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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성균관대 정외과) |
현재 한·중관계는 원만하다고 보기 어렵다. 밑바닥 여론은 물론이고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양국의 여론주도층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항간에서는 한중관계가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양국간 인식의 차이(perception gap)를 방치할 경우 고정된 프레임에 갇힐 가능성마저 있다. 이 때 한·중관계를 회복하는 비용은 지금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다만 이를 인식한 양국정부가 관계발전의 모멘텀을 찾으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러한 한·중관계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동북아질서의 구조적인 변화가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 동북아에서는 과거 미국이 깔아놓은 판(template)을 큰 불만 없이 수용했던 중국이 스스로의 판을 만들면서 협력과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도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중국은 과거 외교정책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한·미동맹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한·미군사동맹은 냉전의 유산”이라는 중국외교부 대변인의 발언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고,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전개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국견제로 보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이것은 한·중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든 양자관계는 정치적 지렛대를 많이 가진 국가가 유리하다. 우리는 중국에 대한 지렛대는 남북관계, 한·미동맹, 기술격차, 산업구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대중국 지렛대는 거의 소진되었다. 정치적으로 남은 것이 있다면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이다.
그러나 현실은 남북관계의 경색이 한·중관계에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고, 한미동맹을 가치동맹으로 격상한 것도 중국견제의 효과를 달성하기 보다는 오히려 외교적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천안함 사건과 한·중관계를 연계하는 우리 정부의 접근방식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무엇보다 중국에 대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었고 이것이 좌절되자 미국을 통해 모든 문제를 풀고자 했던 점이다.
여기에 초기대응이 혼란스러웠고 꽃다운 장병의 희생에 대한 비분강개가 냉엄한 국제정치를 압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배수의 진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은 정치적 타협으로 천안함 사건의 공격주체조차 명시하지 못하고 남북한 모두 이를 외교적 성과라고 자평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 없이 6자회담 없다”는 정책은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고, 이것은 대북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과 연계하기 시작했다. 이 마저도 강대국의 정치적 중재와 타협 속에서 얼마든지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미중간 판이 충돌하면서 천안함 사건도 요동을 쳤다는 점에서 한·중관계도 근본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미동맹은 여전히 한국의 안보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그러나 최근 동아시아로 귀환한 오늘의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아니며, 부상한 중국도 어제의 중국이 아니다. 적어도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중간 세력균형과 이익균형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명확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중관계를 한미관계의 종속변수로 보는 외교적 관성과 인식이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한중관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견고한 정치적 지렛대를 찾는 일이다.
그 핵심은 남북관계의 발전이다. 이것은 한반도문제의 타자화를 방지하고 중국의 한반도카드를 약화시킬 수 있다. 또 하나는 한중관계에 대한 중장기적 비전을 만들고 유능한 조타수를 육성하고 여기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천안함 사건 과정에서 국방부와 통일부가 국내여론을 상대하는 동안 외교공간은 크게 위축시켰다.
여기에 외교적 타이밍도 적절히 찾아야 한다. 한중관계가 어렵고 중국과 인도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인도 국방연구협력을 체결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곧 한·중간 차관급 전략대화가 예정되어 있다. 무릇 양자관계에서 완전한 공동이익은 없다. 더구나 한중교류는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태에서 모든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것이 정치적 갈등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착실하게 구축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신뢰가 기반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오랫동안 축적되어야 한다. 국제관계도 인간관계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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