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국제공조와 다자주의 외교를 중시하는 '스마트외교'로 노벨평화상을 거머줬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수상 자격을 둘러싼 논란도 따라붙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1주년을 맞은 오바마의 외교 성적을 'B-'로 평가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받기에는 가혹한 성적표다.
오바마의 외교정책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린다. 협상을 통해 가능성을 찾는 오바마의 다자주의 외교는 전임자인 조지 부시의 독단적인 외교노선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유연성이 미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가 부시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오바마는 지난해 아프간 증파를 결정했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는 "정의로운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오바마 외교정책의 주요 평가항목으로 아프간 전략을 꼽고 있다.
◇"'스마트 외교' 美 국격(國格) 높여"
국가브랜드지수(NBI)를 창안한 사이먼 안홀트는 최근 FP에 기고한 글에서 '오바마 효과'로 미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가 2조1000억 달러 늘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이 미국인과 미국의 문화, 수출품, 정부, 인권 등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만큼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의미다. 그는 오바마가 끌어올린 국가 브랜드 가치는 전임자가 8년 동안 한 것보다 컸다고 평가했다.
백악관도 "오바마 대통령이 안정적 외교를 통해 미국을 더 강하게 만들었고, 특히 도덕적 권위를 되살렸다"며 새 정부 출범 1년을 평가했다.
가시적인 변화도 잇따랐다.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난하며 외교관계를 단절했던 베네수엘라가 국교를 다시 정상화한 게 대표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 체코 프라하 연설을 통해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구상을 내놨고 6월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역사적인 이슬람 화해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미국이 과거 이슬람권과 갈등을 빚은 데 대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미국인들도 오바마 취임 1주년을 전후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외교안보 분야에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줬다.
미국인들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아프간 증파 결정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16일자로 낸 오바마 취임 1주년 특집기사에서 오바마가 아프간 증파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 미국인들의 지지를 불러 왔다고 분석했다. 오바마가 파병 규모를 크게 늘린 것은 전쟁을 빨리 마무리져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바마는 내년 여름 안에 아프간 병력 철수에 나서 같은해 말에는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 둘 계획이다.
◇"'스마트외교'는 빈 껍데기"
반대편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를 게 없다며 오바마의 스마트외교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들린다. 아프가니스탄, 중동, 이란ㆍ북한의 핵 문제 등 난제가 쌓여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대선 이후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나 중국에서 벌어진 소수민족 유혈시위에 대해서도 미국은 미온적으로 반응했다. 이를 두고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변화를 강조하던 오바마의 외교정책이 결국 세속적으로 변질됐다고 꼬집기도 했다.
오바마가 공언했던 외교안보 분야 공약도 요란한 빈 수레에 그친 게 많다. 대표적인 게 이라크전쟁 종전 약속이다. 이라크 전쟁을 끝내겠다던 오바마는 병력만 대거 철수시켰을 뿐 종전선언은 하지 않은 상태다. 오바마 지지자들조차 이라크 전쟁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전선인 아프간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오바마는 취임 직후 아프간 전략 재검토를 지시했지만 결국 부시의 구상대로 미군 2만1000명을 증파했다. 지난해 말에는 3만여명을 더 보내기로 했다. 아프간의 혼란은 이웃 파키스탄으로도 전이됐다. 탈레반을 제거하겠다며 자행한 무차별 공습은 민간인 피해만 불러왔다.
오바마는 포로 학대 논란을 빚고 있는 쿠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를 일년 안에 폐쇄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폐쇄 시한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적과의 대화' 역시 미뤄졌다. 오바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악수했을 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과는 대면하지 않았다. 이란ㆍ북한과 벌여온 핵협상 분위기는 오히려 냉각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도 딱히 호전된 게 없다.
오바마는 최근 대지진 참사로 폐허가 된 아이티 구호에 적극 나서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지만 미국이 아이티를 점령하려 한다는 비난도 동시에 받고 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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