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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吉林)성 기록보관소가 지난 7일 공개한 난징대학살 역사가 기록된 기밀 문서. [사진 = 신화사]
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요즘 심심하던 중 중국인을 죽이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죄 없는 중국인들을 산 채로 매장하거나 장작불에 밀어 넣어 몽둥이로 때리거나 혹은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
이는 난징(南京)대학살에 가담했던 일본군의 일기에 적혀있던 내용으로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의 진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기록보관소가 22일 난징대학살 세부 내용이 담긴 일제 남만주철도회사(滿鐵)의 기밀문서 3건을 공개하면서 난징대학살이 재조명되고 있다.
난징대학살은 중일전쟁시 일본군이 중국 만주에서 산둥성 지난을 거쳐 난징으로 진격하던 중 중국인 30만 명 이상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으로, 일본에서는 ‘난징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당시 일본군의 학살은 기총(機銃)에 의한 무차별사격을 비롯해 생매장, 불태워 죽이기 등의 극히 잔학한 방법으로 이뤄졌고, 부녀자에 대한 강간과 약탈·방화 등도 자행됐다.
이날 공개된 기밀문서는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점령한 뒤 남만주철도회사의 상하이(上海)사무소가 '난징특무반'을 현지에 파견하고 일본군의 침략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난징특무반이 1938년 2월 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약 600명으로 구성된 사체 처리팀은 1월 상순부터 2월 말까지 약 5000구의 시체를 매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같은 해 3월 말 보고서에는 3월 15일까지 3만 1791구의 사체를 난징 샤관(下關)과 상신허(上新河) 일대의 지정된 장소에 수용했고, 이를 위해 매일 트럭 5~6대와 200~300명의 일꾼을 투입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랴오닝성 기록보관소 자오환린(趙煥林) 관장은 "남만주철도회사 난징특무반의 보고서에는 비록 일본군이 난징에서 잔인무도한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은 없지만, 일본군이 조직한 사체 처리대의 규모와 작업기간으로 학살의 전반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린(吉林)성 기록보관소는 지난 7일 신화통신을 통해 일본군 화중(華中) 파견헌병대 사령관이 관동군사령부에 두 차례 보고한 문서를 공개하며 1937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자행된 일본군의 난징대학살을 전후해 난징의 인구가 100만 명에서 33만 5000명으로 줄었다는 내용을 폭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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