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기관이 잘 갖춰져 있는 대형병원은 별다른 문제가 없으나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병원은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중소병원들이 야간이나 휴일에 전문의들로 비상진료체계를 갖추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복건복지부가 3개월 계도기간을 두고 일단 조율에 나섰지만 단순한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계도기간이 끝나는 11월 6일부터는 당직전문의를 세우지 않거나 당직전문의가 비상호출에 응하지 않으면 행정처분을 내려야 해 의료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당직전문의 비상호출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해당 당직 전문의는 면허정지 처분을 받고, 해당응급의료기관은 2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 의협, "의료현실 맞게 재검토 주장"
8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8월 5일 전문의 응급실 당직 규정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응급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시행에 들어갔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현실과 괴리가 큰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은 규제개혁에 역행하는 과도한 법안“ 이라며 의료현실에 맞게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의협은 보건복지부가 수차례 입법예고안을 바꾸고 행정처분을 3개월간 유예한 것은 응급의료 관련법이 비현실적이라고 인정한 것으로 이 제도로 인해 지방 응급의료기관은 응급실 폐쇄까지 직면했다고 토로했다.
송형곤 의협 공보이사 겸 대변인은 "응급실 당직의에게 야간 근무 후 충분한 휴식시간과 장소가 부여되지 않을 경우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다" 며 "국민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전문의 인력이 충분한 대형병원은 이전부터 응급환자가 많은 진료과는 레지던트(전공의)뿐만 아니라 전문의도 당직을 세워 왔기 때문에 제도 시행에 어려움이 없지만 전문의가 적은 병원이나 진료과들은 모두 당직 문제에서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소병원의 경우 한 두 명의 전문의가 매일 당직을 서고 다음날에 외래 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대형병원들을 제외하고는 지키기 어려운 제도라는 것이다.
◆ 중소병원 "인권자체 무시"
대다수 중소병원들은 복지부의 응급의료법 실시의 취지 자체는 100% 공감하지만 뾰족한 준비과정이나 대책 없이 막무가내 식으로 추진하다보니 문제의 소지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 군 단위 응급의료기관의 경우 "1개 진료과에 전문의가 1명에 불과한 곳이 허다한데, 그리되면 전문의는 365일 일해야 한다" 며 "기본적인 인권자체도 무시하는 것" 이라고 토로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에서는 최근 돈 좀 적게 받더라도 응급센터 없어 당직 부담 없는 곳으로 이직하려고 하는 의사들이 많다” 며 “이는 젊은 의사나 나이든 의사나 피차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소아과·산부인과 등 응급환자 비율이 높은 진료과도 반발이 거세다.
유경하 대한소아과학회 기획이사는 "응급실 당직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평균 1.5~1.65명 필요하지만 전국 응급의료센터 130여 곳에 200여 명의 전문의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 국회 "실효성 없고 혼란만 가중"
국회서도 응급의료법 시행 두 달 만에 지역응급의료기관 15곳 지정 취소(자진반납 포함), 응급실 전문의 사직 현상 등 부작용이 나타나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문정림 선진통일당 의원은 지난 5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 과정 중 ‘당직전문의 등’ 부분에서 3·4년차 이상의 레지던트를 배제한 것이 해당 의사와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당직 전문의 범위에 대한 재고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 의원은 “현행 응급의료법령은 응급의료기관 종별에 따라 업무와 역할을 달리 규정하고 있지만 모든 응급의료기관에 동일한 당직 전문의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모든 진료과목에 당직 전문의 배치 역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대로 된 응급의료체계 정착 전까지는 유예기간을 추가 연장해야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단계별 구체적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 임 장관, 법 개선위해 전공의 만나 의견 수렴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응급의료법 개선을 위한 의견 수렴을 위해 전공의들을 만날 예정이다.
임 장관은 지난 5일 복지부 국정감사를 통해 "현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면서 "전공의들의 실질적 의견을 들음으로써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보다 현실성 있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현재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원안에 있던 전공의 의무적 당직근무가 삭제되면서 수련 질 하락과 전공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주무 장관과 전공의들이 직접 만나 전공의 수련과 근무환경 중 어느 것이 우선순위가 되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임 장관은 "다음달 6일부터 행정처분이 급하게 이뤄지지 않게 현실에 맞도록 고쳐나가도록 하겠다" 면서 "응급의료체계를 선진화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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