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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재의 경제가 답이다] 中 에틸렌 100%의 그림자 …여수의 굴뚝이 꺼졌다·· 중국심서(中國心書) 2025 ④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전남 여수 산업단지에 불황의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대략 3년 전부터다. 중국의 산업굴기(産業崛起)가 본격화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 석유화학 제품의 최대 수입국이던 중국이 대규모 에틸렌 생산시설을 구축하며 자급률 100%를 달성했다. 중국 수출시장이 막히고 세계적인 공급과잉 사태가 벌어지자 여수 산업단지의 공장 가동률이 크게 떨어졌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이 지난해 일부 생산라인을 중단한 데 이어 올 8월엔 여천NCC의 유동성 위기로 분위기가 더욱 흉흉해졌다. 여수 전체 고용의 42%를 책임지는 산업단지의 위기는 여수 지역 경기 위축으로 이어졌다. 음식점 폐업 수가 코로나 때보다 늘었고 도심의 상가 공실률이 1년 새 12%에서 35%로 급등했다. 여수 산단의 에틸렌 공장 7기 중 2, 3개를 정리해야 한다는 보스턴컨설팅의 권고가 나오면서 현지에서는 어느 업체가 구조조정 대상이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의 산업굴기로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생존을 걱정하는 현상은 석유화학 외에 철강 디스플레이 조선 자동차부품 등 거의 모든 기간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 등 기술력에서 한발 앞선다고 자부하는 분야도 중국의 빠른 추격에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중국의 산업굴기와 한국 제조업의 위기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초반만 해도 중국은 중저가 범용 제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세계의 굴뚝’이자 선진국 제품을 베끼는 재주로 악명 높은 ‘짝퉁의 나라’였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는 떨어지는 품질을 저렴한 가격으로 상쇄하는 가성비 제품과 동의어였다. 중국 정부가 2015년 야심차게 수립한 ‘중국 제조(Made in China) 2025’ 계획은 10년 만에 중국 산업의 환골탈태(換骨奪胎)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뤄냈다. 톱다운 방식의 국가주도 정책을 통해 노동집약적 제조업에 머물렀던 중국 산업의 위상을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첨단 기술의 선도자로 바꿔놓았다. ‘중국 제조 2025’가 설정한 10대 전략분야 중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5G통신, 고속철도, 전력설비, 신소재에서 세계 1위 기업이 탄생했다. 우주항공 분야에서는 무인 우주정거장 독자운영과 달 뒷면 세계 최초 착륙이라는 성과를 냈다. 전기차 업체 BYD는 지난해 테슬라보다 두배 이상 많은 차량을 팔았고 매출도 처음으로 앞섰다. 중국 전기차는 세계 시장의 59%를 장악했다. 태양광 패널은 세계 시장에서 7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했고 산업용 로봇은 중국이 전 세계 설치량의 5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드론 제조업체 DJI는 세계 드론 생산량의 94%를 만들고 있다.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미국의 집요한 표적제재에도 5G 기술 구현을 위한 표준필수 특허(SEP)를 1만건 가까이 확보해 전통적 강자 퀄컴을 누르고 선두 기업이 됐다. 이제 한국을 포함해 세계의 5G 관련 업체들은 화웨이에 로열티를 내야 기기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중국 산업굴기의 최대 피해자는 중국 수출비중이 가장 크고 수입 의존도가 가장 높으며 주력 업종이 겹치는 인접국 한국이다. 한국 기업들이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밀려나고 기술도 따라잡히면서 세계 무대에서 잃은 점유율을 동종업계의 후발 중국 업체들이 고스란히 챙겨가는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때 한국의 미래먹거리로 주목받았던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우 BOE를 필두로 한 중국 업체들이 저가 LCD 시장을 먼저 장악한 뒤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OLED 시장까지 잠식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에서는 중국의 CATL이 세계 1위에 오르며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를 압박하고 있다. 세계 1위 전기차 업체를 보유한 중국 내부의 시너지 효과가 위력을 발휘하면 한국 배터리 업체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철강은 중국이 이미 전 세계 생산량의 55% 이상(10억톤)을 차지하며 압도적 공급자 지위에 올라있다. 포스코가 보유한 세계 최고 기술력의 원천인 파이넥스 공법을 후발 중국 업체들이 유사 기술로 따라잡았다. 이로 인해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영업이익이 50% 이상 감소하는 등 철강업계 전체가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는 실정이다. 한국이 세계 선두권으로 자부하는 반도체와 조선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CXMT의 D램 점유율이 빠르게 상승하는 가운데 3D 낸드플래시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위협하는 수준이 됐다. 조선업은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한국을 추월했고, 한국의 독보적 영역으로 여겨졌던 LNG 운반선에도 중국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자동차부품은 2015년 한국의 4번째 대중(對中) 수출품목이었지만 작년에는 한국의 10번째 수입품목이 되는 기막힌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한국이 몇몇 고부가가치 제품에서 지키고 있는 기술력의 우위가 언제 뒤집힐지 낙관하지 못하는 처지다. 중국의 약진으로 세계의 산업지형과 분업구조는 과거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변화를 겪고 있다. 선진국이 부가가치가 높은 연구개발(R&D)과 제품 설계를 담당하고 개발도상국이 값싼 노동력으로 중저가 제조업을 책임지는 수직적 분업구조는 ‘모든 업종의 제품을 첨단 공법으로 가장 많이, 가장 좋은 품질로 만드는’ 중국의 등장으로 엄청난 균열이 발생했다.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정보기술(IT) 드론 선박 소재부품 에너지 전력과 희토류를 비롯한 천연자원 등 산업활동에 필수적인 공급망을 모두 갖춘 사실상 유일한 나라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력을 보유한 화웨이 샤오미와 기존 자동차 업체, 배터리 기업들이 결합해 전기차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소재 산업의 경쟁력과 자체 완결적인 산업구조를 바탕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허브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혁신’에서 앞섰다면 중국은 ‘상용화’에 강점을 보인다. 중국 제조업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생산현장에 접목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제재로 엔비디아의 고사양 반도체를 쓸 수 없게 되자 저사양 제품을 사용해 개발에 1년이 걸린 챗GPT보다 훨씬 짧은 2개월 만에 비슷한 성능의 생성형 AI 모델 딥시크를 만들어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삼각무역 구조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이 이를 가공해 미국과 유럽에 완제품을 수출하는 패턴이 형성됐지만 중국의 기술력이 한국과 일본을 넘으면서 이런 역할 분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최근 들어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두 나라의 경제협력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자는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은 중국발(發) 산업 쓰나미에 대한 위기의식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은 유럽연합(EU)처럼 한·일 양국간 경제공동체 방식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일본에서도 경제안보 차원에서 한국과 손잡고 함께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에서 세운 1단계 목표인 핵심 소재부품 70% 자급자족을 초과 달성했다는 자체 평가 속에 AI 양자기술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기술굴기로 단계를 높여가고 있다. 중국의 산업굴기와 기술굴기의 종착점이 세계 패권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상호제재와 보복, 충돌과 소강을 오가면서도 합의점을 도출해 내기 힘들 것이다. 미·중 통상 갈등으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된 한국으로선 줄서기 강요의 강도가 세지고 선택지가 좁아지는 상황에서 자력 생존의 길을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해야 한다. 첨단 기술과 핵심 기업, 이들의 총합인 산업경쟁력은 한국이 미국의 관세폭탄, 중국의 산업 쓰나미 공세에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최후의 보루다. 중국의 산업굴기는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이 합리적 목표 설정을 토대로 선택과 집중의 효과를 극대화할 경우 자국의 산업경쟁력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중국의 국가주도 모델이 전혀 다른 정치체제와 사회 문화적 배경, 산업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한국에도 유효한 방식이 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한국 산업의 혁신은 정부와 민간이 ‘팀 코리아’의 구조와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 환경개선과 산업 인프라 구축을 책임지고 기업은 자율과 창의를 무기로 4차 산업혁명의 글로벌 경쟁에서 독자적인 경제영토를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민간의 서포터 역할만 충실히 해도 한국 산업의 활로는 찾을 수 있다. 전봇대 규제, 대못 규제, 손톱 밑 규제, 거미줄 규제로도 모자라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없는 적용과 노란봉투법 같은 기업 규제를 잔뜩 안기고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라는 것은 과도하고 가혹한 요구다. 기업이 국부(國富)의 원천이자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중국의 산업굴기가 다시 한번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원재 필자 주요 이력 ▷핀란드 알토대 경영학석사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경제부장 ▷동아닷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경성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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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재의 경제가 답이다] 청년 일자리 확대 쇼라도 하라·· 대학 4학년 2학기 재학생이 취업에 성공하면 학교마다 정한 절차에 따라 수업을 듣지 않아도 출석을 인정해준다. 2016년 교육부가 마련한 ‘조기취업 대학생 학점부여 조치’에 따른 특례 규정이다.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취업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하나라도 줄이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전례 없는 취업 한파에도 졸업반 학생이 조기취업으로 마지막 학기 출석을 인정받는 사례는 강의실마다 꽤 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일자리를 구한 조기취업은 축하받아 마땅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기업이 요구하는 실무경험을 쌓기 위해 눈높이를 낮춰 임금과 복지 수준이 떨어지는 일자리를 받아들인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경력을 쌓은 뒤 ‘이직 사다리’를 타고 좀 더 좋은 조건의 기업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이지만 사다리에 올라탈 기회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중소기업·비정규직과 대기업·정규직 간의 임금 및 고용 안정성 격차가 상당하고 칸막이까지 견고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자신의 노동 신분이 고착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기업들에 특별한 요청을 드릴까 한다. 예전엔 좋은 자원을 뽑아서 교육하고 훈련했는데 요즘은 경력직만 뽑는다.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신규채용 확대를 당부했다. 이 대통령의 당부 2일 뒤 삼성 SK 현대차 LG 등 7개 주요 그룹은 일제히 신규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이 앞으로 5년 동안 6만명의 신입사원을 뽑겠다고 밝힌 것을 비롯해 기업들이 내놓은 올해 신규채용 규모는 4만여 명으로 당초 계획보다 4000명가량 늘었다. 정권 출범 첫해에 정부가 고용확대를 강조하면 기업들이 화답하는 방식의 ‘채용 이벤트’와 비슷하게 닮아있다. 일자리가 부족해 좌절하는 취업준비생들에겐 가뭄 속 단비 같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신입보다 경력을 선호하는 기업들의 채용 트렌드가 이번 이벤트로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한번 뽑으면 나중에 내보내기 어려우니 최대한 검증된 인력을 뽑는다는 경력 채용 현상은 과도한 정규직 보호로 상징되는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초래한 것이다. 일단 그 시장에 진입한 세대는 기득권을 누리지만 거기에 끼지 못한 후발 다수 청년들의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역대 정부 중 고용 문제에 대해 가장 진심을 보인 때는 문재인 정부였다. 대통령 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공공기관에 청년인턴제를 독려하면서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고용주로 나섰다. 그러나 일자리는 임기 내내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정부가 만들어 낸 단기 일자리, 공공 일자리는 고용 통계 수치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전체적인 일자리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발표했다가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공시족(族)’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기도 했다. 일자리는 대통령의 의지와 정부의 선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일자리 창출 주체는 기업이며, 정부의 역할은 일자리를 늘리기에 유리한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는 점도 확인시켰다. 이재명 정부에서 일자리, 특히 청년고용은 핵심 어젠다의 위치에서 비켜 있다. 재정지출 확대, 노사관계 재정립, 기업 투명성 강화 등을 밀어붙이는 동안 일자리는 국정의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이다.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장관으로 맞은 고용노동부는 이달 들어 약칭을 15년간 써온 고용부에서 노동부로 바꿨다. ‘노동부’는 고용을 소홀히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약칭의 변경은 단순히 명칭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의 내용과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고용부’ 시절엔 고위직 관료일수록 실업률과 취업률을 연령별 산업별 고용 형태별로 챙기고 머리에 입력했다. 눈치 빠른 공무원들은 이제 새 정부에서 각광받는 정책이 고용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먼저 체득하고 그럴싸한 정책 아이디어로 실증한다. 김영훈 장관은 “고용되지 않은 일하는 시민, 사용자 없는 노동자, 임금 비임금 노동자, 자영업자 등 노동의 가치를 광범위하게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일하고 싶지만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은 여기에서 빠져있다. 기업들이 신입과 경력 채용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은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청년 신규채용을 늘릴 대안으로 주목받았던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는 중점정책 목록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새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에서 역대 정부의 단골 메뉴였던 노동개혁은 찾아볼 수 없고, 그 자리를 노동존중과 노동권 강화가 차지했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주 4.5일 근무제, 근로자 정년연장 등 일자리 장벽으로 작용할 소지가 많은 정책들이 대기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권 강화는 고용의 관점에서 보면 일자리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일자리를 줄일 위험이 큰 정책이다.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는 노란봉투법은 기업과 노조가 이해당사자인 법처럼 보이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청년 일자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고용 관련법의 성격을 갖고 있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청년층의 47%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해 전 연령층 중에서 우려가 가장 높았다. 노조의 파업권 강화가 기업들의 투자와 채용 의지를 꺾어 일자리 문턱을 더 높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주 4.5일제와 정년연장도 개별 정책만 놓고 보면 사회적 필요성을 주장할 근거가 있는 제도지만 노동권 강화와 청년고용 확대라는 상반된 가치 속에서 숙고와 숙의를 통해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야 할 문제다. 노란봉투법으로 인한 채용 리스크 증가, 주 4.5일제에 따른 인건비 부담 증가, 정년연장으로 인한 직접적 일자리 대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경기침체와 수익 악화로 고전하는 기업들의 채용 의지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약자는 힘이 더 세진 노조의 보호를 받고 정년이 보장된 근로자가 아니라 일자리를 잡아본 경험이 없고 조직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취업준비생 또는 청년 실업자다. 노조는 표를 무기로 국회의 입법과 정부의 정책 입안 과정에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할 다양한 통로를 갖고 있지만 조직이 없고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의 비고용 청년들은 배제돼 있다. 이미 산업 현장에서 자리를 잡은 기존 노조원을 보호하는 노동규제가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층의 기회를 줄이는 역설을 낳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을 하지 않고 ‘신입 기피, 경력 선호’ 현상의 책임을 기업에만 돌리는 건 옳지 않다. 현재 일자리 사정은 대규모 실직자를 양산한 1998년 외환위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빠졌고, 특히 청년 고용은 최악의 상황이다. 고용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과 건설업, 도소매업 등에서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구직자 1명당 일자리 개수는 0.44로 일자리 하나를 두고 두명 이상이 경쟁해야 하는 실정이다.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8월에만 21만9000개가 사라졌고 청년 고용률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인 16개월 연속 하락세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땀흘려 일해야 할 청년 고용률이 45%로 은퇴 연령인 60세 이상(48%)보다 낮은 기현상이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구직 자체를 포기하고 ‘그냥 쉰다’는 청년이 44만명을 넘은 것은 청년 일자리가 질과 양 모두 퇴보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발 관세협박 대응을 위한 공장 해외 이전과 석유화학 철강 등 산업 구조조정 여파로 제조업 일자리는 감소 추세가 계속될 것이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단순업무 대체로 그나마 남아있는 양질의 청년 일자리조차 고갈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모든 나라, 모든 정권의 최우선 관심사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협박과 투자압박도 자국민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정책이다.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난 지금 ‘일자리 우선’의 국정 기조가 복원돼야 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작업과 기업의 채용을 막는 경직된 고용환경을 개선하는 과제는 선후 구분 없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일이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최선의 복지이고 최고의 경제정책이다. 일자리가 늘어나서 생기는 내수 회복 효과는 재정에 부담을 주는 일회성 소비쿠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지속적이다. 청년에게 일할 기회를 주지 못하는 나라, 일자리를 구할 의욕을 잃고 그냥 쉬는 청년이 많은 나라, 청년의 활기가 사라지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대통령 집무실에 청년고용 상황판을 들여놓는 쇼라도 보고 싶다. 박원재 필자 주요 이력 ▷핀란드 알토대 경영학석사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경제부장 ▷동아닷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경성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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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재의 경제가 답이다] 증세라 쓰고 환원이라 읽는다 …8조 세금 말장난··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현재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렵기에 정부의 부담을 민간에 떠넘기는 증세를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며 증세에 반대했다. 이 대통령이 평소 경기 부양과 복지 확대를 위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터라 필요한 재원을 증세 없이 어떻게 조달할지 궁금했다. 7월 31일 발표된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법인세와 주식 거래 관련 세금의 인상을 중심으로 증세 기조를 분명히 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4%에서 25%로 높이고 0.15%였던 증권거래세는 0.20%로 올리기로 했다. 법인세는 3년 전, 증권거래세는 2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두 세금의 인상으로 연간 8조원, 향후 5년간 누적으로 35조6000억원의 세수가 늘어난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계산이다.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증세에 나섰다는 이유로 이 대통령이 세금 정책에서 말바꾸기를 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다. 후보 시절의 경제관과 집권자의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라 살림 형편을 살피다 보니 써야 할 돈은 많은데 들어올 돈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을 것이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제시한 123대 국정과제를 이행하려면 210조원이 필요한데 지출 구조조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세금은 정권의 철학과 정체성을 반영하는 핵심 장치다. 증세와 감세 중 어느 쪽을 택할지는 정권이 추구하는 가치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증세는 누구에게서 세금을 얼마나 더 걷을지, 감세라면 혜택을 어떤 계층, 어떤 활동에 더 줄지에 따라 나라 전체의 투자 규모와 돈의 흐름이 결정된다. 증세 결정은 당연히 정부의 권한이지만 증세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설명도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물론 결과에 대한 평가와 책임도 정부의 몫이다. 이재명 정부의 증세에 대한 태도는 당당하지 못하다. 법인세 세율을 올렸지만 책임 있는 당국자 입에서 증세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이전 정부 정책의 원상회복’ ‘부자 감세의 정상화’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한국의 법인세 인상은 주요국들이 자국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금을 깎아주는 것과 다른 방향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윤석열 정부가 감세 정책을 통해 세금을 깎아주면 기업이 투자를 하고 선순환 구조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로 보면 성장도, 소비도, 투자도 줄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세금을 낮추면 고용과 경기에 도움이 된다는 낙수(落穗) 효과를 기대했는데 감세에도 경기 침체와 투자 부진이 계속돼 세율을 다시 올린다는 것이다. 성장률 하락과 소비 감소, 투자 위축이 감세 탓은 아니다. 세율을 올리면 세수가 증가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맞지만 기업 이익의 총량이 늘지 않으면 인상 효과는 미미하다. 한국의 법인세 세수는 경기 변동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연간 70조~80조원 수준을 오갔다. 세율이 25%이던 2018년과 2019년 세수가 70조~72조원인데 24%로 낮춘 2023년은 오히려 80조원을 넘었다. 지난해 62조원으로 쪼그라든 세수는 세율 인하 영향보다는 국내외를 동시에 덮친 전례 없는 경기 침체로 법인세 과세의 근거가 되는 기업 이익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기업 실적에 따라 변동성이 커지는 법인세 징수액을 과세표준에 세율을 곱하는 식으로 예측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올 상반기 매출액 상위 국내 5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5.9%(6조5694억원) 증가했지만 SK하이닉스반도체를 빼면 1조7294억원 줄었다. 미국발(發) 관세전쟁과 중국의 급성장, 미래 먹거리 산업 창출 실패로 고전하는 한국 기업의 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된 수치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선점 효과를 누리는 ‘SK하이닉스 착시’를 빼면 실제로는 기업들의 내상(內傷)이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인세 세수는 기업의 수익성, 업종별 변수, 글로벌 무역 환경의 변화, 노사 관계, 신제품 개발 및 출시, 경쟁국 동향 등 다양한 변수가 맞물려 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증세를 택했으면 경영 환경을 개선해 세수 확대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짜야 하는데 상충되는 정책과 메시지로 세율 인상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협조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지만 기업들이 받아든 것은 상법 개정에 이어 더 센 상법 추진과 노란봉투법 강행 등 경영을 옥죄는 입법 드라이브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기업들의 투자 부담은 커지고 이익을 내기는 더 힘들어졌다.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고 과도한 기업 규제, 강성 노조, 중국의 추격 등으로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면 세수 증대는 기대할 수 없다. 기업 경쟁력이 훼손되고 수익성이 떨어지면 아무리 세율을 올려도 세금은 늘지 않는다. 어려운 숙제는 미뤄두고 조세 저항 우려가 작은 법인세에 초점을 맞춘 것도 당당하지 못하다. 국세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소득세는 다자녀가구 소득공제한도 확대 같은 일부 조정에 그쳤다. 디지털 경제 등 새로운 영역의 세원(稅源) 발굴,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면세 제도 개선 등 과세 기반을 넓히는 근본적인 개편은 시도하지 않았다. 근로소득 공제 방식을 바꿨다가 월급생활자들의 반발에 부닥쳤던 박근혜 정부의 ‘세정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면 안전한 선택이지만 개인과 달리 표가 없는 법인에 세금 부담을 떠넘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증시를 뒤흔든 양도세 대주주 논란은 세제개편에도 철학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상장주식의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보유액 50억원에서 10억원 이상으로 강화했다가 개인투자자들이 반발하고 주가가 떨어지는 등 파장이 커지자 뒤늦게 백지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증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법인세 인상처럼 ‘과거 정부 정책의 원상회복’이라는 단순 논리로 다뤘다가 빚어진 정책 실패다. 증시 세제개편의 목적이 세율 인상을 통한 세수 확보인지, 증시 활성화를 위한 세제 지원인지, 부자감세 철회를 통한 공정과세 실현인지 명확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이재명 정부의 조세정책 방향을 가늠할 첫 번째 발표라는 의미가 무색하게 논리적 완결성과 설득력을 갖추는 데 실패했다. 어떤 원칙과 논리로 증세를 택했는지, 증세로 인해 민간 활력이 떨어지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증세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공식 표현은 ‘법인세율 환원’ ‘증권거래세율 환원’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환원’이다. 본래 상태로 돌려놓는다는 뜻인 환원(還元)이 증세 또는 세금 인상의 대체어로 쓰인 것이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세금의 기본 원칙을 지키려 고심한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의 부담을 키우는 증세를 결정하기 전에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검토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세제개편안의 완성도 부족은 조세정책에 대한 납세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미봉책으로 의심하는 잠재적 납세자들은 세금과 관련한 정부 발표를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여러 차례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보유세 인상의 상황별 시나리오까지 등장했다. 주택 가격이 불안정해지거나 세수 부족이 심각해지면 이전 정권에서 완화한 종합부동산세 기본 공제액과 공정시장가액비율 등을 ‘보유세 정상화’ 명분으로 다시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어떤 경우라도 세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은 굉장한 오산"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보유세 인상 우려가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경제는 세금 정책에서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경기 부양과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투자, 형편이 어려운 계층에 대한 복지 확대 등 펼치고 싶은 정책이 많으니 여기에 쓸 돈을 확보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노조 등 전통적 지지층의 요구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가치가 상충되는 목표를 모두 이루려다 보면 정책과 정책이 충돌하고, 이율배반적인 정책이 등장해 처음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올 위험이 커진다. 조세는 경제정책 중 국민의 체감도가 가장 높은 영역이다. 특히 세금을 더 걷는 증세는 납세자인 민간의 담세 능력까지 살펴야 하기 때문에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보다 난이도가 높다. 바람직한 증세 정책은 세수를 늘리면서 기업이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경제적 활력을 키우는 것이다. 걷기 쉬운 세금만 늘리는 선택적 증세는 당장은 편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 박원재 필자 주요 이력 ▷핀란드 알토대 경영학석사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경제부장 ▷동아닷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경성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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