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신기림 기자)엔화 가치가 뛰면서 일본에 진출한 글로벌 명품업체들이 외국보다 비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공략하는 '재팬프리미엄' 특수를 누리지 못해 울상을 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 엔화 강세로 해외명품을 50% 이상 싸게 판매하는 '엔다카(엔고)' 세일이 성행하면서 글로벌 럭셔리업체들의 '재팬프리미엄'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5년래 최고치로 치솟자 일본 소매업체들은 환차익을 이용한 '반값' 할인행사를 펼치고 있다.
지난달 말 야후재팬의 쇼핑사이트는 테일러메이드 골프채, 코치와 구찌 핸드백 등 수입 명품을 대상으로 엔다카세일을 시작했다. 6만3000 엔을 호가했던 코치의 줄무늬 토트백은 50% 이상 싼 2만5800 엔에 판매되고 있다.
재팬야후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한 주 동안 명품 판매량은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5배 급증했다.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사이트인 라쿠텐이치바의 지난달 명품시계 판매량도 전월 대비 45% 늘었고 남성용 수입지갑 판매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브라이언 살스버그 맥킨지앤코 컨설턴트는 "현재 일본의 경제 상황과 가격투명성 덕분에 명품업체들이 재팬프리미엄 특수를 계속 누리기는 힘들 전망"이라며 "인터넷으로 명품가격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일본에서도 인터넷 할인매장을 찾는 명품족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일본에서 명품은 일종의 성공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지면서 일본에서 명품에 대한 인기는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수입브랜드 명품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16% 줄어든 99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절정을 이뤘던 1996년에 비하면 시장 규모가 반토막난 셈이다.
하지만 럭셔리 소매업체들은 일시적인 엔고로 제품의 정가를 더 낮출 의향은 없다고 밝혀 골수 명품족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안드레아 레스닉 코치 투자·홍보 부문 수석 부사장은 "엔고로 제품가격을 조정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치는 일본에서 크리스틴 가죽백을 5만9850 엔(710 달러)에 판매하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298 달러에 팔고 있다.
글로벌 명품업체들의 고가 전략은 준저가 브랜드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캐주얼브랜드인 아베크롬비앤드피치(A&F)는 일본에서 일부 티셔츠의 가격을 미국보다 두 배나 비싸게 판매한다.
마이크 제프리즈 A&F 최고경영자(CEO)는 올 초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인 A&F는 시장 상황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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