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核은 남고 非核이 사라졌다

  • 뒤집힌 한반도의 안보 틀

박승준의 지피지기(知彼知己)
 
논설주간
 
核은 남고 非核이 사라졌다
뒤집힌 한반도의 안보 틀
 
"핵 추진 잠수함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주시면 좋겠다."
지난 10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립경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에서 불쑥 그런 말을 했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을 계기로 이뤄진 이 대통령과 트럼프 회담을 지켜보던 국민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어서 "우리가 핵무기를 적재한 잠수함을 만들겠다는 게 아니고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측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고 말하고 "연료 공급을 허용해주시면 저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해서 한반도의 동해·서해 해역 방어 활동을 한다면 미군의 부담도 상당히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요청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답은 30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뤄졌다. "우리(한·미) 군사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저는 그들이 지금 보유한 구식 디젤 추진 잠수함이 아닌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며 "한국은 핵추진 잠수함을 미국 필리(필라델피아)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리조선소는 한화그룹이 작년 12월 인수한 조선소다.
대통령실은 웹페이지에 게재한 ‘공동설명문’을 통해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하여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확인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 정상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중국 외교부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한 것이었다. 궈자쿤(郭嘉昆) 대변인은 “우리는 관련 정황에 주의를 기울여 보고 있다, 우리는 한·미 두 나라가 핵 비확산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를 희망하며 이 지역의 평화안정을 촉진하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궈 대변인은 말끝에 “반대한다는 뜻은 아니다(而不是相反)”는 묘한 말을 붙였다. 이 말은 “말 그대로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고 해석해도 되는 말이었다.
이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에 관해 트럼프에게 한 질문이 처음에는 ‘불쑥’ 던진 것이라고 생각됐으나 트럼프의 반응이나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반응을 보면 한국과 미국, 한국과 중국 외교당국 사이에 사전에 조율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한·미 정상이 합의한 한국의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 재처리 또는 우라늄 농축을 한국이 자체 생산하고 5대 5로 동업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 정부 당국이 그동안 거듭 확인해오던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칙을 바꾼 것일까.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이른바 핵추진 잠수함 딜(deal)이 경주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공개되자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비롯한 싱크탱크들은 '한반도 비핵화는 죽었나(Is Korean Peninsula Denuclearization Dead)'라는 제목의 긴급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이 유지해오던 한반도 비핵화 목표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는지를 진단하는 포럼이 잇달아 열렸다.
확인해야 할 것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중국 정부의 정책에 변화가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지난 6일에는 미 백악관이 이른바 ‘NSS’라고 부르는 ‘미 국가안보 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USA)’을 공개했고 이에 앞서 지난 11월 27일에는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관영 신화(新華)통신을 통해 ‘신시대의 중국군 군축과 감군(減軍), 비확산’이라는 제목의 안보정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놀라운 점은 미 백악관의 NSS와 중국 국무원의 비확산 보고서에 공통적으로 북한 핵무기에 관한 부분이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미 백악관 NSS는 아시아 안보 정책 부분에서 중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0년 이상 잘못 설정되어 있던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가정(assumption)을 명백히 뒤집어 놓았다. 우리 시장을 중국에 열어주고,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하도록 권유하고, 우리 제조업을 중국에 아웃소싱해 주어서 중국이 규칙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진입하도록 해 주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은 부자가 되고 강력해졌으나 미국의 엘리트들은 지난 4개 행정부를 거치는 동안 중국의 전략을 좌우하지 못했다. …”
그러면서 미 행정부가 왜 대만을 중시하는지를 설명했다.
“결국 미국의 경제와 기술적 우위가 (중국과의) 대규모 군사 갈등을 예방하는 분명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행히도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전통적인 군사 균형은 유지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만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대만이 반도체 생산에서 우월성을 유지하고 있고, 대만이 제2 도련선(島鏈線)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제2 도련선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선이다. 전 세계 선박 항운의 3분의 1이 이 선을 통과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미국 경제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만을 보호하는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대만해협의 현 상태를 (중국이) 바꾸는 것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미 백악관의 NSS는 이어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전략을 설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를 증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이와 함께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제1 도련선에서 적을 저지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련선은 중국이 해군 활동을 위해 설정한 선으로, 제1 도련선은 일본 열도와 오키나와~대만~필리핀~보르네오를 잇는 선으로 중국으로서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둘러싼 첫 번째 방어선이다. 제2 도련선은 일본 오가사하라 제도와 필리핀 마리아나 해구,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북부와 괌을 잇는 선이며, 괌은 특히 미국의 서태평양 전략의 핵심 기지가 있는 섬이다. 미국이 이번 NSS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을 “제1 도련선에서 중국 해군을 저지해줄 것”을 분명히 했다. 미 백악관의 NSS는 지금까지 빠뜨리지 않고 언급해오던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도 김정은과 회담을 추진할 계획이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미 백악관의 NSS보다 일주일 먼저 지난달 27일 발표된 중국의 군축과 비확산 보고서도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 주목을 받았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 6일 ‘중국은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인정하기로 전략을 바꿨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 국무원의 군축과 비확산 보고서는 2005년과 2017년에 ”한반도의 비핵화가 중국의 기본 입장이라고 분명히 언급했으나 올해 보고서에서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워싱턴 카네기 재단의 연구원 자오 퉁의 말을 인용해 “중국의 군축과 비확산 보고서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빠진 것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명백한 변화”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정책 변화가 사실이라면 북한의 박명호 외무성 부상이 지난달 3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비핵화가 남조선이 천 번 말해도 결코 실현할 수 없는 몽상이라는 것을 인내심을 갖고 보여줄 것”이라는 태도와 같은 방향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미국과 중국 비핵화 전략의 변화는 ‘핵 없는 한반도’를 ‘핵 있는 한반도’로 바꿔 놓지는 않을까.
도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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