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방
작년 11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특별한 '상설' 전시 공간이 생겼다. ‘사유의 방’. 국보로 지정된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이, 넉넉한 거리를 두고 다소 짙은 어둠의 공간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삼국시대 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높이 81.5㎝, 무게 37.6㎏ 1점과 7세기 전반, 높이 90.8㎝, 무게 112.2㎏ 1점이 나란히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유(思惟), 뭔가를 두루 생각하는 일을 하는 방을 만든 것에 대해 박물관은 이렇게 설명한다.
‘반가사유상’에서 ‘반가(半跏)’는 가부좌(跏趺坐)의 반이란 뜻이다. 불교 명상 자세 중 가장 많이 하는 가부좌는 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걸 말한다. 두 손과 마음을 빼꼽 아래 단전에 모아 명상을 하는 자세를 취할 때 가부좌를 튼다(결가부좌)고 한다.
반가는 가부좌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트린 자세인데, 전시된 반가사유상은 모두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에 올리고, 오른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여기서 다시 박물관 설명.
“반가의 자세는 멈춤과 나아감을 거듭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움직임 가운데 있습니다. 한쪽 다리를 내려 가부좌를 풀려는 것인지, 다리를 올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갈 것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가의 자세는 수행과 번민이 맞닿거나 엇갈리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살짝 다문 입가에 잔잔히 번진 ‘미소’는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영원한 깨달음의 찰나를 그려 보게 합니다. 이 찰나의 미소에 우리의 수많은 번민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대선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용(龍)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사유의 방’에 가봤으면 좋겠다. 홀로, 10분이라도 머물러 보기를 권한다.
수행원, 기자단, 지지자들과 함께하면 관람객들에게 큰 민폐가 될 테니 가급적 일반 관람시간을 피해 아침 일찍 혹은 문 닫은 후에 가면 좋겠다.
박물관 측이 아마 그 정도 배려는 가능할 것이고, 관람객들도 양해할 것이다. 이미 관람했거나 관람 예정인 유권자들은 사유의 방을 찾은 그 후보를 다시 볼 것이다.
2개월 동안 10만명 넘는 인파가 몰릴 정도로 인기인 데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힙’한 사진 스폿이다. '헬조선' 젊은이들은 석가모니 찰나의 미소, 공간의 안온함에 큰 위로를 받고 있다.
문화재 공약을 발표하는 등의 선거운동이 아니라 사유의 방에 그저 머물기만 해도, 정치공학적 ‘젠더 갈라치기’보다 더 쏠쏠한 선거운동이 될 수 있으리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정치적으로 임명된 ‘낙하산’이 아닌, 평생을 박물관과 문화재 업무를 해온 전문가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자유롭다. 민 관장이 어느 특정 후보를 위해 이벤트를 하지 않을 터, 모든 후보에게 공정하게 초청장을 보내면 더 좋을 듯싶다.
이재명 대장동,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심상정 지지율 등 4용들은 번뇌와 고민을 잠시 접고, 대한민국의 문화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사유의 방’에는 꼭 한 번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나. 홀로 10분이라도 사유를 하며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갖는 후보를 보고 싶다. 멈춤과 나아감만 계속하지 말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사유하는, 그런 '반가 후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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