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이 서있는 호뢰관 비석 부근에서 유비 관우 삼형제의 의를 기리는 ‘삼의묘(三義墓)’가 보였다. 곧 삼의묘 주변을 둘러보는데 왠 돌들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예전에 발굴된 유적을 그대로 방치해 놓은 것이였다. 삼의묘에 삼(三)자는 보이지 않고 의(義)와 묘(墓)자가 새겨진 돌들과 기둥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돌들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삼의묘 앞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현지 주민으로 보이는 한 노부부가 향을 피우고 제를 올리고 있었다. 노파는 우리를 향해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드라마를 이야기하며 삼의묘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이 곳 삼의묘는 호뢰관 싸움에서 동탁을 토벌하는데 유비, 관우, 장비의 공을 기리고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돈을 모아 세운 것입니다. 매월 보름이면 이 곳 주민들은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삼의묘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마침 오늘이 보름이라 이렇게 제사를 지내러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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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푸즈(山西夫子)라고 적힌 현판이 삼의묘 위에 걸려있다. 산시푸즈는 '산시성의 대장부'라는 뜻으로 산시성 출신인 관우를 가리킨다. |
삼의묘 입구 위에는 산시푸즈(山西夫子)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여기는 허난성(河南省)이지 산시성(山西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왜 이렇게 적혀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노파는 “이는 산시성의 대장부라는 의미로 관우를 의미한다”고 말하니 그제야 궁금함이 풀렸다.
삼의묘 안을 들여다보니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상이 나란히 있었으며 벽에는 도원결의, 유관장 삼형제가 여포와 전투를 하는 장면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유관장 삼형제의 상 옆에 있는 조그마한 관우상을 모신 재단이 있었다. 왜 관우만 그렇게 상이 2개로 모셔져있는지 궁금해 용기를 내서 노인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노인은 “관우는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중국에서는 재물신으로 모시고 있어요. 그렇기에 여기에 있는 큰 관우상은 단순히 관우라는 장수를 의미하는 반면, 이 작은 관우상은 재물신으로 엄연히 의미가 다른 것으로 여겨 제사도 따로 지내고 있지요”
1800년의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관우는 이 곳 현지주민들에게 여전히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어 그들의 가슴속에 살아숨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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