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언스의 승리는 가난한 노예 집안 출신의 흑인 선수가 이뤄낸 성취라는 점에서 더욱 빛났다.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정치적 목적으로 올림픽을 이용하려 한 나치에게 한 방을 먹인 셈이기 때문이다. 오언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도 “1830년대 나의 조상들은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던 미국 땅에서 노예로 팔려 왔다. 나는 1936년 8월, 다른 민족이 모두 자신과 아리안족의 소유가 돼야 한다고 믿는 아돌프 히틀러와 싸워 이겼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오언스의 승리가 아름다웠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올림픽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일화 덕분이다. 당시 오언스는 멀리뛰기 예선 중 첫 두 번의 시도에서 모두 파울을 범하면서 실격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오언스와 금메달을 놓고 경쟁하던 독일의 루츠 롱은 자신의 경쟁자에게 거리낌 없이 조언을 해줬다. 도움닫기를 좀 더 일찍 해서 거리를 넉넉히 두라는 것이다. 이 조언을 따른 오언스는 예선을 통과했고, 마지막엔 멀리뛰기의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당시 미국과 독일은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엄혹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올림픽 정신으로 불리는 페어플레이 정신은 오롯이 살아남아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롱과 오언스는 전쟁 이후와 사망할 때까지 우정을 이어갔다고 한다.
때문에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판정 논란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다. 우선 지난 4년간 올림픽을 보고 달려온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공정한 판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최국인 중국이 최근 불거진 각종 논란에 대해 성심성의껏 답변과 대응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사건에 편승해 혐오와 저주를 부추기는 이들도 올림픽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있지도 않은 가짜뉴스까지 동원해 국민들의 분노를 부추기면서 본인의 인기 상승을 도모하는 이들은 선수들의 노력을 더욱 빛바래게 할 뿐이다. 때문에 차분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주장을 펴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항의에 나서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은 게 아쉽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 속에서 한국은 세계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 중 하나로 부상했다. 수많은 외신이 특별히 주목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이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은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이 다른 국가에 비해 성공적인 방역의 열쇠 중 하나로 꼽았다. 수십년 간 이어진 독재를 이겨내고 결국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역사를 만들어 낸 이들도 유린당하는 인권을 외면하지 않았던 시민들이다.
이런 축적 위에서 한국은 지난 수년간 빠르게 발전하는 경제와 융성한 문화의 힘을 키워내며 수많은 국가들의 귀감이 되는 나라로 발전했다. 여러 조사에서 나날이 높아지는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이를 반영한다. 올림픽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분노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간 높아졌던 우리의 위상에 오히려 먹칠하는 불상사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당사자인 쇼트트랙의 황대헌 선수가 보여준 성숙한 상황 대처 태도와 흔들리지 않았던 평정심은 더없이 자랑스럽다. 결국 황 선수는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 주력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때문에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건냈던 분노 다스리기에 대한 조언은 지금도 곱씹어볼 이유가 충분하다.
"다른 감정들에는 얼마간의 고요함과 차분함이 있지. 그러나 분노라는 놈은 사납게 미쳐 날뛰면서 고통, 무기, 피, 고문을 갈구하다가 급기야 자신의 이익까지도 내동댕이치면서 남들에게 해를 입히려 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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