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방영덕 기자) "준법감시 기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비용이 발생하는 부서란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한 준법감시인은 현장에서 느끼는 업무적 한계를 이렇게 토로했다.
오는 10월부터 준법감시인 제도가 의무화되는 대형 보험대리점의 한 관계자도 "인건비나 사무실 비용 등이 추가로 발생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준법감시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넘어야할 산이 많다. 준법 감시 기능이 중요해진 환경 변화와 달리 준법감시인의 지위나 권한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한 까닭이다.
준법감시 제도의 도입 초기부터 기존 부서와 업무가 중복되는 부분은 이미 문제로 지적돼 왔다. 임직원의 내부통제기준 준수여부를 점검하는 일이 기존 감사위원회를 비롯해, 내부감사 및 위험관리 부서 등의 업무와 겹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인식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강익환 국민은행 준법지원부 부장은 "감사위원회와 업무중복으로 두 조직 간 책임과 권한의 경계가 모호해 일 처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영화 우리은행 준법지원부 부장 역시 "내부통제 업무 전 부분에 대한 조직과 업무를 총괄하게 하거나 법규준수에 대한 감시기능으로 한정하는 방식 중 하나로 분명히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인의 역할 규정이 따로 없다보니 실질적 권한은 미미한데 광범위한 업무 범위로 준법감시인의 책임만 가중돼 있는 게 현실이다. 준법감시협의회 측은 "각종 소송관련 일 뿐아니라 감사조직의 업무인 민원 처리까지 하는 등 업무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업무중복을 최소화하고 준법감시인의 역할규정을 명확히 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오고 있다.
김화진 서울대 법대 교수는 "준법감시인은 리스크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내부통제 최고 책임자로서 통상적인 감사업무와는 차별화돼야 한다"며 "리스크관리 업무의 역동성과 예방적 기능에 비춰 사후조사 위주인 감사업무와는 분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준법감시인은 내부통제준수에 대한 '사전적 예방기능'에, 감사(위원회)는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사후 조치'에 중점을 두자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투자권유의 적합성 확보 △고객이익에 부합하는 수수료 체계 선택 △자금세탁방지정책 △이해상충의 예방 및 해소 등 사전 내부통제 기능으로 준법감시인의 역할을 규정짓고 있다.
지위 및 권한 등이 조직 내부에서 낮은 것도 풀어야할 숙제다.
일례로 준법감시인 임기는 감사와 달리 관련 규정이 따로 없다. 통상 1년 주기로 선임되다보니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특히 해임과 교체가 용이해 안정적 업무수행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성규 준법감시협의회 실장은 "증권업계에선 준법감시인이 순환보직인 경우가 많아 일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며 '임기보장도 안 돼 내부통제와 단기적 성과창출이란 경영진과의 의견 충돌시 이사회 의견에 대한 거절이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했다.
자본시장법상 준법감시인은 감사(위원회)에게 보고하도록 해 감사의 하위조직으로 오인할 소지도 크다. 준법감시인의 직위가 주로 팀장 혹은 부서장급으로 임원인 감사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42개 증권사 중 준법감시인의 지위가 임원급인 곳은 22개사, 직원으로 선임된 곳은 20개사로 나타났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최근 임원급으로 준법감시인을 두는 곳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 그 수가 절반 정도에 그친다"며 "감사와 마찬가지로 3년 가량의 임기를 명시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업무 수행을 하게끔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임기나 지위 면에서 충분한 인센티브가 없어 전문성 있는 외부인사를 끌어들일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준법감시인들은 회사 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정보요구를 할 때나 경영진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김종근 준법감시협의회 회장은 "무엇보다 준법감시에 대한 공감대가 사내에 확산되는 것이 시급하다"며 "경영의 총 책임자인 CEO가 나서 준법감시인의 지위와 권한 등을 보장해 줄 때 준법감시 관련 운용 비용이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개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sommoyd@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