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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8 T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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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주간
박승준 논설주간 gjgu7749@ajunews.com
  • - 아주경제 논설주간
    - (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지국장)
  • [박승준의 지피지기] 새로운 한중관계를 위한 역사 다시 읽기

    1394년 9월 조선 태조의 아들 이방원(李芳遠)이 조공 사절단을 이끌고 명나라 수도 난징(南京)에 갔을 때 일이다. 이 이야기는 박원호 고려대 사학과 명예교수(80)가 2002년에 펴낸 ‘명 초 조선관계사 연구’에 나온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이방원에게 뜬금없이 “앞으로 조공할 때 표문(表文)을 올리지 말라”고 했다. 표문이란 조선 왕이 중국 황제에게 조공을 보낼 때 그 이유를 적은 글이었다. 주원장이 이방원에게 앞으로 표문을 올리지 말라고 한 이유는 나중에 알아보니 이방원 일행이 올린 표문 속에 “괴이한 글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이방원 일행은 주원장에게 “사대(事大)의 예를 갖추는 데에는 표를 바침으로써 작은 정성이나마 전달할 수 있는데 어찌 표를 바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밖에는 다른 수가 없었다. 다음 해인 1395년 10월 다시 조선에서 조공 사절이 가서 표문을 주원장에게 올렸다. 주원장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죄하러 온 사신이 돌아가자마자 짐을 모욕하는 글이 또다시 올라오니 너희를 징벌할 수밖에 없다. 표문은 너희들이 쓴 것이 아니라 정도전(鄭道傳)이 썼을 터이니 정도전을 난징으로 오라고 하라.” 주원장은 조선 사절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그중 한 명을 조선으로 돌려보내 정도전을 데리고 오라고 억지를 부렸다. 조선 태조는 명나라에 “표문을 쓴 것은 정도전이 아니며 정도전은 현재 병이 깊다”고 알리면서 끝내 주원장의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 이 표전사건은 사건 발생 4년 만인 1398년 주원장이 조선 사절 3명을 처형한 뒤에야 가라앉았다. 조선과 명 초에 두 나라 사이에 가장 큰 문제였던 표전사건은 나중에 조선이 명 황제 주원장 주변에서 일어난 ‘문자의 옥(獄)’이라는 스캔들을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음이 밝혀졌다. 주원장은 명 앞의 왕조인 원(元)나라 말기 홍건적의 난 때 탁발승으로 유랑걸식하며 지내다가 명나라 황제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런 주원장은 황제에 오른 뒤 탁발승의 대머리를 상징하는 광(光), 독(禿)이라는 글자와 중을 가리키는 승(僧)은 물론 발음이 비슷한 생(生)이라는 글자, 홍건적 시절을 암시하는 적(賊)이라는 글자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조선 왕실이 그런 ‘문자의 옥’ 스캔들에 대한 정보에 어두워서 일어난 사건이 표전사건이었다고 박원호 교수의 ‘명 초 조선관계사 연구’는 밝혀 놓았다. 1392년 건국한 조선 왕조는 건국 후 503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다 1895년 청과 일본의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국망(國亡)의 길로 들어섰다. 1895년 4월 17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북양(北洋) 통상대신 리훙장(李鴻章)이 서명한 종전(終戰) 조약의 제1조는 ‘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독립국임을 인정하며, 조공 등 전례는 폐지한다’고 되어 있었다. 조선은 다시 10년 뒤인 1905년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체결한 포츠머스(Portsmouth) 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한다. 포츠머스 조약의 제2조는 ‘러시아 제국은 일본이 한반도에서 정치·군사·경제적인 이익을 소유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되어 있었다. 조선은 다시 5년 뒤인 1910년 전쟁 한번 벌이지 않고 일본제국에 병합됐다. 그로부터 82년이 흐른 1992년 8월 24일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사이에 체결한 ‘한·중 수교 공동성명’은 과거 조선과 명·청 간 조공관계와 비(非)대칭적인 관계를 넘어선 대등한 주권 국가 간 외교관계 수립을 분명히 한 조약이었다. 조약의 제2조는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유엔헌장의 원칙들과 주권 및 영토보전의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 평등과 호혜, 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선린우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에 합의한다’고 선포했다. 한반도와 중국 대륙 왕조들 사이에 천하 중심과 주변국 관계, 명과 청을 거치면서 확립된 조공 관계를 역사적으로 처음 완전히 털어낸, 주권 국가와 주권 국가 간 대등한 조약이었다. 조약의 제3조는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며,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되어 있었다. 제4조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도 확인했다. 한반도의 역대 왕조들과 중국 대륙의 역대 왕조들 간 관계는 중국 역사를 지배한 유교 철학에서 나온 화이론(華夷論)과 천하(天下) 체계에 따른 중심과 주변의 관계였다. 중국은 천하의 중심인 중화(中華)이고, 한반도의 왕조들은 변두리에 사는 오랑캐(夷)라는 구조였다. 그러나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재구성된 국제질서 아래에서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된 대한민국과 1949년 10월 1일 정부가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는 30년 전쟁 종전 이후 유럽 국가 간 관계를 정립한 1648년 베스트팔렌(Westphalen) 조약에 따른 주권 국가와 주권 국가의 독립적인 관계였다. 유엔 회원국들 사이의 현대적인 국가관계의 기본원칙은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주권 국가와 주권 국가의 관계는 국토의 면적과 인구의 많고 적음, 국력의 강약과 관계없이 대등한 관계라는 원칙이 적용된다. 1992년 8월 24일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체결된 한·중 수교 공동성명도 베스트팔렌 조약의 원칙에 따른 현대적인 국제관계다. 천하의 중심과 변두리 사이의 화이론은 이미 과거의 것이다. 대통령실 웹페이지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5일 페루 리마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자신의 한국 방문 계획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시 주석은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없었지만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윤 대통령의 방한 초청에 기쁘게 응할 것이라고 하고, 상호 편리한 시기에 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주기를 희망하였다.​” 대통령실이 전하는 시진핑의 말을 분석해 보면 ‘내년 경주에서 개최될 예정인 APEC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니 그전에 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주면 좋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2년간 1대 1에 가까운 정상(頂上) 방문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92년 9월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1994년 3월 김영삼 대통령 방중, 1998년 11월 김대중 대통령 방중, 2003년 7월 노무현 대통령,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 순서로 중국을 방문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1995년 11월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방한했고, 2008년 8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부산 APEC 참가차 방한했으며, 2014년 7월에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방한했다. 두 나라 정상들은 대체로 임기 내에 한 차례 상대국을 방문했고, 베이징올림픽이나 핵안보 정상회의 등 상대국에서 열리는 중요한 국제회의 참가차 방문했다. 상대국 정상과의 회담은 주로 APEC이 열리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부주석이던 2009년 12월에도 서울을 방문해서 정운찬 총리와 회담을 한 기록을 남겼다. 두 나라 외교당국 기록에 따르면 한·중 간 정상 방문은 해당 대통령이나 국가주석 임기 내에 한 차례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시진핑 주석은 부주석 시절에 서울을 한 차례 방문했고, 박근혜 대통령 시기에 국가주석으로서 서울로 정상방문을 한 기록을 남겼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은 내년 가을 경주 APEC 때 방한하게 되면 세 번째로 방한하는 셈이 된다. 윤 대통령이 내년 경주 APEC 이전에 방중하느냐 이후에 방중하느냐의 문제는 시진핑 주석 방한 기록으로 볼 때 엄격히 따질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페루 APEC 참석길에 들른 브라질에서 현지 신문과 서면으로 인터뷰하면서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 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말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며 특히 중국만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과거 명과 조공 관계를 맺고 있던 시절에 조선이 명 황제 주원장에게 갑질을 당한 표전사건을 생각하면 미국을 버리고, 중국만을 선택할 일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박승준의 지피지기] 새로운 한중관계를 위한 역사 다시 읽기
  • [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 정치 권력은 '피크' …통치 능력은 '의문'

    “시진핑의 권력은 이미 정점(頂点·Peak)에 도달했나?” 미국 정치학자 할 브랜즈(Hal Brands) 존스 홉킨스대 교수와 마이클 베클리(Michael Beckley) 터프츠대 교수가 2022년에 제시한 개념이 ‘Peak China(정점에 도달한 중국)’였다. 두 교수는 공동저서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Danger Zone : The Coming Conflict with China)>에서 '중국 경제의 성장세는 정점을 지나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Peak China’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2022년에 중국의 경제성장률과 출생률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자 피크 차이나(Peak China)라는 개념이 제시된 것이었다. 미 스탠퍼드 대학 후버연구소가 발행하는 중국 전문 온라인 계간지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 가을호에는 중국 경제에 관한 ‘Peak China’의 개념을 활용한 ‘Peak Xi Jinping’이라는 개념이 제시됐다. 중국 최고 권력자 시진핑(習近平)의 정치 권력이 이미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논리를 ‘Peak Xi Jinping’은 담고 있다. 논문의 필자는 미 스탠퍼드 대학 중국 정치경제 전문가 구오광 우(Guoguang Wu · 吳國光)로, 우 교수는 1980년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평론원으로 일하다가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인이다. 우 교수는 2020년 10월 중국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전례가 없는 3연임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이 정치 권력을 집중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의 통치능력(Governance Capability)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주장을 전개하면서 ‘Peak Xi Jinp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우 구오광 교수에 따르면, 시진핑 3연임 이후 중국경제성장률은 2.24%(2020년) > 8.45(2021) > 2.99(2022) > 5.20(2023) > 4.70 (2024. 1 ~ 6월)로, 2020년 3.71% 감소, 2022년 5.46% 감소, 2024년 1.5% 감소를 기록했다. 시진핑 정부는 2021년 6.25% 증가, 2023년 2.21% 증가를 기록했으나, 경제성장률이 감소한 해가 증가한 해보다 많았다. 물론 사이에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 끼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시진핑의 통치능력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기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시진핑이 주관하는 반부패 드라이브로 인해 처벌당한 관리들의 숫자도, 각급 검찰과 기율검사 기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600명에서 2022년 2300명으로 늘어났고, 2024년 올해의 경우 상반기에만 1만2400명이 처벌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의 반부패 드라이브에도 적발 건수는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 시진핑 자신이 말하는 ‘세계 중심 국가’의 대열에는 올라서지 못하는 부패 만연 국가라는 기억에서 인민들이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우 구오광 교수는 진단했다. 2012년 당 총서기에 취임한 이후 2022년 10월 3연임에 이르기까지 시진핑은 엄청난 크기의 정치 권력 강화를 이룩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보여준 통치능력은 집중된 정치 권력의 크기만큼 유효하지 못했다고 우 교수는 진단했다. 시진핑이 보여준 정치 권력 강화와 통치능력 사이의 괴리는 왜 발생하는 걸까. 그 이유는 중국공산당 정치의 특질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우 교수의 분석이었다. 현재의 중국공산당 정치구조로는 시진핑이 정치 권력을 강화할수록 통치능력은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모순적 현상은 이른바 당의 지도자가 정치 권력을 집중시킬수록 통치능력의 4가지 측면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네 가지 i’로 설명할 수 있는데 첫째, 정치 권력이 강화될수록 바닥에서 당의 결정권자들에게 전달되는 정보(information)의 흐름이 줄어들고, 당의 정치 권력 보유자들이 나누어 가질 인센티브(incentive)가 줄어들며, 이 때문에 당 내부의 정책 집행(implementation)이 더 많이 방해를 받게 되며, 결과적으로 당원들이 정책을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능력(initiative)도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 구오광 교수의 이런 역설적이면서도 모순적(paradoxical)인 진단은 시진핑 자신의 연설에서도 나타났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의 이런 내재적 문제점을 ‘당 관료들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웨이관 부웨이(爲官不爲)’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연설을 통해 지적해왔다. 시진핑은 지난달 26일의 ‘당면한 경제형세 분석을 위한 중앙당 정치국 회의에서도 “당원 간부들은 고수준의 경제발전을 위해 적극성과 창조성, 추동력을 발휘해야 하며 이른바 세 가지 무능력을 극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진핑이 극복을 촉구한 ’세 가지 무능력(三個區分開來)‘에는, 능력이 부족해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불능위(不能爲)‘와 일을 추진할 동력이 부족해서 일할 생각을 하지 않는 ‘불상위(不想爲)‘, 그리고 일을 담당할 용기가 부족한 ’불감위(不敢爲)‘가 있다면서, 시진핑은 이 세 가지 무능력의 극복을 촉구했다. 시진핑은 지난 7월 30일에도 당면한 경제형세 분석을 위한 정치국 회의를 소집해서 “형식주의의 극복”을 촉구하면서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는 우리 당의 고질병으로, 반드시 큰 힘을 모아 치료를 해야 하며, 당 중앙의 정책 결정 부서들은 ’최후의 1㎞‘를 간다는 정신으로 형식주의와 관료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진핑은 이 정치국 회의 직후에는 중국공산당의 결정을 전 사회로 확산시키기 위한 ’당외(黨外)인사 좌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중국공산당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시진핑 본인으로서도 처음으로 현 중국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고백을 했다. “당면한 우리나라 경제는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련의 곤란한 문제들에 부딪혔다. 물론 이 문제들은 발전과정이나 경제의 틀을 바꾸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로, 노력을 통해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우리는 발전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문제와 도전에 대처해서 중국 경제의 광명론(光明論)을 노래 불러야 할 것이다.” 중국의 정치와 경제를 중국 내부에서 관찰 보도하는 ’미국의 소리(VOA)’와 영국 BBC TV, 일본 닛케이(日經) 등이 만든 유튜브들은 시진핑 체제의 통치능력이 중국 경제 문제 해결에서 제대로 해결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에 대해 쩡칭홍(曾慶紅) 전 정치국 상무위원과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를 비롯한 당의 원로들이 시진핑에 대해 비판적인 충고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유튜브들은 특히 지난 8월 초순 시작된 허베이(河北)성 해변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시진핑이 참가한 회의가 열려 이 자리에서 시진핑이 당 원로들로부터 비판적인 충고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 원로들은 특히 시진핑의 정치 권력과 통치력이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지난 40년간의 중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감쇄시키는 점에 대해 집중 언급했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와 정치를 관찰하는 대만 유튜브들은 “1953년생으로, 71세가 된 시진핑이 74세가 되는 오는 2027년 가을의 제21차 전당대회에서 4 연임의 당 총서기에 오르기에는 건강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체중 과다로 인한 통풍을 앓고 있어 해외 정상방문을 할 때 비행기 트랩을 걸어 내려오는 모습을 종종 건너뛰는 불편함을 보여주는가 하면, 국내 시찰을 할 때도 걸음걸이가 불편해서 한쪽 다리를 끄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라고 한다. 이 때문에 오는 2027년 당 대회 때는 어떤 형태로든 후계자 지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 후계자 지정에서 1959년생으로 오는 2027년 68세가 되는 리창(李强) 총리가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다고 대만 유튜브들은 전망했다. 리창 총리는 베트남 공산당의 초청으로 지난달 12일부터 사흘간 베트남과 라오스를 공식방문했으며, 중국공산당 내부사정에 밝은 베트남 공산당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하노이를 방문했을 때와 같은 수준의 의전으로 리창 총리를 접대한 점에 대만 유튜브들은 주목했다. 대만 유튜브들은 리창 총리와 함께 1962년생으로 오는 2027년 65세가 되는 딩쉐샹(丁薛祥) 정치국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 국가주석판공실 주임도 시진핑의 후임으로 선출될 가능성을 제시하고도 있다. 이와 함께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과거 시진핑의 후계자로 지목해두었던 후춘화(胡春華)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 2027년 당 대회 이전에 복권되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복귀할 경우 시진핑의 3연임 정치는 폐지되고, 과거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 정치 권력은 피크 …통치 능력은 의문
  • [박승준의 지피지기] 현대판 실크로드와 중국인이 만드는 이탈리아 명품… "Made in Italy by Chinese"

    “Made in Italy by Chinese.”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더욱 유명해진 ‘명품 핸드백’ 크리스찬 디올 가방을 이탈리아에서 중국인들이 만들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탈리아 밀라노 법원은 지난 6월 10일 판결문을 통해 프랑스 브랜드 디올 가방 가운데에는 이탈리아 내 하청업체에서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의 노동착취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고 고발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밀라노 법원은 34쪽의 판결문을 통해 “이탈리아 내 하청업체들이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해서 디올 매장에서 2600유로(약 380만원)에 팔리는 핸드백을 원가 53유로(약 8만원)에 제작해서 넘겼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핸드백과 구두, 패션 의상 등 많은 이탈리아 명품들이 밀라노와 프라토(Prato)의 제조공장에서 합법적으로 이탈리아에 체류하고 있는 많은 중국인들의 손에서 제작되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 투스카니(Tuscany)주 최대 도시인 프라토는 19세기 들어 섬유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아 ‘이탈리안 맨체스터’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고대의 실크로드를 부활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를 2014년 공식 선포한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프라토시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08년 9927명이던 중국인 합법 체류자 숫자는 13년 만인 2021년 12월 31일 기준 2만7829명으로 3배로 불어났다. 프라토시 전체 인구가 2024년 1월 1일 기준 19만8034명인 사실에 비추어보면 프라토시 중국인 거주자의 비율은 지난 10여 년 사이에 급격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들 프라토시의 중국인 거주자들은 주로 파리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던 원저우(溫州) 출신 중국인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원저우 출신 중국인은 지난 6월 18일에는 프로토 시내 화교호텔에서 원저우시 원청(文成) 현 동향회를 열었고, 이 동향회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에 거주하는 화교, 화인(華人) 대표를 포함한 7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현지 중국 인터넷 매체가 전했다. 이 모임에는 패션 명품 업체 페라가모 총재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프라토시 부시장 페데리카 팔랑가(Federica Palanga)도 참석했다. 현재 프로토 시내 7000여 개의 명품 생산 업체 가운데 5000여 개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핸드백과 구두, 패션 명품 의상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100개 업체들은 중국인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프라토 상공회의소에 등록되어 있다. 프라토시의 중국인들은 2019년 총선에서 2명의 시의원을 당선시켜 정치적 배경도 마련 중인 것으로 진단된다. 프라토보다 먼저 1920년대부터 저장(浙江)성 원청현에서 출발한 이민자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밀라노에는 2011년에 중국인 숫자가 2만명을 넘겨 이탈리아 최대의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 명품 패션 브랜드와 가방 등 생산에 종사하는 밀라노 거주 중국인들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 바이 차이니즈(Made in Italy by Chinese)’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이들 밀라노의 중국인은 밀라노의 중심가 비아 파올로 사피(Via Paolo Sarpi) 노변에 중국어 간판을 단 헤어 살롱과 패션 부티크, 실크와 가죽 스토어에 여행사와 약국, 안마소가 보이는 거리 모습을 형성해 놓았다. 중국 사람들이 ‘탕런제(唐人街)’로 부르는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관영 영어신문 차이나 데일리 유럽판 편집실까지 자리 잡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일대일로’ 프로젝트 추진을 통해 이탈리아 진출을 강력히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탈리아가 과거 고대 실크로드의 서쪽 끝이었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실크는 중국 동쪽 장강(長江) 하구의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杭州)에서 생산되어 장안(長安·지금의 시안·西安)으로 옮겨져 실크로드를 타고 낙타에 실려 중앙아시아를 넘어 이탈리아 로마까지 판로가 개척돼 있었다. 고대부터 로마 황제와 귀족들이 입던 옷은 장강 하구에서 생산된 비단이었고 비단은 중국 역대 왕조들의 최고 수출품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탈리아 진출에 공을 들이는 또 다른 이유는 이탈리아가 유럽국가로 G7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탈리아와 교류함으로써 G7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이탈리아를 방문했다. 주세페 콘테(Giuseppe Conte) 총리와 정상회담하면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이탈리아는 고대 실크로드의 양쪽 끝에 위치해 있는 만큼 윈윈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일대일로 협력으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천경지의(天經地義·천지의 대의)에 따라 양국 관계를 건설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이탈리아와의 특수한 관계를 활용하기 위해 이탈리아 북방에 양국 교역 강화를 위한 항구를 건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주세페 콘테 총리는 “시진핑 주석의 이번 로마 방문은 중대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역사적인 기회를 잘 확보하기 위해 중국의 'One belt One road'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회담 후 두 나라 정상은 일대일로 사업 공동 추진을 위한 양해 비망록을 작성했다. 두 나라 정상은 역사를 통해 중국이 유실한 중국 문화재 796건을 전시한 박람회에 참석했다. 시진핑 주석은 연설을 통해 “15세기에 이탈리아 모험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실크로드를 넘어 중국과 유럽 문명의 교류 통로를 연 것은 중국과 이탈리아 우호의 교량을 건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4년 후인 2023년 12월 좌파 총리인 조지아 멜로니(Giorgia Melony)는 “이탈리아가 중국의 '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실수”라면서 일대일로 사업에서 탈퇴한다고 선포했다. 4년 전과는 달리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외교와 경제, 군사 분야에서 봉쇄정책을 전개하는데 G7 국가로서 자신들만 유럽에서 역행하는 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는 미국이 영국을 통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도록 가하는 압력 때문에 탈퇴한 것으로 진단됐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중국에 등을 돌린 시간은 얼마 가지 않았다. 탈퇴를 선언했던 멜로니 총리는 7개월 만인 지난 7월 29일 시진핑 주석의 초청으로 베이징(北京)을 방문했다. 멜로니 총리는 중국과 이탈리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체결한 20주년 기념과 마르코 폴로 사망 700주년을 기념해서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과 마주 앉았다. 시진핑은 멜로니 총리에게 “중국과 이탈리아는 과거 실크로드의 양쪽 끝에 위치해서 동서 문명 교류와 인류사회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면서 “양국이 정세 변화가 심한 국제사회에서 실크로드 정신에 따라 협력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멜로니 총리는 “두 나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 20주년과 마르코 폴로(1254~1324) 서거 700주년을 맞아 국제 정세가 심각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고 문명국 간에 협력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하고 “전기차 분야와 AI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시진핑과 멜로니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수립 20주년을 맞아 2027년까지 두 나라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계획’에 서명했다. 두 나라는 이 행동계획을 통해 금융과 과학기술, 기후변화 대처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 3월 이탈리아와 중국은 13세기 유럽에서 중국 대륙으로 처음 여행을 한 모험가 마르코 폴로 사망 70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를 공동 주최로 개최했다.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 공화국 출신으로 1272년부터 1292년까지 20년간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와 중국에 관한 각종 문물을 소개했다. 베니스에서는 지난 8월에도 마르코 폴로 기념 전시회가 열려 마르코 폴로가 직접 필사체로 쓴 ‘동방견문록’을 전시했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중국 여행기에서 쑤저우(蘇州)를 '동방의 베네치아'라고 불러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실크로드의 동쪽 끝을 소개했다. 이처럼 ‘실크로드 정신’을 강조하며 서로 가까워지는 중국과 이탈리아는 프라토와 밀라노 등 이탈리아 명품 생산도시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이민을 늘어나게 해서 'Made in Italy by Chinese', 중국인이 생산하는 이탈리아 명품 생산의 비중을 점점 높여 가는 추세를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전기자동차와 드론, 백색가전, 양자 컴퓨터, 우주산업 등에 이어 지구촌의 패션 명품 시장까지 생산 점유율을 높여 갈 태세다. <로마·밀라노·베네치아=박승준 논설주간>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박승준의 지피지기] 현대판 실크로드와 중국인이 만드는 이탈리아 명품… Made in Italy by Chinese
  • [박승준의 지피지기] 뜨는 싱가포르…저무는 홍콩

    1997년 7월 1일 오후 1시 30분 홍콩 컨벤션 앤 엑시비션 센터(香港會議展覽中心),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전 세계를 향해 선포했다. “홍콩이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중국 인민들이 침략당한 1백년의 국치를 설욕하고, 홍콩과 조국 내지(內地) 공동 발전의 신기원을 연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27년, 홍콩은 ‘동방의 진주(東方之珠)’로서의 빛을 잃어가고 있고, 홍콩에서 남서쪽으로 2500㎞ 떨어진 싱가포르의 빛이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싱가포르는 홍콩, 한국, 대만과 함께 NICS(New Industrializing Countries)로서, 서양 사람들의 입에 ‘네 마리의 호랑이(Four Tigers)’라고 오르내리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큰 용이 될 것이라는 뜻에서 ‘네 마리의 작은 용(四小龍)’이라고 불렀다. 이 가운데서도 싱가포르와 홍콩은 함께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해서, 영어가 통용되는 데다가, 영국이 세워놓은 ‘법치(Rule of Law)’에 따른 상거래 보호가 잘 된다는 점에서 자유무역 중계지로서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세계은행(World Bank) 통계에 따르면,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넘겨받은 직후인 2000년 홍콩의 GDP는 1716억7000만 달러(current $ 기준)였고, 싱가포르는 960억8000만 달러로 홍콩의 경제 규모가 싱가포르의 2배에 가까운 규모였다. 1인당 GDP도 홍콩이 2만5756달러로 싱가포르의 2만3852달러보다 약간 앞서있었다. 인구는 홍콩 666만5000명에 싱가포르는 402만7877명으로 홍콩이 다소 많았고, 외국인 직접 투자(FDI)도 홍콩이 GDP의 41.1%였던 데 비해 싱가포르는 GDP의 16.1%에 불과한 규모로, 여러 가지 면에서 홍콩이 싱가포르를 앞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른 2023년 현재 싱가포르가 모든 면에서 홍콩을 앞지르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GDP는 홍콩 3820억5000만 달러에 싱가포르는 5014억3000만 달러, 1인당 GDP는 홍콩 5만696.6달러에 싱가포르는 8만8428달러로 격차가 벌어졌다.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도 홍콩이 41.1%에서 34.1%로 줄어든 반면. 싱가포르는 16.1%에서 29.8%로 비중이 커졌다. 현재 인구는 홍콩이 753만6100명, 싱가포르는 591만7648명으로 홍콩이 다소 많은 정도다. 그러나 이런 하드웨어적인 수치 말고 법제와 사법 시스템이 보장하는 경제자유도라는 기준에서 홍콩과 싱가포르 사이에는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전 세계 지역과 국가들의 경제 자유도를 조사해 온 캐나다 몬트리올의 프레이저 연구소(Fraser Institute)의 조사 결과, 홍콩과 싱가포르가 60여 년간 유지해 오던 홍콩 우위의 질서가 지난해에 처음으로 역전됐다. 사법의 독립 정도, 법원의 독립성, 사법적 통일성, 정치적 자유도 등을 측정한 수치에서 프레이저 연구소는 지난해에 사상 처음으로 “싱가포르가 홍콩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유경제지역(World’s freest economy)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제적 자유도가 변하는 사이에 홍콩과 싱가포르에 설립된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 사무소의 숫자도 변화했다. 지난 2월 발표된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싱가포르에는 4200개의 다국적 기업 아시아 지역본부가 설립돼 있고, 홍콩에는 싱가포르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336개의 다국적 기업 아시아 지역본부가 설립돼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자동차 제조사 롤스로이스와 제너럴 모터스가 아시아 지역본부를 설립해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인터넷 플랫폼 기업인 틱톡과 쉬인도 싱가포르에 아시아 지역본부를 설치했으며, 알리바바와 화웨이는 싱가포르 사업 규모를 확장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다국적 기업들은 싱가포르의 법인세율이 17%로, 홍콩의 법인세율 16.5%보다 다소 높지만,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13.5%까지 낮춰주는 탄력적인 법인세율 정책의 수혜자가 되는 것을 겨냥해서 싱가포르에 아시아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고 지난 2월 22일 발표된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보고서는 진단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개혁개방 정책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1997년 사망)과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가 1979년에 합의한 홍콩 반환 원칙에 따라 1997년 7월 1일에 실현된 홍콩의 주권 반환 당시 발효한 ‘홍콩기본법(Hong Kong Basic Law)’의 정신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One Country Two Systems)’ 원칙에 따라 발효한 홍콩 기본법 제5조는 “홍콩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최소 50년 동안 변동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돼 있었으나 이 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주권 반환 후 50년의 절반도 안 지난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국가안전 유지법’과 2024년 3월에 홍콩입법회가 통과시킨 ‘국가안전수호 조례’는 홍콩의 자유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자유경제 체제 유지에 필수적인 ‘법의 지배(Rule of Law)’가 무력화됐다. 자유경제 체제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인 공정한 사법 적용 원칙이 무너지면서 홍콩에는 이른바 ‘퉁로완(銅鑼灣) 서점 사건’이 발생해서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게 됐다. 이 서점 관계자 5명이 지난 2015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실종됐다가 보름 또는 3개월 후에 중국으로 납치된 것으로 밝혀져 홍콩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서점이 출판 판매하려던 ‘시진핑과 여섯 명의 여인(Xi and Six Woman)’, ‘시진핑의 애인들(The Lovers of Xi Jinping)’은 결국 출판 판매되지 못했다. 이 퉁로완 서점은 홍콩에서 문을 닫고 현재는 대만 타이베이(臺北)로 이전해서 개업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新聞)가 타이베이발로 전했다. 홍콩이 가장 자유로운 자유경제 지역의 지위를 상실한 것은 중국 내 정치 상황의 변화 때문이다. 2020년 10월 24일 중국 최초의 인터넷 플랫폼 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云)이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한 금융 심포지엄에 나가 “중국의 은행들은 전당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한 뒤 실종됐다. 이후 마윈은 실종 상태에 빠져있다가 2년 후 알리바바와 지주회사 앤트 그룹의 지배권을 상실했다. 2022년 10월 16일 개막된 제20차 중국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대의 정치 규칙인 3연임 금지를 깨고 당 총서기 자리에 눌러앉는 정치적 사건을 만들어냈고, 시진핑의 3연임을 전후해서 중국 정치에는 ‘공동부유(共同富裕)’ 같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정치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의 그런 분위기를 피해 많은 중국 부자들이 싱가포르로 탈출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지난해 2월 27일 “2022년 말까지 싱가포르에는 약 1500개로 추정되는 중국 부자들의 개인사무소가 싱가포르에 문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는 AMCHAM(주한 미 상공회의소)이 지난 3월 국제적인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아시아지역 본부 설치 선호도 조사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도시인 것으로 조사됐다. 약 5000개의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본부를 싱가포르에 설치하는 것으로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고, 홍콩은 1400개 정도의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본부 설치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에 아시아 지역본부 설치를 희망하는 다국적 기업은 거의 없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본부 설치를 희망하면서 고려하는 사항은 지정학적 역동성, 공급망의 탄력성, 비즈니스와 생활 비용, 시장의 근접성, 조세 부담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홍콩에서 탈출한 중국의 부(富)가 향하는 곳이 대부분 싱가포르이지 한국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한국의 비즈니스 조건을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AMCHAM은 충고한 것이다. 요즘 우리의 사법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점이나, 정치인과 관리들이 부패한 정도도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본부 설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고려 요소라는 점을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아시아의 금융허브였던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2000년 10월에 개봉한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영화가 있었다. 남자 주연은 룅치우와이(梁朝偉·Leung Chiu-Wai)에 여자 주연은 쵱만육(張曼玉·Cheung Man-Yuk)이었고, 두 배우 모두가 1960년대 초에 홍콩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성장한 홍콩사람이었다. 이 두 배우의 이름을 요즘 중국사람들은 ‘맨더린(Mandarin·北方官話)’이라는 중국 표준어 발음으로 ‘량차오웨이(Liang Chaowei)’와 ‘장만위(Zhang Manyu)’라고 부른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 홍콩에 거주했던 필자에게는 서양사람들이 ‘캔토니즈(Cantonese)’라고 부르던 광둥어(廣東語) 발음으로 두 남녀 주인공의 이름을 들어야 그 이미지가 제대로 떠오른다. “꽃 같은 시절”이라는 영화제목처럼 룅치우와이와 쵱만육 두 배우는 몸에 착 달라붙는 재킷과 치파오를 입고 홍콩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숨막힐듯한 홍콩의 40대 기혼남녀의 불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피해 싱가포르로 도망간다. 이 두 배우가 영화 속에서 만나던 호텔 방번호는 ‘2046’이었다. 1997년부터 일국양제(一國兩制)로 보존되는 50년의 마지막 해가 2046년이다. “Are you Chinese?”라고 물으면 “No, I’m Hong Kong people”이라고 대답하던 홍콩사람들이 빚어내던 화양연화 같은 홍콩의 기억은 아무래도 2046년이 채 되기도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판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박승준의 지피지기] 뜨는 싱가포르…저무는 홍콩
  • [박승준의 지피지기] 동북아 '신냉전' 시대 … 한·중·일 '3국 협력' 강화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다. 조약의 제4조는 이른바 ‘자동개입 조항’이었다. “쌍방중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 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북한 김정은과 러시아 푸틴이 체결한 이번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은 63년 전인 1961년 7월 6일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을 재현한 것이다. 이 조약은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북한의 김일성 내각 수상이 모스크바에서 서명한 조약이다. 이 조약의 제1조에는 “체약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련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1961년에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상호원조 조약과 이번에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의 차이점은, 이번에 체결한 조약에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과 러시아의 국내법에 준하여’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는 조항이 추가돼있다는 점뿐이다. 유엔헌장 제51조는 유엔 회원국인 국가에 무력 공격이 이뤄질 경우 이에 대해 집단 자위권을 포함한 자위권을 행사할 권리를 규정한 조항이다.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체결을 발표하자 우리 외교부는 24일 미국 일본 정부와 공동으로 ‘러·북 협력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 계기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체결을 통해 강조된 러·북 파트너십의 발전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국제 비확산 체제를 준수하며,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의 잔인한 침략에 맞서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는 것을 지원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중대한 우려 사항”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러 전략동반자 조약 체결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반응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린젠(林劍) 외교부 대변인은 6월 20일 “우리는 관련 보도에 주목하고 있으나, 이 문제는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쌍방 협력에 관한 일이므로 논평하지 않겠다”고 발을 뺐다. 이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일관된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은 각 당사자들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며, 각 당사자들은 이를 위해 건설적인 노력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린젠 대변인의 논평은 북·러의 동반자 조약 체결에 대해 중국은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반응이었다.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대학원 스인훙(時殷弘) 교수는 미 뉴욕타임스 6월 23일자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조선이 체결한 조약은, 중국 입장에서는 이 지역의 대립과 갈등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와 북한의 조약 체결은 중국에게는 새로운 두통거리(Russia and North Korea pact is a new headache for China)’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그렇게 전했다. 중국 정부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북·러 조약에 대해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여준 것은 현재 중국이 서있는 외교적 입지 때문이다. 푸틴은 2년 전 2022년 2월 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 베이징을 방문해서 시진핑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무제한(無上限 · No limits)’ 협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푸틴은 시진핑과 무제한 협력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불과 20일 만인 2월 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중국은 그때부터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제재를 받게 됐다. 이후 시진핑은 지난해 11월 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 ‘군사적 소통’을 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이 가하는 제재압력에 숨통을 열어놓았다. 그런데 7개월 만에 김정은이 푸틴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63년 전의 ‘조소 우호협조 상호원조 조약’을 재현하기로 하자 미국과 유럽이 가해오는 외교적, 경제적 제재압력을 완화해 보려던 시진핑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더구나 지난 5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에 참가한 리창(李强)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함께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을 재확인했다. 중국으로서는 미·중 간의 정치적, 경제적인 갈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 일본과 협력을 다짐하는 정상 간 공동선언을 해놓은 흐름을 불과 한 달 뒤인 6월 19일 평양을 방문한 푸틴과 김정은 사이에 63년 전의 자동개입 조항을 포함하는 북·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회복하는 성명이 발표된 사실이 내심 달갑지 않은 것이다. 중국에게는 미·중 관계와 중·러 관계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 GDP의 24%를 차지하고 총무역액의 20%를 담당하는 한·중·일 3개국 협력 관계도 못지않게 중요한 상황이다. 더구나 한·중·일 3개국과 동남아 12개국이 참여하는 RCEP(Regional Comprehensive Partnership)에서 총 GDP의 83%, APEC(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참여국가들 총 GDP의 40%를 담당하는 한·중·일 3개국 협력은 중국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협력 관계라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점에서 현재 동북아의 역학 구조를 북·중·러와 한·미·일 사이의 신냉전이라고 단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1990년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붕괴하기 이전 이념을 바탕으로 한 냉전(Cold War) 체제와 현재의 이른바 ‘신냉전(New Cold War)’ 체제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한·중·일 3개국 협력 체제의 비중이 과거보다 현저히 높아져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현재의 중·러 협력 관계에는 과거 냉전 시대의 이념적 공통점도 결여돼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중·러 협력관계에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도미노 압력에 저항하는 시진핑과 푸틴 사이에 반(反)민주주의 전제주의라는 공통점은 있으나 과거 소련과 마오쩌둥(毛澤東)의 극좌적 이데올로기 공유는 없는 상황이다. 시진핑은 1953년생으로 중국공산당이 “소련의 오늘은 중국공산당의 내일”이라면서 소련의 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그대로 카피하던 시절에 태어나 성장한 배경을 갖고 있다. 푸틴은 KGB 출신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붕괴를 보면서 레닌과 스탈린에 의한 전제주의 통치를 비난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특히 레닌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문제의 원인을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현재의 중·러 협력은 과거 냉전 시대에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는 중·소 협력시대의 체제와는 기본 성격이 다른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중 갈등관계의 하부구조인 한·중관계라는 양자(兩者)관계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과거 냉전시대에는 없던 한·중·일 3개국 협력관계라는 3자 관계를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현재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한·중 관계의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 한·중 관계는 정치외교적으로는 갈등 관계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 보완의 관계라는 점을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중·일 3국협력은 현재 정상회의를 중심으로, 21개의 장관급 회의와 70개 이상의 각종 협의체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갈등하는 미·중 관계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한·중 관계를 제로섬(Zero Sum) 관계로 보지 않으려는 시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최근 한·중·일·미·러 외교일지 > 2022년 2월 4일 시진핑·푸틴 베이징 선언 ‘무제한 협력’ 확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2023년 8월 18일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 2023년 11월 15일 바이든 · 시진핑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군사적 소통’ 확인 2024년 5월 27일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 동북아 평화 유지 합의 2024년 6월 19일 푸틴 · 김정은 평양 정상회담. 자동개입 조항 포함 전략적 동반자 관계 복원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박승준의 지피지기] 동북아 신냉전 시대 … 한·중·일 3국 협력 강화해야
  • [박승준의 지피지기] 32년 전 한국의 배신과 'TSMC와 AI' 대만의 도약

    엔비디아(NVIDIA)를 대만 사람들은 후이다(輝達)라고 부른다. 음역을 한 것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황런쉰(黃仁勳)’이라는 한자 이름으로 부른다. 황런쉰은 15일간의 대만 방문을 끝내고, 8일 밤 8시 31분 캐나다 봄바디 에어로 스페이스가 제작한 개인 전용기 편으로 타이베이(臺北) 쑹산(松山) 비행장을 떠났다. “올해 안으로 또 오겠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대만 미디어에 따르면, 대만을 방문한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5월 29일 타이베이 북쪽의 오마카세 일식당에서 대만 과학기술업계 인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만찬은 3시간 동안 이어졌으며, 황 CEO 부부와 모리스 창(장중머우 · 張忠謀) TSMC 창업자 부부가 참석했다. 이들은 만찬을 마치고 황 CEO 제안으로 타이베이 8대 야시장 가운데 하나인 닝샤(寧夏) 야시장을 방문해 대만식 굴전 등 야식을 즐겼다. 오랜 미국 생활 끝에 귀국해서 TSMC를 창업한 모리스 창의 부인은 “90대인 남편의 야시장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만 사람들이 타이지디엔(臺積電)이라고 부르는 TSMC는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독점 생산하고 있다. “…대만은 이미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들어섰습니다. 미래 세계를 전망해 보면, 반도체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고, AI의 파도가 밀려올 것입니다. 현재 대만은 선진 반도체 생산공정을 장악해서 AI 혁명의 중심에 섰습니다. 대만은 전 세계 민주국가 산업 공급망의 중요한 고리로, 세계 경제의 발전과 인류 생활에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주게 될 것입니다. …” 지난달 20일 대만 제16대 총통으로 취임한 라이칭더(賴淸德)는 취임사에서 대만을 ‘반도체와 AI의 나라’의 중심에 세우겠다고 대만 국민들에게 다짐했다. 라이칭더 총통은 4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에 참석해서는 "슈퍼컴퓨터를 대만에 설치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라이 총통은 "AI는 대만 경제 발전의 추진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AI가 대만의 경제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32년 전인 1992년 8월 24일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했다. 1882년 조선과 청나라가 외교교섭을 시작한 지 110년 만이었다. 이 날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서울 명동 중화민국대사관 뜰에서 열린 청천백일기 하강식에 참석한 대만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흐르게 했다. 청천백일기 하강식이 끝나고 김수기 대사가 연단에서 내려오자, 보도진이 소감을 물었다. 진수지(金樹基) 대사의 대답은 "We shall come back(우리는 돌아올 것)"이었다. 현재 우리는 대만과 대표부를 설치해 두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우리 외교가 미국과 일본으로 기울어지면서 중국 외교당국의 우리에 대한 언급과 지적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우리가 미국, 일본과 외교 행동을 함께하는 경우에도 미국, 일본과 함께 싸잡아 비난을 한 뒤 한국에 대해서는 별도의 비난을 추가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한·미·일 3국이 외교부 차관과 국방차관들 사이의 2+2 회담을 한 뒤에는 더욱더 길고 날카로운 반응을 내놓았다. “한국과 미국, 일본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당사자도 아니면서 중국과 역내 국가들 사이의 해상 항해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이 손짓발짓(指手畵脚) 다 하면서 말해도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의 확고한 반대는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반복적으로 “미국, 일본과 함께 대만 문제에 대해 제멋대로(說三道四) 지껄이고 있다.” 이는 중·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두 나라 관계의 발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면서 불편한 속내를 보여주었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여서 “우리는 한국이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고 행동을 신중하게 할 것(謹言愼行)을 촉구한다”고 불쾌해하면서 “실제 행동으로 중·한 관계의 대국(大局)을 잘 지킬 것을 촉구한다”면서 불편한 속내를 보여주었다. 지난해 2월에는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와 지역 안전과 번영에 불가결한 요인”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서는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므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不容置喙)”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험한 말을 내던지기도 했다. 32년 전에 한·중수교를 하면서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이 서명한 ‘한중수교 공동성명’ 제3항은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하여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되어있었고, 제5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되어있었다. 이 두 조항은 서로 상대방에 대해 상호 의무를 지는 조항으로 구성돼 있었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중국이 유일 합법정부이고,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는 대신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의무 조항으로 밝혀놓았다. 그러나 수교 후 32년이 흐르는 동안 중국은 우리에게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라고 항상 엄중하게 촉구하면서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의무는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자세는 확고한 반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는 대체로 망각한 듯이 처신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 외교당국도 망각한 듯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하는 중국의 의무에 대해서는 중국 측에 별로 지적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대만은 2022년 현재 2300만 인구에 1인당 GDP 3만3000달러가 넘는 경제적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세계 1위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를 보유하고 있고, 최근 들어서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AI 기업 NVDIA의 CEO 젠슨 황은 자신의 출생지인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 TSMC와 전면적인 협력을 할 의사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대만이 보여주는 변화는 현재 대표부 상호 설치 정도에 머물러 있는 한국과 대만 외교교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이제는 우리 외교도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받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도 일본 외교처럼 중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대만에 대해서도 분명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스 : 대만 신임 총통, 부총통 프로필> 제16대 총통 라이칭더(賴淸德)는 1959년 10월 6일생. 65세. 총통 겸 국가안전회의 주석. 부총통, 행정원장, 타이난(臺南)시 시장, 입법의원 역임. 타이베이 시립 건국고급중학 출신. 타이완대학 보건의학과 학사, 2003년 미 하버드대 공공위생학 석사, 2010년 타이난(臺南)시장에 당선, 국민대표 의원 겸 입법위원 역임. 부총통 샤오메이친(蕭美琴)은 1971년 8월 7일 일본 고베(神戶)에서 출생, 53세. 타이난(臺南)시에서 성장. 부모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서 미 텍사스 몽클레어 고교 거쳐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석사 취득. 주미 대만 대표, 국가안전위원회 자문위원. 민주진보당 국제사무부 주임, 4선 입법위원 역임 후, 출마 위해 외교부 사직 후 부총통 당선.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박승준의 지피지기] 32년 전 한국의 배신과 TSMC와 AI 대만의 도약
  • [박승준의 지피지기] 3중전회 7월 지각개최 … 중국 공산당에 무슨 일이?

    지난 4월 30일 중국 관영 중앙TV는 “오늘 개최한 정치국 회의에서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 회의를 오는 7월에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톱뉴스로 보도했다. “정치국 회의는 중앙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이 주재했다”고 아울러 전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임기는 5년이다.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는 5년에 7차례 정도 개최된다. 중앙위원회는 정 위원 205명에 후보위원 171명을 더해 모두 376명으로 구성된다.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는 중국공산당이 개최하는 회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회의로, 정 위원과 후보위원 모두가 참석한다.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 가운데에서도 제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3중전회)는 당대회(전국대표대회) 기간에 열리는 1차와 2차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새로 선출된 중앙위원 전체가 처음으로 모여 당의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를 논의하는 관례를 지난 46년간 지켜왔다. 1978년 12월에 열린 제11기 3중전회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 동지가 내린 지시와 결정은 무엇이든 옳다”는 ‘양개범시(兩個凡是)’의 관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개혁·개방’을 당의 중심사상으로 채택했다. 1984년 10월에 열린 제12기 3중전회에서는 ‘계획적 상품경제’를 도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대체로 5년마다 한 차례씩 10~12월 가을에 개최된 3중전회에서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농촌 토지 소유제 개혁’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제도 완비’ 등 굵직굵직한 개혁 과제들을 채택해 왔다. 그러는 사이 중국의 경제체제는 마오쩌둥 시대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변화해 왔고, 1990년대 들어서는 연평균 10% 안팎의 고도성장을 이룩해 왔다. 그러나 2012년 11월 시진핑이 당 총서기로 선출된 이후 2018년 가을에 열려야 정상인 제19기 3중전회는 10개월을 앞당긴 2018년 2월에 개최됐다. 19기 3중전회는 ‘당과 국가 기구 개편의 심화’ 안건을 채택했고, 이어서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헌법에서 국가주석의 3연임을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시진핑의 3연임 시대를 열어놓았다. 2018년 가을에 열려야 할 19기 3중전회를 앞당겨 2월에 개최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2022년 10월에 개최된 전당대회에서 중국공산당 사상 첫 3연임 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 앞길을 가로막을 사람이나 세력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40년 넘는 관례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지난해 가을에 20기 3중전회를 개최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20기 3중전회는 개최되지 않았고, 베이징발 로이터 통신은 “이에 대해 중국공산당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가을에 개최되었어야 할 20기 3중전회는 왜 지난 40여 년간의 관례를 무너뜨리고 10개월이 지난 오는 7월에 개최된다고 고지됐을까. 이와 관련해 2022년 12월 30일 주미 중국대사에서 외교부장으로 발탁된 친강(秦剛) 사태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2023년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무위원으로 승격된 뒤 4개월 만인 7월 25일 중국 관영 중앙TV는 “최고 입법기구인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이날 긴급회의를 열어 친강 국무위원을 면직하고 왕이(王毅) 정치국 위원을 신임 외교부장으로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친강은 현재도 중앙위원 자격은 박탈되지 않았고, 정 위원 205명 가운데 한 명으로 올라 있다. 정부인 국무원에서는 직위가 정리됐지만 당에서는 아직 정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시진핑이 지원하는 늑대(戰狼) 외교의 상징 인물이던 친강은 지난해 6월 25일 베이징에서 스리랑카·베트남 외교부 장관, 러시아 외교차관과 잇따라 회담한 것을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친강의 행방은 벌써 1년 가까이 일절 알려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베이징 주재 외국 특파원들은 “아무도 친강의 행방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 이유는 오직 한 사람(시진핑) 때문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장이 갑자기 실종되고, 1년 가까이 아무런 공식 설명이 없는 것은 아무래도 비정상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친강 외교부장 실종에 이어 3개월 후인 지난해 10월 24일 중국중앙TV는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6차 회의를 열어 리상푸(李尙福) 국방부장을 면직했다고 발표했다. 전인대는 리샹푸 국방부장 면직 사유를 밝히지 않았고, 중국중앙TV는 친강 전 외교부장이 이날 국무위원직에서 해임됐다고 보도했다. 리상푸 국방부장은 지난해 8월 29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평화 안보 포럼 참석 이후 50일 이상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체 학습과 국경절 리셉션 등 주요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아 부패 혐의로 실각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는 지난해 7월 말 리위차오(李玉超) 로켓군사령관이 전격 경질된 뒤 군 납품 관련 부패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베이징에 나돌았다. 친강 외교부장과 리상푸 국방부장에 앞서 샤오야칭(肖亞慶) 공업정보화부 부장은 2022년 7월에 부패 혐의로 실각했고, 지난해 7월에서 12월 말 사이에 인민해방군 장성 9명이 전인대 대표직을 박탈당한 뒤 직위해제됐다. 직위해제된 장성 9명 가운데 5명은 로켓군 소속이었다고 미국 스탠퍼드대학 소속 중국정치 전문가 우궈광(吳國光) 박사가 중국 전문 인터넷 계간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China Leadership Monitror) 2024년 봄호에서 공개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학생시위에 참여했던 당 기관지 인민일보 기자 출신인 우궈광은 “시진핑은 마오쩌둥 시절 핵무기 개발과 위성 발사를 가능하게 했던 거국체제(擧國體制)를 본떠 군인과 테크노크라트 출신들을 발탁해서 ‘신형 거국체제’ 형성을 꿈꿨으나 부패의 만연으로 통치체제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게 됐다”고 분석했다. 시진핑은 나름의 통치시스템을 형성하기 위해 칭화(靑華) 후배인 계량경제학 전공인 경제학 박사 장궈칭(張國淸·60)을 부총리 겸 정치국원으로 발탁했고, 같은 칭화대 후배로 핵반응 원자로 전공인 리간제(李干杰·60)를 정치국원 겸 당 서기처 서기 겸 조직부장이라는 중책을 맡겨 놓았다. 시진핑은 자신의 3연임을 결정한 2022년 말 20차 당대회에서 이들을 발탁하면서 이들 테크너크라트들을 활용해 견고한 통치체제 형성을 꿈꾸었던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 우궈광의 진단이다. 그러나 군과 정부의 중요 조직을 관장하는 테크너크라트들이 친강 외교부장의 실각을 시작으로 줄줄이 부패에 연루되어 실각하면서 겉으로는 견고해 보였던 시진핑의 통치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시진핑의 통치체제는 현재도 외형상으로는 견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진핑은 3연임을 결정한 2022년 20차 당대회 이후 2023년 가을에 개최해야 할 3중전회를 개최하지 못하고 중국공산당 역사에 전례가 없는 7월 한여름 개최라는 이변을 연출하게 됐다. 이런 통치체제의 불안정은 2022년에 그 겉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을 제대로 못 하는 원인으로 작용해서 미국에 대한 GDP 추격 전선에서는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2021년 중국 GDP는 17조759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 GDP 23조5940억 달러 대비 75.3%까지 추격했다가 2022년에는 미국 GDP 25조7440달러 대비 70.3%에 해당하는 18조1000억 달러로 후퇴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2022년 가을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보한 시진핑 체제는 잇단 인사 실패에도 불구하고 외형적으로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통치 거버넌스의 실패로 금이 가고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물론 중국 경제는 현재도 1978년 이후 40여 년간 지속된 덩샤오핑 체제가 남긴 민간 분야의 활기와 외국 자본 도입, 대외무역을 통해 올해 5% 성장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시진핑이 이끄는 통치체제 내부에는 금이 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박승준의 지피지기] 3중전회 7월 지각개최  … 중국 공산당에 무슨 일이?
  • [광화문 토크]  "국가흥망 결정하는 건 국민"

    아주경제신문은 오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2009~2010년 제40대 대한민국 총리를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77)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박승준 논설주간, 구동현 기자, 남궁진웅 기자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신림동에 있는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진행했다. 인터뷰에서 정운찬 이사장은 “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 투표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으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므로 투표를 하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라면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잘하면 좀 더 질서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거짓말하는 후보, 헛소리하는 후보에게 표를 안 주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번 총선의 역사적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저는 지금 우리나라는 무질서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오는 10일 제22대 총선 투표를 잘하건 못하건 무질서가 다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개선되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각 정당 대표들 하는 걸 봤더니 진짜 무질서예요. 거짓말하고, 뻔뻔하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죄의식이 없고, 피의자를 넘어 범법자인 데다 아무런 개념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후보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하고, 짧은 지식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아무리 잘 뽑아도 이 무질서가 질서로 금방 회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소 질서를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크게는 안 바뀔 듯합니다. 각자가 투표를 잘하면 질서를 찾는 데 좀 도움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관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우리 주위에 지금 투표를 안 하려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마당에 우리가 해야 할 거는 투표하는 거지요. 투표하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에 누구나 유권자들은 다 가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좀 더 의식을 가지고 가자, 내 투표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 나라의 흥하고 망함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영어로는 'People have the government they deserve'라는 말이 있지요. 그럼 어떻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그 다섯 가지 부류 사람들한테는 찍지 말자는 것입니다." -최근 기고에서 “산업화의 성공이 민주화로 이어져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평화적 정권 교체는 잘 이뤄지고 있는데 제도로서의 민주화와 의식의 민주화는 잘 정착되지 않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어릴 때 프랭크 스코필드(1889~1970) 박사한테 인격 형성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지목했지만 스코필드 박사는 '부정부패를 안고서는 절대 발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교육 혁신, 사회 혁신, 정치 혁신인데 정치 혁신은 아직 쉽게 이루기는 자신 없고, 부정부패를 없애는 게 중요한데 현재 부정부패가 너무 많아요.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속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너무 부만 추구하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한다, 애를 낳는다 이런 가치도 큰 가치인데, 결혼하고 애 낳고서는 내가 저축도 못하고 집도 못 살 텐데 하는 생각 때문에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조직이 다양해져야 합니다. 조직이 다양하다고 하는 것은 여러 부류의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잘 안 되는 이유는 어떤 조직이든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끼리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 전체도 다양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들도 다양해서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게 지금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그걸 극복하려고 서울대 총장(2002~2006) 때 지역 균형 선발제를 했어요. 지역 균형하고 다음으로 계층 균형을 하고 싶었는데 지역 균형도 너무 힘들어서 계층 균형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다양한 사회 속에서 가치 추구의 다양성이 있어야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불균형 성장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격차와 계층 간 양극화를 조성했다고도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계층 간 양극화를 어떻게 넘어서야 하겠습니까. "결국 양극화는 선 성장, 후 분배 정책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양극화를 극복하는 방법이 뭐 없을까 해서 제가 이익공유제 같은 것들을 말해 놓았습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선정, 그다음에 정부 발주도 대기업을 통해서 중소기업으로 가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는 방식도 말해 놓았습니다. 중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을 키워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교육 혁신, 인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양극화는 진영 논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걸 꼭 하나 지적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데올로기 시대는 갔다는 것입니다. 지금 무슨 이데올로기가 필요합니까. 국익, 그중에서도 경제적 국익이 중심이 된 세상입니다. 개딸이건 태극기건 곤란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선택이 잘못 이뤄지면 대한민국이 아르헨티나처럼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런 주장을 어떻게 보십니까.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에 세계 5대 경제 대국이었어요. 지금 굉장히 어려운 나라가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오직 포퓰리즘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데 대해 저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포퓰리즘을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포퓰리즘은 근절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있어요. 표 얻는 데만 관심이 있지요. 과거부터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맛을 보더니 재미를 붙여서 '표를 얻어야지. 그래야 오래 앉아 있지' 해서 포퓰리즘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에 전직 재정경제부 장관께서 쓴 책에서 “한국 경제는 정치가 망가뜨린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저는 거기에 대해 꼭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경제가 정말로 좋으면 정치가 발전할 수밖에 없지요. 정치가 진짜 좋으면 또 경제가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반대 논리도 있죠. 박정희 대통령 때 경제는 잘 됐는데 정치 가 잘 안 되지 않았나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짧게는 몰라도 길게 보면 정치하고 경제는 같이 간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경제를 망가뜨렸다고 하는 것은 직업 공무원들이 자기방어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 좋아한 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G. D. H. Cole·1889~1959) 옥스퍼드대 교수가 있는데 '정치와 경제는 같이 간다'고 했어요. 어릴 때 읽은 책이라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저는 ‘한국 경제는 정치가 망가뜨린다’에 대해서는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권자 혁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 혁명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방향이어야 하겠습니까. "유권자 혁명이라는 건 유권자들이 표를 잘 찍어서 이 나라 좀 잘 만들자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대해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이번에 아무리 잘 찍어도 질서 유지, 질서 회복 아니면 질서 창조는 잘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유권자 혁명이라는 말은 좀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유권자 개개인이 ‘거짓말하는 사람 찍지 말아야지’ ‘헛소리하는 사람 찍지 말아야지’ 이런 식으로 투표하다 보면 지금보다 좀 나아질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국가흥망 필부유책’인데 이렇게 한다고 나라가 이 방향으로 가고, 저렇게 한다고 저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각 국민들이 조심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누가 정직한가, 누가 좀 무게가 있나, 누가 좀 자기 의견이 있나, 누가 헛소리 안 하나, 누가 죄의식이 좀 더 있나, 누가 사과를 할 줄 아는가 이런 걸 따져서 투표하면 도움은 확실히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드신 의미와 현황을 소개해 주십시오. "‘동반성장’이라 하면 사회주의라고 그래서 섭섭한데, 저는 집이 어려워서 중학교 안 가고 취직할 뻔했어요. 6학년 때 여름 내 클래스 메이트의 부모가 우리 집에 와서 '너 공부 잘하는데 그래도 중학교 가야지 일류 중학교 가면 등록금 우리가 대준다'라고 했어요. 그분들이 합격자 발표 다음 날 저를 스코필드 박사한테 데리고 갔어요. 스코필드 박사가 중 1~3학년 때 등록금도 대주고 약간의 용돈도 주고 하셨어요.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그분한테 성경도 배우고 인격 향상에도 큰 도움을 받았죠. 저는 우리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우리 키우면서 고생 무지무지하게 했어요. 어머니는 저보고 법대 가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며칠 후 김근태 선배를 만났어요. '근태형 저 법대 갑니다' 했더니 그 자리에서 ‘너 법대 안 맞는다’고 했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사시 패스하면 판사, 검사, 변호사 할 테지만, 판사를 하면 칼날 같은 판결을 내려야 하는데 너 마음이 우유부단하잖아. 검사는 강압 수사를 가끔 해야 되는데 너 마음이 약하잖아. 그리고 변호사는 가끔 고객을 위해서 흑을 백이라고 그러고 백을 흑이라고 해야 되는데 너 거짓말 못하잖아'라고 하더군요. 그때가 1966년이에요. 그때 스코필드 박사 말씀이 '너희 나라 국력 신장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가르쳐주는 학과가 첫번 째 조건이고 두 번째 조건은 지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성장은 되고 있지만 소득 격차, 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데도 한국의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눈곱만치도 없어서 참 안타깝다. 그런 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가르쳐주는 학과로 가라고 해서 경제학과로 가게 된 거예요. 나중에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 할 때 이명박 대통령한테 가서 '중견 기업인이 이민 가겠다니 중소기업이 오죽하겠습니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 파탄 납니다' 했더니 청와대에서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2010년에 발족했죠. 대통령이 만들어 놓았지만 측근들이 전혀 협조를 안 해서 위원장을 그만두고 한 2개월 놀다가 그것과는 독립적으로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어서 이제 12년 됐습니다." 정운찬 전 총리 프로필 △1947년 출생 △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대 제23대 총장 △대한민국 제40대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제22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 =정리 구동현 기자 / 사진=남궁진웅 기자

    [광화문 토크]  국가흥망 결정하는 건 국민
  • [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의 요즘 화두는 '신질(新質)생산력'

    지난 5일 오후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이날 오전에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장쑤(江蘇) 대표단 회의에 참석했다. 시진핑은 지난해 1월 장쑤성 인민대표로 당선된 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인민대표단 회의에 참석했다. 모두 6명으로 이루어진 장수 대표단의 소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시진핑은 “각 지역 실정에 맞는 신질(新質) 생산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미디어에 따르면 시진핑이 ‘신질 생산력’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지난해 9월 헤이룽장(黑龍江)성을 시찰할 때가 처음이었다. 시진핑은 헤이룽장성 현지에서 열린 ‘신시대 동북 전면 진흥 추진을 위한 좌담회’에서 이런 말을 해서 관영 미디어들의 주목을 받았다. “과학기술 혁신에 맞추어 전략적으로 신흥 산업과 미래 산업을 발전시키면 신질 생산력 형성을 가속화하게 된다. 새로운 에너지 산업을 키우고, 새로운 재료산업, 전자정보산업 등 전략적 신흥 산업과 미래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면 ‘신질 생산력’ 형성을 가속화하고 산업 전반에 새로운 동력을 증강하게 된다.” 헤이룽장성의 당 위원회와 정부 관료들은 ‘신질 생산력’이란 용어를 받아적기는 했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했다. 시진핑은 지난해 12월 열린 당 중앙경제공작회의와 올 들어 1월 31일 열린 정치국 제11차 집체학습에 나와서도 ‘신질 생산력’이란 알 듯 말 듯한 용어를 사용했다. 이 회의에는 정치국원들 가운데 허리펑(何立峰·69·부총리), 장궈칭(張國淸·60·부총리), 위안자쥔(袁家軍·62·충칭시 당 위원회 서기), 마싱루이(馬興瑞·65·신장위구르자치구 당 위원회 서기) 등 핵심 경제담당 당료들이 참석하고, 류궈중(劉國中·62·부총리)과 한때 후계자로 지목되던 천민얼(陳民爾·64·톈진시 당 위원회 서기) 등은 서면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정치국 집체학습에서 시진핑은 ‘신질 생산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비교적 알기 쉽게 설명을 했다. “신질 생산력이란 전통적인 경제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생산력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첨단 과학기술, 높은 효능과 품질을 가진 새로운 발전 이념의 선진 생산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징은 혁신에 있으며, 관건은 우수한 품질에 있으나, 본질은 선진 생산력이다. 과학기술 혁신은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방식, 새로운 동력을 자극하는 것이 신질 생산력 발전의 핵심 요소다.” 시진핑은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은 신질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양호한 국제 환경을 조성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진핑이 제시한 ‘신질 생산력’이 대체 무슨 말인지에 대해 런던정치경제학원(LSE)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셜리 위(Shirly 于澤)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홍콩에서 발행되는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지난 16일 게재했다. 베이징(北京)대학에서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중국 정치경제 전문가다. “시진핑이 말한 신질 생산력이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경제성장 방식을 마르크시스트적으로 이론화한 것이다. 신질 생산력을 통해 시진핑은 인포테크, 바이오테크, 인공지능(AI), 양자(量子·Quantum) 컴퓨팅, 신에너지, 신재료, 우주개발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를 모두 망라해서 중국 경제가 새로운 발전을 해나가야 한다는 야망을 표현한 것이다. 신질 생산력이란 용어가 의미하는 중국 경제의 새로운 발전 전략은 3개의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 과학기술을 중국 과학기술로 대체하는 것, 신속한 산업화, 그리고 국방과학 기술을 중국 과학기술로 전략적으로 대체하는 것 등이다.” 셜리 위는 시진핑이 제시한 신질 생산력은 보다 구체적으로 2025년을 목표 연도로 한 중국 특유의 브랜드 개발을 위한 ‘China 2025’의 새로운 버전의 전략을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China 2025는 불필요하게 미국과 유럽의 견제를 받는 프로젝트로 변질됐기 때문에 2025년 이후에는 ‘신질 생산력’이라는 마르크스적 이론을 이용한 중국의 경제영역 확보 전략을 제시한 것이라는 진단이다.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죽은 후 권력을 장악한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공산당과 정부 관료들에게 “과학기술이 제1의 생산력(科技是第一生産力)”이라는 구호를 제시했다. 과학기술을 산업에 활용하는 데 어두웠던 마오쩌둥 시대가 낮은 경제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반면 과학기술이 제1의 생산력이라는 구호로 과학기술에 묶여 있던 족쇄를 풀어주자 중국 경제는 폭발적인 성장을 해왔다. 1978년부터 40여 년간 평균 경제성장률 10%를 넘는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을 한 결과 중국은 과학기술 면에서도 고도의 발전을 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전기자동차와 AI,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수준을 넘어서는 역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창(李强) 총리는 지난 5일 전인대 개막 첫날 정부공작보고를 통해 “안정 속 성장(穩中求進)을 올해의 경제 화두로 삼겠다”고 했다. 리창 총리는 이어 “성장 속의 안정(以進促穩)과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달성하는 선립후파(先立後破)도 올해의 경제기조로 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시진핑이 제시한 ‘신질 생산력’과 관련해서는 “현대화 산업체계 건설을 통해 신질 생산력을 가속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 경제는 지난해 GDP 성장률 5.2%를 기록했다.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지난해 대학 졸업자 1158만명의 일자리를 마련해주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지난해 6월 16~24세 청년실업률은 21.3%에 달했다는 것이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수치다. 중국 전역에는 짓다가 만 아파트가 귀신의 도시(鬼城)처럼 널려 있는 가운데 대형 부동산 그룹 헝다(恒達·Ever Grande)는 지난 1월 29일 홍콩법원에서 파산을 명령받았다.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330억 달러 규모로 1993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보여주었다. 중국 주재 외국 기업 종사자들에게도 반(反)간첩법을 적용해서 베이징 중심가와 상하이(上海)의 황푸(黃浦)강변 산책로에서는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 됐다. 중국 외교부는 동유럽 국가들과 비자면제협정을 맺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중국 경제의 문제는 신질 생산력 확보의 문제가 아니라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정치경제 리더십에 대해 미국과 유럽이 등을 돌리고 있는 점이다.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 없는 시진핑 주석은 지난 20일 마오쩌둥의 혁명 성지인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와 창더(常德)시를 시찰했다. 시진핑은 근대 이래 많은 무산계급 혁명가를 배출한 후난 제1사범학원을 방문해서 청년 마오쩌둥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참관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은 이런 연설을 했다. 시진핑은 “국가가 강대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제1사범학원은 애국주의 교육을 펼치고 홍색의 유전자를 전승해온 곳으로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잘 지키는 민족 부흥의 인재들을 잘 길러내고 있다”고 치하했다. 시진핑은 제1사범에서 마오쩌둥이 앉아 공부하던 자리도 돌아보았다. 이어서 시진핑은 이 지역에 있는 중국·독일 합자 기업으로 리튬전지의 극재료를 생산하는 BASF 공장을 둘러보았다. 이 공장에서 시진핑은 또다시 ‘신질 생산력’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현재 중국 경제가 위기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있는 이유는 이처럼 시진핑의 정치 리더십이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중국 인민들과 외부로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개방을 강조하고 싶으면 후난성에서 멀지 않은 광둥(廣東)성 선전(深圳) 경제특구를 방문해서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얼굴 사진이라도 찾아보면 되겠지만 요즘 시진핑에게 덩샤오핑은 이미 잊힌 인물이 되고 말았다. 시진핑은 신질 생산력을 강조하면서 “개혁·개방의 확대가 신질 생산력 확보에 중요한 국제 환경을 제공해준다”고 말하면서도 개혁·개방의 상징적 도시 선전에 있는 덩샤오핑 초상화는 돌아보지 않고 있다. 시진핑이 만들어내는 대외 이미지는 “마오쩌둥의 혁명을 따르는 정치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시진핑이 강조하는 ‘신질 생산력’ 확보는 그리 쉽지 않지 않을까.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의 요즘 화두는 신질(新質)생산력
  • [박승준의 지피지기] 급격히 줄어드는 중국 FDI…전인대(全人大)에서 해법 찾을까

    중국의 유일한 개방적 정치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다음 주 3월 5일 베이징(北京)에서 개막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사무국은 이달 초에 일찌감치 “개방적이고 투명한 정신으로 내외신 기자들의 전인대 취재를 돕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인대 상임위 사무국은 “외국 기자들은 해당 국가 주재 중국 공관에 전인대 취재 비자를 신청하기 바란다”고 관영 신화(新華)통신을 통해 공지했고, 신청 기간은 지난 18일로 마감됐다. 베이징 서쪽 푸싱(復興)로에 미디어센터도 개설하고, 27일부터 업무를 개시한다. 내외신 기자들은 전인대 개막 첫날 리창(李强) 총리가 2시간에 걸쳐 읽어 내려가는 ‘정부 공작 보고’도 현장에서 들을 수 있고, 국무원 각부 장관도 인터뷰할 수 있으며, 총리와 외교부장이 주재하는 뉴스브리핑에도 참석할 수 있다. 해마다 전인대 개막일인 3월 5일은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 무렵이다. 중국 정부는 1978년에 시작된 ‘개혁·개방(改革開放)’ 시대를 이끈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때부터 전인대를 외국 기자들에게 개방해 왔다. 이때쯤이면 대체로 칙칙하고 어두운 색깔의 옷을 즐겨 입는 베이징 시민들도 전인대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전역에서 모여든 3000명에 가까운 인민대표들과 함께 옷차림을 밝은색으로 바꿔 입어 베이징의 인상을 화려하게 변화시킨다. 그러나 올해 전인대 개막을 앞둔 중국 인민들은 물론 중국공산당과 정부 지도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리오프닝 노력에도 4%대에 머물러 있는 경제성장률과 성장 부진에 따른 취업률 저하, 중국 GDP의 25%를 차지하는 중국 부동산 업계의 대표 주자 헝다(恒達·Evergrande)가 지난달 29일 홍콩법원에서 청산 명령을 받은 사실 등 중국 사람들이 가장 중시하는 ‘밥그릇 문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법원이란 중국이 1978년부터 45년 넘게 건설해 오려던 경제적인 법치(法治·Rule of Law)의 기준을 제공해 온 기관이다. 굳이 헝다 청산 문제가 아니더라도 전국 중소 도시들에 짓다가 만 아파트와 공공기관 건물들이 빚어내는 을씨년스러운 고스트 시티(Ghost City·鬼城)의 어두움이 중국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국 사람들과 당정(黨政) 지도자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수치는 근년에 들어 급격한 감소 추세를 보여주고 있는 FDI(Foreign Direct Investment·外商直接投資·外國人直接投資)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과 함께 시작돼 중국인들에게 가난과 죽음을 가져다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는 37년 만인 1976년 9월 마오의 사망으로 끝났다. 이후 1978년 중국공산당 11기 3차 중앙위 전체 회의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사상해방(思想解放)’을 제시해서 대권을 잡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 시대가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이 당 총서기에 올라 ‘프티 마오쩌둥(Petite Mao Zedong·작은 마오쩌둥)’을 향해 달려가는 국가전략 노선의 전환을 시도하기 전까지 추구한 가장 중요한 수치가 FDI였다. 덩샤오핑이 1977년 미국을 방문해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미국 사람들에게 웃음을 던진 이유도, 자오쯔양(趙紫陽) 총리가 1984년 1월 중국공산당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중산복(中山服·일명 인민복) 대신 양복을 입고 미국을 방문해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만난 이유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덩샤오핑은 1980년 상하이(上海)시 지도자들에게 중국 대륙 한가운데를 관통해서 동쪽 상하이로 흐르는 장강(長江)의 끝머리에 ‘룽터우(龍頭·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푸둥(浦東) 지역에 현대식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쇼룸을 건설하도록 한 것도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세계은행(World Bank) 데이터에 따르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대가 막 시작된 1980년 중국의 FDI는 57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후 선부론(先富論·누구든 먼저 부자가 되라. 부자가 되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과 사회주의 시장경제 구축을 일관되게 추구한 2011년까지 31년 동안 중국의 FDI는 2800억7000만 달러로 무려 5000배 가까이 폭증했다. 중국의 FDI는 시진핑 시대와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2021년 3440억7000만 달러로 정점(頂点·Peak)를 찍은 뒤 2022년 1801억7000만 달러로 급감하고, 지난해에는 중국 국가외환관리국 집계에 따르면 330억 달러로 급격히 쪼그라드는 추세를 보여주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경제 최고 전문가인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ago)의 배리 노튼(Barry Naughton) 교수에 따르면 FDI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의 중국에 제조업과 수출 주도 산업의 기본 동력으로 작용했다. 노튼은 명저 ‘The Chinese Economy, Transition and Growth(중국 경제의 전환과 성장)’에서 “중국의 FDI 유치는 홍콩과 대만을 창구로 해서 유입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에 홍수를 이루어 홍콩 인근에 선전(深圳) 경제특구가 건설된 주동력도 FDI였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2011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당선되어 대권을 장악하고, 2020년 10월 덩샤오핑이 건설한 개혁·개방 시대의 정치 관례를 깨고 3연임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에 오른 시진핑이 덩샤오핑 시대의 선부론 대신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을 제시하고, ‘쌍순환(雙循環)’ 이론에 따른 내수경제의 건설로 중국 경제의 기조를 바꾸었다. 이후 시진핑은 알리바바의 마윈(馬云)에게 정치적 공격을 가해 마윈이 이끌어 온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을 위축시키고, 부동산 업계 1·2위인 헝다와 비구이위안(碧桂園·Country Garden)을 채무불이행 사태로 몰아가도록 하자 FDI는 2021년에서 2022년 사이에 2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뒤, 2022년에서 지난해 사이에는 5분의 1 이하로 급감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은 중국의 FDI 급감에 대해 “중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강조하면서 반(反) 간첩법을 제정해서 외국 기업 직원들을 감시·억류하고, 중국 시장에 대한 조사 자체를 범죄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도 큰 이유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여론조사 기업인 갤럽도 지난해 중국 사무소를 폐쇄했다. 덩샤오핑 시대가 40여 년간 건설해 놓은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시대는 시진핑의 공동부유론과 마오쩌둥 딜레당트(Delettante·애호가)적 국정 운영으로 이대로 종언(終焉)을 고하는 것일까. 시진핑은 전국 각지에 마오쩌둥 동상을 세우고, 초상화를 거는 한편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강조하고는 있으나 덩샤오핑 개혁·개방 시대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완전 해체하려는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자신의 시대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신시대’로 규정해서 덩샤오핑 시대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폐기할 의도는 아닌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홍콩 시사주간 아주주간(亞洲週刊) 최신 호에 따르면 중국 남부 후난(湖南)성 당 기관지 후난일보는 지난 18일 “덩샤오핑 사망 27주년을 기념하는 사상해방 대토론회를 개최한다”는 사고(社告)를 1면 머리기사로 게재했다. 마오쩌둥 출생지인 후난성 당 기관지 후난일보는 이 기사에서 선샤오밍(沈曉明) 후난성 당서기가 “덩샤오핑이 주도한 1978년의 진리표준 대토론회에서 교훈을 얻어 당원 간부들이 속박을 벗어나 시야를 넓히는 토론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언급을 했다고 전했다. 선샤오밍 당서기는 “드러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탕핑(躺平)과 같은 사고도 토론의 대상”이라고 적시했다. 그런가 하면 “개혁·개방은 그냥 읽기 쉽게 쓴 한 편의 소설이 아니다(改革開放不是爽文)”는 글귀가 요즘 중국 관영매체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대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닌 듯도 하다. 3월 5일 개막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그런 목소리들이 나올까 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본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박승준의 지피지기] 급격히 줄어드는 중국 FDI…전인대(全人大)에서 해법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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