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의 도란도란> 조삼모사(朝三暮四), 알면서 왜 당했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2-07-04 16:42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무언가에 홀린 기분입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것을 모르지도 않았는데, 왜 그땐 유리한 계약조건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만난 지인 A씨는 부동산시장에 대해 얘기하며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가 수치스러울 만큼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3년 전 분양받은 아파트 때문이다.

당시 향후 전망이 가장 밝다는 인천 경제자유구역의 청라지구 분양 아파트에 수십대 1의 청약 경쟁률을 뚫고 당첨돼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샀던 A씨.

"모두들 축하한다며 한턱 쏘라는 말에 그때 술값 적잖이 깨졌었죠. 그런데 이젠 그 친구들한테 위로주(酒)를 얻어마셔야 할 판입니다."

청라지구 집값은 수도권 중에서도 가장 많이 떨어졌고,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빚뿐이다. 그런데 지금 A씨를 더 슬프게 하는 이유는 중도금 부분 무이자와 이자후불제 때문이다.

A씨가 분양받은 전용 126㎡ 중대형 아파트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분양대금이 부담돼 계약을 할지 말지 망설이는 그에게 회사측은 중도금 40% 무이자 및 나머지 후불제를 제시했다. 중도금 가운데 40%는 회사에서 내주고 나머지 60%에 대한 이자는 후불로 입주 전에만 내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당장 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든다는 안도감에 A씨는 결국 계약을 했다. 하지만 A씨가 입주 시점에 내야 할 이자는 2000만원이 넘는다. 그것도 할부가 아닌 일시불이라는 부담만 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를 그만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시 부동산시장은 전반적으로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정부가 추진하는 만큼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았다. 당연히 입주 시점에 프리미엄(웃돈)이 붙으면 후불로 내야 하는 이자 정도는 큰 부담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됐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주택담보대출 연체자만 양산하는 꼴이 됐다.

A씨처럼 투자가치를 기대하고 아파트를 계약한 당사자들의 판단 실수도 있겠지만, 경제자유구역 사업에 부푼 기대감을 갖게 한 정부의 잘못은 그 몇 배라 할 수 있다.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은 어쩌면 예고된 실패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임은 지지 않은 채 말만 번지르르한 이들의 계획을 따라갔으니 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