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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9 SAT
브랜드칼럼
안치용 소장
안치용 소장 carmine.draco@gmail.com
  • -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 前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 [안치용의 비욘드 ESG]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와 '사료화'의 그늘

    미국 뉴욕시가 4월 1일부터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구분하여 배출하지 않으면 최대 3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한국식 모델에 주목해 분리수거 조례를 도입한 후 계도 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에 나섰다. ‘음식물 쓰레기 대국’으로 통하는 미국에서 매립장이나 메탄 등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문제가 심화하자 분리수거 의무화를 시작했다. 앞서 캘리포니아가 2022년부터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을 시행하고 있다. 분리 배출한 음식물 쓰레기로 뉴욕시는 퇴비화를 하고 있다. 2022년 10월 퀸즈를 시작으로 뉴욕 전역으로 확대했다. 뉴욕시는 퇴비화가 시의 대표적 현안인 쥐 퇴치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통상 음식물 쓰레기의 약 3분의1은 퇴비로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분해 속도가 빨라 매립지의 다른 물질보다 대기 중으로 메탄을 더 많이 배출한다. 미국에서는 폐기물 매립지에서 대기로 방출되는 메탄의 약 58%가 음식물 쓰레기에서 비롯한다. 대기 중 수명이 이산화탄소보다 짧지만, 메탄은 20년 동안 이산화탄소보다 80배 이상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친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은 대표적인 온실가스다. 인간을 위해 생산된 식량의 약 3분의 1이 전 세계적으로 손실되거나 낭비되며, 연간 13억 톤에 달한다. 식량 손실과 낭비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세계 배출량의 8~10%로, 항공 부문 배출량의 약 5배에 해당한다. ■한국은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 선진국=쓰레기를 돈 주고 버리는 제도가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나라는 한국이다. 지난해 지구의 날(4월 22일)을 맞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영국 기자 올리버 프랭클린-월리스의 <웨이스트랜드>에서도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와 퇴비화를 호평했을 정도로 한국은 이 분야 선진국이다. 한국도 과거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다른 쓰레기와 함께 버렸다. 음식물 쓰레기 매립을 금지한 기간이 20년에 불과하다. 서울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물은 지금은 공원으로 바뀐 난지도에 묻혀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한국처럼 철저하게 분리해서 수거하는 나라는 없다. 분리수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수거한 음식물 쓰레기의 95%를 재활용한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여전히 음식물을 구분하지 않고 배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쓰레기 처리에서 골칫거리다. 이 유기물 폐기물은 수분을 많이 포함해 태우기에 부적절하고 매립하기엔 위생 문제가 따른다. 또한 다른 폐기물과 섞이면 악취와 수분, 벌레에 오염되어 처리와 재활용을 어렵게 만든다. 결국 분리수거가 답이긴 한데, 행정력 등 추가적인 비용이 생겨 살펴보았듯 미국에서도 얼마 전에야 시작했다. 우리나라만큼이나 깨끗한 이웃 나라 일본도 음식물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에 섞어 배출하고 대부분 소각처리한다. 수분이 약 80%를 차지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불에 태우는 건 비효율적이지만 그럼에도 일본이 소각을 택한 건 그만큼 이 문제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일본에서 음식물 쓰레기는 타는 쓰레기의 한 종류이다. 일본은 폐기물 처리를 소각에 의지하는데 대략 80% 소각, 재활용은 20%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소각장을 많이 지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 소각장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퇴비화의 그늘=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가스 효과가 강력해 별도의 저감 방법을 다각도로 연구 중인 온실가스다. 친환경적인 음식물 재활용 방법으로 알려진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에서 메탄이 많이 나온다는 분석이 있다. 지난해 6월 발표된 <묻어도 새어 나오는 메탄, 음식물 쓰레기: 음식물폐기물 처리 방법별 메탄배출계수 및 메탄회수계수 산정 결과를 중심으로> 보고서는 음식물류 폐기물의 처리 방법별 메탄 발생량을 국내 최초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퇴비화, 바이오가스화, 소각, 매립 등의 처리 방법 가운데 퇴비화에서 나오는 메탄이 전체 음식물 처리 방법 중 54%를 차지했다. 음식물류 폐기물의 처리 방법 중 가장 많은 음식 쓰레기를 처리한 방법은 사료화로, 약 50%를 차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메탄 배출량 통계에도 적용되는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료화는 분석에서 뺐다. 이론적으로 이 방법에선 메탄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퇴비화, 바이오가스화, 소각, 매립 중 퇴비화에서 절반 이상의 메탄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퇴비화의 심각한 문제점은 아니다. 음식물 폐기물 1톤당 발생하는 메탄 발생량(kg)을 나타내는 메탄배출계수는 매립이 25.71로 가장 높았다. 반면 퇴비화는 4, 바이오가스화는 1이었다. 퇴비화 자체가 매립에 비해 훨씬 친환경적이란 얘기다. 메탄배출계수가 1로 나온 바이오가스화는 발생하는 메탄을 줄이고 가용한 메탄을 회수하기에 순배출이 실제로는 마이너스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처리시설을 기준으로 사료화한 음식물류 폐기물은 37.3%, 퇴비화는 49.8%가 실제로 사용됐고, 이마저도 대부분 무상으로 제공됐다.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한 퇴비를 무상으로 받은 농가에서 실제로 얼마나 사용하는지도 알 수 없다. 사료화/퇴비화 공정 자체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대규모 시설에 에너지를 쏟아부어 음식물 쓰레기를 찌고 말려 이틀 내에 사료로 만든다. 겨울엔 얼어붙은 음식물 쓰레기를 뜨거운 물로 녹이고, 여름엔 기계에 낀 동물 사체, 골프공, 숟가락 등 이물질을 끄집어낸다. 사람이 한다. 이렇게 전기와 인력을 쏟아부어 만든 사료 중 일부를 국내에 쓸 곳이 부족하다 보니 아프리카나 베트남의 양계장으로 보낸다. 운송과정에서 비용과 온실가스가 추가로 발생한다. 퇴비화와 사료화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수급을 고려하지 않고 성과 위주로 빨리빨리에만 집중한 게 문제라는 얘기다. 국가에서 실태를 파악하고 수요를 발굴해서 바이오가스ㆍ퇴비ㆍ사료화의 적정 배분 비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무작정 만들고 남으면 해외에 퍼주는 방식은 곤란하다. ■느린 방식=소각이 대세인 일본에서 일본 가고시마 오사키정은 쓰레기 제로 정책을 펼쳐 주목을 받고 있다. 정책 방향은 소각장을 짓는 대신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이었다. 분리배출을 통해 모든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고, 세계 최초로 일회용 기저귀를 재생펄프로 만들어 기저귀 원료로 재투입한다. 재활용률 20%의 일본에서 20년째 재활용률 80% 이상을 자랑하는 이 지자체는 이런 방식으로 소각장을 새로 건설하지 않았고 매립지 수명을 50년 가까이 늘렸다.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가 우리처럼 속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무 잔가지, 낙엽 등과 섞어 6개월에 걸쳐 발효한다. 퇴비와 퇴비로 키운 농산물을 판매하고 학교 급식에 사용하는 등 판매처와 순환구조를 확보한 게 장점이다. 수익은 주민과 공유한다. 이런 모델이 성공한 데는 마을 주민이 29종이나 되는 세세한 분리배출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의 오오키정에서는 하루에 나오는 4톤가량의 음식물 쓰레기로 메탄가스를 만들어 700Kwh의 전기를 생산한다.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의 운영비는 소각장 운영비의 20%에 불과하다. 바이오가스화는 미국 캘리포니아 등에서도 적극 추진 중이다. ■더 느리고 낭만적인?=2015년 부활절 무렵, 프랑스의 콜마르 마을은 주민들에게 처음으로 닭을 무료로 나눠주었다.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이 마을의 쓰레기 수거 부서에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를 목적으로 실험적인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길베르 메이예르 시장은 2014년에 주민에게 닭을 ‘입양’하도록 장려하는 ‘한 가족, 암탉 한 마리’라는 슬로건으로 재선되어 다음 해에 두 곳의 닭 농장과 협력하여 사업에 착수하였다. 주민이 닭을 키우는 데 들인 노력은 공짜 계란으로 금세 보상받게 된다. 4개 지자체의 200여 가구가 닭 두 마리씩을 받았다. 각 가구는 닭을 키우는 데 적정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했고, 담당 공무원이 언제든 동물 복지를 점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용했다. 닭장이 제공되지 않아 주민이 직접 짓거나 구매했다. 닭은 받은 가구는 닭이 활동할 8~10㎡의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수년에 걸쳐 다른 (하위)지자체가 가입했고 2022년 이후로 이 지역 20개 지자체 모두 참여했다.”라고 콜마르 행정 당국은 밝혔다. 지금까지 5,000마리가 넘는 암탉이 지역 주민들에게 분배되었고, 6월엔 다음 ‘입양’이 예정돼 있다. 주민은 닭에게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먹여 이것이 매립지로 가는 것을 막았고 더불어 공짜로 계란을 얻었다. 암탉의 평균 수명이 4년이고 하루에 150g의 유기 폐기물을 섭취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2015년 이후로 273.35톤의 음식 폐기물을 줄인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에서는 조류독감 확산 우려로 닭에게 부엌 쓰레기를 먹이지 말라는 권고를 받지만, 프랑스 벨기에 등 세계 많은 지역에서는 이런 식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계란을 얻는다. 음식물 낭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닭은 전통적인 순환 경제 관행을 촉진한다. 인간의 음식 쓰레기를 먹는 닭을 키움으로써 아동에게 동물과 자연 세계 보호의 중요성을 가르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벨기에에서는 닭을 나눠주며 주민으로부터 최소 2년 닭을 잡아먹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다. 벨기에 림뷔르흐주에서만 2,500가구 이상이 암탉을 입양했다. 닭을 키울 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주민에게 닭과 함께 키우는 방법에 관한 기본 지침이 제공된다. 그러나 이 방식은 조류독감 외에도 공간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인에게, 특히 가난한 사람에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닭을 돌보는 데 필요한 사료, 물, 주택, 공간, 자유 시간 등이 저소득층에게 없다. 이 모든 비용을 고려했을 때 계란은 ‘공짜’가 아니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얘기다. 물론 키우면서 얻은 계란이 더 건강하고 맛있기는 하다. 일부 연구자들은 퇴비화가 오히려 음식물 낭비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본다. 분리배출과 퇴비화가 음식물 낭비에 관한 면책 심리를 조장한다는 뜻이다. 가정에 식재료가 도달하기 전 생산단계에서도 많은 식품이 버려진다. 모양 등이 유통과 판매에 적합하지 않아서 부엌에도 가보지 못하고 쓰레기가 된다. 그러므로 구매하고 조리하고 먹고 버리는 사람이 낭비를 줄여야 한다고들 강조한다. 하지만 대규모 생산과 대규모 소비를 겨냥한 포디즘은 아직도 작동하며 각성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자본주의 기업들이 만들어낸 난제를 풀 수 없음이 자명하다. 음식물 낭비와 쓰레기 문제에는 개인보다는 기업에서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 또한 어차피 각성한 개인의 숫자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기도 한 게 현실이다. 식품 생산과 유통, 음식쓰레기 배출과 재활용 전반에 걸쳐 사회나 국가가 각성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방법이 거의 나와 있기에 과학적으로 검토하고 실용적으로 적용해서 끈기 있게 진행하면 된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안치용의 비욘드 ESG]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와 사료화의 그늘
  • [안치용의 비욘드 ESG] 달콤하지만 사악한 초콜릿…요동치는 세계 카카오 시장

    초콜릿은 달콤하지만 사악한 식품이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광활한 토지가 필요하기에 열대우림의 벌목으로 이어져 지구온난화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카카오나무를 키우는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아동 노동이 동원되기에 초콜릿 산업은 가장 악명 높은 아동 노동 착취 산업으로 비난받는다. 커피 등과 함께 가장 세계화한 식품이기도 하다. 초콜릿의 세계화 기제는 훨씬 압축적이다. ‘코코아의 나라’로 불리는 서아프리카의 빈국 코트디부아르와 가나가 전 세계에 공급되는 카카오의 60% 이상을 생산한다. 유럽과 북미에서 전 세계에서 생산된 카카오의 4분의 3가량을 먹어 치우고,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를 포함한 아프리카에서 그 정도를 생산하니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생산과 수탈 구조가 반복되는 느낌이다. 초콜릿과 커피 카카오는 적도의 열대우림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강수량이 너무 적으면 말라버리고 너무 많아도 썩어버린다. 해발고도 300m 이하에서 자라기에 고산지대에서 잘 자라는 커피와는 생육지를 두고 경합하지 않는다. 정글에서 자라는 작물답게 경쟁자를 없애려고 자라는 땅에 독을 내뿜는다.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 연중 비가 일정하고 많이 내려야 누적된 토양 독성을 제거할 수 있다. 원산지는 남미로 유럽에 전해진 최초의 기록은 대항해시대의 정점인 15세기 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네 번째 아메리카로 항해를 마치고 현재의 멕시코 유카탄반도 연안에서 카카오콩을 가지고 돌아가면서이다. 알다시피 가공하지 않은 자체 맛은 '타이어 씹는 맛'과 비슷하기에 처음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점차 카카오 활용법이 개발되며 17세기 중반에는 귀족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퍼졌다. 커피와 담배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설탕을 타서 마시기 시작하였고 초콜릿 하우스가 생겨났다. 지금과 같은 초콜릿의 등장은 1828년 네덜란드의 판 후텐이 카카오매스를 압착해 지방을 추출하여 카카오버터를 만들면서 가능해졌다. 이 제조 기술이 유럽 각지로 전파돼 1876년 스위스의 다니엘 페터와 앙리 네슬레가 오늘날 밀크 초콜릿으로 불리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밀크 초콜릿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페터였고, 이유식 제조자이자 연유 발명가 중 한 사람인 네슬레의 도움으로 실현하게 된다. 네슬레사의 출발점이다. 스위스 사람이 전 세계에서 가장 초콜릿을 많이 먹는 이유에 이런 역사 또한 작용하지 싶다. 제국주의 시대의 본격화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이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단작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카카오를 대량 재배하면서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과 미국에서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한 페레로, 허쉬 같은 기업이 등장하며 초콜릿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카카오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이고 실제 1980년대까지 남미가 주요 생산지역의 하나였지만 이제 아프리카로 생산의 주도권이 넘어갔다. 브라질 등에서 병충해로 카카오 생산이 급감한 반면 생육조건상 카카오가 서아프리카에서 더 잘 자랐기에 지금은 카카오가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를 대표하는 작물이 됐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커피가 남미로 넘어가 그곳의 주력 농산물이 된 것과 비슷하지만 경로를 반대로 걸은 셈이다. 커피보다 활용법이 복잡하고 전통 작물이 아니어서 서아프리카에서 카카오를 키우는 농부와 농장 노동자의 다수는 초콜릿이 어떤 맛인지, 카카오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모른다는 후문이다. 50년 만에 최고 가격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의 주요 거래 시장인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카카오 재고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세계 카카오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ICE)의 런던 시장에서 카카오 재고는 1년 전만 해도 10만톤을 넘었지만 최근 몇 달은 2만1000톤 수준으로 급감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지금까지 본 것 중 최저 수준”이라며 당황해하고 있다. 재고 감소는 생산량 감소 때문이다. 최근 2년 서아프리카에서 기록적인 폭우와 가뭄이 번갈아 나타나는 기상 이변이 나타났고 병충해까지 번지며 카카오농장이 큰 타격을 받았다. 기후학자들은 지난 15년간 서아프리카 몬순 시스템이 매우 활발하게 변동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기상 이변이 더 자주 더 심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수매 가격을 고정한 정책 때문에 일부 농가에서는 아예 재배를 포기하고 있다. 카카오 생산량을 늘리고 농가 소득을 유지하려면 비료살포 등 생산여건 개선 지원과 수매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세계화에 연결된 복잡한 시장체계는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에 비효율적이다. 공급량이 줄면서 가격은 폭등했다. 주산지인 코트디부아르, 가나 등의 흉작으로 2023년 대비 카카오 가격이 3배 상승했고, 지난해 12월엔 5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최근에는 가격이 고점 대비 약 20% 하락했으나 물량 확보 문제는 여전하다. 초콜릿 제조업계는 국제 카카오 가격 상승으로 원가 압박에 시달리면서 재고까지 감소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원가 상승분을 반영해 상품 가격에 반영하거나 초콜릿 제품 용량을 줄이고 카카오 함량을 낮추는 게 현실적인 대응이다. 실제로 지난 밸런타인데이 기간에 미국의 초콜릿 소매가격은 전년 대비 최대 20% 상승했다. 유럽에선 달러 강세의 영향까지 겹치면서 지난해에만 평균 11% 넘게 올랐다. 변동성이 큰 장이 형성되자 투기 세력이 뛰어들어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초콜릿 시장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은 2020년 네슬레와 허쉬 등 글로벌 초콜릿 기업들은 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에서 벌어진 아동 노동 착취를 묵인한 혐의로 집단 소송을 당했다. 집단 소송에 참여한 원고 8명은 서아프리카 말리 국적자로 16세 미만인 어린 나이에 인신매매범에게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글로벌 기업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아동의 불법적 노예 노동을 방조했다고 비난했다. 정상적으로 성인을 고용해 일을 시키는 것에 비해 안전장비를 채우지 않은 아동을 불법 노동에 투입하는 게 농가에 이익이고, 낮은 공급가가 유지되기에 글로벌기업에도 이익이어서 불법에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다. 확인된 것만 2013~2017년 가나의 카카오 농장에서 어린이 1만4000여 명이 강제 노동을 당했다. 모두 노예 노동인 것은 아니다. 작업 환경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다 가난에 시달리는 부모가 농장주에게 자녀를 넘기기도 한다. 어떤 아동들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현혹돼 자진해 카카오 농장으로 갔다. 장시간의 위험한 노동을 시키고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도 했다. 이러한 속임수 외에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아이들을 납치해 카카오 농장에 파는 인신매매조직도 활동하고 있다. 2023년엔 미국의 대형 식품기업 카길을 상대로 아동 노동 착취 혐의로 워싱턴DC 고등법원에 소송이 제기됐다. 가나 코코아 농장에서 일하는 어린이들이 원고로, 그중엔 5세 미만인 어린이가 포함됐다. 국제 인권변호사들이 그들을 돕고 있다. 카카오 농장에서 아동 노동자는 하루에 최대 14시간 일한다. 전기톱으로 농장 안의 숲을 정돈하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 칼로 작업을 한다. 아동 노동 감시 단체들에 따르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미성년자 중 90%가량이 위험한 작업에 내몰렸다. 아동이 농약에 노출되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보호복을 입지 않은 채 방제를 위해 열매 꼬투리에 농약을 뿌린다. 2018년 조사에서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장에서 농약에 노출된 어린이 비중은 10년 전 15%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한 50%로 나타났다. 일부 아동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얻어맞고, 일과를 끝내고 창문조차 없는 건물의 나무판자 위에서 잠을 잤다. 당연히 깨끗한 물이나 위생적인 욕실은 제공되지 않았다.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예 노동이 국제적인 관심사가 된 지는 오래다. 2021년에 체결된 하킨-엥겔 협약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미국 민주당 엘리엇 엥겔 하원의원, 톰 하킨 상원의원과 초콜릿 산업의 8개 대기업 대표 등이 서명한 이 협약은 서아프리카에서 아동 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금지 및 즉각적인 조치에 관한 지침이다. 2002년에는 협약에 따라 비영리단체인 국제코코아재단이 출범해 협약 내용을 구체화하는 책임을 맡았다. 협약이 체결되고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이나 유럽 내에서 일어난 아동 노동이었다면 즉각 개선책이 마련되고 관련자가 감옥에 갔겠지만 대서양과 지중해 건너 서아프리카의 일이어서 기업은 물론 소비자가 묵인해 버린 것이다. 서아프리카의 아동 노동이 선진국의 기업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 선진국엔 한국 또한 포함된다. 카카오 농장에서 여전히 아동 노동이 만연한 이유가 선진국 초콜릿 기업의 탐욕과 소비자의 위선 외에 서아프리카 현지의 구조적 여건도 있다. 카카오 생산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져 농부의 소득이 줄면 아동 노동이 증가한다. 예컨대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가격 하락으로 농가 소득이 10% 감소하면 아동 노동이 5%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 농부들은 코트디부아르에서 하루 약 50센트, 가나에서 하루 약 84센트를 벌어들인다. 하루 2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수입이다. 서아프리카의 카카오는 대체로 독립적인 소규모 자작농이 재배한다. 이들에 대한 아동 노동 감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교통이 불편한 외딴 지역의 카카오 농장에는 사법 시스템이 닿지 않아 아동 노예 노동이 있다고 해도 기소가 어렵다. 앞으로 전 세계에서 초콜릿 소비량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어서 점점 더 많은 아프리카 아동의 강제 및 노예 노동 또한 예상된다. 세계화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현재의 세계 시스템에 변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최근 모색되는 카카오 대체재 개발 바람이 주목된다. 독일 푸드테크 스타트업 ‘플래넷A’는 최근 3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2021년 설립된 플래넷A는 귀리와 해바라기씨 같은 식물성 원료를 발효해 초콜릿 맛을 구현하고 있다. 초콜릿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동 노동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캐롭 기반의 대체 초콜릿이 탄생했다. 캐롭은 허브의 한 종류로, 과육을 캔디로 먹거나 초콜릿의 풍미를 내는 데 쓰인다.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 연구팀은 카카오콩의 펄프와 내과피를 활용한 새로운 초콜릿 제조법을 개발했다. 카카오콩 활용도를 높여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농가 수입을 올리는 일석이조를 겨냥했다. 지속 가능하면서 환경 친화적인 초콜릿 얘기가 나온 지는 오래됐다.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에 반대한 윤리적 소비 논의도 마찬가지로 꽤 됐다. 그러나 카카오 대체재 개발 같은 근본적인 변화의 조짐은 윤리적 결단보다는 카카오 공급 부족에 대한 시장 대응의 한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씁쓸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달콤한 이야기는 아니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안치용의 비욘드 ESG] 달콤하지만 사악한  초콜릿…요동치는 세계 카카오 시장
  • [안치용의 비욘드 ESG] 계엄이 돈벌이? 극우 유투버들 '슈퍼챗' 호황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국회의 탄핵안 가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윤 대통령에 대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 구속영장 발부 등 숨 가쁘게 이후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헌정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중이다. 탄핵 인용과 대통령 선거 실시 등으로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아 큰 매듭이 지어지겠지만, 일련의 흐름을 둘러싼 평가와 반성, 시스템의 근본적인 정비 논의가 수습과 함께 본격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속 영장이 발부된 19일 오전 2시 50분 이후 발생한 서부지법 난입 사태 또한 같은 수식어를 단 충격적인 사건이다. 19일 2시 53분에 공수처가 영장 실물과 기록을 수령했고, 2시 59분에 영장 발부 사실이 언론에 공지되며 이날 새벽 서부지법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윤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한 사태는 12월 3일 계엄군의 국회 진입과 마찬가지로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반헌법적 만행을 저질렀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군에 의한 국회, 시위대에 의한 법원 침탈 중 중요도나 파급력은 당연히 계엄군이 국회라는 헌법기관에 투입된 사건이 더 크다. 그러나 법원 난입은 더 심각한 함의를 갖는다. 경찰이 서부지법 난입 사태와 관련하여 6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는데, 그 가운데 유튜버 3명이 포함됐다는 사실은 상징적 장면이다. 유튜버 3명은, 어느 매체에서 ‘증오의 수익화’라고 적절하게 작명한, 헌정사상 최초를 넘어서 인류문명에서 전례가 없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는 표지이다. 공론의 장이 밥벌이의 장에 오염돼 민주주의의 근간이 뒤흔들린 일이 그동안 없지 않았지만 유튜버라는 밥벌이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문제는 유튜브라는 매체가 진입이 용이한 반면 파급력이 크다는 사실이며 공론의 장 왜곡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극우 유튜버는 증오를 판매하고 공론의 장을 왜곡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건전한 여론 형성을 침해한 주범의 하나로 꼽힌다. 어느 매체에서 극우 유튜버들이 계엄과 탄핵 국면을 한탕 기회로 활용해 올린 ‘슈퍼챗’ 수입을 분석했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1차 체포영장 집행 이후 18일간의 슈퍼챗 수입을 분석한 결과, 극우성향으로 분류되는 유튜브 채널 5개가 벌어들인 돈은 2억7447만원으로 분석했다. 하루 최고 1705만원의 수입을 올린 채널도 확인됐다. 광고수입은 별도다. 이들이 전체적인 수익 규모를 파악할 수 없지만 광고에다 ‘슈퍼챗’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구독자도 급증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이후 여론조사에서 응답률이 올라간 것과 극우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증가 사이엔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정치 고관여층이 움직이고 있는데,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과 체포 이후엔 보수 쪽에서 더 강력하게 집결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정치 유튜브 채널에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도권이나 레거시 미디어에 대안이 돼 시민의 정치욕구를 해소한다는 측면은 분명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규제와 책임의식이 부재한 가운데 휴대폰 하나로 돈벌이가 되는 생계형 유튜버들에게 사건의 해석이 아닌 사건의 창출로 돈을 벌려는 유혹은 강력한 것이다. 공론의 장은 논의의 장이지 폭력의 장은 아니다. 사건을 중계하고 해석하는 1인 미디어는 대안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지만, 사건을 직접 일으키고 중계하고 해석하며 확산하는 1인 미디어는 선을 넘어도 많이 넘었다. 특히 사건을 일으키는 데 일조한 이유가 돈벌이일 혐의가 강할 땐 그들의 도덕성이 크게 훼손된다. ■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과 다른 점=일각에서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사건과 서부지법 난입 사태를 비교하며 유사점을 거론한다. 분명 유사점이 있기는 하다. 특히 정치 지도자의 적극적 선동이 개입한 점은 거의 똑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부정을 주장하고 “우리는 죽도록 싸울 것(We fight like hell)”이라며 폭동을 부추겼다.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지지자 선동을 이어가며 헌법 밖의 뒤집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번 정치적 격변기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큰 축인 사랑제일교회 전광훈씨는 “국민저항권을 발동했다. 국민저항권은 헌법 위에 있다”며 “국민저항권이 시작됐기 때문에 우리는 윤 대통령도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극렬 지지자들의 폭력 행위를 선동한 셈이며, 서부지법 폭동에서 기름을 들이부어 불씨가 튀기를 유도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서부지법 난입 이후에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유명 극우 유튜버 10명에게 설 선물을 보낸 행위 또한 전씨의 선동과 궤를 같이한다. 권 위원장이 선물을 보낸 유튜버는 ▲‘고성국TV’ 고성국 ▲‘공병호TV’ 공병호 ▲‘그라운드씨’ 김성원 ▲‘김상진TV’ 김상진 ▲‘김채환의 시사이다’ 김채환 ▲‘배승희 변호사’ 배승희 ▲‘성창경TV’ 성창경 ▲‘신남성연대’ 배인규 ▲‘신의한수’ 신혜식 ▲‘이봉규TV’ 이봉규인데, 부정선거 음모론을 전파하고 이번 서부지법 폭동 사태에서 현장에 있던 극우 유튜버들이 포함됐다. 국민의힘의 유튜버 선물 공세에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내에서도 비판이 줄을 이었다. 대표적으로 유승민 전 의원은 “‘불법 폭력 사태가 어제 바로 있었는데 설 선물을 보내? 이게 뭘까?’ 국민의힘이 지금 어떻게 보면 점점 극우화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유튜버는 대안언론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유튜버가 일종의 대안언론인 것은 사실이지만, 서부지법 난입을 계기로 대안언론보다는 대안적 돈벌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상황을 권 대표가 외면했다는 데에 있다. 대안언론이라면 마찬가지로 언론윤리를 지켜야 하고, 대안적 돈벌이라면 직업윤리와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 돈벌이가 헌법 위에 존재하는 위태로운 지경을 우리는 서부지법 난동을 통해 목도했다. 돈벌이는 헌법이든 법이든 무엇이든 넘어서려는 속성을 갖기에 이제 헌법과 법치는 공론의 장에 개입하는 대안언론의 대안적 돈벌이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어떻게 데려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 제법 알려진 학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같은 저서로 많은 독자를 확보했다. 유튜버의 대안언론 기능과 대안적 돈벌이의 한계 설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관한 논의와 맥을 같이한다. 샌델은 시장경제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되는 것, 즉 시장사회화하는 데 따른 문제는 재화·용역이 시장 내에서의 거래가능성, 다시 말해 상품화만을 존재의 잣대로 설정하는 데서 야기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당연히 ‘도덕적 가치’에 관한 판단이 결여된다. 유튜버가 영상 콘텐츠라는 서비스를 유튜브라는 자본주의 플랫폼에 던져 돈을 버는 행위는 철저하게 거래가능성에 복속된다. 유튜브에선 미약한 수준으로 도덕적 판단이 작용할 뿐이고, 판단의 작용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센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공정성과 부패라는 두 가지 쟁점으로 논했다. 공정성에 입각해서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팔 때 평등하지 못한 조건이나 경제적 필요성의 긴박한 정도에 따라 생겨날 수 있는 불평등이 지적된다. 굶주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절박한 이유에서 어떤 농부가 자신의 신장이나 각막을 팔겠다고 동의할지 모르겠으나 이 동의의 자발성과 진정성에는 분명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부패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비판자들은 시장의 가치평가와 교환이 특정 재화와 관행을 변질시킨다고 주장한다. 특정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사고팔 때에 가치가 감소하거나 변질된다는 견해다. 부패의 관점에 입각하면 거래의 계약 조건이 공정하다고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 평등한 조건과 불평등한 조건 아래서 부패 쟁점은 모두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안언론으로서 유튜버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를 사고파는 일을 한다. 따라서 서부지법 폭동에 휴대폰을 들고 광기의 현장에 뛰어들어가 불법 점거와 폭력을 행사한 행위는 샌델이 말한 ‘부패’에 해당한다. 서부지법 폭동은 관심을 기울여 존속시켜야 할 비(非)시장 규범을 시장가치가 밀어낸 전형적인 사례에 속한다. 이 ‘부패’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는 한 서부지법 난동에서 드러난 유튜버의 대안적 폭력은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피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돈맛을 본 유튜버들은 앞으로도 계속 ‘부패’의 유혹을 강하게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샌델은 “시장에 속한 영역과 ‘비시장 영역’의 구분이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시장과 비시장의 구분, 나아가 특정 재화와 용역이 두 영역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판정하려면 사회적인 논의와 결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당연히 도덕적이며, 그렇다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의 본령은 도덕적인 결정을 다루는 것이다. 서부지법 난입 사태와 별개로 이번에 드러난 유튜버의 공론의 장 파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또 필요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샌델의 말대로 시장경제를 가진(having a market economy) 시대에서 시장 사회(being a market society) 시대로 휩쓸려가게 될 것이다. 돈벌이가 일상적으로 헌법보다 더 큰 가치로 추앙되는 시대를 맞는다는 뜻이다. 이번 서부지법 난동에서 유튜버의 역할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서는 안 될 중요한 이유다. ESG시대를 연 중요한 인물인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는 2020년의 유명한 서한에서 “(투자 전략으로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앞세우며) 이제 기업, 투자자, 그리고 정부는 기후변화를 핵심으로 두고 중대한 자본 재배분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론의 장을 왜곡하려 드는 유튜버에 대처하는 핵심 또한 자본 재배분이다. 어떤 돈벌이와 헌금바구니가 헌법보다 위에 있으려고 한다면 헌법 귄위를 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의 흐름을 막는 것이다. 정상적인 돈벌이와 비정상적 돈벌이를 구분하는 것이 결국 ESG와 연결된다.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ESG는 결국 정치적인 것이며, 그래서인지 트럼프는 ESG를 싫어한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안치용의 비욘드 ESG] 계엄이 돈벌이? 극우 유투버들 슈퍼챗 호황
  • [안치용의 비욘드 ESG]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길…G(거버넌스)를 잡아라

    결론을 절대 배제하지 못한다. 시민의 ESG에선 ‘포지티브’만으로 충분하지만, 기업과 공공의 ESG에서는 ‘포지티브’와 ‘네거티브’가 병행하여야 하며, 기본은 ‘네거티브’이어야 한다. 계엄 선포 과정에서 극명하게 확인된 사실이기도 하다. 사악해지는(Be evil) 결정을 우리 정치체계가 막지 못했다. 거버넌스가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ESG의 한 축인 거버넌스는 E(환경) 및 S(사회)와 달리 구체적인 내용 범위가 없다. 그럴 것이 거버넌스는 투명성과 책임성 등의 원칙에 입각한 의사결정과 관련하기 때문이다. 거버넌스는 의사결정의 문제를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리스어(κυβερνάω)와 라틴어(gubernare)를 거쳐 거버넌스가 됐고 본래는 배에서 노를 저어가는 행위, 나아가 방향을 정하는 행위 등을 의미했다. 현실에서는 의사결정의 기관이나 과정, 절차 등을 뜻한다. ESG를 실질적으로 풀이한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사회책임에 관한 가이드라인(ISO26000)’ 모형은 거버넌스가 왜 핵심인지 보여준다. 7대 주제 중 거버넌스가 가운데 자리하고 앉아 나머지 주제와 접목된다. 고대 그리스어의 본래 의미가 드러난 셈이다. 여러 발전 모형 중에서 왜 ESG가 효과성을 갖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 정치적 위기는, 사악한 행동을 한 정치적으로 중요한 개인의 치명적 일탈뿐 아니라, 그 일탈의 의사결정을 막아내지 못한, 사악한 의사결정을 보고 그 사악을 저지하는 올바른 일을 하지 못한 거버넌스의 부재를 드러냈다. 사악해지지 않고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국가 체계 전반의 거버넌스 개혁으로 다시 ESG를 강화할 시점이다. 이제 웬만한 정치인이면 입에 달고 사는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성패가 거버넌스 개혁에 달려 있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안치용의 비욘드 ESG]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길…G(거버넌스)를 잡아라
  • [안치용의 비욘드 ESG] 우주에 거울을 달아 지구를 식힌다구요

    ■ 기후위기의 급진적 해법=우주거울의 역사는 SCoPEx 하나만이 아니다. 1989년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의 제임스 얼리 연구원은 ‘우주 태양 차단막(Space Sunshade)’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때 제안된 우주 태양 차단막은 지구온난화 대응이 아니라 다른 행성을 정복하는 이른바 테라포밍(Terraforming) 목적이었다. 표면 온도가 500℃에 육박하고 두꺼운 황산 구름으로 뒤덮인 금성의 극단적 기후는 대기 중 97%에 이르는 이산화탄소가 야기한 극단적인 온실효과 때문이다. 금성을 냉각하기 위해 얼리가 제안한 태양 차단막, 즉 우주거울은 몇 mm 두께로 얇지만 2000㎞나 되는 유리 방패 모양이다. 1991년 6월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은 SCoPEx를 비롯해 우주거울에 관해 많은 시사를 주었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2000톤 이상의 황산염 화산재가 지상 10~50㎞ 성층권까지 치솟았고 화산재는 성층권에서 수년간 머무르며 태양에너지의 지구 흡수를 막았다. 이에 따라 그 해 지구 평균 온도는 약 0.6℃, 폭발 이후 2~3년 약 0.2~0.5℃ 낮아졌다. 대기 중의 알베도의 변화로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빛이 약 2.5%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구 밖에 거대한 거울이나 차양을 설치하여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 복사량을 조절하는 ‘우주 태양 차단막’ 구상은 1980~90년대에 NASA와 러시아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분출했다. 우주거울과 비슷한 개념이 ‘즈나미야 프로젝트(Znamya Project)’다. 1993년 지름 약 20m 원형 반사막을 설치한 첫 시험이 이루어졌다. 반사막으로 태양빛을 반사해 유럽의 일부 지역에 비추는 데 성공했으나 빛의 강도가 낮아 실질적인 효과는 크지 않았다. 1999년의 두 번째 시험에서는 더 큰 반사 거울을 사용하여 빛의 강도를 높이고 반사 면적을 넓히려 했으나 발사 도중 차단막이 우주선 안테나에 걸려 찢어지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후 ‘즈나미야 프로젝트’가 폐기됐다. ‘즈나미야 프로젝트’는 지구온난화 대책이 아니라 극지방이나 북유럽 등 겨울철 일조량이 적은 지역에 빛을 공급해, 겨울 동안 조명을 제공하거나 농업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반사 거울을 통해 대규모의 빛을 반사하여 지구 특정 지역에 인공조명을 제공하는 구상은 당시의 기술적 한계와 막대한 비용으로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았다. ‘즈나미야 프로젝트’에서 띄워 올린 차단막의 반사각을 조정하면 SCoPEx가 제안한 우주거울과 비슷한 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의의가 적지 않다. 우주에서 태양빛을 반사해 지구에 사용하는 아이디어는 20세기 초반부터 나왔다. 1920년대에 러시아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는 ‘우주 정거장을 이용한 태양열 반사’를 구상했다. 치올콥스키는 우주에 거대한 거울을 설치하여 지구에 에너지를 반사하는 구상을 최초로 제안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과학자 사이에서 군사적, 전략적 목적으로 우주 거울을 활용하는 논의가 중심이 되었다. 1970년대 에너지 위기 시점엔 미국 물리학자 제러드 오닐이 우주 태양광 발전소를 제안해 지금의 우주 기반 태양광 발전(SBSP) 연구의 기초가 됐다. 우주거울 구상은 우주구름(Space Cloud), 우주거품(Space Bubbles), 프레넬렌즈(Fresnel Lens), 태양돛(Solar Sails) 등 여러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비용장벽도 낮아지고 있어 지구공학의 구상이 현실화할 개연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과거엔 다소 공상과학 같은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심각한 기후위기 국면이어서 언제든 정책입안자가 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법하다. 다만 SCoPEx 사례에서 보았듯, 또 영화 <설국열차>가 상징적으로 표현했듯 부작용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다. 완벽한 변수 통제를 할 수 있는 지구공학이 과연 가능할까. 사전 논의거리는 대부분 기술보다는 사회와 정치적인 것이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안치용의 비욘드 ESG] 우주에 거울을 달아 지구를 식힌다구요
  • [안치용의 비욘드 ESG] 2시간 9분의 소비학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중에서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다음 달 5일 백악관의 주인이 가려지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난 7월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일어난 트럼프 암살 시도이지 싶다. ■ 2시간 9분=이 사건이 트럼프 승리의 발판이 됐는지는 조금 더 기다리면 확인되겠지만, 저격범이 발사한 총알이 엉뚱한 사람을 거꾸러뜨린 건 확인됐다. 재선을 노리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피격 이후 대선 후보를 사퇴했으니 말이다. 당시 잠시 잦아든 상태인 후보 사퇴 요구는 이 사건으로 민주당이 대선 패배를 예감하면서 다시 본격화했고, 부통령 해리스가 바통을 넘겨받는 것으로 귀결했다.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트럼프가 총격을 받은 사건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트럼프에게 매우 소중한 사진을 남겼다. 가장 유명한 피격 현장 사진은 귀에 피를 흘리며 경호원들과 대피하는 와중에 트럼프가 주먹을 치켜든 모습.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테랑 사진기자 AP 에반 부치가 트럼프가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쥔 손을 치켜든 모습을 포착해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이 너무 극적이었다. 창해일속에 맞먹는 확률로 생명을 건진 데다 준비한 듯 세기의 사진까지 건졌으니 자작극이라는 등 음모론이 터져 나올 만했다. 당시 쏟아진 많은 기사 가운데 ‘2시간 9분’이 제목에 포함된 기사가 개인적으로는 관심을 끌었다. ‘2시간 9분’은 트럼프 피격 사진이 공개되고 이 사진이 들어간 ‘트럼프 티셔츠’가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를 시작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현지시간으로 AP가 사진을 전 세계에 타전한 시간은 이날 오후 6시 31분. 중국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 ‘트럼프 티셔츠’가 올라온 시간은 같은 날 오후 8시 40분이었다. 티셔츠 판매자는 “총격 사건을 보자마자 광고를 올렸고 아직 티셔츠를 인쇄하지도 않았는데 3시간 만에 미국과 중국에서 2000개 이상 주문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의 공장은 베이징 근교인 허베이성에 있다. 새로운 티셔츠를 만들려면 이미지를 내려받아 인쇄하기만 하면 된다. 가장 빠른 곳은 중국이었지만 이후 봇물 터지듯 피격 기념품이 쏟아졌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7월 15일(현지시간) 수공예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 엣시(Etsy)에서 ‘도널드 트럼프 암살’로 검색하자 포스터, 티셔츠, 모자 등 1000개 이상 상품이 나왔다. 한 판매자는 엣시에서 파는 16달러짜리 티셔츠를 엑스(X·옛 트위터)에서 홍보하면서 “탄핵은 실패했고, 그를 감옥에 넣는 것도 실패했으며, 살해 시도도 실패했다. 그를 이길 수 없다. 이 상품의 가격처럼!”이라고 적었다. 판매자들은 ‘방탄 트럼프 2024’ ‘총격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스쳤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등의 문구를 넣은 ‘트럼프 티셔츠’를 판매 중이다. 일부 상품은 이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의 재선을 도우려는 지지자들이 판매한다. 보수 유튜버인 호지 쌍둥이는 엑스에 티셔츠 판매처를 공유하며 “이 티셔츠 판매 수익의 100%를 트럼프 선거운동에 기부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중국 판매업자들의 돈벌이 기회로 활용되는 듯하다. ■ 빨라도 너무 빠른=‘2시간 9분’에서 언론이나 정치권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은 패스트패션의 폐해다. 요즘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보니 울트라패스트패션이란 말을 쓴다. 전 세계에 걸친 폐해 또한 울트라급으로 커지고 있다. 신상품을 빠르게 만들어 싼값에 팔고 소비자에게 즉시 보내주는 패션업계 트렌드 울트라패스트패션의 문제는 쉽게 산 만큼 쉽게 버린다는 것이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의 뒤편엔 저임금과 환경오염, 온실가스 배출이 도사리고 있고, 소비자를 거치며 쓰레기 문제로 이어진다. 초고속 패션을 무기로 글로벌 의류 시장을 위협하는 브랜드는 아소스(ASOS), 부후(Boohoo), 미스가이드(Missguided) 등으로 초고속 인터넷으로 하나가 된 세상을 공략하고 있다. 디자인부터 매장에 놓이기까지 오프라인 공정이 2~4주 이내에 이루어진다. 패스트패션의 기존 강자 자라와 H&M에서는 이 과정이 통상 5주였다. 의류업계의 전통적인 제품 생산 주기는 6~9개월이었다. 부후와 아소스는 일주일 단위로 수백 개에서 수천 개 제품을 웹사이트에 선보인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이란 용어는 아소스, 부후 등이 패스트패션보다 더 빨리 옷을 출시하는 현상을 설명하며 등장했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의 최강자는 중국의 ‘쉬인(SHEIN)’이다. 쉬인은 2021년 16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파죽지세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전까지 8년 연속 매년 100% 이상 성장했다. 쉬인이 글로벌 실적을 공개하진 않지만, 업계나 분석 기관은 올해 매출이 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때 ‘짝퉁 자라’로 불린 쉬인은 경쟁사인 미스가이드를 인수하는 등 이제 이 업계의 공룡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쉬인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시장에 출시된 의류 패턴을 분석하고 분석 결과를 신속하게 디자인에 반영한다.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기간을 5~7일로 줄여 다른 울트라패스트패션 기업들을 눌렀다. 하루에 내놓는 신상품이 1000~6000개로, 물량으로 압도한다. SNS 플랫폼을 공략한 마케팅이 세계 신세대를 파고든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인플루언서에게 옷을 입혀서 인스타그램·틱톡 등에 노출하면 일정액을 주는 식으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갔다. 기존 오프라인 매장이나 온라인 쇼핑몰보다 인플루언서·블로거 등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뉴 미디어 채널을 선호하는 소비자 경향을 쉬인이 파악해서 잘 활용한 사례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소비가 위축됐으나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기존 수준을 유지하거나 전보다 늘었다. 울트라패스트패션 브랜드가 급성장한 계기로 코로나19가 꼽힌다. 팬데믹 시기에 오프라인 접근성이 떨어지자 온라인 비즈니스 기반이 부족한 패스트패션 기업들이 타격을 입은 반면 신흥 울트라패스트패션 기업들은 날개를 달았다. ■ 울트라패스트패션의 짙은 그늘=쉬인이 지난해 영국에서 올린 매출은 우리 돈으로 3조원에 육박하는 15억5000만 파운드였다. 쉬인이 영국에서 상장을 준비하면서 제출한 서류를 통해 밝혀졌다. 쉬인은 지난 6월 영국 증권당국에 기업공개(IPO)를 신청했다. 당초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다고 보고 런던 증시로 방향을 튼 것으로 분석된다. 쉬인은 앞서 2022년 뉴욕 증시에 상장하려다 실패했다. 당시에 IPO에 필요한 ESG 기준을 쉬인이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온실가스만 해도 2021년 한 해에만 울트라패스트패션을 작동하며 연간 약 630만톤을 배출했다. 상장을 준비하며 쉬인은 2030년까지 직간접적인 탄소 배출량을 각각 42%, 25%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증권당국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저임금 노동과 상표권 침해, 디자인 표절 등 상장을 앞두고 여러 비판이 봇물 터지듯 나왔고 상장은 실패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보다 더 저렴하게 옷을 공급하는 울트라패스트패션의 등장은 소비자의 의류 과소비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티셔츠’만 해도 지금 인터넷에서 2000원대를 포함하여 대부분 1만원 미만에 구매할 수 있다. 많은 울트라패스트패션 쇼핑몰의 사정이 대동소이하다. 소비자가 싼 가격에 혹해 옷을 쉽게 사고 또 쉽게 버리는 풍조를 만연하게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유행한 ‘쉬인 하울’이 이런 풍조를 반영한다. ‘쉬인 하울’은 싼 옷을 사서 상품평을 올리는 일종의 인증사진 놀이였다. 실제로 착용할 의도에서가 아니라 SNS에 올릴 목적으로 옷을 구매하는 행태는 자원을 낭비하고 온실가스와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킨다. 싼값에 옷을 만들려다 보니 울트라패스트패션 원단은 대부분 ‘폴리에스터’다. 공급가는 싸지만 사실상 플라스틱인 폴리에스터는 제조 과정에서 면섬유의 세 배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한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의류를 세탁할 때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져 나와 바다로 흘러 들어가서는 해양을 오염시키고 종국에는 인간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점이다. 세탁기를 통한 미세플라스틱 생성과 바다 유입이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버려진 폴리에스터 의류를 통해 바다로 직접 유입되는 미세플라스틱도 어마어마하다. 의류 쓰레기를 수입하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 인근 해안은 쓰레기 해안으로 변했다. 아크라 비슷한 곳이 세계적으로 많다.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의 연구(최연석 외, 2022)에 따르면 지구 전체에서 생산되는 의류는 매년 약 1억톤이며 그중 약 15%만 재활용된다. 나머지 75%는 소각 또는 매립 말고 처리할 방법이 없다. 버려지는 옷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판매되지 않는 옷이 존재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의류의 약 30%가 판매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다. 무게를 벌로 환산하여 쉬인 같은 울프라패스트패션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매년 생산되는 1000억벌의 옷 중 약 3분의 1이 같은 해에 버려진다. 한 명이 1년에 버리는 옷이 30㎏ 정도라는 추정치가 존재한다. 미판매 재고는 업사이클링이나 기부로 활용되지 않고 앞서 살펴보았듯이 광범위하게 소각된다. 멀쩡한 옷을 태우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소각으로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여 세금을 줄이고 창고에 보관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과거 미국 곡물 메이저가 과잉생산한 밀과 옥수수를 바다에 그대로 버린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제3세계에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주려면 보관과 운송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에 그대로 해양에 투기한 모습과 겹친다. 심각한 자원 낭비와 함께 과거엔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걱정거리가 등장했는데, 온실가스이다. 생산하는 데 막대한 물을 쓰고 온실가스를 발생시킨 다음 태우고 묻으며 추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나아가 미세플라스틱을 지구에 방출한다. 의류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최대 10%까지 추정되며 전 세계 항공기,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많다. 미세플라스틱 발생원으로는 최대 3분의 1로 보고 있어 인간이 입는 옷이 시간차로 부서져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은 쉬인 등을 겨냥해 만장일치로 ‘패스트패션 제한법’을 가결했다. 내년에 패스트패션 업체에 환경 부담금으로 의류 제품당 5유로를 부과하고, 2030년까지 판매 가격의 절반을 넘지 않는 선에서 부담금을 10유로까지 인상할 수 있다. 이들 업체의 초저가 의류 판매 광고도 금지한다. ‘트럼프 티셔츠’로 기세를 올린 불량산업 (울트라)패스트패션에 어떤 식으로든 강력한 조정이 있어야 할 시점이다. 가치소비를 권장하는 소비자 의식만으로는 역부족인 듯하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안치용의 비욘드 ESG] 2시간 9분의 소비학
  • [안치용의 비욘드 ESG] '북극곰 생존 프로젝트' 가능할까?

    원래 내가 생각한 제목은 ‘북극곰 멸종 프로젝트’였다. 출판사 요청으로 바꾸었으나 앞에서 책 내용을 소개하였듯 ‘생존’에 회의적이다. 북극의 묵시록을 정리하여 보여준 다음에 사람들에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다. 루쉰(魯迅)이 ‘쇠로 된 방’ 이야기를 하며 탈출이 불가능한 방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은 기억이 난다. 지금 인류가 처한 상황은 그 방보다는 분명 낫다. 그렇다고 루쉰이 말한 대로 여럿이 함께 걸어 희망의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희망의 근거가 없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시답잖은 정언명법이 우리 세대의 의무라는 정도의 얘기는 어쩌면 나눌 수도 있겠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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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치용의 비욘드 ESG] 못생기면 더 맛있다! 주목받는 '푸드 리퍼브' 시장

    사람은 호흡을 통해 산소를 받아들여 살아가는 동물이기에 체내에 산소의 균형을 유지하는 체계가 있다. 활성산소가 과도하면 항산화물질이 작용해 넘치는 양을 제거한다. 우리 몸에서 항산화물질은 유지보수 체계를 가동하는 스위치 같은 기능을 한다. 항산화물질이 Nrf2로 알려진 세포를 자극하면 Nrf2는 대부분 세포 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500개 이상의 유전자를 작동한다. 사람에게만 Nrf2 같은 방어기제의 일종인 방아쇠가 있을 리는 없다. 식물에도 비슷한 메커니즘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게 합리적이다. 실제로 식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폴리페놀 같은 물질을 증가시켜 대응하는데, 이러한 물질은 식물뿐 아니라 섭취한 인간 건강에도 유익하다. ■고통은 더 성숙한 열매를 준다지만=수백 건의 유기농 연구에서 ‘고통의 효과’가 확인된다. 생산량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기존 방식과 다른 유기농 과일과 채소에서 살충제 잔유물이 적은 건 당연하겠지만 흥미롭게도 항산화물질을 20~40% 더 많이 함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맛도 더 좋았다. 미국 버지니아주 해밀턴에서 사과 농사를 하는 그린먼이란 농부가 2014년에 행한 비공식적 실험에서는, 같은 나무에서도 상처가 있는 사과가 상처가 없는 사과에 비해 당도가 2~5% 높았다. 이러한 사실은 나무가 해충 자외선 등 외부 환경에 맞서 싸워 자신을 지켜낸 성공의 징표로 보인다. 과거 누군가 제주도에서 재배한 감귤을 가져다주었는데 작고 못생겼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가족 먹으려고 농약 안 치고 저절로 자라게 내버려 둔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달았다. 꽃길만 걸은 사람에 비해 온갖 어려움을 겪고 성공한 사람에게서 더 인간다운 향기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유기농이 아닌 일반 농법에서 생산된 못난이 과일과 채소는 어떨까. 판매 및 유통용 과일과 채소는 철저하게 외모지상주의의 지배를 받는다. 영양과 당도가 아니라 모양이 우선이다. 물류 효율을 높이고 유통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물류 표준화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름 오이의 일종인 ‘가시계 오이’는 구부러진 정도가 2㎝ 이내면 특, 4㎝ 이내면 상, 특과 상에 미달하면 보통 등급을 받는다. 농산물 표준규격에 따라 적잖은 농산물이 ‘등급 외’ 판정을 받게 되고 ‘등급 외’ 농산물은 정상적인 유통경로에서 배제되어 폐기되거나 헐값에 팔린다. 못생겼다고 맛에 차이가 있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2020년 8월 24일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총 27개 농산물생산량에서 ‘등급 외’ 발생 비중은 평균 11.8%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 128개 산지 농협에 설문조사한 결과로, 정부가 등급 외 발생 현황을 조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품목별로는 당근 19.6%, 무 19%, 배추 17%, 깻잎 16%, 양파 12.6%, 대파 11.8%, 마늘 10.4%, 풋고추 10.2% 등에서 ‘등급 외’가 높았다. 과일류에서는 배 27%, 복숭아 26%, 포도 21.8%, 사과 14.1%로 과일류의 평균이 22.2%로 채소류보다 높았다. 실제 ‘등급 외’ 발생률은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양파를 예로 들면 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의 선별 과정에서 ‘등급 외’가 20%가량인데, 농민이 아예 APC에 넘기지 않는 ‘등급 외’가 수확량의 20% 정도는 되기 때문이다. 산지에서 농민이 스스로 판정한 ‘등급 외’는 판매경로를 찾지 못하거나 유통비용 등의 이유로 그대로 밭에 버려질 때가 많다. 세계 전체 상황이 비슷했다. 2019년 유엔환경계획(UNEP)의 ‘식량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식량의 약 14%가 수확 후 판매되지 못하고 낭비된다. 2021년 UNEP의 ‘식품 폐기물 지수 보고서’에서는 소비되지 못하는 식량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8~10%를 차지하여 기후와 가뭄, 홍수와 같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2021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음식물 쓰레기 환경영향에 관한 보고서는 매년 미국 식량의 손실과 폐기물이 1억7000만t(톤)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추산했다. 유엔은 식품 폐기물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생태계를 악화하는 부정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하나로 책임 있는 소비와 생산을 포함했다. 세계 한쪽에서는 굶주리지만, 다른 쪽에서는 많게는 생산된 농산물의 절반가량이 판매 전후에, 팔리지 않아서 혹은 음식쓰레기로 버려지고 낭비된다.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생산 및 유통 체계의 극명한 비효율인 셈이다. ■과일과 채소의 외모지상주의 극복=식량 손실과 폐기물의 감소는 여러모로 긍정적이며 특히 지구에 미치는 부하를 줄이는 데에 기여한다. 이러한 목표 아래 자본주의 농산물 유통방식의 개선을 지향하며 등장한 것이 ‘푸드 리퍼브(Food Refurb)’이다. ‘푸드 리퍼브’는 음식을 뜻하는 푸드(Food)와 재공급품을 뜻하는 리퍼브(Refurb)의 합성어. 리퍼브(Refurb)는 ‘새로 꾸민다’는 의미의 ‘리퍼비시(Refurbish)’의 준말로 공장에서 출고될 때 흠이 있거나 반품된 제품, 전시상품 등을 다시 손질해 싼값에 되파는 제품을 뜻하는 유통업계 용어. 대체로 가전제품 가운데 신품과 중고의 중간 제품 정도로 인식된다. ‘푸드 리퍼브’는 겉모습 때문에 소비자에게 닿지 못하고 버려지는 농산물을 주로 유통업체에서 구매해 상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을 말한다. 리퍼브와 마찬가지로 가격이 낮게 책정된다. ‘푸드 리퍼브’는 ‘푸드 뱅크’ 등과 달리 시장 내의 새로운 시도이다. ‘푸드 리퍼브’는 해외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슈퍼마켓 엥테르마르셰(Intermarche)에서 2014년 ‘부끄러운 과일과 채소’ 캠페인을 통해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라는 슬로건으로 못난이 당근을 판매한 것이 ‘푸드 리퍼브’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가격은 시세보다 30~50% 낮게 결정됐다. 이후로 ‘푸드 리퍼브’ 시장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 더 많은 나라로 확대되었고, 화장품 업계와 같은 비식품 시장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네덜란드 크롬코마(Kromkommer, ‘휘어진 오이’라는 뜻)는 낭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2014년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못난이 농산물로 수프를 만들었고, 2020년엔 못난이 농산물 인식 개선을 위하여 이상한 형태의 과일과 채소 모양의 장난감을 개발했다. 미국에서 월마트, 크로커 등 대형 유통업체가 적극적으로 ‘푸드 리퍼드’에 뛰어들어 못난이 농산물을 30~50% 저렴하게 팔아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다. 영국에서는 못난이 농산물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소비자가 느낀 만큼의 가치를 음식값을 내게 하는 ‘더 리얼 정크 푸드 프로젝트(The Real Junk Food Project)’ 식당이 등장했다. 덴마크 시민단체 ‘단처지에이드’가 직접 운영하는 슈퍼마켓 ‘위푸드’에서는 못난이 식품을 30~50% 저렴하게 판매하고 수익을 저소득층 지원에 사용해 주목받았다. 시장방식과 비시장방식의 창의적 혼용인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풀 하비스트(Full Harvest)’는 음식물 쓰레기 제로를 표방하며 못생긴 농산물을 식료품 제조업자에게 연결해주는 B2B 사업을 진행한다. 농가는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여 수입을 올리고 식료품 제조업자는 온라인에서 싼 가격에 원료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서울신문 보도 사례에서 본 것과 같은, 수확 후 그대로 밭에다 갈아버리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다. ■국내의 ‘푸드 리퍼브’=국내에서는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협업한 2019년 ‘못난이 감자’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푸드 리퍼브’ 사례로 기억된다. 마땅한 판로를 찾지 못한 못난이 감자 30t을 기존 감자보다 싸게 900g당 780원으로 팔았다. ‘풀 하비스트’와 비슷한 개념으로, 못난이 농산물을 생산한 농가와 식품 가공업체를 연결해주는 ‘파머스페이스’와 같은 사업이 등장했다. 못난이 농산물 정기 구독 서비스 ‘어글리어스’는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21년 서비스를 시작한 후 3년 만에 누적 가입자 23만명, 누적 매출액 100억원을 달성했고, 재구매율이 88%에 달한다. 화장품업계가 ‘푸드 리퍼브’에 관심이 많다. 농산물을 직접 보여주는 게 아니라 원료를 사용하는 것인 만큼 사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11월 ‘어글리 러블리’ 브랜드를 시작했다. 농가에서 버려질 뻔한 못난이 농산물에서 원료를 추출해 화장품을 만들었다. 현재 올리브영 온라인몰, 더현대 오프라인 매장 등에서 팔고 있고, 동아시아 7개국에도 진출했다. LG생활건강에 앞서 어글리시크는 전북 무주의 유기농 못난이 사과를 활용하여 만든 저자극 여성 청결제와 제주도의 유기농 브로콜리를 활용한 자외선 차단제를 선보였다. TV홈쇼핑에 자주 등장한다. 흠이 있는 사과를 일컫는 ‘보조개 사과’가 제일 유명하고, ‘못난이 참외’ 외에 배, 명란, 굴비 등 모양 빠지는 농산물과 수산물이 성황리에 판매됐다. 2007년 8월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서울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 10여 명과 저녁을 하며 “‘특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고를 때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인생의 지혜”라며 “덜 예쁜 여자” 운운했는데, 만일 그때 ‘푸드 리퍼브’를 논했으면 자신이나 국민이나 더 행복해지는 진짜 지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2014년에 ‘푸드 리퍼브’란 말이 돌기 시작했으니 우리나라 지도자에게 세계보다 7년쯤 앞서가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푸드 리퍼브’의 정착과 확산을 기대한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안치용의 비욘드 ESG] 못생기면 더 맛있다!  주목받는 푸드 리퍼브 시장
  • [안치용의 비욘드 ESG] 유럽발 '공급망 실사' 눈앞의 현실로 …한국 기업도 '발등의 불'

    지침 적용 대상은 (1)직원이 1000명을 초과하고 전 세계 순매출액(전년 기준)이 4억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EU 기업 및 그 모기업 (2)근로자 수와 순매출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역내 프랜차이즈 또는 라이선스 계약으로 창출된 로열티 수익이 2250만 유로를 초과하는 기업 (3)EU 역내 순매출액(전전 연도 기준)이 4억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역외 기업 및 그 모기업 (4)3번의 순매출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역내 프랜차이즈 또는 라이선스 계약으로 창출된 로열티 수익이 2250만 유로를 초과하는 역외 기업이다. 시행은 지침 발효 후 기업 규모에 따라 2027~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로열티 수익 기준 지침 적용 기업은 2029년부터 일괄 실사 적용 기업이 된다. <표> 지침을 위반하면 회사의 전 회계연도 전 세계 순매출액의 최대 5%를 벌금으로 물릴 수 있다. 후속 조치로 2027년 3월 31일까지 공시항목 관련 위임법을, 지침 발효 후 최대 36개월 이내에 기업의 실질적 실사 의무 준수 방법과 관련하여 일반·섹터별·특수 부정적 영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CSDDD는 관보 게재 후 20일이 지나면 발효된다. 앞서 지난해 1월 CSRD가 발효돼 있어 유럽은 ‘기업지속가능성(CS)’ 제고를 보고(CSRD)와 실사(CSDDD) 양축 제도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셈이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안치용의 비욘드 ESG] 유럽발 공급망 실사 눈앞의 현실로 …한국 기업도 발등의 불
  • [안치용의 비욘드 ESG] 북극 항로가 열린다 …지구 종말 '카운트다운'

    지구는 대기권, 수권, 빙권, 생물권, 지권의 5개 요소로 구성돼 요소 간의 상호작용으로 기후와 기상이 결정된다. 이 다섯 요소가 상호 작용하면서 어떠한 현상을 증폭하거나 감소하는 것을 ‘되먹임 효과’라고 한다.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은 처음 주어진 변화를 증폭하고,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은 작용을 받아 변화를 억제한다. ‘되먹임 효과’는 지구의 다른 지역보다 북극권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알베도 현상’은 대표적인 ‘양의 되먹임’으로, 북극에 넓게 자리한 얼음이 녹으면서 태양열을 덜 반사하고 동시에 얼음이 사라진 곳의 바다가 태양열을 더 흡수하여, 계속해서 기온이 오르고 더 빠르게 빙하가 녹게 한다. ‘알베도’는 표면이나 물체가 반사하는 태양복사의 비율을 말한다. 눈처럼 흰 물질은 알베도가 높아 태양복사에너지를 더 많이 지구 밖으로 튕겨낸다. 반대로 초목으로 덮인 표면이나 해양은 알베도가 낮아 에너지를 더 많이 받아들인다. 여름에 흰옷을 입고 겨울에 검은옷을 입는 습관은 생활 속에 자리잡은 ‘알베도’이다. ■지구온난화의 카나리아=알베도와 되먹임은 다른 지역보다 북극에서 얼음이 더 빨리 녹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얼음이 녹아 흰색 면적이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고 해양의 짙은 색깔 면적이 늘어나 변화를 가속한다. 반사만 주는 게 아니라 줄어든 반사만큼 흡수가 늘어나는 구조다. 극지방에서 한번 온도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계속해서 그 정도가 심해지는 양의 되먹임이 나타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중위도나 고위도 지역에서, 적도 지방을 비롯해 얼음이 없는 지역보다 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북극권에만 머물지 않는 데에 있다. 다른 지역보다 빠른 북극의 온난화는 다시 여타 지역의 온난화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여타 지역의 나쁜 영향은 북극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악순환 구조로 인해 북극은 ‘지구온난화의 카나리아’로 불린다. 세계 주요 6개 기관 자료를 근거로 매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분석해 도출하는 유엔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23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1850~1900년) 1.45℃ 올랐다. 표본오차(±0.12)를 고려하면 1.57℃까지 상승했다고 볼 수 있다. 파리기후협약에서 인류가 합의한 2100년까지의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 제한 목표 1.5℃를 사실상 넘어섰다고 봐도 무방하다. 2023년의 지구 평균기온은 174년째인 지구 기온 측정역사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기도 했다. WMO에 따르면 2023년 이전에 가장 따듯한 해는 2016년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1.17~1.41℃ 높았다. 지금 추세로는 2024년, 2025년에 계속해서 신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극에서도 상황이 비슷했다. 2022년 10월~2023년 9월까지 북극 표면의 평균 기온은 1900년 이후 6번째로 따뜻했고, 2023년 여름(7~9월)은 기록상 가장 따뜻했다. <그림 북극의 기온변화-자료 NOAA>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발표한 북극 기온자료(그림 북극의 기온변화)를 보면 왼쪽 그림에서 2023년 여름(7~9월) 기온은 1991~2000년 여름의 평균 기온보다 북극 전역에서 높았다. 붉을수록 평균보다 2023년 여름 기온이 더 높다는 뜻으로 가장 붉은 색깔은 평균보다 4℃ 높다. 푸른색은 평균보다 낮다는 의미이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이고 푸른색을 찾기 어려웠다. 1940년부터 2023년까지 북극 전체의 여름 평균기온을 1991~2000년 평균과 비교한 그래프(그림 오른쪽)상에서도 북극 지역의 기온상승이 확연히 확인된다. 21세기 들어 상승세가 더 완연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극증폭=NOAA가 2006년 이래 매년 발표하는 ‘북극 성적표(Arctic Report Card)’에서도 알베도-되먹임이 확인되며, 이 현상을 특별히 북극증폭이라고 부른다. ‘북극 성적표’는 북극이 다른 지역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온난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극의 기온상승은 북극 생태계의 핵심인 해빙(海氷)에 영향을 미친다. 북극 해빙은 북극을 둘러싼 대륙 안쪽 바다의 대기 접면이 얼어붙은 것으로 북극해와 북극권뿐 아니라 지구 전체 기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해빙 면적은 얼음 농도가 15% 이상인 바다의 범위로 정의되며 1979년부터 마이크로파 위성 원격탐사를 통해 북극 해빙 면적을 조사하고 있다. 북극의 계절적 순환은 3월에 해빙이 최대 면적을 기록하며 봄과 여름을 거쳐 얼음이 녹으면서 9월에 최소 면적을 기록한다. 미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에 따르면 1979년 9월 북극 해빙의 면적은 약 645만km²였지만 2023년 9월엔 423만km²로 줄었다. 한반도 면적의 10배 이상의 얼음이 그 사이에 사라졌다. <그림 2023년 북극 해빙 면적과 평균 대비 면적 변화 추이-자료 NSIDC> NSIDC가 2023년 9월 해빙 면적을 그림으로 표현한 자료를 보면 1981~2010년의 중앙값과 1991~2020년의 중앙값에 비해 확연하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1991~2020년의 중앙값 면적이 1981~2010년의 중앙값 면적보다 작다. 1991~2020년의 평균값과 비교한 연도별 면적 추이를 보면 그 차이가 약 70%p에 달한다. 9월의 최소 면적 변화에 비해 3월의 최대 면적 변화는 훨씬 덜하지만, 감소추세는 분명히 눈에 띈다. 해빙은 태양의 에너지를 반사하여 온난화를 늦출 뿐 아니라 해양 포유류에게 서식지를 제공하는 등 북극 생태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빙 감소, 나아가 소멸은 북극에 변고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얼음 없는 북극 현실로=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등의 예측에 따르면 인류가 아무리 잘해도 북극 얼음을 지켜내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로선 산업화 이전 대비 2100년까지 지구표면 평균온도가 약 1.8~4.4°C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국립기상과학원은 북극의 연평균 얼음량이 이에 따라 21세기 말에 현재 대비 최소 19%에서 최대 76%까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온이 높아지는 여름철에 북극 해빙은 모든 시나리오에서 21세기 중반 이후 거의 사라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멀지 않아 얼음 없는(ice-free) 북극이 현실화하며 IPCC는 2050년 이전 최소 한번은 북극에서 여름에 얼음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북극 항로가 열린다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 법하지만, 얼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북극곰을 떠올리면 이만저만한 곤경이 아니다. 지구 전체 기후와 해양에 미칠 효과가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기에 북극곰의 곤경은 북극곰에 그치지 않는 확실히 상징적인 장면이다. ■해수면 상승 위험=지구온난화의 피해 중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해수면 상승이다. 다행히 북극의 얼음이 녹는다고 해수면 상승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른 걱정거리는 많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얼음이 녹는 것은 이론상 해수면을 끌어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스커피 속의 얼음이 녹아도 잔이 안 넘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은 그린란드와 남극 등 육지에 있는 빙하가 녹아서 바다로 유입하며 발생한다. 그린란드 빙하의 용융은 잊을 만하면 뉴스를 통해 전해지고, 남극의 얼음이 녹는다는 얘기도 자주 들리고 있다. 빙하(glacier)는 육지 위로 천천히 흐르는 얼음과 눈의 축적물이다. 이 빙하가 육지에 자리를 잡고 5만㎢ 이상 확장되면 빙상(ice sheet)이라 불린다. 현재 지구에는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에 하나씩 모두 두 개의 빙상이 존재한다. 두 곳에 얼어 있는 담수는 지구 담수 총량의 68% 이상으로 추정된다. 남극은 대륙이기 때문에 북극처럼 얼음이 녹는다고 즉시 바다가 드러나 태양에너지를 더 흡수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 남극에 분포하는 빙상 면적은 대략 한반도의 약 60배에 해당하는 1390만㎢이고 빙상의 평균 두께가 1937m나 되기에 다 녹기도 힘들다. 만약 남극 빙상이 모조리 녹는다면 전 세계 해수면이 약 60m 올라갈 것이기에 사실상 인류 문명의 종말을 초래한다. 그렇다고 남극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해수면 상승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남극 얼음의 용융은 2006~2015년에 매년 해수면이 0.43(±0.05)mm 상승하는 데 기여했다. 과거에 비해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IPCC는 온실가스 발생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면(RCP 8.5) 2100년까지 지구의 해수면이 평균 0.84m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때 남극 빙상 용융의 상승 기여분은 0.12m로 추산됐다. 빙붕은 빙상의 연장으로 해안에서 바다 위로 뻗어 있는 두꺼운 얼음판이다. 남극대륙에는 총 15개의 주요 빙붕이 있다. 두께가 약 50~600m인 빙붕이 해안에서 수십~수백 km까지 펼쳐진다.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질량을 잃고 있는 빙붕은 남극대륙 서남극의 ‘스웨이츠 빙하’이다. 매년 500억 톤의 얼음이 녹아 전 세계 해수면 상승의 약 4%를 담당하기에 ‘스웨이츠 빙하’를 ‘종말의 날 빙하(doomsday-glacier)’라고 부른다. 최근 극지연구소(책임연구원 박태욱)와 일본 홋카이도대, 서울대 국제 공동 연구팀이 ‘종말의 날 빙하’의 붕괴 기작을 규명하는 등 ‘스웨이츠 빙하’를 살리려는 국제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종말의 날 빙하’가 하루아침에 녹아 없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북극과 남극에서 종말을 향한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적어도 북극곰과 황제펭귄 등 일부 펭귄 종에게는 그렇다. ‘종말의 날’이 사람은 피해서 갈까. 이미 인류에게 종말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너무 태평한 건 아닌지 걱정이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안치용의 비욘드 ESG] 북극 항로가 열린다 …지구 종말 카운트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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