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아들을 서울 소재 명문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키려다 여의치 않게된 P씨는 1000만원을 들고 이 학교 교장실을 찾았다.
아들이 입학 공개추첨에 떨어진 터라 어쩔 도리가 없던 P씨는 이웃 학부모에게서 전해들은 '1000만원만 내면 길이 생긴다'는 말만 믿었다.
이듬해 봄 P씨의 아들은 '정원외 입학생'으로 이 학교에 들어갔다. P씨는 "정상 입학은 아니지만 여하튼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사립초교는 학생을 모두 공개추첨 방식으로 뽑아야 하며, 정원외 입학은 현행법에 관련 조항이 없는 불법 행위다.
경찰이 적발한 이 학교의 '입학장사'는 자녀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할 기회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학부모의 다급한 심정과 학교의 발전 지상주의가 맞물려 터져 나온 비리다.
이 학교는 서울 시내 초등학교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교로 입학 경쟁률이 평균 3대 1에 달한다.
5일 경찰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이 학교 교장을 맡았던 O(64)씨와 Z(63.여)씨는 불법입학 사례금으로 비자금 18억2000여만원을 조성해 교사의 명절 휴가비와 판공비, 홍보비 등 학내 기금으로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1인당 1000만원의 돈을 받고 100명이 넘는 학생을 부정입학시켜 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발전기금을 낸 학생을 정원외 입학시킨 혐의(배임수재 등)로 O씨와 Z씨 등 한양대 부설 한양초등학교 전 교장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비자금 관리를 도운 학교 행정실장 J(5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O씨와 Z씨는 정원외 입학생의 기부금과 학비 등을 학교 직원 이름의 차명계좌에 넣어 18억2000여만원의 비자금을 조성, 교사들의 명절 선물비나 회식비 등에 쓴 것으로 조사됐다.
Z씨는 학교 시설 공사업체 7곳에 사업권을 준 대가로 리베이트 2500여만원을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내부 복지를 개선해 우수 교원을 유치하고 학교의 대외 인지도를 높이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며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학교발전기금은 대가성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학교 발전 목적만 내세우다 보니 이런 범행을 쉽게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부정입학한 학생 118명의 명단을 관할 교육청에 보내 전학 등의 조처를 하도록 할 방침이다.
해당 초교는 정원내 결원이 생길 때 받는 편입생을 상대로도 1인당 200만∼1000만원의 발전기금을 걷는 등 금품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부모는 "학교 전형에 떨어져도 돈을 내고 입학할 수 있다는 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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