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윤모(37)씨는 요즘 실의에 빠졌다.
집값이 바닥이라고 해서 서울의 이곳저곳 아파트 단지 중개업소를 둘러보니 어느 새 급매물이 모두 빠지고 가격도 수천만원씩 올랐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부동산 정보업체에 등록된 싼 매물을 보고 전화를 하면 그 가격대 매물은 이미 팔리고 없다.
윤씨는 "한 번은 시세보다 1천만원 싼 아파트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집주인이 그 자리에서 2천만원을 올려버리더라"며 "주택 매수 시기를 놓친 거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시장이 심상찮다. 강남권 재건축을 비롯한 주요 인기지역의 아파트들은 급매물이 자취를 감췄고 가격 흥정도 쉽지 않다.
지난달까지 '매수자 우위'의 시장이었다면 이달 들어 순식간에 '매도자 우위'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가격도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최근 한두달 새 실거래가가 수천만원씩 뛴 단지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이 사실상 바닥을 찍고 내년 설 연휴 이후에는 본격적인 강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급매물 소진..가격 오름세 확산 = 12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0.04%로 그 전 주(0.02%)보다 상승폭이 커지며 3주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신도시 역시 지난주 0.03% 오르며 전 주(0.1%)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지난 2월 이후 줄곧 시세가 하락했던 이들 지역은 지난 10~11월에 급매물이 급속도로 팔리며 호가가 오른 것이다.
상승세는 강남권 재건축 단지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주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 변동률은 0.33%로 전체 아파트값 상승률(0.04%)의 8배에 달했다.
지난 10월 10억5천만원에서 11월에 11억원으로 올랐던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112㎡는 지난주 다시 11억5천만원으로 뛰며 매달 5천만원씩 계단식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송파공인 최명섭 대표는 "거래량이 많진 않지만 10월에 11건, 11월에 12건, 12월 현재 5건 등 급매물을 중심으로 꾸준히 거래가 이뤄지자 집주인들이 일제히 호가를 올린 상황"이라며 "현재 시세보다 싼 매물은 다 팔리고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도 급매물이 모두 소진됐다. 36㎡는 7억원, 43㎡는 7억9천만~8억원으로 10월에 비하면 2천만~3천만원, 지난달 대비 1천만~2천만원 정도 올랐다.
일반 아파트 상승세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는 시세보다 2천만~3천만원씩 싸게 나오던 급매물이 최근 거의 다 팔렸다.
신시가지 7단지 89㎡의 경우 6억7천만~6억9천만원이던 급매물이 다 팔리고 현재 7억~7억3천만원짜리 매물만 남아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 10일에 7억1천만원에 거래되며 실거래가로도 연초의 7억원대를 회복했다.
백두산공인 박응희 대표는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상황이라 매도-매수자간 가격 흥정이 어렵다"며 "개인 사정이 급한 집주인이 아니면 집값이 더 오른 뒤 팔겠다며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 일대도 급매물이 모두 소진된 후 호가가 2천만~4천만원 뛰었다. 가격이 단기간에 오르자 이달들어 거래는 소강상태다.
88공인 김경숙 대표는 "집주인들이 내년 봄에 집값이 오르면 팔겠다고 매도를 보류하거나 매물을 거둬들여 거래가 안된다"며 "지난달까지 매수자 우위의 시장이었다면 이달 들어선 매도자 우위로 바뀌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분당신도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시범단지 삼성한신 105㎡는 5억7천만~6억2천만원짜리 급매물이 다 팔리고 지금은 이보다 3천만원 정도 비싼 6억~6억5천만원은 줘야 한다.
해내밀공인 이효성 대표는 "분당 전지역에서 지난 여름처럼 싼 매물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급매물 가격만 생각하고 왔다가 오른 가격에 놀라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집값 불안해질까..정부도 예의주시 = 최근 들어 주택 거래량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전셋값 강세와 집값 하락을 틈탄 갈아타기 수요 때문이다.
지난 봄부터 이어진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감으로 매매수요가 전세로 돌아선 탓에 전셋값이 크게 오르자 이제는 전세를 포기하고 다시 매매로 회귀하는 것이다.
매매값이 약세를 보이자 작은 주택형에서 큰 주택형으로, 비강남권에서 강남권으로, 비인기 단지에서 인기 단지 등으로 주택을 갈아타려는 수요도 늘었다.
그 기저에는 정부의 8.29대책 이후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양도소득세 중과 완화 연장조치 등으로 집값이 폭락할 일은 없다는 안도감이 작용했다.
개포동 남도공인 이창훈 대표는 "8.29대책 이후 비강남권과 분당, 용인 등지의 거래가 살아나자 비로소 자기 집을 팔고 강남권 등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갈아타기'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 우려가 커지가 정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달 주택담보대출 금액이 큰 폭으로 증가한 데 주목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에 3천억원 감소했던 주택담보대출은 9월 1조7천억원, 10월 2조2천억원, 11월 2조9천억원으로 3개월째 증가하고 있다.
특히 11월은 작년 7월(3조4천억원) 이후 증가폭이 가장 큰 것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강화했던 지난해 9월 이전의 7~8월 수준을 회복했다. 올해 들어 두차례의 금리 인상도 무용지물이다.
국토부는 현재 집계중인 11월의 아파트 거래량은 2007~2009년 11월 평균치와 비슷하거나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거래량 증가와 집값 상승 기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내년도 입주물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부동산114 집계에 따르면 내년 아파트 입주 물량은 총 18만8천727가구로 올해 입주 물량(30만401가구)에 비해 37% 감소한다.
국토부 진현환 주택정책과장은 "최근 송파구의 재건축 주간 상승폭이 3주 연속 0.5%를 넘어서는 등 이상징후를 보여 상황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며 "입주물량이 감소하는 내년에는 집값, 전셋값 안정이 주택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말부터 내년 구정 연휴까지는 계절적 비수기에 접어드는 만큼 당분간 매도-매수자간의 줄다리기가 지속되다가 가격이 조금씩 오르는 계단식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대북 리스크와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 유럽 등 글로벌 경제 위기 등은 주택시장의 흐름을 순식간에 바꿔놓을 수 있는 중대 변수여서 이들 변수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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