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이재명 정부, 진짜 통합하려면 '힘과 정의' 균형 이뤄야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출발은 의외로  차분하고 안정적
 

‘일단 시작은 좋아 보인다. 그러나 끝도 과연 그럴까?’ 이재명 대통령을 대하는 다수 국민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한다. 무엇보다 그가 약속하고 강조한 대로 국민 통합을 이룰지에 대해서 그럴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지난 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도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하는 통합의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정말로 통합을 이뤄 국민을 하나로 만들지, 아니면  또다시 분열과 대립 속으로 몰아넣을지가 가장 큰 관심거리다.

 

취임 한 달여를 맞은 이 대통령은 예상과 달리 국정 운영에서 차분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권의 색깔을 앞세우기보다 실용을 중시하고 있다. 내각 인사부터 그렇다. 아직은 지나친 정파성이나 특정 이념 문제 등으로 논란 대상이 되는 사람은 없다. 현직 민주당 의원 7명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강경파 일색은 아니다. 친명파이면서도 비교적 온화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들도 있다. 기업인과 인공지능·에너지 분야에 밝은 관료 출신도 7명이나 된다.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된 장관이 유임된 사례도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장관 인사에 대해  “마음에 드는 또는 색이 같은 쪽만 쓰면 위험하다”고 했다. “우리 색깔에 맞는 사람을 선택했다면 좀 더 편하고, 더 속도도 나고, 갈등은 최소화했을지도 모른다”며 “차이는 불편한 것이기도 하지만 시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고 했다. 진영 논리나 ‘코드’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국정 추진 방식에서도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선 공약인 주 4.5일 근무제 도입에 대해 “강제로, 법을 통해서 일정 시점에 시행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갈등이 너무 심해 불가능하다”고 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가능한 부분부터 점진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무리 대선 공약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제도를 한번에, 급격하게 도입하려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힘으로 밀어붙이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  자신의 사법 리스크 해소와 관련된 법의 제정이나 개정에 신중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 점이다. 대선 전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당선 뒤 사법 리스크를 없애기 위한 법안을 쏟아냈다.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 요건에서 ‘행위’를 삭제해 이 대통령에게 면소 판결이 가능하게 하고,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대통령 재임 중에는 기존의 형사 재판이 중단되도록 하려 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최소 30명으로 늘리는 쪽으로 법원조직법을 고쳐 대법원을 이재명 정권이 장악할 수 있도록 하려 했다. 대법관 수가 30명이 되면 이 대통령이 새로 늘어나는 대법관 16명을 임명해 대법관 과반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법들은 이 대통령 혼자를 위한 ‘위인설법’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 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 소집까지 요구했다가 갑자기 거둬들였다. 이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이 쟁점 법안들에 대한 대통령실 의견을 구하자 공직선거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선 “내 신상과 관련된 법안은 무리해서 처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대법관 증원법과 또 다른 쟁점 법안인 방송3법에 대해서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수정할 건 수정하고 숙의를 거쳐 차기 원내지도부가 판단하면 될 것”이란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만약 이 대통령이 주 4.5일 근무제 도입을  입법권을 장악한  민주당을 통해 밀어붙이고, 장관 자리를 모조리 정권 색깔이 선명한 인물들로 채웠다면 정권 초기부터 반목과 대립으로 시끄러웠을 것이다. 이 대통령 사법 리스크를 없애기 위한 법안들을 윤석열 정부 때 하던 대로 힘으로 밀어붙였다면 반목과 대립은 더욱 심했을 것이다.


'언제든 정권 본색 드러낼라' 의구심도

이 대통령이 신중하고 절제하고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말 그대로 통합 속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멀리 내다보고 미리 잘 헤아려 생각한 때문이라면 긍정적이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르게 보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아직은 정권 초기이니 이미지 관리를 하면서  유연하게 나가는 것일 뿐  때가 되면 정권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우려가 현실화되느냐, 아니냐에 이재명 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통합을 이뤄낸다면 성공으로 기록되겠지만, 다시 분열과 대립을 가져오면 실패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재명 정부 앞에는 통합 실현 여부를 가를 만한 문제들이 쌓여 있다. 윤석열 정부 때 강행 통과시켰다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법안들의 처리가 한 예이다.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방송 3법 등이다. 이 가운데  방송3법을 지난 7일 국회 과방위에서 국민의힘 반대 속에 통과시켰다. 나머지 2개 법도 7월 내에  처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상태에서 대통령 권력까지 쥐었으니 거부권에 막히지 않고 얼마든지 강행 처리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안들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도 많다. 이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고 끝내 정권 뜻대로 밀어붙인다면 통합은 어렵다.

 

검찰 개혁법도 큰 논란거리이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서 기소를 전담하는 공소청과 수사를 전담하는 중대범죄수사청을 각각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산하에 설치한다는 게 검찰 개혁법의 골자이다. 그리 되면 검찰청은 없어진다. 이에 대해선 위헌 논란을 포함해 여러가지 논란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게 과연 옳으냐이다. 기소는 수사를 바탕으로 한다. 기소하려면 유죄 증거가 확실한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를 먼저 가려야 한다. 그러자면 기소 여부 판단에 앞서 수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공소청은 수사 절차 없이 중대범죄수사청 또는 경찰이 넘긴 수사 자료만 보고 기계적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수사에 허점이 있어도 발견하기 어렵다. 그 결과 진짜 범인이  법망을 빠져나갈 수도 있고, 억울한 사람이 재판에 넘겨져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의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사·기소 분리가 선진국들의 대세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  나라는 뉴질랜드, 이스라엘, 캐나다 등 8개국뿐이다. 나머지 27개국은 검찰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하고 있다. 미국 연방검찰,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그렇다. 수사·기소 분리는 형사 사법 체계의 근간을 허무는 중대한 일이다. 이런 일을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충분한 논의와 검토 없이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큰 부작용이 따르게 된다. 나라는 분열과 갈등에 빠진다. 


힘만 앞세우면 통합은 불가능
 

검찰 개혁보다 더 이 대통령의 통합 실현 여부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될 만한 일이 있다. 이 대통령에 대한  ‘공소 취소’ 문제이다. 공소 취소란 검찰이 기존에 한 기소 처분을 취소하는 절차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 전에 5개 범죄, 12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지금은 재판이 중단돼 있지만, 법대로 한다면  퇴임 이후 재판을 계속 받아야 한다. 공소를 취소하면 기존에 받던 재판은 다 없던 일이 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25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총동창회가 주최한 강연에서 이 대통령의 재판 관련 질문을 받고 “주권자인 국민이 재판이 진행 중인 걸 알고 대통령을 선택했다”며 “공소 취소가 맞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가 장관 취임 후 실제로 검찰총장에게 공소 취소를 지시한다면 상당한 파란이 생길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국민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지고 나라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 속으로 빠져들 게 뻔하다. 이 대통령이 말한 통합은 완전히 물 건너간다. 이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너무나 잘해서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나라를 발전시켜 조선 시대의 성군처럼 된다면 ‘공소 취소’ 여론이 대세가 될지는 모르겠다. 
 

통합은 정치적 타협을 전제로 한다. 타협은 힘이 센 쪽 뜻대로 되기 쉽다. 이는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러나 힘으로만 한다면 그 타협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지금 힘이 약한 쪽이 나중에 힘을 차지하게 되면 기존의 타협을 뒤집으려 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앞으로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나아가 정권까지 잡는다면, 민주당이 힘으로 밀어붙인 법이나 조치를 원상태로 되돌리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리 되면 다시 사회는 분열과 갈등과 적대감 속으로 빠져든다. 통합은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이런 사태를 피하려면 힘 센 쪽이 힘에만 의존하지 말고 정의를 따라야 한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철학적으로 복잡하게 따질 일이 아니다. 상식을 좇으면 된다. 억지와 궤변을 부리지 않으면 된다. 내로남불 하지 않으면 된다.  궁극적으로 반대 여론을 존중하고  최대한 반영하면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는 감히 약속 드린다. 2017년 5.10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내내 진영 논리와 양극화가 판쳤다. 국민은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문재인 정권의 전철을 밟을지 아닐지는 힘과 정의의 균형을 얼마나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