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혁신은 시대적 요구보다 앞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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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진 기자
입력 2022-06-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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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C 충전포트의 모습. 지난 6월 7일(현지시간) 유럽의회는 2024년 가을까지 휴대기기에 표준형 USB-C 충전포트를 의무화하는 협정에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안드로이드인가요? 아이폰인가요?"

식당에서 직원에게 휴대폰 충전을 부탁하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말이다. 그 뒤에 "아이폰은 충전이 안 된다"는 말이 붙곤 한다. 아이폰 전용 충전기가 없어서 그렇다는 친절한 설명도 해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은 충전 포트가 달라 충전기를 빌려도 사용할 수가 없다. "아이폰은 무엇이든 호환이 안돼 짜증이 난다"고 불평하다가 다른 휴대폰으로 바꾼 친구도 있다. 충전기를 더 사서 가지고 다닌 아이폰 이용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24년 겨울 유럽에서는 더 이상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유럽의회가 환경보호와 소비자 편의를 위해 지난 7일 2024년 가을까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휴대기기에 표준형 USB-C 충전 포트를 의무화하는 협정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맥북에어 등 일부 제품에 USB-C 타입의 충전 포트를 쓰지만 아이폰에는 여전히 라이트닝 케이블 충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과거부터 USB-C 충전포트 의무화 협정이 혁신을 저해한다고 반대한 애플은 이번 합의안에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애플 대변인은 "아직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입장을 내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규제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규제 없이도 자연스럽게 USB-C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런 규제는 혁신을 저해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충전기 포트 통일화가 혁신을 저해한다"는 애플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현재 인류가 마주한 최우선 과제는 환경보호다. 유럽위원회는 충전기 포트 통일로 매년 1만1000톤의 쓰레기가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아이폰 전용 충전기는 충전 포트 규격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폐기가 이뤄지곤 했다. 불필요한 생산으로 인한 탄소 발생도 놓쳐서는 안 되는 지점이다. 독자적인 라이트닝 포트 충전기를 팔아 생긴 애플의 이익이 줄고 투자도 줄 수 있지만 환경오염을 줄여야 하는 인류의 과제보다 앞설 수 없다.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의 혁신이어도 인류가 마주한 시대적 요구 안에서 이뤄져야만 한다. 오늘날 시대적 요구가 탄소배출 감소인 만큼 혁신도 이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애플이 내세우는 혁신의 가치가 낭비를 줄여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류의 과제에 앞설 수 없는 이유다. 

지난 8일 유럽의회는 2035년 이후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입장을 확정했다. 이 역시 탄소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일부 자동차 기업은 내연기관 퇴출이 혁신을 방해한다고 입장을 냈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다. 그 어떤 훌륭한 기업이 내세우는 혁신도 인류의 시대적 요구보다 앞설 수는 없다. USB-C 포트 의무화,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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