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도 호암 탄생 100주년 맞아 ‘들썩’
대구는 삼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도시다. 호암이 첫 사업 실패 후 재기에 성공한 곳도,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곳도 모두 대구이다.
삼성그룹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삼성상회는 서문시장 인근 대구시 수동(현 대구시 중구 인교동 61-1)의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목조건물에서 시작됐다.
사업초기에 삼성상회는 대구의 사과와 포항의 건어물을 사들여 만주와 중국으로 수출했다. 무역업과 함께 제분기와 제면기를 사들여 ‘별표 국수’를 만들어 팔아 대구 일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듬해에는 대구에서 첫 손 꼽히던 조선 양조를 인수했다. 이후 조선양조는 한국전쟁으로 전 재산을 날린 호암이 재기에 나설 수 있는 밑받침이 된다.
현재 대구시 인교동의 옛 삼성상회 터에는 ‘삼성의 모태가 되는 삼성상회가 있던 자리’라는 표지와 함께 1층을 떠받치던 기둥 6개, 그리고 간단한 설명 동판이 설치돼 있다.
삼성상회터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진 대구시 침산동에는 옛 제일모직 대구공장 터가 있다. 1954년에 설립된 제일모직은 1953년 설립된 제일제당과 함께 삼성이 본격적인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데 초석이 된 기업이다.
국내 최초로 현대식 생산시설을 갖춘 대규모 섬유공장이던 제일모직 대구공장에서 생산된 국산양복지 ‘골덴텍스’는 날개 돋힌 듯이 팔려나가며 삼성의 기틀을 닦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제일모직 완공 당시의 감격을 호암은 “황무지에 공장이 들어서고 수많은 종업원들이 활기에 넘쳐 일에 몰두한다. 쏟아져 나오는 제품의 산더미가 화물차와 트럭에 가득 실려나간다. 기업가에게는 이렇게 창조와 혁신감에 생동하는 광경을 바라볼 때야 말로 바로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더없이 소중한 순간이다.”
제일모직 대구공장은 1996년 구미공장을 통합되면서 폐쇄됐지만 호암의 집무실이 있던 본관과 대한민국 최초의 여공 기숙사 였던 기숙사 건물 일부가 남아 있다.
이처럼 호암과의 인연이 남다른 대구시와 대구 상공인들은 호암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갖가지 기념사업에 분주하다. 삼성물산 회장을 지낸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호암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 포럼’을 준비하는 한편 옛 제일모직 터에 세워진 오페라하우스에 故 이병철 회장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현재의 ‘제일모직로’를 '호암로'로 바꾸며, 삼성상회터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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