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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4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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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요시히로 박사
오가타 요시히로 박사 ogatayoshihiro@gmail.com
  • -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 前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정부는 바뀌어도 시민은 남는다 …한·일 관계의 '진짜 힘'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이후 양국 서로가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거듭해왔다. 1965년 당시 연간 1만 명이었던 양국 간의 왕래가 코로나 사태를 전후해 저조해졌다가 이제 완전히 회복되어 하루 3만 명을 넘고, 2024년에는 최초로 연간 1200만 명의 왕래를 기록할 정도로 발전했다.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이 K-POP을 비롯한 한류와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음식, 여행 등 다양한 문화가 한일 간에서 공유되고, 과거에는 “가깝고 먼 나라”로 불리던 한일관계가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가까운 나라”로만 여겨질 정도로 양국의 거리는 좁혀졌다. 과거사 강제노동 문제를 둘러싼 한국 사법부의 판단을 계기로 2019년 “사상 최악의 관계”에 빠졌던 한일 관계는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정부 사이에서 회복되는 듯 보였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파면을 거쳐 이재명 정부와 이시바 정부의 관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의 축하 분위기 또한 마냥 밝기만 하지는 않으나, 기념할 만한 한 해를 밝히듯 올해 2월에는 서울 N타워와 도쿄 타워의 동시 조명 점등식이 열리는 등 한일 간의 각종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달 초,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취임한 지 채 1년도 안 돼 사임을 표명함으로써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지도자 교체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시바를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간주한 한국에서는 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성실한 자세를 호감을 가지고 좋게 보았고, 한일관계 진전에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 일본 입장에서 올해는 “전후 80년”이라는 기념적인 한 해이기도 해서 이시바는 “평화를 위한 메세지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 1995년 “전후 50년”에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을 밝힌 일본 정부였지만, 2015년 “전후 70년” 아베 담화를 통해 그 정신이 후퇴한 것으로 보였기에, 이번에 이시바가 “전후 80주년 담화”를 통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바로 세우려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담화는 보류됐고, 아직 퇴임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나 현 시점에서는 이시바의 개인적인 “견해” 형태로조차 실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시바가 총리가 되기 전에 보여주었던 신념이나 국가 비전 및 정책 대부분이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날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베 정권기의 경제정책에 대해 공과(功過)를 검증하겠다고 했지만 총리 취임 후 그는 입을 다물었다. 자민당에 대한 정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자민당 내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한 것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이시바 총리도 자민당의 총재로서 자민당 내부 합의를 얻지 못하면 독단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없었던 것이고, 당내 기반이 약한 이시바였기에 더욱 그랬다. 한국의 대통령제와는 달리 의원내각제, 특히 일본의 자민당 정치에서는 총리가 바뀐다고 해서 외교 방침에 뭔가 큰 전환을 가져오기 쉽지 않다. 일본 내에서도 이시바 총리의 사임을 두고 의문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두 번의 국회의원선거에서 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말이지만, 선거 직후도 아닌 왜 지금에 와서 사임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자민당 내 반감이 상상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자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이시바 그만두지 말라”는 옹호론이 나오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민당 내 “이시바 끌어내리기” 분위기가 강해지는 가운데, 이시바 총리는 “당내 분단을 피하고 싶다”고 스스로 사임을 결심했다. 그런데 차기 총리를 일본 국민이 직접 뽑을 수 없다. 91만여 명, 일본 인구의 1%도 안 되는 자민당원들의 투표로 당총재가 선출되면 그대로 일본 총리가 될 공산이다. 그것이 의원내각제라는 제도이고, 일본의 총리가 자민당 내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의 대선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며,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는 총리 선출 과정을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차기 총리, 즉 자민당의 새 총재는 누가 될까? 총재 선거는 다음 달인 10월 4일 투개표가 이루어진다. 5명의 입후보자 중 유력한 후보로는 첫 여성 총리를 노리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보 담당장관과 아버지에 이어 총리를 노리는 40대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현 농림수산부 장관이 있다. 다카이치는 고(故) 아베를 흠모해 보수층의 지지가 두텁고, 온라인상에서 인기도 높다. 반면 고이즈미는 젊고, 단정한 외모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기존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이 계파를 초월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두 유력 후보의 일본 내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만 둘 다 올해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에 일본의 침략전쟁을 주도했던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한 바 있다. 고이즈미는 “어느 나라든 그 나라를 위해 애쓰다가 목숨을 잃은 분들에 대해 존경심, 감사함, 그리고 평화에 대한 맹세를 하며 참배하는 일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당연시한다. 이시바 총리가 원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오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는 일본 차기 정권이 “보수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다카이치도 고이즈미도 자신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현재, 총리로서 야스쿠니 참배를 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시바도 야스쿠니 참배는 해오지 않았지만 총리가 아닌 자민당 총재로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다마구시료(玉串料)”라고 불리는 헌금을 했다. 근년 자민당 총재의 선택을 따른 것이다. 차기 총리 유력 후보인 다카이치와 고이즈미, 현 총리인 이시바의 개인 생각에는 분명한 차이가 보이지만, 일본 총리가 되면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총리가 되기 이전의 언행만을 가지고 이시바와 차기 총리를 비교해 일본 정권이 “보수화”된다고 단순하게 전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차기 정권이 들어서도 절대 달라질 게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필자가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민당 정치를 지탱하는 일본 사회의 변화다. 한국 사회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지만, 경제적 침체, 인구 감소, 사회 속에 조용히 퍼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내향적인 논리나 배외적인 지향을 부추기고 있다. 과거 본 칼럼(https://www.ajunews.com/view/20250714064834998)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참정당(参政党)이 “일본인 퍼스트”라고 호소해 의석수를 대폭 늘린 것에서 볼 수 있는 배외주의 풍조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차별이나 배외주의라고 자각하지 못하고, 정의를 따르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 무서울 따름이다. 최근 그런 일본의 배외주의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 신초샤(新潮社)가 발행하는 유명 주간지 『주간 신초(週刊新潮)』 7월 31일호에 실린 다카야마 마사유키(高山正之)라는 저널리스트의 “창씨개명 2.0”이라는 제목의 글이 문제가 되었는데, 한반도에 뿌리를 둔 작가를 지목해 공격하는 글이었다. “일본 이름을 쓰지 말라”, “일본인을 가장해 일본을 깎아내리는 외국인은 배제하라”는 식의 차별 발언이 버젓이 게재된 것이다. 피해를 입은 작가 본인이 목소리를 냈고, 여기에 문학계, 일본 펜클럽 등 각종 단체가 잇따라 항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출판사는 마지못해 다카야마의 연재 중단을 결정했다. 하지만 출판사 측에서는 그 칼럼에 대해 차별과 인권침해, 배외주의를 조장하는 것이었다는 인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하려 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는 “보수화”라는 문제가 아니라 차별의 문제이며 배외주의의 만연과 조장이다. 문제는 일부 출판사나 특정 정치인 또는 정당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외주의나 인권침해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해 있다는 데 있다. 공공질서와 일본 본연의 문화를 지킨다 등의 그럴 듯한 말로 외국인에 대한 적대와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야 말로 경계해야 한다. 차별은 대부분의 경우 다수자에 의해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새 정권이 들어서면 당연히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고 걱정된다. 여당이 어떤 연립정권을 구성하느냐 하는 변수가 존재하지만, 현 상황에서 누가 총리가 되든 그는 일본의 리더임과 동시에 자민당의 총재다. 좋든 나쁘든 그는 자민당 정치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차기 총리도 현재 한일관계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굳이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지나친 기대도 지나친 경계도 불필요하다. 그것보다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혼돈스러운 지금의 세계정세 속에서 한일이 더 이상 “승패”를 겨루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한국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 다양성 및 관용성과 배외주의 등과 같은 분단의 정치가 불러온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안이나 불만을 잊기 위해 이질적인 존재를 향해 혐오와 배제의 폭력을 행사한다. 한때만큼은 아니지만 수치스러운 일본 사회의 “혐한”은 아직도 뿌리 깊게 존재하며 때로는 앞서 언급한 『주간 신초』 사건과 같은 형태로 드러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질적인 것을 향한 혐오와 배제의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가 있다. 한일 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뿌리 깊은 현안들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를 놓고 양측이 혐오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 식민지 과거를 둘러싼 문제는 다양한 과제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피해자 구제와 존엄 회복의 문제다. 과거사 문제는 정치적 결단에 의해 해결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치적 대립에 휘말려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성가신 상황이 되기도 했다. 과거사를 둘러싼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한일 간의 “대립”에 의해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도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대립 끝에 있는 불모(不毛)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우리와 같은 시민들이다. 서로가 민주주의의 가치와 인권,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기반을 다시 마련하는 것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꼭 필요하다. 한일 간에는 지금까지 60년에 걸쳐 서로 얼굴을 보며 쌓아온 관계성이 있다. 지자체의 자매교류나 젊은이들의 상호 방문 교류나, 경제인, 예술가, 연구자 등의 교류와 협업, 예술 행사, 전시의 개최 등 서로의 역사나 문화, 가치관을 접해보고 이해하는 기회들이 계속 늘고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일본 정부가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한 정보만 보더라도 올해 들어 200건 이상의 한일 공동 혹은 한일 관계 관련 행사가 열렸고, 연내에 70~80건의 행사가 더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노동 문제 등 식민지 지배 청산은 일본의 가해 책임을 묻는 문제이자 일본 시민들이 패전 후 한국 시민이나 재일동포들과 연대를 모색한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일관계를 정부 간의 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다. 일본의 차기 총리가 누가 될지도 중요하지만, 풀뿌리 시민 교류를 통해 한일관계를 뒷받침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일 국교정상화로부터 60년, 일본 식민지배 종식으로부터 80년, 다음 10년, 20년을 향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나눌 수 있는 파트너로서 한국과 일본이 함께할 수 있는 관계를 보다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 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정부는 바뀌어도 시민은 남는다 …한·일 관계의 진짜 힘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참의원 선거 앞두고 거세지는 '배외주의' 물결

    며칠 후 7월 20일은 일본 국회 참의원 선거일이다. 일본의 국회는 중의원(미국에서 말하는 하원)과 참의원(상원)으로 구성되는 양원제이다. 중의원에서 표결된 법안은 참의원에서 심의한 뒤 최종 결정된다. 만약 중의원과 참의원의 판단이 다를 경우 중의원의 결정이 우선될 때도 있지만, 국회에 의한 의결이 신중하게 행해지도록 하는 더블 체크의 구조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심의하려는 일본다운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또 참의원 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중의원 의원의 4년 임기보다 길고 임기 도중 의회 해산이 없기 때문에 중의원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법안을 심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중의원 선거와는 달리 직접적으로 정권을 선택하는 선거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이번 참의원 선거에는 이시바(石破) 총리의 거취가 걸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지난해 가을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여당으로서 과반이 깨지는 패배를 당한 이시바 내각이 이번 선거에서도 ‘패배’한다면 당연히 집권 자민당으로서 이시바를 그대로 리더로 둬도 되냐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제와 달리 정해진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일본 총리는 인기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끌어 내려질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자민당을 위협하는 정당이 나타나면서 연일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바로 신흥 세력의 참정당(参政党)이다. 정당의 상징색은 주황색이고, “일본 퍼스트”를 표방하며 가미야 소헤이(神谷宗幣) 대표가 이끄는 극우정당이다. 새로운 정치를 향해 서로 공감하는 사람들이 2020년 유튜브를 통해 모여 출범한 정당으로 2022년 처음으로 가미야가 참의원 의원에 당선된 뒤 2024년 중의원 선거에서도 3명의 당선자를 냈으며 현재는 도쿄를 비롯한 지방의회에 150명 이상의 의원을 둔 국정정당으로 성장했다. 참정당은 창당 초기에는 오가닉 신봉이나 코로나 예방백신 반대 등을 호소해 반과학주의 사람들의 주목과 지지를 모았다. 그 후 “일본의 전통적 가치”를 호소하며 사회적 불안감을 느끼던 대중의 구원처가 되면서 SNS 등 인터넷을 통해 서서히 지명도를 높였다. 집권 여당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이나 공산당의 리버럴한 정책에는 부정적인 이들이 이 참정당의 지지층이기도 하다. 참정당 홈페이지를 보면 “일본의 국익을 지키고 세계에 큰 조화를 낳는다”는 이념을 내세우며 “선인의 예지를 살려 천황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 “일본국의 자립과 번영을 추구하고 인류 발전에 기여한다”, “일본의 정신과 전통을 살려 조화사회의 모델을 만든다”는 3개 조항을 강령으로 들고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내거는 캐치프레이즈인 “일본 퍼스트”는 이러한 정당 정신을 한마디로 축약한 것으로 보인다. 참정당은 “일본인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빈부 격차와 일본의 경기 정체를 지적하고, “국민의 마음에서 희망이나 꿈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세계화를 그 원인으로 들며 “우선은 자국민의 생활을 확실히 지켜가자”고 호소한다. 또한 참정당은 일본인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는 것 중 하나로 외국인을 꼽는다. “일본에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있다”, “일본 땅을 외국인들이 다 사고 있다”, “싼 노동력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때문에 일본인의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집단을 만들어 범죄를 저지르고 치안이 악화된다”...... 등의 배외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일본 또는 일본인이 힘든 것은 외국인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근거도 인과관계도 불확실한 그저 선동에 불과한 외국인 혐오의 유포다. 이러한 참정당의 존재가 자민당을 위협하는 기세를 보이고 있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고작 4명의 국회의원이 소속된 군소정당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론 보도에 의한 조사 및 분석에 따르면,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여당의 과반수가 깨질 가능성에 대한 예측이 우세한 가운데, 현재 참의원에 의석 2개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참정당이 두 자릿수, 즉 10개 이상의 의석을 획득할 것이 유력시되고 있어 그 존재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언론도 참정당에 주목한 보도를 연일 내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자민당의 입장에서 자신들을 위협할 만한 정당으로까지 느끼지 않더라도 겹치는 지지자층을 빼앗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러한 선거전 가운데 정부 여당은 재류외국인에 의한 범죄와 제반 문제에 대한 대응 강화를 위해 “외국인 시책의 사령탑”이 되는 사무국 조직을 새롭게 설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마치 참정당의 약진을 의식해 외국인에게 관용적이지 않는다는 자세를 어필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자민당뿐만 아니라 당수 토론회 등에서 참정당의 외국인 규제를 비판은커녕 동조하는 정당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를 둘러싼 상황은 배외주의 정당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정당의 등장을 허락하거나 요구하는 사회 또한 문제이다.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 또는 외국에 뿌리가 있는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배외주의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NHK 등이 지난 6월 실시한 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이 필요 이상으로 우대받고 있다?”라는 질문에 “강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혹은 “어느 쪽인가 하면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한 사람이 64%나 됐다. 외국인과 외국에 뿌리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 발언(hate speech), 증오 범죄(hate crime) 또한 만연해 있다. 예를 들면, 2023년 여름 이후 사이타마(埼玉)현 남부에 거주하는 쿠르드 사람들에 대한 증오 발언과 증오 시위가 자주 있었고, 인터넷상에서도 증오 발언들이 넘치고 있다. 한 시의원 선거에서는 배외주의를 조장하는 듯한 주장을 내세워 1위로 당선된 후보도 등장했다. 지난 6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는 한반도에 뿌리를 가진 일본국적 후보자가 “매국노”,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 등의 혐오 발언과 공격을 받았다. 최근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생 지원제도에서 중국 유학생이 수급자 중 약 30%를 차지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오자 일본 문부과학성(교육부)이 생활비 지원은 일본인으로 한정한다는 제도 변경안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학술연구 분야에서 일본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한다는 지적과 함께 교육의 장에서 벌어진 엄연한 차별이 아닐 수 없다. 다가오는 참의원 선거를 두고 참정당뿐만 아니라 몇 개 정당에서도 “불법 외국인 제로”, “외국인 우대정책 폐지” 등의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어 각 정당들이 경쟁하듯 배외주의 선동을 보인다. 그런데 애초에 외국인이 우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불과하다. 일본에는 외국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기본법조차 없고, 선거권도 없으며, 공무원이 된다거나 생활보호를 받는 것 등도 법적 권리로는 인정되지 않아 제한적이다. 의료, 연금, 국민건강보험 등에서 외국인이 우대를 받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이다. “불법 외국인”이나 “불법 체류자”라는 표현은 한국에서도 자주 사용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1975년 유엔 총회 결의에 근거해 “irregular(비정규)” 혹은 “undocumented(무등록, 미등록, 서류가 없다)”와 같은 표현이 사용되도록 해 왔다. 정규 재류자격을 갖지 않고 일본에 체류하는 것은 행정법의 범주에 속하는 ‘위반’에 불과하며, 이를 이유로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확하며, ‘비정규 체류’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국제표준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시민단체 ‘이주련’(이주자와 연대하는 전국 네트워크)은 “불법 체류”가 아니라 “비정규”, “무등록”, “재류 자격이 없다” 등의 표현을 쓰도록 호소한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2004년 총회에서 “비정규 지위”, “비정규 상태의 노동자”라는 표현을, EU의회는 2009년 결의에 따라 “불법 이민”이라는 표현을 중단하고 “비정규” 혹은 “무등록 노동자/이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캐나다 이민난민국은 2017년부터 미국의 월경 난민 신청자에 대해 입국 수단 자체가 불법이어도 난민 심사 종료 전까지는 법 위반자로 간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도 2019년 바이든 행정부 아래 “불법 이민” 대신 “무등록 이민”이라는 호칭을 쓰도록 지시한 바 있다. AP통신 등 몇몇 해외 언론들도 2013년부터 “불법 이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난민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서류가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불법”이나 “위법”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정확할 뿐 아니라 해당 외국인의 생활이나 사회와의 관계를 제대로 보이지 않게 해 쉽게 배제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꼬리표로 작용한다. 재류 자격이 없는 것 자체는 사람을 해치거나 재산을 빼앗는 등의 ‘범죄’와는 다르고, 정규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행위가 위반이라고 해도 그 인물을 배제하자는 것은 배외주의 그 자체이다. 본래 정부나 국회는 국제사회의 약속이기도 한 인종차별철폐조약에 따라 혐오 표현을 비롯한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며, 다양한 뿌리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정책을 시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사회 전반에 외국인 또는 외국에 뿌리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확산된다면 앞장서서 차별적인 유언비어를 부정하고 없애며 맞서야 한다. 그런데 일본의 외국인 정책은 일관되게 관리와 통제를 목적으로 해왔고, 애초에 외국인에게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노동력 부족 해소와 관광수입 증가라는 경제적 필요성과 이익을 위해 외국인 수용을 추진해 온 일본 정부는 그러면서도 “이른바 이민정책을 취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결과적으로 증가한 외국인 주민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을 거부하고, 사회적 비용 발생에 대해서도 책임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도 그렇듯, 일본도 외국인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기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작년 말 통계를 기준으로 일본의 재류 외국인은 약 377만명으로 과거 최다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약 36만명이 증가한 수이다. 다만, 한국이든 일본이든 저출산 인구감소 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외국인을 수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외국인은 노동력을 보충하거나 인구 감소를 막는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풍요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외국인이나 외국에 뿌리가 있는 사람들도 상관없이, 성별이나 나이 등 개인적인 속성도 모두 상관없이 각자의 개성과 삶의 방식이 존중되어야 한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약진할 것으로 전망되는 참정당은 경제 침체가 인구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며 여성의 사회 진출을 문제삼고 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젊은 여성뿐이고, 여성이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응원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만을 요구한다면 사회는 버틸 수 없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현실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또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기인한 다양성의 부정이며, 여성을 멸시하는 차별적 주장임에도 유튜브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일부에게 지지받고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 기간 중 유튜브 조회수를 조사한 결과 참정당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언론의 정보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유언비어를 포함한 정보에 따라 여론이 움직이는 현실이 지적되고 있는데,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에서도 비상계엄 사태 이후 중국 혐오의 발언이나 시위가 심화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음모론에 휘둘린 여론이 사람들을 배외주의 행태로 이끄는 듯하다. 혐오 발언을 비롯한 배외주의 선동은 외국인 또는 외국에 뿌리가 있는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고 서로 다른 국적과 민족 간의 대립을 부추겨 어울려 사는 사회를 파괴한다. 특히 외국인은 그 사회에서 다양한 권리가 제한되다 보니 목소리를 높이기가 어렵다. 일본에서는 지방선거조차도 외국인에게는 투표권이 없고, 하물며 이번 참의원 선거는 국정선거이기 때문에 이 배외주의 물결에 항거할 재간 없이 숨죽여 버틸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의 상당수도 선거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과거 일본은 식민지배 역사에서 그러한 민족 차별의 쓰라린 역사를 경험하게 했으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또한 사회 불안을 잠재우려는 수단으로 약자와 타자를 공격하는 배외주의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 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참의원 선거 앞두고 거세지는 배외주의 물결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일본만 남았다 …결혼하면 姓 바꾸는 나라

    한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필자는 병원에서 “요시히로님”이라며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때문에 처음 보는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직장에서 의료보험공단에 등록할 때 나의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등록해서 벌어졌던 일이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성을 앞에 이름을 뒤에 쓰는데 그것을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뒤에 오는 것이 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은 특히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주로 “오가타씨”, “오가타 선생님”처럼 성으로 부른다. 친한 친구끼리도 성으로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는 약 13만 개의 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 존재하는 성은 외국 출신자의 ‘창씨’를 포함해 최근 5000여 개가 되었다고 하니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성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성만으로도 어느 정도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 반면에 필자가 한국에 있을 때 일본 지인으로부터 “김 교수, 알죠?” 같은 질문을 받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김 교수”는 많이 알고 있지만 어떤 “김 교수”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일본에서도 비교적 흔한 성의 경우 주변이나 직장, 학교 등에 같은 성을 가진 동료나 친구가 여럿 있을 경우가 있고, 그때는 이름으로 구별하기도 하지만 이는 드문 일이다. 기본적으로 성이 한자이기 때문에 발음이 같아도 한자가 다르면 당연히 다른 성이라는 인식이다. 필자의 “오가타”라는 성만 해도 언뜻 떠오르는 한자만 해도 “緒方”, “緒形”, “尾形”, “小形”, “小方” 등 다섯 종류 이상은 있다. 뜻하지 않게 필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해 버렸는데, 이름에 관한 화제를 칼럼의 주제로 삼은 것은 현재 일본에서 성씨를 둘러싼 법 개정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의 도입 여부가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선택적 부부별성이란 무엇인가? 일본은 결혼을 했을 때 반드시 남녀 어느 한쪽의 성씨를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즉, 남녀 중 어느 한 명은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용해 온 자신의 성을 버리고 결혼할 상대의 성씨를 따라야 한다. 민법 750조에는 “부부는 혼인 시에 정하는 바에 따라 남편 또는 아내의 씨(氏)를 칭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씨(氏)”는 곧 성씨를 말하며, “세이(姓)”, “묘지(名字, 苗字)” 등으로도 부른다. 원래 정확히는 다른 뜻을 가진 표현들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모두 패밀리네임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은 결혼할 때 남녀 중 어느 한쪽이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자신의 성씨를 포기하고 상대방의 성씨를 가지게 되는 것이 법적인 의무인 것이다. 그리고 혼인 시 실제로는 95% 이상, 여성이 남성의 성씨로 바꾼다. 법적으로는 남녀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원래 제도상 호주(戸主)의 성씨로 통일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성의 성씨를 따르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지금도 여성의 성씨가 바뀌는 것이 바로 결혼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호적제도가 여전히 존재한다. 원래 호적제도 하에서 결혼이란 며느리를 호주 밑으로 편입시키는 제도였기 때문에 아직도 결혼을 “입적(入籍)”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뀐 현재 호적제도 하에서는 호주인 남편의 아버지 밑으로 “입적”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할 두 사람이 새로운 호적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남녀 모두 어느 호적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어서 법적으로는 “입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결혼을 “입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어서 TV 방송 등에서도 그 표현을 많이 듣는다. 남성이 호주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성이 성씨를 바꾸어 남편 호적에 들어간다는 감각이 아직도 널리 공유되어 있는 듯하다. 성씨를 바꾸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과거 대일본제국이 식민지에서 창씨개명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조선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일본에 동화시키려 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그 폭력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동성이 강요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많은 여성이 가부장제 문화에 동화되어 버린다. 실제로 결혼을 통해 남편과 같은 성씨를 가지게 되는 것을 행복한 일로 여기는 여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그것을 ‘행복한 일’이라고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 존재하는 것 또한 확실하다. 부부동성 제도의 실제적인 폐해도 크다. 가장 현실적이고 단적인 문제는 각종 명의변경 절차에 따른 부담이다. 성이 바뀐다는 것은 운전면허증이나 건강보험증, 여권 등 공적 서류의 명의변경은 물론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 등 금융자산 관계의 명의변경, 휴대폰 명의변경, 그리고 직장에서는 사원증이나 메일주소의 재등록, 명함의 재제작 등이 있으며, 사소하게는 각종 서비스의 회원등록명 변경, 포인트서비스 이행에 이르기까지 번잡하고 방대한 양의 절차가 필요하다. 좋든 나쁘든 한국처럼 개인정보의 전산화가 상당히 진행된 사회라고 하더라도 이 방대한 양의 명의변경을 하게 되면 상당한 노고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본 사회처럼 개인정보가 전산상으로 거의 연결되어 있지 않아 하나하나 본인 확인 및 증명을 하면서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라면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작업이 될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이 대부분의 절차는 성을 바꾼 여성만이 겪어야 할 노고인 셈이다. 폐해는 이런 구체적인 작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성씨를 바꾸는 일은 직장 등의 인간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필자와 같은 연구자의 경우 성이 달라짐으로써 독신 시절 쌓아온 실적이 연계되기 어려워진다. 새로운 성으로 검색해도 과거 실적과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일반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특히 영업직 등에서는 지금까지 쌓아 온 신뢰관계나 거래처와의 인맥 등이 이름을 바꿈으로써 끊어져 버리는 등, 일시적으로 리셋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심지어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도 있다. 성씨를 바꾸면서 결혼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벤트에 대해 의도치 않게 홍보하고 다니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혼한 경우에도 원래 성으로 돌아가게 되므로 그런 개인 사정까지 사회에 공표하고 다니는 꼴이 되어 그 정신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널리 퍼지게 된 것이 ‘통칭’의 사용이다. 비록 법적인 성씨가 변경되더라도 옛 성씨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도 주민등록이나 마이넘버카드(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에 옛 성씨를 병기할 수 있도록 2019년 일부 법 개정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옛 성씨의 사용이나 병기가 허용되더라도 여전히 불편한 일은 많다. 중요한 사항에 관한 것일수록 결혼 후 성씨를 변경하는 것 외에도 옛 성씨 사용을 위한 복잡한 절차와 큰 부담이 발생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기업들이 사무처리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 등으로 통칭 사용을 허용하지 않고 법적 본명만 사용하도록 요구한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일본 사회가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이다. 법무부가 법제심의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 1991년,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의 도입을 포함한 민법 개정을 제고한 것은 1996년이다. 이 문제가 화제가 된 것은 훨씬 이전일 테니 벌써 30~40년 이상 논의해 온 셈이다. 그런데도 정치는 이 문제를 방치하고 외면해 왔다. 정치가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없으니 소송도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2015년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 판결에서는 부부동성 의무 규정이 위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다만 재판관 15명 중 5명이 부부동성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민법 750조 규정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 요청에 비춰 합리성이 결여돼 헌법에 어긋난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또한 15명 중 3명이었던 여성 재판관은 모두 위헌 판단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어쩌면 최고재판소의 재판관 15명 중 여성이 3명밖에 없다는 사실이 일본 사회의 뒤떨어진 현황을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한국 헌법재판소의 지난 대통령 탄핵 파면 선고 소식을 TV 등을 통해 접한 필자의 주위 일본인들은 “한국은 대단하다. 8명 중 4명이 여성 재판관이구나!”라며 감탄했다. 그런 일본이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선택적 부부별성 문제가 마침내 쟁점으로 떠올랐고,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에 있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 중에도 부부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치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논의의 진전이 기대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수십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검토를 하자는 것인가. 부부동성에 집착하는 보수 정치인들이 부부별성을 인정하면 가족이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동성인 것이 가족의 “일체감”이자 “유대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부동성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부모가 이혼하거나 재혼하면 자녀가 그때그때 성씨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부모와 성이 달라 “평범하지 않다”는 주변의 시선을 받는 등의 폐해도 발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부부동성을 법으로 의무화한 것은 일본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성씨를 바꿔야 하는 사람의 95% 이상이 여성이기 때문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차별적 제도로 인정해 수차례 제도 개선 권고를 낸 바 있다. 과거 동성을 의무화했던 독일과 네덜란드는 1990년대에, 최근에는 2005년에 태국이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일본의 일부 보수 정치인들의 주장대로라면 원래 부부별성인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국가에서 가족들이 무너지고 아이들은 불행해지고 있어야 한다. 가족 관계를 이유로 부부별성을 강하게 반대하는 자민당의 한 보수 정치인이 사실 배우자와 별거 상태라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도 들린다. 애초에 가족의 행복이 성씨 하나로 결정될 리 없지 않은가! 지금 제기된 제도 개선은 부부별성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다. 결혼할 때 남자 쪽 성을 고를 수도 있고 여자 쪽 성을 고를 수도 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성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려는 제도일 뿐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보수파는 앞서 말한 가족의 “유대감” 외에 “이미 통칭 사용 기회가 늘고 있다”는 이유를 언급하며 법 개정을 거부한다. 유엔의 권고에 대해서는 “국민적 의견이 분분하다” 등을 핑계로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상당수 여론조사가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를 찬성하는 여론이 절반 이상이고 반대 여론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유엔의 권고는 일본의 제도가 차별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평등의 문제로 보는 것이지 다수결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인권문제이다. 일부 소수 강경 보수 정치인의 전혀 논리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주장 때문에 수십년 동안 인권과 평등의 문제인 부부별성을 둘러싼 제도 개선 문제가 계속 방치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 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일본만 남았다 …결혼하면 姓 바꾸는 나라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거짓이 진실을 죽였다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그리고 일본은 가짜뉴스나 음모론에 의해 민주주의가 위기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또한 SNS를 포함해 다양한 매체에서 쏟아지는 무분별한 정보는 때로 폭력과 차별을 야기해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일본에서는 사이토 모토히코(斎藤元彦) 효고(兵庫)현 지사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이토 지사에 대한 고발 문서가 그 발단이었는데, 부하 직원들에 대한 갑질과 거래처와 얽힌 비리 문제를 고발하는 문서가 현청의 한 직원에 의해 작성되어 여러 곳에 배포된 것이다. 그런데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본래 '공익 통보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해당 직원이 사이토 지사의 지시에 의해 신원이 밝혀져 처분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언론 인터뷰에서 사이토 지사는 '공무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행위' 등 표현을 쓰며 해당 직원을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궁지에 몰린 직원은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언론은 연일 이 사건을 다루었고, 효고현 의회는 사이토 지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이에 사이토 지사는 자진 사직하고 지사 선거를 다시 실시하여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현의회의 조사 결과 사이토 지사의 갑질 행위가 일부 사실로 확인되었고, 공익 통보자를 궁지로 몰았던 사이토 지사의 대처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토 지사는 재선거에서 승리해 지사직에 복귀했다. 사이토 지사의 재당선이라는 결과를 두고 언론에서는 SNS의 영향을 지적한다. 그가 지사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의혹은 “모두 거짓말”이며 “사이토는 언론과 현의회에 의해 함정에 빠진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유튜브를 중심으로 퍼진 것이다. 그의 지지자 중에는 “기존 언론(legacy media)은 믿을 수 없다. 유튜브에서 진실이 이야기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이토를 기득권에 맞서는 용사처럼 보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효고현 지사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유튜브 채널이 다치바나 다카시(立花孝志)라는 정치인의 것이었다는 것도 화제가 되었다.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이라는 기묘한 명칭을 가진 정당의 대표인 그는 이번 효고현 지사 선거에 '사이토를 당선시키기 위해' 출마했다. 다치바나는 “나는 지사가 될 생각이 없다”고 공언하며 사이토를 응원하는 '선거 활동'을 했다. 다치바나가 '선거 활동'으로 확산시킨 정보에는 '사이토를 사임으로 몰아넣은 현의회 의원'을 비방·중상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짓 정보를 꾸며내 현청 직원의 자살이 사이토의 책임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비난이나 비방·중상으로 몇몇 현의원과 그 가족을 시달리게 했다. 그 결과 이름이 거론된 한 현의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다치바나의 목적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일단 주목받음으로써 자기 정당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SNS를 통한 영향력의 확대는 비즈니스가 된다는 측면도 지적된다. 전 NHK 직원이었던 그가 만든 기이한 정당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어떤 정치적 신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SNS를 통해 확산되는 정보나 루머, 비방·중상 등 진위의 경계선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 사회가 최근 비상계엄 사태에서 겪어온 것과 같이 '가짜뉴스 시대' 'SNS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문제이다. 누군가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다른 이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진실'일 경우가 있고, 자신에게는 '진실'이어도 타인에게는 '거짓말'일 수도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명백한 거짓말이고 반드시 규탄받아야 할 가짜뉴스가 있다. 열광적인 주목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사회를 붕괴시키는 가짜뉴스가 바로 차별의 폭력이다.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지만 인류가 부단한 노력으로 몰아내야 하는 것이 차별이다. 이 차별이 SNS 등을 통해 확산돼 실제적인 폭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 사이타마(埼玉)현의 한 지역이 위태롭다. 차별 발언 등 눈길을 끄는 행동과 얼굴을 하얗게 칠한 조커의 모습으로 유명해진 가와이 유스케(河合悠祐)가 지난 1월 사이타마현 도다(戸田)시 시의원 선거에서 득표수 1위로 당선됐다. 지난해 도쿄도 지사 선거에도 출마해 거의 알몸의 여성 사진을 선거 벽보에 붙이는 등 일각에서 '조커 의원'으로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이었던 그는 이번 선거에서는 조커 분장은 하지 않고 외국인 배척만을 호소해 득표수 1위로 당선되었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불법 이민자 모두 강제송환' '일본 퍼스트(최우선주의)' 등을 주장한 그는 일본에 사는 쿠르드족(Kurd)들의 봄 축제 '네우로즈(Newroz)'에 방해하러 방문했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어떤 쿠르드족 시민은 “그들이 우리 사진을 찍으려는 게 마치 총을 겨누는 것처럼 공포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한겨레 2025.2.18). 일부 차별주의자(racist)들은 쿠르드족의 모습을 무단으로 촬영한 동영상이나 사진을 '불법체류자' '범죄자' 등 근거 없는 설명을 붙여 SNS 등 온라인상에 올린다. 영향을 받은 이들이 '쿠르드족을 내쫓아라' '왜 쿠르드족에게 세금을 쓰는가'라고 항의를 하며 동사무소에 전화를 거는 일도 발생했다.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차별의 '표적'이 된다. 쇼핑하는 쿠르드족 어린이 사진에 '물건을 훔치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붙여 SNS로 확산시키기도 한다. '혐오발언(hate speech)'으로 불리는 차별 행동은 재일코리안을 향한 일본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차별 문제로 과거 한국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하였다. 차별에 맞서 열심히 투쟁해온 당사자와 시민들의 노력 끝에 2016년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된 것은 일본에서 획기적인 일이었으나, 해소법은 벌칙 규정을 갖추지 않아서 실효성이 제한적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의 연장선상에서 광복 이후에도 거의 일관되게 한반도 출신자들의 민족교육을 탄압해왔다. 현재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다른 외국인 학교와 달리 조선학교를 배제하는 것도 분명한 차별 정책이고, 유엔에서 시정 권고를 받았음에도 게을리 대응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차별을 공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정부나 언론과 함께 정치인들의 발언도 큰 영향력을 갖는다. 야당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郎) 대표가 방송에 출연해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재원 부족 문제를 논의하면서 마치 외국인들이 제도를 악용하기 때문에 의료보험 재정이 압박되고 있는 것처럼 발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통계도 전혀 존재하지 않고, 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의료보험제도하에서 보험료를 지불하고 보험의 적용을 받는 것이지 '외국인'을 끌어들여 논의하거나 설명할 필요는 전혀 없는 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뜻 보면 발생할 법한 일'처럼 들리는, 사람들의 잠재적 차별의식을 자극하고 배외주의 선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안이한 발언은 매우 위험하다. 관련 시민단체의 지적을 받고서도 다마키는 자신의 발언과 주장을 정정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데, 이는 무책임한 자세다. 포퓰리즘을 이용한 정치인의 발언 중 왕왕 외국인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타당성 있게 보이려는 언설이 나온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부 유튜버, 자칭 종교인을 비롯해 선정적인 주장이나 발언으로 여론에 호소하려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추세이기도 하다. 수적으로도 소수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입지도 약한 마이너리티(minority)인 외국인들은 부당하게 비난하더라도 발언자에게 비난이나 피해가 돌아올 가능성이 낮은, 그야말로 때리기 쉬운 대상인 것이다. 이는 비열한 차별이자 배외주의이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 미국에서도 잠재적인 차별의식 조장이 우려된다. 지난 1월 말 미국 내에서 벌어진 항공기 사고 직후 그 원인을 '다양성 중시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듯한 주장을 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많은 사람이 경악했다. 지난 바이든 행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발언에 불과했는지는 몰라도 외국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차별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발언이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헌재 심판이 계속되는 현시점에 일각에서 혐중 감정을 선동하는 듯한 움직임이 보여 매우 우려스럽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면서 동시에 외국인 차별을 선동한다면 그것은 모순이고 자기분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에서도 우려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올여름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비례대표 후보에 차별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전 국회의원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기타는 2016년 유엔 회의에 참가했을 때 '치마저고리나 아이누의 민족 의상 코스프레 아줌마까지 등장'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등 한반도 출신자들이나 일본의 소수 민족인 아이누를 조롱하는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 기사는 일본 법무부 등이 '인권 침해'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이미 끝난 문제”라고 강변하며 반성이나 입장의 변화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스기타는 원래 유엔 등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활동을 해온 극우 정치인으로,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눈에 들어 국회의원이 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인종차별 발언뿐만 아니라 한 월간지에 동성 커플에 대해 “‘생산성’이 없다” 등 '우생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용을 기고해 해당 월간지가 많은 비판을 받고 휴간하게 된 사건도 있었다. 또한 평소에도 성범죄 등과 관련해 “여성은 얼마든지 거짓말을 한다” 등 성폭력 피해자나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온라인상에 올리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비자금 문제로 지난 중의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했던 그가 다시 여당 후보자로 국회에 돌아오려는 것이다. 원래 선거구 선출 의원이 아니라 비례구 선출 의원이며 자민당 내 극우세력 지지에 의해 국회 자리를 얻게 된 인물이지만 여당 자민당이 그런 스기타를 다시 불러들이려고 한다. 그의 발언으로 인해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을 비롯해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사람들의 말은 때로 폭력을 조장하기도 하고, 그 자체가 폭력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차별과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규범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규범을 사회가 견지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정치인을 비롯한 책임 있는 자들의 말이기도 하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 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거짓이 진실을 죽였다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성추문 일파만파 …둥롤린 광고주들

    올해 초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민영방송국 후지TV의 방송에서 기업들이 광고를 줄줄이 철수하는 일이 발생했다. 후지TV의 '성상납 의혹' 스캔들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후지TV의 경영 모체인 후지미디어홀딩스의 대주주인 미국 투자회사 돌튼 인베스트먼트(Dalton Investments)는 기업 거버넌스 재건과 투명성 확보를 요구한 동시에 스폰서 기업들도 잇달아 떨어져 나갔다. 이런 가운데 1월 27일 오후 4시부터 시작해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10시간 넘게 후지TV 경영진을 대상으로 약 400명의 미디어 관계자가 참가한 가운데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회장을 비롯해 경영진 4명이 모두 머리 숙여 사과했고, 이후 무제한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후지TV는 이 모습을 자신들의 지상파 채널을 통해 중계하는 이례적인 대응을 취했다. 미나토 고이치(港浩一) 사장은 “인권 침해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인권 인식이 부족했다. 대응을 잘못해 방송업계의 신뢰 실추로도 이어질 수 있는 사태를 초래했다”고 사과했다. 또한 후지TV 회장과 사장의 사임을 밝히며 새 사장의 취임을 발표했고, “제로부터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제3자위원회에 의한 조사가 진행 중이며, 3월 말에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후지TV는 향후 법령 준수와 기업 거버넌스의 재검토를 진행하는 동시에 재발 방지책 마련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일본의 유명 아이돌 그룹 SMAP의 리더 출신이자 MC로도 활약하던 연예인 나카이 마사히로(中居正広)의 성추문이다. 당초 상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고 '여성 문제'나 '여성과의 트러블' 등 모호한 표현으로 보도되었는데, 그 후 이어진 보도들에 의해 성추문으로 밝혀졌다. 이 문제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작년 12월에 한 주간지가 나카이와 어떤 여과의 사이에 '트러블'이 생겨서 나카이가 여성에게 합의금으로 9000만엔(약 8억5000만원)을 지불했다는 보도를 통해서였다. 나카이가 그만큼의 거액을 지불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건의 중대성이 짐작되었고, 그 보도 이후 그가 방송에 출연한 장면이 편집되거나 방송 자체가 중단되는 등 TV에서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문제가 더 커진 것은 피해자가 후지TV 아나운서였다는 점과 그 사건에 후지TV 직원이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후지TV가 적절한 대응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과 회사 조직으로서 책임이 결여되었다는 지적 또한 나왔다. 후지TV도 나카이도 해당 직원은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과거부터 후지TV 내에 성상납 문화가 존재했던 것이 아니냐,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해서 여자 아나운서를 회식 자리에 동석시키는 기업문화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 커졌다. 거기에 피해를 입은 아나운서가 사건 후 건강이 악화되어 장기 휴직을 했고, 결국 퇴직에까지 이른 상황에서 나카이가 발표한 '사과문'이 여론의 큰 비난을 샀다. 그는 '사과문'에서 “(피해자와) 합의가 성립됨으로써 향후 연예 활동은 지장 없이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후지TV의 대응도 사건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2023년 6월 이후 사실을 대체로 파악했으면서도 방송에 나카이를 계속 출연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램의 출연자로 섭외하는 등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후지TV 사장은 나카이가 갑자기 방송에 나오지 않으면 세상이 들썩이게 될까 봐 조용히 대처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후지TV의 대응을 포함한 문제점에 대해 제3자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겠지만, 어쨌든 후지TV의 기업 위기 대처 능력이나 인권 의식이 크게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셈이다. 이 칼럼에서도 이전(2023년 10월 11일자)에 다루었는데, 일본의 거대 연예기획사 사장이었던 자니 기타가와(ジャニー喜多川)의 오랜 성착취 문제가 본인이 사망한 뒤에야 비로소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아직도 그 피해자 구제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 등에서 보듯 방송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연예계의 문제는 큰 이권이 얽혀 있어 흐지부지되기 쉬웠을 것이다. 일본의 인기 코미디언인 마쓰모토 히토시(松本人志) 또한 성추행 의혹으로 작년부터 활동을 중단했지만 책임 문제는 어느덧 모호하게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연예계가 워낙 각종 소문이 난무하는 곳이기에 진실과 거짓을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러한 '여성과의 트러블'이라는 문제가 일본에서는 '연예계 가십'으로만 소비되어 왔기 때문에 다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오랜 세월 고발의 목소리가 있었고, 재판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언론의 보도가 없었다면 아직도 주목받지 못했을지도 모를 자니 기타가와의 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당초 나는 이번 나카이의 사건 또한 이대로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트러블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에 대한 사죄도 없이 자신의 “활동에 지장이 없다”고 입장을 밝힌 나카이의 태도는 여론의 분노를 샀고, 결국 떠밀리듯 연예계를 은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성추행 등 인권에 관한 문제에 있어 일본 사회의 인식도 과거와 크게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다만 한편으로 인권을 둘러싼 일본 내 인식과 관련해서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은퇴를 밝힌 나카이에 대한 비판은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합의가 성립된 안건이기에 더 이상 추궁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카이는 이 문제에 대해 팬들에게 입장을 표명하는 글만 남겼을 뿐 기자회견 등 공개적인 자리를 통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정말로 나카이 개인의 은퇴로 끝내도 되는 문제인지 의문이다. 또한 당초 후지TV는 적당한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후지TV에는 ‘컴플라이언스 추진실’이라고 하는 법률 준수와 관련된 전문 부서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인지한 사장은 '피해자를 배려'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지 않기 위해 전문 부서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일부 간부만으로 대응하려 했다고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배려'였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업문화의 문제도 지적된다. 사장의 생일파티나 중요한 거래처와 회식을 하는 자리에 관습처럼 여자 아나운서가 불려가 동석해야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방송국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도 이렇게 여성을 회식 등 자리에서 '꽃'이라고 보는 직장문화가 일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후지TV만의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관련해 과거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미국발 #MeToo 운동의 움직임이 일본에서는 파급력을 갖지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번 사건이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로만 강조되는 데도 위화감을 느낀다. 후지TV에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고문 히에다 히사시(日枝久)라는 인물이 있다. 1980년대에 편성국 국장을 맡아 후지TV의 전성기를 만든 후 오너 일족을 쫓아내고 사장에 취임해서 40년 이상 강한 영향력을 끼쳐온 인물로 유명하다. 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도 가깝게 지내는 등 정치권에도 인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지TV의 계열사로는 아베 정권에 대해 호의적인 논조를 보였던 '산케이신문'이 있고, 2000년대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출판한 후소샤(扶桑社) 또한 같은 계열사이다. 그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히에다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공개석상에 나타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고, 그가 경영권을 장기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온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0시간 이상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많은 기자들이 히에다가 그만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이례적이었던 장시간의 기자회견에서는 기자들의 고성이나 야유가 난무하는 일본에서는 흔하지 않은 장면 또한 연출되었다. 그래서 이번 문제의 본질이 인권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막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보다 후지TV를 규탄하는 것이 목적이 된 기자회견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미 은퇴를 발표한 나카이를 규탄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후지TV를 표적으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각에서는 후지TV가 무제한으로 기자들의 질문(이라는 이름의 규탄)을 받음으로써 세간의 동정을 사는 데 성공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계된 기자회견에서 60대, 70대 어르신(경영진)들이 400명에 이르는 기자들에게 매도당하는 모습은 동정을 사기에 충분했고, 이를 두고 기자들의 윤리나 도덕성 등이 화제에 오르면서 문제의 논점이 어긋나는 양상을 띠기도 했다. 10시간 이상 기자회견이 이어졌지만 인권 침해와 관련된 문제점이나 향후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지TV를 둘러싼 문제는 이미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로 돌아선 듯 보이고, 스폰서 기업들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여론이란 원래 '냄비'처럼 쉽게 달아오르고 식는 한편 언론도 결국 영리단체이기에 팔릴 소재가 있으면 달려들었다가 이내 다른 소재로 옮겨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언론이 맡은 사회적 역할은 여전히 크기에 이러한 사건들이 단순히 소비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성추문 일파만파 …둥롤린 광고주들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일본 내 정치불신이 뿌린 반지성주의 '논파' 문화

    지난 7월 7일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현 지사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가 291만8015표(도쿄도 유권자 1129만229명)를 획득하며 3선에 성공했다. 2위를 차지한 이시마루 신지(石丸伸二, 165만8363표)와 3위의 렌호(蓮舫, 128만3262표)가 그 뒤를 이었다. 이번 도지사 선거는 56명의 후보가 난립한 선거였는데, 그만큼 현 지사에 대한 불만이 컸다는 뜻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다 할 대안이 없었다는 것을 선거 결과가 보여주는 듯하다. 도지사 선거 과정은 불명예스럽게도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 후보자에게 주어지는 공식 선거활동으로 일본 공영방송 NHK가 방영하는 정견방송이 있는데, 여기서 한 여성 후보자가 이유도 없이 상의를 벗고 속옷 차림이 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것이다. 이 밖에도 어떤 정당이 기부를 조건으로 자신들의 선거 벽보용 게시판을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게 했고, 그것을 활용해 일반인들이 음란하거나 선거와 무관한 내용의 벽보를 붙이는 등 코미디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선거전 가운데 각 후보의 정책이나 공약은 크게 검증되지 못했고, 활발한 정책논쟁 또한 시도되지 않은 채, 딱히 이룬 것도 없지만 큰 실책도 없었던 현 지사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3선이 결정된 것이다. 나는 도쿄 도민이 아니기 때문에 투표권은 없지만, 과거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식민지 시기에 일어난 관동대지진 학살 피해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것을 굳이 피하고 있는 고이케(2023년 9월 8일자 칼럼 “간토대지진 100년 …조선인 학살의 비극은 인권 문제” https://www.ajunews.com/view/20230907130407732 참조)의 낙선을 기대했었다. 역대 도쿄도지사가 그동안 보내던 추모문을 굳이 보내지 않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도쿄도가 조선인 학살의 사실을 경시 혹은 부정한다는 잘못된 메시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연한 태도로 규범을 제시하는 것이 도쿄도지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최종적으로 3위에 그쳐 낙선한 야당 입헌민주당의 렌호는 대만인 2세 정치인이다. 현 지사인 고이케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연예 활동을 하며 널리 알려졌다가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인물로, 외국에 뿌리를 둔 것이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적인 시선을 받아온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도쿄도가 추모문을 보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외국에 뿌리를 둔 그가 도쿄도지사가 됐더라면 다양성과 과거사 직시 측면에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현 지사의 3선이라는 결과는 매우 유감스럽다. 그런 가운데, 낙선했지만 2위를 차지한 이시마루가 지금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방의 작은 자치단체인 아키다카타(安芸高田)시의 시장 출신이다. 41세의 젊은 나이에 전국적으로는 무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이었던 그가 당초 현 지사 고이케의 3선을 막을 것으로 기대를 받던 야당 유력 후보 렌호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애초부터 주요 언론들도 그를 크게 거론하지는 않았다. 선거전 마지막까지 현 지사인 고이케냐 야당 후보 렌호냐 하는 구도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고이케 3선은 예측했다고 해도, 대항마로 여겨졌던 렌호가 3위로 가라앉고 무명에 가까웠던 이시마루가 2위를 차지한 것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시마루가 도지사 선거에서 2위가 된 요인은 아키다카타시장 시절의 ‘활약’에 있었다. 그가 아키다카타 시의회에서 고참 의원, 즉 기득권층으로 보이는 의원들을 상대로 “부끄러운 줄 알아라!” 등 질책하는 모습이 담긴 짧은 동영상들이 SNS를 타고 퍼진 것이다. 도지사 선거 활동 중에도 그가 정책을 꼼꼼히 설명하는 모습보다는 구태의연한 정치인이나 정치 상황을 비판하는 당당한 모습을 담은 짧은 동영상이 확산됐다. 유튜브나 SNS를 활용해 자신의 임팩트 있는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전략이 효과를 본 것이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이시마루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 정치에 실망하고 혐오마저 느끼고 있던 중도파를 흡수할 수 있었다는 점과 애초부터 정치에 관심이 없던 젊은층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현재 개표 후 이시마루가 보인 일부 언론매체에 대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고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어조로 대응하고, 질문에도 성실하게 대답하지 않으며 마치 가르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SNS에서 짧은 동영상을 통해 퍼져나간 그의 모습은 매우 참신하고 통쾌했지만, 이른바 올드미디어를 통해서 전해진 그의 모습은 거만하고 상대를 우습게 여기는 듯한 독선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 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적어도 도지사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밈을 활용한 홍보는 요즘 대중의 인기를 얻고자 한다면 유용하고 당연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래 정책에 따라 유권자의 대변인이 되어 정치를 하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치인임을 감안한다면 역시 그의 언행은 마땅한가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한편, 그러한 기존의 정치나 정치인에 질린 유권자에게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이다’ 정치인에 대한 기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논파(論破)’라는 말이 유행하며, ‘논파왕’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인터넷 세계나 지상파 방송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 ‘니찬네루(2ch)’를 만든 인물로 이름이 알려졌고, 솔직한 발언과 강경한 태도로 대응하며 상대를 ‘논파’하는 것으로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히로유키(본명 니시무라 히로유키)’다. ‘논파’란 결코 성실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하기 곤란한 상황으로 상대를 어떻게든 몰아가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 ‘논파’에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느낀다. 히로유키는 세간의 권위나 직함과 같은 것을 절대 눈치 보지 않고, 어디까지나 논리를 가지고 상대를 몰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반 대중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일부에서는 그러한 ‘논파’를 멋있게 여기고 높이 평가하는 풍조를 ‘히로유키 현상’으로 부르며, 이제는 일본 사회에서 신드롬 수준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뿌리내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이시마루가 얻은 인기 또한 그러한 ‘논파’ 문화가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시장 시절에 보여준 구태의연하면서도 권위적인 시의원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질책을 퍼붓는 기개 있는 자세야 말로 ‘논파’하는 새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단순한 비교는 어렵지만, 한국에서 이준석 의원이 정치권에 처음 등장했을 때와 같은 임팩트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정치인의 등장은 일본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제는 국정에서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일본유신회’라는 정당이 있다. 방송에 자주 출연해 파격적인 스타일로 논의를 주도하는 것으로 인기를 얻은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가 만든 정당이다. 하시모토가 지금은 정치인 은퇴 선언을 했지만, 그의 거침없는 발언은 여전히 인기가 높아 평론가로서 지상파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며 사회적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하시모토는 과거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전쟁 당시 군대에는 필요했다”, 오키나와 해병대 사령관에게 “(병사를 위해) 유흥업소를 잘 활용해주었으면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사람들에게 그는 금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대변해주는 사이다 논객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사회학자 구라하시 고헤이(倉橋耕平)는 ‘논파’ 문화가 1990~2000년대에 걸쳐 일본 사회에서 대두한 역사수정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래 역사란 사료를 바탕으로 전문가가 논해온 역사적 사실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파’ 문화에서는 전문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가짜 뉴스와 같은 언설이라도 그것이 사실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사실처럼 격상됨으로써 오랜 세월 축적되어온 연구성과조차 부정될 수 있는 것이다. ‘논파’ 문화는 사실이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대방에게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몰아가는 것이 ‘승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즉, ‘논파’ 문화에서 토론이란 새로운 뭔가를 낳기 위한 논의가 아니라, 단순히 승패를 결정하기 위한 게임과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구라하시는 이렇게도 지적한다. “토론 자리에서 복잡한 현실이나 모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꼼꼼하게 논하게 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고 만다. 그래도 역사의 탐구에서는, 사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의 한계나 이항대립적인 논의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수정주의자가 논의를 단순화시키는 것은 역사 탐구가 주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에게 불편한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목적을 위해 논하기 때문에 단 하나의 시각에서 모든 것을 논하는 단순화가 가능한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논파를 목적으로 하는 상대와는 성실한 논의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모습은 역사인식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논파’ 문화는 티비나 SNS와 같이 제한된 시간이나 글자 수 안에서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기법으로 시대에 부합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상에서 짧게 “잘려져” 확산되는 이른바 짤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요즘 시대에는 성실하게 임한다고 해도 결국 흑백이 분명하지 않은 논의 방법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 그러한 가운데 “잘려진” 짤에 적합한, 승패가 확실히 갈라지는 논의가 대중 사이에서 선호되는 것이다. 최근 약 20년 사이에 정착한 일본어 중 ‘가치구미(勝ち組, 승자들의 팀)’과 ‘마케구미(負け組, 패배자들의 팀)’이라는 표현이 있다. 일본 경제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 사회는 사람들을 ‘가치구미’와 ‘마케구미’로 나누어 보게 됐다. 어떻게 자신을 ‘가치구미’로 만들어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마케구미’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요령 있게 잘 살아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가치관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무관용이라는 폐해를 낳았고, 일본 사회를 숨막히게 만들고 있는 요인 중 하나이다.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과거 가두연설 때 자신에게 야유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런 이들에게 질 수는 없다”라고 외쳤다. 한 국가의 수상(총리)이 자신을 비판했다고 해서 일반 시민을 “이런 이들”이라고 부르며,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도 응원연설에 나선 자민당의 고노 다로(河野太郞) 디지털 담당 대신(장관) 또한 야유를 퍼부은 청중에게 “이런 패거리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고노 역시 금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하는 스타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인물인데, 차기 총리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러한 발언을 한다는 것은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경시한다고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행동이다. 자신의 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해 논의나 대화의 여지를 포기할 뿐만 아니라 거부까지 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감정에 호소할 뿐이다. ‘반지성주의’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러한 ‘논파’ 문화는 후퇴하는 일본 사회가 자신감을 잃고 내향적 성향을 지니면서 안게 된 새로운 사회적 병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베 정권 무렵에 자주 듣게 된 이상한 일본어로 자국민을 향해 말하는 ‘반일’이라는 단어가 있다.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일본인이더라도 ‘반일’이라고 조롱을 받고 매도당했다. 과거 한국이나 중국이 일본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일 때 일본 사회가 폄하했던 표현이 ‘반일’이라는 말이었는데, 그 ‘반일’이라는 말이 자국민을 향해 쓰이게 된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논리도 제대로 된 토론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적’을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만 있을 뿐이다. 한·일 간에는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다양한 문제가 존재하고, 특히 ‘위안부’와 강제노동을 둘러싼 문제는 인권문제로 주목받고 있다. 피해자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접근법으로 다가가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날 위험성이 높고, 역사수정주의의 주장을 조장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자세는 ‘반일’이 아니다. 반대로, 감정에 호소해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방법으로만 역사를 바라보는 것 역시 본질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필요없는 ‘적’을 만들어 무관용을 부르게 되고, 이는 문제 해결을 늦추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일본의 ‘논파’ 문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동시에, 인터넷을 통한 정보 확산이 큰 영향력을 가지는 요즘 시대이기에 ‘반지성주의’의 위험성은 일본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 간극을 이용하는 정치인도 등장한다. 자신과 대립하는 정치세력을 깎아내리는 것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보이는 주장이나, 그에 실망해 정치 불신에 빠지는 많은 시민들은 ‘논파’ 문화에 농락당하고 있다. ‘반지성주의’를 환영하고 그것을 활용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냉철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필자 주요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일본 내 정치불신이 뿌린 반지성주의 논파 문화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바로 쓸 사람 뽑는 韓, 인재로 키워주는 日

    요즘 일본 뉴스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슈 중 하나가 ‘퇴직 대행’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행업체가 돈을 받고 대신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퇴직 처리를 도와주는 일이다. 대인관계 문제 등 정신적인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려고 해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단순히 ‘말하기 어렵다’는 이유 하나로 퇴직 대행을 의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특히 신입사원이 자신이 기대했던 업무가 아니라거나 원하지 않는 부서에 배정되었다는 이유 등으로 입사 후 며칠 또는 몇 주 만에 퇴직 대행을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뉴스가 일본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것은 직장생활, 특히 대학생의 취직이 가지는 의미나 일본의 취업 문화가 한국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4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일본은 3월에 대학교를 졸업한 전국의 젊은이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취직해 대부분 4월 1일에 처음 출근한다. 대기업들은 첫날, 대학교 입학식처럼 큰 강당에 신입사원을 모아 놓고 ‘입사식’이라는 행사를 진행하고, 사장님 훈시와 입사 발령이 이어진다. 병역의무가 없는 일본에서는 대학생들이 일반적으로 휴학을 하지 않고 입학부터 졸업, 그리고 취업까지 모두가 같은 스케줄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입사가 일제히 이뤄지다 보니 대학생들의 취업 활동도 일제히 이뤄진다. 이때 조금이라도 경쟁사보다 빨리 움직여 좋은 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생기는데, 대학생이 학업에 전념할 수 없다는 우려로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채용홍보 활동은 3월 1일부터, 채용전형은 6월 1일부터, 그리고 채용내정은 10월 1일부터 가능하도록 회원사에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룰이고, 실제로는 채용내정이 풀리는 10월에는 내정식이 행해진다. 따라서 채용전형이 풀리는 6월에는 이미 내정자가 나와 최종적인 전형이 마무리된다. 따라서 채용을 위한 공식 홍보활동은 3월이지만 이전에 ‘설명회’나 ‘인턴십’ 등 명목으로 이미 많은 기업에서 채용활동을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일본 대학생들은 3학년 여름이 오기 전에 여름방학 중 가능한 인턴십을 찾으면서 취업활동을 시작하고, 가을에는 기업설명회 등을 다니면서 지원할 회사를 좁혀간다. 4학년 초봄에는 정식은 아니지만 암묵적인 내정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여름 전에 한 군데 정도는 입사 내정이 정해지지 않으면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 된다. 빠른 학생은 3학년 때 입사할 곳이 이미 정해진 경우도 있다. 미리 입사가 결정된 학생은 무사히 졸업만 하면 되기 때문에 졸업 논문 외에는 신경 쓸 일이 없다. 그래서 학생 시절 마지막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다음 해 4월 입사까지 동아리 활동에 복귀해 스포츠 등 취미활동에 힘쓰거나, 여행을 가거나, 영어 공부를 하거나, 간혹 졸업하지 못해 내정이 취소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학점을 챙기려고 하거나,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일본의 취업 사정은 대학 성적에서도 한국과 크게 다르다. 한국에서는 학점이 매우 중요한 반면 일본에서는 학점은 크게 영향이 없다. 앞서 말했듯이 취업활동은 3학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학점을 확인하려고 해도 2학년까지밖에 제시할 수 없다. 물론 기업마다 선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일본에서 학점은 어디까지나 판단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취업을 위해 학점에 목숨을 거는 학생은 일본에서 보기 드물다. 대학 성적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서 취업할 때는 서류상 ‘스펙’이나 출신 대학이 한국만큼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은 어떤 기준으로 채용을 할까? 예전에 내가 한국 대학에 있을 때 일본 기업에 취직하려는 학생을 지도한 적이 있어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에게 상담과 조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자주 들은 채용 기준은 ‘느낌 또는 직감’이었다. 어느 기업이나 면접을 중요시하고 있어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받은 ‘느낌’이 합격 여부 판단에 큰 근거가 된다고 한다. 학생을 지도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런 무책임한 기준이 어디 있나 싶었지만 사실 기업이 보기에는 합리적인 기준이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동료를 채용하는 것인데 좋은 관계를 맺기 힘들 것 같은 인물이라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일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졸업할 무렵 취업활동을 경험했는데 지원한 기업마다 모두 면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적은 곳은 세 번, 많은 곳은 다섯 번 면접을 봤다. 일선에서 일하는 실무자 면접, 그룹 면접, 각 부문 관리직급 면접, 인사부 면접, 임원 면접, 이런 식이다. 어떤 곳은 입사 내정을 받은 후에 대학 성적증명서를 제출하라고 할 정도로 학점은 졸업 여건이 잘 갖춰져 있는지 확인하는 의미 정도였다. 나는 대학 성적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은 곳에 취업했고, 떨어진 기업에서도 학점에 대해서 문제시하거나 그것 때문에 불리했던 적은 없다. 한국 대학은 성적이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상대평가가 기본인 반면 일본 대학은 대부분 과목에서 교원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했는지 여부만으로 성적을 평가하는 절대평가가 기본이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의무교육도 아닌 고등교육기관에서 한정적인 수의 학생들 중 우열을 가리는 공부가 얼마나 의미 있느냐는 것이고, 기업 등 인재를 필요로 하는 입장에서는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전문성이란 회사에서 쓸 수 있는 능력과는 별개로 생각해 입사 후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 성적이 한국처럼 까다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서는 일반 기업에 지원할 때 대학원 출신의 고학력자는 반대로 취업에 불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어중간하게 전문성을 가진 인재보다 흡수력을 갖춘 잠재능력이 뛰어난 학부 졸업자가 선호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고학력 푸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개인의 능력보다 잠재능력을 중요시하는 만큼 일본 기업들은 입사 후 교육에 공을 들인다. 대기업의 경우 경력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신입사원의 경우 처음 3년 정도는 연수기간처럼 생각하고, 그럴 여력이 없는 기업이라도 입사 후 3년 정도는 OJT(On the Job Training)를 통해 제 몫을 하는 인재로 키우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한 회사에서 최소 3년은 근무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고스펙의 능력자인지를 판별하려는 한국 기업과 채용 후 장기적인 교육을 전제로 잠재능력을 판별하려는 일본 기업의 문화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일본 기업 문화의 근저에는 바로 ‘일본식 경영’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식 경영이란 연공서열임금제와 종신고용제 등 일본 기업의 특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일본 기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채용한 인재에게 큰 투자를 하고 키워나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초봉은 다소 낮게 책정되어 있어도 그만큼 교육이라는 형태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인재가 성장해 장기적으로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주므로 연령에 따라 급여가 올라가고, 연령이 낮으면 아직 공헌도는 낮다고 여겨져 급여가 억제된다. 그러나 그것도 초기 투자를 한 만큼 회수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되기에 직원들은 정년까지 한 기업에 근무하는 것을 전제로 조직에 충성을 맹세하고, 기업도 직원을 가족처럼 맞이한다. 폐해도 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급여가 오르니 승진이나 근로 의욕이 떨어진다거나, 큰 일은 맡지 않으면서 높은 급여를 받으며 정년까지 눌러앉는 직원이 생긴다. 이들을 ‘창가족’이라고 하는데, 햇볕이 잘 드는 창가 구석 자리만 차지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높은 급여만 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의욕이 있는 젊은 직원이 봤을 때 중요한 일은 모두 자신이 하고 있는데 창가족이 높은 급여를 받는다면 정말 불합리하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 연공서열에 막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일본식 경영과는 다르게 일한 만큼 평가받는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한국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 주목받고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무한 경쟁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본식 경영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홍익대학교에 있을 때, 2015년쯤부터 2022년까지 일본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지도한 적이 있다. 지금도 나와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졸업생 10여 명은 취업에 성공해 도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중에는 이직을 해서 일본 기업 몇 군데를 경험한 졸업생도 있고, 일본에 있는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며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활약하는 졸업생도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 기업부터 이름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건실한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들 다양한 기업에서 일하며 만족스러운 일본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취업하려면 스펙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 시절을 불태우지만, 노력만으로는 바꾸기 힘든 스펙 중 하나가 학벌이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에 실패한 학생이 대학 4년간 열심히 노력해서 온갖 스펙을 쌓아도 대학 간판이나 출신 학부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인턴십이나 취업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이것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유학이나 외국 경험 등 스펙을 쌓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다양한 형태로 도전해볼 수 있는 일본 취업은 한국 학생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자칫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로 느껴지는 일본식 경영과 같은 기업 문화가 오히려 한국 학생들에게는 일본 기업에 취업하는 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대기업 지향이 강한 한국에서 중소기업에 취직한다는 것은 실패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일본에 취직하게 된다면 중소기업이어도 외국계 기업이다. 누구나 아는,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회사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기업을 고를 수 있다. 게다가 일본에는 대기업만큼의 대우를 받는 유명 중소기업도 많다. 교육을 중요시하는 일본 기업에서 3년 이상 일하면 그만큼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매너와 경험, 그리고 나름의 일하는 스킬이 충분히 몸에 밸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인데, 한국 기업은 과감하게 일을 진행하는 순발력이 있지만 개인의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반면 일본 기업은 조직으로 일하기 때문에 누가 담당자가 되더라도 일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체계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개인의 능력을 갖춘 한국의 인재가 일본 기업에서 일을 배움으로써 양쪽의 좋은 점을 익히고 발전시킨다면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과 무대는 더 커질 것이다. 물론 일본 사회나 기업,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며 많이 침체되어 있다는 염려도 존재한다. 일본은 오랫동안 평균임금이 오르지 않아 경제 발전에 있어 한국에 추월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과거 많은 일본 사람들이 “싸니까”라며 한국 관광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싸니까”라며 일본 여행을 오는 한국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 일본 기업도 일본식 경영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일본 기업에서 일하는 졸업생들에게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라고 물으면 “아직은 일본에서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일본에 취직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한국의 친구나 가족, 음식이 그리운가”라고 말하며 금방이라도 돌아갈 것 같던 졸업생은 어느새 7년이나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 거기에는 분명 일본 기업이 가진 장점 등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 ‘동조’를 요구하는 한국이나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편안함도 분명 있을 것이고, ‘헬조선’이라는 탄식까지 들었던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큰 각오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필자 주요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바로 쓸 사람 뽑는 韓, 인재로 키워주는 日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한국은 '독박 육아' …일본은 "원 오페 육아'

    한국의 출생률이 0.72까지 떨어졌다는 소식은 일본에서도 크게 보도됐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세계 선진국들의 공통적인 문제다. 일본의 출생률은 1.26으로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이라는 2.1에 턱없이 못 미치는 상황이고 개선될 기미 또한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일본에서는 최근 ‘소멸 가능성’이 있는 지자체가 일본 전국 지자체 1729곳 중 744곳으로 전체의 40% 이상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민간단체인 ‘인구전략회의’가 2020년부터 2050년까지 30년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중심 연령대인 20~39세 여성들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지자체를 ‘소멸 가능성’이 있는 지자체로 분류한 통계 분석결과다. 10년 전인 2014년에도 동일한 분석을 실시했는데, 그때 ‘소멸 가능성’ 지자체가 896곳이었기 때문에 다소 개선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소멸’이라는 강렬한 용어가 주는 충격과 함께 역시 실감되는 위기감 때문인지 일본의 저출산 문제 대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때 저출산 문제를 여성만의 문제인 것처럼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정체되는 일본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내건 슬로건의 하나로 '모든 여성이 빛나는 사회 만들기'라는 것이 있는데, 여성이 집안일이나 육아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 진출에 나설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얼핏 여성의 지위 향상을 지향하는 듯한 슬로건으로 보이지만 '여성이 빛난다'는 말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일본 사회가 정체되어 있는 것은 여성이 빛나지 않았기 때문인가, 만약 그렇다고 해도 여성이 빛나지 못하게 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애초에 여성이 빛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일본에서 유행한 말로 ‘이쿠맨(イクメン)’이라는 것도 있다. ‘이쿠지(육아)를 하는 남자(men)’라는 뜻이다. TV 등에서 어린 자녀를 둔 남자 연예인을 ‘이쿠맨’이라고 소개하는 등 육아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남성을 칭찬할 때 자주 쓰였다. 나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육아를 잘 도와줘라'는 격려(?)의 말을 들었다. '도와준다'는 말에 나는 강한 위화감을 느꼈는데, 돌이켜보니 그때 그런 말을 자주 들었던 것은 당시 ‘이쿠맨’이 인기를 끌었던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잘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참고로 한국에도 ‘육아빠’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실제로 쓰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또한 일본에서 자주 쓰이는 말로 ‘원 오페(ワンオペ)’라는 게 있다. ‘원맨 오퍼레이션(혼자 하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혼자서는 도저히 하지 못할 일들을 짊어져야 하는 가혹한 상황을 말하는 것인데 ‘원 오페 육아’라는 식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전업주부의 육아도 ‘원 오페’의 연속이지만 일하는 엄마가 되면 그 가혹함이 가중된다. 그런데 ‘원 오페 육아’ 문제는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일처럼 여겨져서 남성에게는 이 말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다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일본이나 한국이나 도토리 키재기며, 어느 쪽이 더 나은지를 겨루어봤자 의미가 없다. 남성의 육아휴직 취득률 등을 봐도 일본이나 한국이나 너무 낮아서 아직 갈 길이 멀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좌우하는 정책 결정 과정에 여성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상황은 일본과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2023년 세계 젠더갭 지수 순위를 살펴보면 한국(105위)보다 일본 순위(125위)가 낮다. 아직 일부지만 한국에서 도입된 국회의원 선거의 여성 후보 쿼터제는 일본에 아직 도입되지 않았고, 여성 국회의원 비율도 일본(10.3%, 세계 164위)보다 한국(19.1%, 세계 120위)이 높다(2023년 1월 기준). 그러나 젠더를 둘러싼 문제가 한·일 모두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고, 그것이 저출산 문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는 물론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고 젠더를 둘러싼 문제만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젊은이들 삶의 고단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한국 사회의 이런 상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88만원 세대, ‘헬조선’ ‘수저계급론’ ‘N포 세대’와 같은 말들은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제적 격차 문제나 젊은이들의 취업·생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 절망감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한국 대학에서 12년간 학생을 가르치며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사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있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학교 성적이 취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학생들은 성적에 매우 민감했다. 집에서 그냥 푹 자고 쉬면 나을 것 같은 몸살이나 감기 정도에도 굳이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갖고 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지 않으면 다른 학생과 성적 차이가 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여학생이 생리통 진단서를 제출했을 때는 사실 놀랐다. 학생들은 그런 것을 하나하나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나는 출결이나 몇 분 지각만으로 성적이 결정되는 수업이 과연 대학의 수업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출결만으로 점수 차이가 날 것 같은 성적평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출결 하나에도 필사적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한 대학 공부일까 하는 회의감을 느낀 적이 적지 않다. 본래 공부하기 위해서 다니는 학교를 ‘공부하기 위해’ 휴학한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취업을 위해서는 대학 성적에 더해 ‘스펙’이 있어야 하니 대학 공부는 제쳐두고 학원을 다니며 우선 스펙을 쌓겠다는 것이다. 대학이 취업에 관련된 공부를 제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저 ‘대졸’이라는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취업을 위해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일분일초의 지각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지만 한편 만족스러운 취업이 결정되면 당당하게 '취업이 결정돼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에 출석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말이다. 취업이 결정됐으니 당연히 졸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 분위기가 학생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좋은 곳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격해지는 입시경쟁 완화를 위해 도입된 고교 평준화 정책은 결과적으로 경제 격차와 교육 격차를 발생시켜 외고나 자율고와 같은 특목고, 심지어 일부 대안학교까지 단순한 엘리트 고등학교로 만들어버린 것 같다. 수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가혹한 입시제도에 다양성을 가져오려고 한 수시전형과 같은 선택지 또한 경제 격차에 따른 불공평감을 낳고 있다. 젊은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점점 더 치열한 경쟁 속으로 그들을 등 떠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2년 전 19년간의 한국 생활을 접고 일본에 돌아왔다. 일본에 살면서 감동을 느낀 일상의 풍경이 있다. 다름 아닌 동네 공원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평일 오후에 공원에서 축구나 캐치볼을 하면서 뛰어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도 집에 가는 길에 공원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학원에 쫓기지 않는 아이들의 일상이 여기에는 아직 존재하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도 ‘입시전쟁’이라고 불리는 가열된 대학교 입시가 논쟁거리가 됐던 때가 있었다. 최근에는 도쿄를 중심으로 중·고등학교 입시가 과열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한국과 비교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일본에서는 아직 그 경쟁을 못 본 체하겠다는 선택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입시경쟁의 가열은 어디까지나 일부며, 적어도 거기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남아 있다. 일본 학교에는 ‘부카쓰(부활동)’라는 일종의 동아리 활동 문화가 있다. 방과 후나 휴일을 이용해서 자발적으로 교내에서 활동한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자신이 좋아하는 ‘부’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이 지극히 전형적인 중·고등학생의 모습이다. 정규 교육과정이 아니어서 학교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고, 부에 소속되지 않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부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 가는 이들을 ‘귀가부’라고 따로 부르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느 한 부에 소속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다. 나도 중·고등학생 시절 축구부에 속해 연말연시나 여름방학 중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부활동을 하며 지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 있는 마지막 대회가 끝나면서 ‘은퇴’할 때까지 거의 매일 아침에 등교하면 먼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침 훈련을 하고, 오후 수업이 끝나면 바로 운동장으로 나가 역시 부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내 중·고등학교 시절 일상이었다. 나를 비롯한 축구부 학생들 누구도 프로 축구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프로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았지만 이러한 부활동은 학창 시절의 일상이었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부활동에는 여러 종목이 있다. 축구, 야구, 육상 같은 메이저 스포츠는 대부분의 학교에 있고, 지도할 수 있는 교사만 있으면 유도나 검도, 가라테 같은 무도(武道)도 있다. 취주악부나 미술부, 연극부, 사진부, 화도부 등 문화계 부활동도 있다. 학생이 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면 학생 몇 명을 모아 고문이 되어줄 교사에게 부탁해 부를 만들 수도 있다. 문부과학성(교육부)이 정하는 학습지도요령에는 '학생의 자주적·자발적인 참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부활동에 대해서는 스포츠나 문화, 과학 등에 친숙하게 하고, 학습 의욕의 향상이나 책임감, 연대감의 함양 등 학교 교육이 목표로 하는 자질·능력의 육성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일반적으로도 부활동은 교육적인 의미가 있고, 학생들의 성장에 있어 중요한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동질성이 높은 부라는 집단 속에서 일어나는 집단 괴롭힘이나 왜곡된 가치관 형성과 같은 폐해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일본의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는 그러한 부활동의 고문을 맡으면 과도한 시간 외 노동이 강요된다는 큰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일본의 ‘부활동’ 문화가 무조건 좋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 미래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극소수의 예외를 두고 일률적으로 공부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한국의 교육 환경이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한편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하는 일본 경제 정체를 경험해 온 일본의 ‘사토리(さとり) 세대’는 한국의 ‘N포 세대’와 자주 비교된다. ‘사토리 세대’는 사회의 모든 일에 대해 달관(사토리)하고 물욕도 출세욕도 없으며, 직장 생활이나 무엇보다 자신만의 생활이 중요해 연애나 결혼, 출산에도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토리 세대’를 낳은 일본의 경제 침체를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 사회가 꾸준한 경제 발전만 추구한다면 결국 혹독한 경쟁에 내몰리는 것은 젊은 세대일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상당한 예산을 들여 저출산 대책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저출산 1위 국가라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구 감소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젊은 세대가 자신의 삶에서 포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거나 꿈을 가지기보다 ‘현실적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식으로 달관하지 않아도 될 사회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아이답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필자 주요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한국은 독박 육아 …일본은 원 오페 육아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의원내각제' 일본이 한국 정치에서 배울점

    한국은 총선을 앞두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유권자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다. 한국과 일본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선거를 둘러싼 상황은 참으로 다르다. 한국에서는 국정선거의 투표일이 수요일로 정해져 있어 공휴일이 되지만 일본의 국정선거는 관례적으로 일요일을 투표일로 하고 있다. 한국에 유학하고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투표를 위해 학교나 직장이 쉰다는 것, 바로 투표하는 행위가 거국적인 이벤트라는 사실에 놀라웠다. 투표일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굳이 공휴일로 만들어도 사전투표를 마치고 투표 당일은 단순한 휴일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내 주변에는 모처럼의 일요일에 투표소에 간다는 게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고, 원래 투표일인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보통의 일요일처럼 하루를 보내 버리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투표일을 특별한 날로 인식시킨다는 면에서 한국처럼 평일의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제도로 생각된다. 투표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일본 선거에서는 투표를 할 때 지지하는 입후보자 이름이나 정당명을 자필로 투표용지에 써야 한다. 한국에서는 도장만 찍는 것과 큰 차이다. 과거 일본에서는 자필 투표 때문에 생긴 해프닝도 있었다. 2021년 국회 중의원 선거에서 한 선거구에 동명이인이 입후보했는데, 입헌민주당에서 출마한 가메이 아키코(亀井亜希子)와 무소속인 가메이 아키코(亀井彰子)다. 한자 표기는 다르지만 히라가나(발음)로는 표기가 동일하기 때문에 어느 쪽 득표인지 판단이 어려운 투표용지가 속출할 우려가 발생했다. 이때 양자의 기타 득표율에 따라 모호한 투표를 분배하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명확하게 누구에게 투표한 것인지 알 수만 있다면 후보자에 대해 한자 표기든 히라가나 표기든 혹은 성씨만 표기하든 상관없다. 단, 해석이 불가한 표기나 불필요한 말이 적힌 투표용지는 어느 후보자의 득표도 되지 않아 무효표가 된다. 자필 투표라는 제도는 결과적으로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사람은 물론 신체상 이유로 글자를 쓰지 못하거나 쓰기 어려운 이들에게 권리행사의 문턱을 높이고 만다. 한국처럼 투표했다는 표시로 도장을 보여주는 ‘인증샷’도 불가능하다. 원래 한·일의 정치제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은 대통령제인 반면 일본은 의원내각제다. 그런 것쯤은 상식으로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막상 한국의 여론을 보면 일본 총리가 교체되면 일본의 방향성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지나치게 기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물론 지난 아베 정권과 같은 장기집권 후의 총리 교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고, 사실 아베 정권 이전과 아베 정권 이후의 일본 정치가 크게 다르다는 분석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대통령이 교체되는 것과 같은 극적인 변화가 일본의 총리 교체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의원내각제에서 총리(내각총리대신)는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이 아니다. 이름 그대로 내각을 대표하는 대신(장관)에 불과한 것으로, 국회의 지명에 의해 그 자리를 맡는다. 그리고 총리에 의해 조직되는 내각은 국회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물론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는 '국권 최고기관'이므로 그 국회가 뽑은 총리가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다만, 역시 유권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리행사로 대통령을 직접 뽑는 한국과 그렇지 않은 일본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한편 한국 대통령은 비교적 여론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국정 운영에 임할 수 있다. 현행 제도상 대통령의 탄핵과 같은 일이 없는 한 임기 5년을 보장받는다. 아무리 여론의 뭇매를 맞는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을 테니 과감한 개혁도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 총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애초에 총리직은 법적으로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의원이 해산되고 새롭게 중의원의 구성원(의원)이 정해져 국회가 소집되면 새로운 총리로 교체할지 혹은 지금의 총리 체제로 갈지 결정된다. 국회의 다수결로 총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여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즉, 유권자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통해 총리를 간접적으로 뽑는 셈이지만 유권자가 그것을 실감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일본 국회는 양원제로 중의원과 참의원이 있다. 중의원 의원은 265명이고 임기가 4년이지만 여론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해산되고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 한편 참의원 의원은 248명이고 임기가 6년이며 해산이 없다. 그 절반은 3년마다 선거를 통해 바뀐다. 중의원이 심의한 법안에 대해 해산이 없는 안정적인 참의원이 체크하도록 되어 있어 신중한 법안 심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다. 눈앞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시야를 가진 국회 심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취지다. 다만, 중의원은 언제든지 해산될 가능성이 있어 언제 유권자의 심판을 받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총리의 입장이라는 것도 사실 불안정하며, 한국 대통령제에 비해 일본 의원내각제는 여론의 동향이 반영되기 쉬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후반에는 거의 1년에 1명꼴로 총리가 교체됐고, 거슬러 올라가면 2개월 만에 퇴임한 총리도 있었다. 물론 제도상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가의 자질 문제나 자유민주당(자민당)의 장기집권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따른 폐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일본에서도 장기집권을 자랑한 총리가 바로 아베 신조였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이루어졌을 무렵 일본에서는 ‘모리카케 문제’가 큰 화제였다. 학교법인 모리토모(森友)학원이 2016년 국유지를 파격적인 가격에 매입했고, 그 과정에 아베 총리 부부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또 아베 총리와 사적으로 친한 관계였던 가케(加計)학원 그룹이 관련 대학에 신설 학부를 설치하는 데 부당한 우대를 받은 혐의도 비슷한 시기에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의혹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한국의 최순실 게이트에 버금가는 대스캔들이었다. ‘모리카케 문제’는 국회에서 오랜 시간 논의되었고, 문서 조작이나 정보 은폐가 의심되는 정황까지 밝혀졌다.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실무직 공무원이 자살로 내몰리는 상황까지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결국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여론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거나 적어도 의문에 대해 결백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그 스캔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것 같다. 결국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채 당시 아베 정권은 연명했을 뿐 아니라 이후 2020년까지 집권하며 장기집권 기록을 경신했다. 아베 정권은 2019년에도 ‘벚꽃 스캔들’이라고 불리는, 역시 자신의 지지자를 위해서 공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그 당시부터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자민당 내 정치자금 유용 문제는 2024년 현재 큰 문제가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2017년에 있었던 정치비리 의혹만큼이나 유권자의 불신을 키우는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으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그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의원내각제가 나라의 지도자를 직접 뽑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투표를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무력감이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이나 저조한 투표율 등은 한국에서도 지적되고 있지만 일본의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로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원래 정치를 자신과는 먼 일로 생각하는 감각이 뿌리 깊다. 일본어로 '오카미(お上)'라는 말이 있는데, 위정자나 정부를 '윗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정치는 윗사람이 해 '주는' 것이고, 스스로 바꿔가는 것이라는 의식이 희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교 교육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부터 만 18세 이상이 선거권을 갖게 되었는데, 한편으로 학교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며 교내에서는 정치적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교외에서 선거운동에 참여할 때는 사전신고를 요구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일본 사회다. 예부터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해온 일본에서는 대립을 낳는 주장은 삼가는 것이 마치 미덕처럼 인식된다. 정치뿐만 아니라 자기 주장을 숨기는 경향이 강한 사회에서는 좀처럼 투표라고 하는 정치 참가를 스스로의 권리로 행사한다는 인식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어른들 세계에 이르러서는 주의·주장을 밝히고 ‘화합’을 깨는 언행은 어른답지 않기에 피해야 한다는 규범이 일본 사회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애당초 정치 이야기는 어렵다, 귀찮다, 나와는 관계없다, 어차피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등 냉소적 태도를 낳는 분위기마저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란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는 일이었고, 정치 참여가 자신의 권리와 자유에 직결돼 있다는 사회적 경험이 존재한다. 반면 패전 후 일본에서는 그러한 사회적 성공 체험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큰 차이로 여겨진다. 이번 한국 총선 투표일은 4월 10일이지만 이미 재외국민투표는 3월 27일부터 시작되었다. 시차 관계로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있는 한국대사관과 오클랜드 총영사관에서 시작한 뒤 세계 115개 국가와 지역에 있는 220개 투표소에서 4월 1일까지 실시된다고 한다. 이렇게 해외 거주 유권자가 투표할 수 있는 재외선거제도도 일본에서는 1998년 도입된 것에 비해 한국에 도입된 시기는 2012년(2009년 법 개정)이었다. 일본 사회에서 지방참정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있던 재일코리안 이건우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끝에 쟁취한 권리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 결과로 일본에 정착하게 된 한반도 출신자들의 후손에게 특별영주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재일코리안들에게 지방참정권이라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2005년부터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런 재일코리안들이 모국의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 2012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표라는 것을 했다고 기뻐하며 흥분하는 재일코리안 친구들을 목격하고 내가 당연하게 누려온 참정권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경험이 있다. 곧 결과가 나올 한국의 총선에서 사회적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기존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나는 유학 당시 한국 친구들에게 “왜 한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느냐. 한국 정치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는 말을 듣곤 했는데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쟁취해 온 사회에서 일본 사회가 배워야 할 것은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 주요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의원내각제 일본이 한국 정치에서 배울점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추모비 해체가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

    지난 2월 2일 군마(群馬)현 다카사키(高崎)시에 있는 현립공원 ‘군마의 숲’의 조선인(한인) 추모비가 강제 철거됐다. 추모비를 관리하는 시민단체와 추모비 철거를 요구하는 군마현 간에 법정 다툼이 계속되어 왔지만 군마현이 지난 1월 29일부터 ‘강제 대집행’이라는 조치로 철거를 강행한 것이다. 이 추모비는 일본강점기에 한반도에서 끌려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2004년 세워졌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을 부정하는 우익 단체들이 이 추모비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우익 단체들은 매년 거행된 추도식을 보도한 과거 신문기사 등을 조사해 “조선인들이··· 전쟁 중 강제로 끌려왔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발언 등을 두고 “반일(反日)적이다” “거짓 사실이 회자되고 있다”고 문제시하며 추모비 철거를 요구했다. 군마현은 이러한 우익 단체 주장을 받아들여 추모비를 철거한 것이다. 물론 군마현이 공식적으로 우익 단체 주장을 인정하는 입장은 아니다.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군마현 지사는 “역사를 수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비문이나 설치 취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설치할 때 정한 규칙을 어긴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추모비가 설치되었을 때 협의한 문서에 '종교상 목적 및 정치상 목적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는데 추모행사 등에서 시민들 발언이 '정치적'이며 당초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다. 2014년 군마현이 10년 단위로 허용되던 추모비 설치 허가 연장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리자 이에 추모비를 관리하던 시민단체가 불허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마에바시(前橋) 지방법원에서는 추모비 설치 연장 불허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2021년 도쿄(東京) 고등법원에서는 군마현 측 주장이 인정되어 추모비 설치 연장 불허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결국 2022년 대법원은 “행사에서 ‘강제연행’이라는 문구를 포함한 정치적 발언이 있었고, 추모비는 중립적 성격을 잃었다”고 판단하며 시민단체 측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야마모토 군마현 지사는 “공익에 반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여기까지가 한계”라며 추모비 철거를 강행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에 자주 과잉 반응을 보인다. 물론 무엇이 '강제'적이고 무엇이 '연행'인가 하는 용어의 정의가 모호하게 쓰일 때도 적지 않다. 역사 용어로서 뜻하는 바와 일반 사회에서 이해하는 데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적지 않은 조선인들이 식민지배하에서 입은 피해가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며, 그 사실은 지금까지 많은 전문가와 연구자, 시민들에 의해서 밝혀져 왔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역사수정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군마현 내에는 과거 다수의 광산과 군수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과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끌려왔다고 한다. 공식 통계기록이 확인되지는 않으나, 시민단체 조사에 의하면 현내 10여 곳에 약 4600명의 조선인이 끌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현내 지하수로 공사를 맡은 기업의 사사(社史)에는 600여 명의 중국인과 1000여 명의 조선인이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군마현 의회도 조선인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2001년 6월 만장일치로 추모비 설치를 허용했을 것이다. 원래 조선인 강제노동 실태 조사를 진행하던 시민들은 공식 기록이 남아 있지 않거나 생존자도 적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를 역사로 기록해 후세에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노역을 당한 조선인들의 고통을 애도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추모비 건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만약 추모비를 세운다면 그 피해가 국가 정책에 의해 이루어진 이상 공유지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현립공원인 ‘군마의 숲’을 선택했다. 이 ‘군마의 숲’은 일본 육군의 화약제조소가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1990년대는 일본에서 '증언의 시대'라고도 불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해 일본의 식민지배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무렵이고, 위안부 피해에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1992년)에 이어 무라야마(村山) 담화(1995년)가 발표되어 과거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그 책임을 어떻게 완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일본 사회가 과거사에 대해 가장 깊이 고민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당시 추모비 설치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설치를 앞두고 군마현은 일본 외교부와도 협의해 비문 초안에 있던 '강제 연행'이라는 용어를 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이어진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비문에서 '강제 연행'이라는 표현을 '노무 동원'으로 바꾸면서 군마현 공공시설 내에 추모비를 설치하는 것에 간신히 성공했다. 그래도 추모비 설치는 군마현과 시민들, 그리고 일본 정부까지도 인정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2004년 추모비 제막식에는 많은 시민들과 함께 군마현 당시 지사와 자민당 군마현 간부 등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가 '증언의 시대'이자 일본 사회가 식민지배 책임에 대한 논의를 가장 심화시킨 시기였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걸친 일본 사회는 '백래시(backlash·반동)의 시대'이자 '역사수정주의 대두의 시대'였다. 과거사를 직시하는 것은 '자학사관'이라고 조롱받게 되었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역사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역사교과서 운동이 확산되었다. 그 결과 1990년대에 중학교 검정 역사교과서 모두에서 언급하게 된 위안부 문제는 다시 모든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북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관심이 2010년대에 걸쳐 재일코리안을 향한 헤이트 크라임(hate crime·증오범죄), 그리고 혐한(嫌韓) 붐으로 이어졌다. 버블 경제 붕괴로 인해 '잃어버린 10년, 20년, 그리고 30년'으로 일본 사회가 정체의 시기로 치달았을 무렵의 일이다. 북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계기로 정치인으로서 영향력을 키워 간 것이 아베 신조(安倍晋三)였고, 역사수정주의의 대두를 배경으로 세력을 넓힌 것이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우파 정치인들이었다. 그러한 정치인들이 1990년대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무라야마 담화 등을 통해 보여준 식민지배 책임에 대한 반성의 자세를 약화시키려는 사회 분위기가 당시를 지배하고 있었다. 군마현 추모비를 둘러싼 백래시가 시작된 2012년은 2차 아베 정권 출범 무렵이었다. “추모비 내용은 엉터리다”라는 등 항의가 군마현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2012~2014년에 400건 이상 관련 민원이 들어왔다는 보도도 있다. 추모비 철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군마의 숲’을 찾아가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군마현은 “추모비는 존재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시위, 항의 활동 등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어 도시공원에 있어야 할 시설로 적합하지 않게 됐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은 군마현에 의한 추모비 설치 연장 불허 처분을 '적법'하다고 한 것일 뿐 '추모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철거 결정은 군마현의 판단이다. 야마모토 군마현 지사는 추모비에 대해 현저하게 공익에 반한다면서 그 이유는 약속 위반이지 역사인식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수정주의 입장을 조장하게 될 결단을 내린 것이 사실이다. 2019년 군마현 지사에 취임한 야마모토는 자민당 전직 국회의원으로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고, 2차 아베 내각에서 각료를 지내는 등 요직에 있었던 정치인이다. 과거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놓고 “강제 연행을 보여줄 증거는 없었다”고 발언함으로써 마치 위안부 피해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일본 여론에 영향을 준 과거가 떠오른다. 군마현 추모비 철거 사건에 대해 자민당 국회의원 스기타 미오(杉田水脈)는 본인 SNS에 “정말 다행이에요. 일본 내에 있는 위안부와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에 대한 추모비나 동상도 이를 따랐으면 좋겠어요. 거짓 기념물은 일본에 필요 없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스기타는 자민당 아베파 의원으로 지금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비자금 문제로도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 이전부터 거듭되는 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온 정치인이다. 인터넷상에 아이누 민족이나 재일코리안을 조롱하는 글을 올려 비판을 받았고, 일본 법무부에서 '인권 침해'로 경고를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자민당은 여전히 그를 중용하고, 야마모토 군마현 지사도 그의 발언을 두고 “개인으로서 신조”라며 비판하지 않았다. 과거부터 군마현과 비슷한 사례가 일본 각지에 있었고, 앞으로 그 영향 또한 우려된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라(奈良) 덴리(天理)시 공원에 설치되어 있던 구 일본해군 항공대 기지 야나기모토(柳本) 비행장터 안내판의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동원이나 강제 연행으로 끌려와 힘든 노동 상황 속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기술이 문제시되어 결국 덴리시는 그 안내판을 2014년에 철거했다. 또 나가노(長野) 마쓰시로 조잔(松代象山) 지하호의 안내판에 적힌 '총 300만명의 주민들과 조선인들이 노동자로서 강제적으로 동원'이라는 문구 역시 문제시되었고, 나가노시는 2013년 '강제적으로'라는 글자를 흰 테이프로 가린 뒤 2014년 '꼭 모든 경우가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문구를 추가한 안내판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는 간토(関東)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에 추모문을 보내지 않는 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매년 9월 1일 도쿄도 위령당이 있는 요코아미초(横網町) 공원에서 추모 행사가 개최되는데, 역대 도쿄도 지사가 추모문을 보내던 것을 고이케 지사가 2017년 취임 이후 줄곧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분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있다”고 고이케 지사는 설명하지만 간토대지진 희생자를 모두 똑같이 취급함으로써 학살의 사실에서는 눈을 돌리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 특히 정치인의 발언이나 태도는 사회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도쿄도에서 작년 ‘도쿄도 인권 플라자’ 기획전에서 상영 예정이던 영상 작품에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언급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안 도쿄도 담당 부서는 “기획전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상영을 거절했다. 도쿄도 담당 직원이 고이케 도지사의 정치적 입장을 이유로 상영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는 사실도 나중에 밝혀졌다. 한편 후쿠오카(福岡)현 이즈카(飯塚)시는 탄광으로 번창한 지역으로 그곳에는 시가 운영하는 이즈카영원(飯塚霊園)이라는 공동묘지가 있고, 조선인 추모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영원 부지 내 ‘국제교류광장’에 ‘무궁화당’이라는 납골당이 2000년 12월에 설치되었다. 추모시설 설치를 요구하는 시민과 이즈카시가 약 5년간 수십 차례에 걸친 협의 끝에 부지 일부를 무상으로 빌려주기로 합의하며 성사되었다. 무궁화당 앞에는 '수많은 조선인과 외국인이 일본 각지로 강제 연행되었습니다'라고 적힌 비문이 있고, 무궁화당 주위에는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보여주는 역사 패널도 설치되어 있다. 이 시설도 2015년 우파 정치단체인 ‘일본회의’ 회원과 일부 주민들이 문제 삼았지만 시설을 건립한 시민단체와 이즈카시 간에는 지속적인 협의가 이루어져 지금까지 추모비 철거나 수정 등은 검토되지 않고 있다. 매년 가을에는 추모식도 열린다. 군마현 추모비는 포크레인 등 중장비로 흔적도 없이 분쇄돼 철거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역사적 사실까지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도 그렇듯 역사의 평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일한 사실(史實)은 존재한다. 추모비를 철거한다고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 우리 시민은 일본이나 한국/조선, 그리고 보수와 진보에 관계없이 사실을 기억하고 그것을 이어감으로써 역사수정주의에 저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모비에는 일본어와 함께 한글과 영어로 크게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과거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엄청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기억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고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다지고자 이곳에 노무 동원으로 인한 조선인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하기 위해 이 비를 건립한다. 이 비석에 담긴 우리의 마음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더한 아시아의 평화와 우호의 발전을 바라는 바이다.'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추모비 해체가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