 취하니 김 여사가 자기 처신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정말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그 이전과는 달리 스스로 사람을 가려서 만나고 조언을 구하는 신중함과 지혜를 잃지 않고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지난 4월 윤석열·이재명 회동을 앞두고 윤 대통령을 사적으로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는 사람들이 대통령 말을 미주알고주알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생기면 국민은 윤 대통령이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할 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신중함이나 지혜를 잃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명태균 소동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입에 쓴 약'이 돼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김낭기의 관점] 명태균 입에 휘둘리는 한국 정치의 가벼움
  • [김낭기의 관점] 윤 대통령, '사단장은 빼라' 지시 인정하고 정당성 설득했더라면

    해병대원 특검법, 벌써 세번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해병대원 특검법을 국민의힘 의원 퇴장 속에 강행 통과시켰다. 해병대원 특검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국방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핵심 수사 대상으로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월과 7월에도 그랬다. 그때마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맞섰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그럴 게 확실하다. 똑같은 법안에 세 번씩이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 윤 대통령으로선 징글징글할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은 정치 공세로 일관하는 민주당을 탓할 것이다. 민주당 탓도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윤 대통령의 정치력 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윤 대통령 수사 개입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것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등장하는 직책들은 사건 당시 기준임)이 항명 혐의로 국방부 조사를 받으면서 제출한 진술서에서였다. 앞서 지난해 7월 19일 해병대원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박 단장은 7월 30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하겠다고 국방부에 보고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를 결재했다. 그런데 하루 만인 7월 31일 결재를 번복하고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을 통해 박 단장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그럼에도 박 단장은 8월 2일 오전 경북경찰청에 수사기록을 이첩했다. 국방부는 당일 오후 경북경찰청에서 수사기록을 회수했다. 그리고 박 단장을 항명 혐의로 입건했다. 국방부는 8월 9일 이 사건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하고 재조사를 거쳐 8월 24일 임성근 사단장 등을 뺀 대대장 2명의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8월 28일 박 단장을 항명 혐의로 소환조사했다. 이때 박 단장이 사건의 경찰 이첩 보류 배경에 윤 대통령 의중이 작용했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국방부에 제출한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진술서 내용에 따르면 7월 31일 박 단장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임성근 사단장을 혐의 대상에서 빼라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김 사령관이 ‘(오늘)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대통령) 주재 회의 도중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박 단장이 ‘정말 VIP가 맞습니까’라고 묻자 김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고 한다. 통화 기록에서 나타나는 대통령 개입 정황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윤 대통령이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했다는 외압 의혹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 비춰 보면 윤 대통령 개입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해 사건 당시 윤 대통령과 이종섭 장관이 통화한 기록이 결정적 정황이다. 이 장관은 7월 31일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 브리핑이 국방부 지시로 취소되기 직전에 대통령실 일반 전화를 받은 사실이 나타났다. 이 장관이 당일 오전 11시 54분쯤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일반 전화를 받아 168초 동안 통화했다고 한다. 당시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 넣은 조사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하려 했다. 이 장관은 이 통화를 마치고 오전 11시 57분쯤 김계환 사령관에게 브리핑 취소와 사건 기록의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은 김 사령관이 박 단장에게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는 날이다. 대통령이 격노해 국방부가 언론 브리핑 취소와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게 아닌지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윤 대통령은 8월 2일 낮 12시 7분, 43분, 57분 세 차례에 걸쳐 이종섭 장관에게 전화를 건 사실도 통신사실 조회에서 나타났다. 당일 오전 10시 30분쯤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사단장 등 8명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고, 국방부는 오후 7시 20분쯤 이를 회수했다. 이 장관이 수사 기록이 경찰에 이첩된 상태에서 대통령 전화를 받았고, 대통령 지시로 수사 기록을 회수토록 해병대 사령관에게 지시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할 만한 정황이다. 윤 대통령은 8월 8일 오전 7시 55분에도 이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33초간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하루 뒤인 8월 9일 국방부 조사본부에 해병대원 사망 사건 재검토를 맡기기로 하는 결정이 이뤄졌다. 이 결정과 대통령 지시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의심하게 한다. 이처럼 여러 정황들이 윤 대통령 개입이 사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데도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부인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대통령과 통화했는지를 묻는 야당 의원 질의에 "이 건과 관련해서 통화한 게 없다"고 답했다. 이 장관 측 변호인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통화를 한 적 없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고 설명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지난 6월 야당 주도로 열린 '해병대원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VIP 격노설'을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전했냐는 의원들 질의에 '수사 사항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이 자리에서 박 단장은 거듭 김 사령관에게 'VIP 격노설'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사단장 형사 처벌 부적절' 속마음 아니었나 바로 이 대목에서 윤 대통령의 정치력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만약 윤 대통령이 진작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 걸어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지시했다’고 당당히 밝히고, 왜 그게 옳은 판단이었는지를 국민들에게 설명했으면 어땠을까? ‘임성근 사단장에게 지휘 책임을 물어 적절한 인사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형사적 책임까지 물어야 할 일은 아니다.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 어땠을까? 윤 대통령은 2022년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책임자 문책 요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거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원 사건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여기에 수긍할 국민도 많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지시했다고 해도 그걸 위법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정부조직법 제11조는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중지 또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종섭 장관은 당초 박정훈 수사단장의 보고를 받고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 넣기로 한 조사 결과를 결재했다. 윤 대통령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 이 장관의 결재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래서 정부조직법 규정에 따라 국방부 장관에게 그 처분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면 위법이라 할 수 없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장관의 상관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결재 처분 취소를 지시하고, 이 장관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결재를 번복하고 수사 기록을 이첩하지 말라고 해병대 사령관에게 지시한 것 역시 위법이 아니다. 군사경찰직무법 제5조 ④항은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돼 있는 부대의 장(이번 사건에서는 해병대 사령관)은 군사경찰직무를 관장하고 소속 경찰을 지휘·감독한다’고 정하고 있다. 해병대 사령관이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은 ‘소속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 규정에 따른 합법적인 조치다. 대통령 지시, '불법 수사 개입'으로 볼 수도 없어 야당 측에서는 윤 대통령이 ‘수사’에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의 이번 사건 수사는 기소를 전제로 한 법률적 의미의 수사가 아니다. 과거에는 군대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군 검찰이나 헌병대 같은 군 수사기관이 가졌다. 그러나 군 수사기관의 수사 범위를 정한 군사법원법 제2조가 2021년 8월 31일 개정돼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개정된 법은 2022년 7월 1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군대 내 성폭력 범죄, 군인이 사망에 이르게 된 범죄, 과거 군에 입대하기 전에 저지른 범죄 등 3대 범죄에 대해선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권을 갖는다. 군사법원법 제228조는 군 수사기관이 이 3대 범죄를 인지했을 때 검찰이나 경찰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대 범죄에 대한 수사 절차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7조는 ‘지체없이’ 이첩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해병대원 사망 사건은 이 3대 범죄에 해당한다. 따라서 해병대 수사단은 이 사건을 수사할 권한이 없다. 경찰에 사건을 ‘지체없이’ 이첩하면 임무가 끝난다. 수사 범위와 대상은 경찰이 정하게 된다.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는 기소를 전제로 한 법률적 의미의 수사가 아니라 경찰에 이첩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조사’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맞는다. 사법 절차가 아니라 행정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이종섭 장관의 결재나 결재 번복 처분 역시 행정 절차이지 사법 절차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처분을 취소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수사 개입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권이 없는데 어떻게 수사에 개입한다는 말인가? 정치인 덕목 통찰력·결단력 부족 아무리 이치가 이렇다고 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막상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한 게 사실이라고 인정하면 야당 측은 곧바로 탄핵 공세를 펼 게 뻔하다. 그러나 대통령 지시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조사한다는 특검법 제정 공세는 명분을 잃게 된다. 윤 대통령에게는 이렇게만 돼도 큰 성공이다. 나아가 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안 되는지, 그게 왜 부당한지에 관해 다수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설득한다면, 그리고 대통령실이 정부조직법, 국가공무원법, 군사법원법, 군사경찰직무법 규정에 따라 알기 쉽게 설명한다면 불법 수사 개입이라며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론의 호응을 받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국방부 지시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졌다. 정치 지도자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돌파하느냐를 좌우하는 게 정치력이다. 정치력의 핵심은 상황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통찰력, 필요한 조치를 적기에 실행하는 결단력, 국민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력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수사 개입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상황을 바로 보고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면, 그리고 왜 그렇게 하는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당했는지를 납득시켰다면 지금 사정은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위법을 저지르고, 진실을 숨기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과 비판을 받는 처지에 빠지지는 않았을 수 있다. 이 모든 게 결국 윤 대통령의 정치력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어디 해병대원 사건뿐이겠는가? 김건희 여사 문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김낭기의 관점]윤 대통령,  사단장은 빼라 지시 인정하고  정당성 설득했더라면
  • [김낭기의 관점] 민주당의 탄핵 이유 '방통위 2인 운영' 정말 위법인가

    탄핵 소추 결의문 읽어보니 더불어민주당의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의지는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다. 전임 이동관·김홍일 위원장을 탄핵 소추 하려다 이들이 자진 사퇴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위원장 직무대행인 이상인 부위원장마저 탄핵 소추하려 했으나 그 역시 자진 사퇴해 불발에 그쳤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진숙 위원장에 이르러 탄핵 소추를 성사시켰다. 이 위원장이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아 보겠다며 자진 사퇴하지 않고 버텼기 때문이다. 특정한 직책 한 자리를 놓고 이토록 집요하게 탄핵을 추진한 일은 전례가 없다. 민주당이 왜 그토록 방통위원장을 탄핵하려 하는지는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다. 방송 장악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의도임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오히려 궁금한 점은 윤석열 정부 산하 역대 방통위원장들이 정말로 탄핵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법을 저질렀는지다. 민주당 주장대로 그들이 한 직무 행위가 정말로 법에 어긋나는지다. 이런 궁금증에서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소추 결의문을 찾아 읽어보았다. 총 66쪽짜리 결의문에는 탄핵 소추 사유와 그 증거 자료라는 것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민주당은 탄핵 소추 사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 이진숙 위원장이 방통위를 2인 위원 체제로 운영했고, 기피 신청을 당했는데도 기피 신청을 기각하고 회의를 주재했고, 과거 문화방송에 재직하는 동안 언론의 자유를 억압해 공영방송 이사 선임이라는 방통위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자격이 없는데도 업무를 회피하지 않았고, 방송에 대한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강행했다고 했다. 이 중 핵심은 방통위 2인 체제 운영이다. 결의문 10쪽에서 41쪽까지 31쪽 분량에 걸쳐 2인 체제 운영의 위법성을 지적했다. 결의문 전체 66쪽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2인 체제 운영이란 방송통신위원회법상 방통위원은 5인인데 이진숙 위원장이 위원장 1명과 위원 1명 등 위원이 2명뿐인 상태에서 방통위 회의를 열고 중요 안건을 심의·의결했다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2인 체제로는 방통위를 열 수도 없고, 더 나아가 안건을 의결할 수 없는데도 이 위원장이 회의를 강행했다며 이는 방통위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이동관,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위원장 직무대행 탄핵 소추안 발의 때 사유로 든 것도 2인 체제 운영이었다. "2인 위원으로 회의 소집·의결은 위법" 주장하지만 민주당은 2인 체제 운영이 위법이라는 근거로 방송통신위원회법 제4조와 제13조를 들고 있다. 제4조 ①항은 ‘위원회는 위원장 1인, 부위원장 1인을 포함한 5인의 상임인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정하고 있다. 제13조 ①항은 ‘위원회 회의는 2인 이상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한다. 다만, 위원장은 단독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제13조 ②항은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정하고 있다. 13조 ①항은 방통위가 회의를 소집하는 데 필요한 위원의 수인 의사 정족수에 관한 규정이고,. 제13조 ②항은 방통위가 안건을 의결하는 데 필요한 위원의 수인 의결 정족수에 관한 조항이다. 민주당은 ‘2인 이상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는 위원장이 소집한다’는 제13조 ①항 규정은 ‘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위원 2명과 이 요구에 따라 회의를 소집하는 위원장 등 최소한 3명’의 상임위원이 존재해야 함을 전제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5월 23일 YTN 지분 매각 사건에서 내린 방통위 2인 체제 관련 결정 내용도 그 증거로 제시했다. 이 사건에서 서울고법은 2인 체제 운영에 절차적 위법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피고(방통위)가 합의제 행정기관에 해당하고, (방통위법) 13조 1항의 내용에 비추어 회의를 요구할 2인 이상의 위원 및 위원장 1인 합계 3인의 재적위원이 최소한 요구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없지 않아 2인의 의결로 행해진 이 사건 처분의 절차적 위법성이 문제될 여지가 있다. 다만 이는 궁극적으로 본안에서 판단할 부분~.” 민주당은 나아가 2인 체제로는 ‘의결’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제4조에 방통위원이 5인으로 정해져 있고, 13조 ②항에 재적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으니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는 5명의 과반인 3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진숙 위원장이 2인만으로 의결했기 때문에 법 위반이라고 민주당은 주장한다. '위원장 단독 소집 가능' 방통위법에 명시돼 그러면 민주당의 이 같은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 우선 위원 2인 체제에서 회의를 연 것이 제13조 ①항 규정 위반이라는 주장을 보자. ‘회의는 2인 이상의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한다’는 이 규정은 민주당 주장대로 ‘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위원 2인과 이 요구에 따라 회의를 소집하는 위원장 등 최소한 3인의 위원이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 경우 2인 체제로는 회의를 열 수 없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단서가 있다. ‘위원장은 단독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위원장은 위원들의 회의 소집 요구가 없더라도 직권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방송통신위원회 회의 운영에 관한 규칙' 제3조 제3항도 '위원회의 회의는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 또는 위원회 위원 2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위원장이 소집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진숙 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단독으로 방통위 회의를 열 수 있음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설사 2인 체제라고 해서 회의 소집이 법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2인 체제 의결이 ‘재적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제13조 ②항 위반이라는 주장은 어떤가? ‘재적위원’의 뜻이 무엇이냐가 관건이다. ‘재적(在籍)’은 ‘학적, 병적 같은 명부(名簿)에 이름이 올라 있음’이라는 뜻이다. 방통위 재적위원이란 방통위 위원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는 위원을 말한다. 명부에 이름이 오르려면 그 이름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의 이름이어야 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의 이름을 명부에 올릴 수는 없다. 현재 방통위원 명부에 이름이 오른 위원은 이진숙 위원장을 포함해 2명이다. 이 2명이 재적위원이다. 나머지 3명은 공석이라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 이름을 올리려야 올릴 수가 없다. 그럼 ‘재적위원 과반수’는 몇 명인가? 2명의 절반(1명)을 초과하는 2명 이상이면 과반수다. 따라서 이진숙 위원장과 다른 위원 1명 등 2명이 전원 찬성하면 재적위원 과반수가 성립한다. 2인 체제 의결이 위법이라는 민주당 주장은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재적위원'과 '정원' 구별 못하는 듯 민주당이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법 조항을 ‘상임위원 5명의 과반수인 3인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는 것은 재적위원과 ‘정원’을 구분하지 못한 처사이다. 법제처는 2007년 9월 14일 '재적위원은 법에 정해진 위원정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위원정수에서 사망, 사직, 퇴직 등에 의하여 결원된 위원수를 제외한 현재 위원 신분을 가진 사람의 수를 말한다'고 해석했다. '법에 정해진 위원정수'인 정원과 '현재 위원 신분을 가진 사람의 수'인 재적위원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방통위원 수는 법에 5명으로 정해져 있다. 그 5명은 정원이지 재적위원이 아니다. 민주당은 그 5명을 재적위원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정원과 재적위원의 차이는 국회의 경우를 봐도 명백하다. 공직선거법 제21조 ①항은 ‘국회의 의원정수는 지역구 국회의원 254명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46명을 합하여 300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의원 정수’, 즉 국회의원 ‘정원’이 300명이라는 뜻이다. 반면 국회법 제54조는 ‘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정하고 있다. ‘정원’이 아닌 ‘재적위원’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국회의원 정원 300명 중 실제로 국회 각 위원회 위원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이 재적위원이다. 대법원도 2018년 5월 17일 '국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재적위원은 현재 위원회에 적을 두고 있는 위원을 의미'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임기 도중에 사퇴하거나 유죄 선고로 의원직을 잃으면 국회의원 명부에서 제명돼 더 이상 국회의원이 아니다. 따라서 재적위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위원 5인의 합의제로 운영하게 돼 있는 방통위를 2인 체제로 운영하는 것은 방통위의 설립 목적과 법조항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맞는 말이다. 방통위가 하루빨리 5인 위원 체제로 정상화하고, 그 체제에서 방송통신 정책 관련 주요 결정을 심의·의결하는 게 적절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부적절하지만 위법이라고 하기 어려워 그러나 부적절과 위법은 다르다. 위법은 법을 위반한 것이고, 부적절은 이치상 올바르지 않다는 뜻이다. 부적절하다고 해서 위법인 것은 아니다. 헌법상 탄핵 요건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이다. 위법이지 부적절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더 나아가 탄핵은 파면이기에 가벼운 법 위반으로는 안 되고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위반이라야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탄핵 사유가 될 수 있으려면 우선 법 위반이 명백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법 위반의 정도가 중한지 가벼운지를 따지게 된다. 그런데 방통위 2인 체제 운영은 법 위반이라고 단정하기부터가 어렵다. 정말로 위법인지가 의문이다. 이렇게 명확한 위법이라고 하기 어려운 사유를 들어 방통위원장마다 탄핵을 하려 하니, 그걸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민주당은 탄핵 소추 결의문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는 행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는 피소추자(이진숙 위원장)에 대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권력남용을 통제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탄핵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권력을 남용하는 쪽은 방통위원장이 아니라 민주당이 아닌가 묻게 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김낭기의 관점]민주당의  탄핵 이유 방통위 2인 운영 정말 위법인가
  • [김낭기의 관점] '탄핵'은 수백 년 전 군주제의 유물…민주당의 시간은 거꾸로 가나

    14세기 유럽 왕 견제 수단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과반수 정당이 되면서 전에 없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탄핵’이라는 말이다. 민주당은 입만 열면 탄핵을 공언한다. 최근 들어서만 검사 4명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소추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주장도 시도 때도 없이 들고나온다. 국회청원동의에 올라온 윤 대통령 탄핵안에 100만명이 동의했다며 탄핵 청문회를 열겠다고 한다. 민주당은 탄핵 제도를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견제하는 보배로운 칼인 듯 여긴다. 그러나 탄핵 제도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민주당식 사고방식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알게 된다. 원래 탄핵제도는 14세기 유럽 군주제 국가에서 의회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당시 의회는 성직자와 귀족이 주도했다. 그런데 14세기 들어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세상이 바뀌어 갔다. 우선 중산 계급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했다. 중산계급은 성직자와 귀족이 주도하던 의회에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당당히 참여하게 됐다. 동시에 군주는 군대 유지와 전쟁 대비, 행정 유지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중산계급에 세금을 부과하게 됐다. 이에 의회는 군주가 요구하는 세금이 정당한가를 따지기 위해 군주에게 재정 보고서를 요구했고 회계 심사를 시작했다. 징세 과정도 감독했다. 의회는 이런 과정을 통해 예산 및 재정에 관한 권한을 확보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게 오늘날 국회의 예산·결산 심의권이다. 의회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정치적 통제에도 나섰다. 군주가 특별 보조금을 요구하면 지급 여부를 승인하기 전에 군주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군주가 임명한 대신(大臣)들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찍어 해임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군주는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의회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 문헌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1340년과 1371년에 군주가 몇몇 대신을 의회 요구에 따라 해임했다고 한다. 의회는 1376년에는 왕에게 부정부패를 저질러 해임 대상에 오른 대신들에 대한 심판권을 상원으로 넘기도록 강요해 관철시켰다. 당시 상원은 대법원 역할을 했다. 군주가 의회 요구에 따라 대신을 해임하고 그 심판권을 상원으로 넘긴 것이 오늘날 탄핵 제도의 기원이 됐다. 영국 영향을 받아 미국은 지금도 하원이 탄핵 소추를 의결하면 상원이 탄핵 여부를 결정한다. 탄핵 제도는 이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잡았다. 국민대표기관인 의회가 행정부나 사법부를 견제하는 장치로 발전했다. 이런 점에서 탄핵 제도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시대 탄핵은 예외적 비상 수단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탄핵 제도가 애초 군주제 국가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군주제 국가에서는 왕이 아무리 잘못해도 의회가 견제할 수단이 없었다. 왕은 세습제이고 종신직이라 한번 왕위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왕위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이에 의회는 왕에 대한 불만을 왕의 신하인 대신을 향해 풀었다. 왕이 임명한 대신을 해임하도록 요구해 간접적으로 왕을 견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주 국가에는 왕이 없다.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이지만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중임제이다. 중임제에서는 첫 번째 임기가 끝나면 다시 선거를 치러 현직 대통령을 재선하거나 낙선시킨다. 국민이 선거로 대통령과 그 정권을 직접 심판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임제라 대통령을 직접 심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의 대선 후보 대신 다른 정당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을 심판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정당 간 정권 교체가 그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대통령 임기 중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총선이나 지방선거 역시 심판 무대이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나 검사 등이 잘못하면 정권이 총체적 책임을 지고 심판을 받게 된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고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도 대통령과 그 정권에 대한 심판의 결과이다. 총선 때 윤 대통령의 불통,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과 명품백, 해병대원 사건 수사 외압,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및 출국, 검찰 공화국 논란 등이 주요 이슈가 됐었다. 요즘 민주당이 윤 대통령 탄핵 사유로 주장하는 것들이다. 국민은 이런 논란들에 대해 민주당 압승, 국민의힘 참패라는 선거 결과로 국민의 뜻을 나타냈다. 이게 바로 선거를 통한 권력 견제이고 심판이다. 이렇게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이 대통령과 정권을 직접 심판할 수 있다. 따라서 탄핵 제도가 갖는 의미가 군주제 국가에서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선거 제도가 있으니 탄핵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대통령과 정권을 심판할 수 있으니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나 검사 등을 굳이 탄핵 대상으로 삼지 않아도 된다. 이제 탄핵 제도는 권력을 견제하는 통상적인 수단이 아니라 불가피한 때만 사용하는 비상 수단이 됐다. 선거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위법 행위가 너무나 중대해서 당장 자리에서 해임하지 않으면 안 될 예외적인 경우에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헌재도 탄핵 요건 엄격히 제한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탄핵 제도의 기본 취지를 살리고 그 남용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 헌법 제65조는 헌법이나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은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란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했다. 탄핵은 곧 파면이기에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탄핵 사유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위반의 정도가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탄핵 제도를 남용해선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 소추를 당론으로 정한 검사 4명의 혐의는 과연 헌법재판소가 밝힌 탄핵 요건에 해당할까? 검사 4명 중 3명은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연관돼 있다. 박상용 수원지검 검사는 ‘대북 송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박 검사는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를 이재명 전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원지검은 “상식적으로 36년간 정치활동을 하고 국회의원과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을 지낸 이화영 피고인을 상대로, 그것도 민주당 법률위원회 소속 변호사가 참여한 상황에서 거짓 진술을 하라고 회유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어떠한 검사도 직을 걸고 그처럼 무모한 짓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사의 위법한 수사권 남용을 국회의 탄핵권으로 막자는 취지”라고 했다. 어떤 사건에서든 수사권을 위법하게 행사했다면 그 사건을 다루는 재판에서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수사기관 강요로 허위 진술을 했다면 그 진술은 유죄 증거로 인정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규정을 어기고 수집한 증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까지 민주당의 탄핵 추진 대상이 된 검사들이 저질렀다는 행위가 법정에서 논란이 된 적이 없다. 오히려 검사로부터 허위 진술을 강요받았다는 이화영 전 부지사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은 이화영씨에게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방북 대가로 송금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9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자금을 댄 김성태씨에 대해선 '이화영과 공범 관계'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탄핵 사유로 주장하는 내용들은 소문에 근거한 의혹일 뿐이다. ‘카더라 탄핵’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의혹에 근거해 누구를 파면하라고 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인가. 더불어민주당은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당론으로 채택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기자들에게 “현재 ‘2인 체제’로 불리는 방통위에서 두 명의 위원만으로 중요 결정을 내리는 상황 자체가 직권남용이며 위법”이라고 했다. 현재 방통위원은 법정 정원 5명 중 2명밖에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법 제13조는 ‘위원회의 회의는 2인 이상의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하며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인 이상이 요구하면 회의를 열 수 있으니 회의를 연 것 자체는 합법이다. 탄핵 남발하다 다음 선거 때 '진짜 탄핵' 당할 수도 문제는 의결 요건인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재적’의원이 법률상 정원인 5명을 뜻하느냐, 현재 근무하는 2명을 뜻하느냐이다. 민주당은 전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법 해석상의 문제이다. 법 해석의 문제는 법원에 맡기면 된다. 방통위가 2인 체제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 법원에 무효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법원이 유효라고 결정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 무효라고 결정하면 그간의 방통위 결정은 모두 효력을 잃는다. 앞으로 민주당에 불리한 결정도 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은 이런 통상적이고 간편한 절차를 놔두고 비상 수단이라 할 탄핵부터 꺼내들었다. 민주당의 진짜 의도가 방통위 운영의 정상화가 아니라 방송 장악을 위한 정치공세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을 견제하는 보편적이면서 최종적인 수단은 선거이다. 탄핵은 불가피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비상 수단이다. 탄핵을 남발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선거라는 민주 제도가 없는 수백년 전 군주제 국가에서 사는 것이나 같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다가는 국민으로부터 ‘진짜 탄핵’을 당할 수 있다. 다음 선거에서 표로 심판 받는 게 그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김낭기의 관점] 탄핵은 수백 년 전 군주제의 유물…민주당의 시간은 거꾸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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