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의 차기작, 내겐 기적을 넘은 기적이다"

  • "14년만의 차기작, 내겐 기적을 넘은 기적이다"

영화 수상한 이웃들 양영철 감독/ 사진=홍정수 기자

(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30대의 풋풋했던 데뷔 감독이 어느덧 50대를 목전에 두고 차기작을 발표했다. 데뷔작과 차기작을 이어주는 시간의 끈이 무려 14년이다. 영화 ‘수상한 이웃들’을 연출한 양영철 감독이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수상한 이웃들’은 지역 신문사인 ‘봉계 신문’을 중심으로 기자, 편집장 그리고 이웃 간의 먹고 먹히는 일주일간의 스토리를 색다른 감각으로 풀어냈다. 옴니버스식의 스토리 구성부터 연극적 상황 설정 및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까지 삼박자가 빈틈없이 맞물리며 영화 전체의 균형감을 유지한다. 순제작비 5억원 규모의 초저예산 영화임에도 상업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다.

‘수상한 이웃들’의 연출자인 양영철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 ‘수상한 이웃들’이 드디어 개봉했다. 기분이 색다를 듯하다.

“이미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 번 상영됐다. 당시 다행히도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솔직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봉 시기를 조율하다 이제야 선을 보이게 됐다. 결과가 어떨지 지금도 조마조마하다.”

- 일단 주변 반응부터 궁금하다. 어떤가.

“언론시사회와 일반시사회 모두 반반으로 반응이 갈리더라. 좋은 반응도 많은 반면 당혹스러워하는 반응도 많다. 호불호가 명확한 상태다. 영화가 ‘훌륭하다’ ‘괜찮다’란 말보다는 ‘독특하다’란 말이 더 많았다. 좀 강한 표현들도 있었고(웃음). 그래도 재미없다는 말은 다행히 없더라.”

- 데뷔작과 차기작의 시간 공백이 14년이다. 그래도 공백기가 너무 길었다.

“갈증이 심했다. 목이 말라 죽는 줄 알았다. 굳이 공백기가 길었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산만해서인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사와 접촉한 뒤 서로간의 이견이 발생하면 수정하고, 그러다 다른 얘기에 눈을 돌려 또 다른 시나리오를 쓰고. 이러다보니 그렇게 공백기가 길어진 것 같다. 그래도 현재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보니 학생들과 부딪치며 여러 작업을 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한 것 같다. 그런 것조차 없었다면 아마 큰일 났을 것이다. 14년을 어떻게 버티나.(웃음)”

- 데뷔작 ‘박대박’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꽤 독특한 영화였는데.

“이미 알겠지만 흥행이 잘된 영화는 아니다. 나름의 시도를 한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그 당시를 기억하자면 제작 여건이 참 좋았다. 좋은 배우와 대기업의 투자도 있었고. 그런데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노력이 부족했단 생각이 든 작품이 ‘박대박’이다. 그 영화를 통해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잡아내는 게 중요하단 깨달음을 얻었다.”

- 너무 앞서나간 영화였다. 당시 시대상과 연관지어보면 영화 주제가 좀 위험스러웠을 텐데.

잘 봤다. 제작 초기 한 대기업의 투자가 확정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투자가 무산됐다. 그래서 해당 기업 관계자를 만났는데 “법조계를 희화화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난색을 표하더라. 너무 황당했다. ‘아직도 위쪽의 눈치를 보는구나’란 생각에 씁쓸함이 컸었다. 또 개봉 전 법원에 불려간 적이 있다. 법원 수위실에서 촬영한 영화 속 에피소드 내용이 문제였다. 법원 수위를 너무 우스꽝스럽게 그렸다며 법원 수위대장이 촬영을 허락한 행정부서에 항의를 했다고 하더라. 결국 나와 문제의 수위 대장이 만나 오해를 푼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황당했다.

- 법학도 출신인데, 혹시 전공이 사회 부조리나 공권력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립한 계기가 된 것은 아닌지.

“그렇지는 않다. 나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부조리에 관한 내용을 그리고 싶었다면 지금보단 좀 더 진지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문제가 있는 곳보다는 고민이 있는 곳에 관심이 더 많다고 말하고 싶다. 고민은 누구든지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자가당착이나 아이러니에 대한 관심도 크다. 이번 영화에서도 보면 선생님과 촌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 장면을 문제가 있는 것으로 그리기 보단 아이러니에 초점을 맞췄다. 어떤 주제든지 무겁게 풀어 나가면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로 보여진다. 영화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지 않은가. 영화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콘텐츠일 뿐이다. 그것을 흥미롭고 유머스럽게 풀어내는 것이 관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뭐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 같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쓰면 자꾸만 그런 식으로 나온다.(웃음)”

- ‘수상한 이웃들’의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계기가 있나.

“몇 년 전 부산 기장이란 곳으로 이사를 갔다. 도시 사람과 지역 토박이들이 섞여 사는 묘한 곳이다. 그 묘한 느낌을 메모해 나갔다. 메모가 늘어나면서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얘기를 한다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어떤 직업들의 사람들이 있을까란 생각을 하며 스토리를 구성했고, 마을로 돌아온 아버지의 얘기가 떠올라 단편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그 영화가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택시 드라이버’였다. 영화제 상영 당시 반응이 정말 좋았다. 이후 스토리를 확장시켜 나가면서 장편으로 구상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수상한 이웃들’이 완성됐다.”

- 이른바 ‘스타 없는 영화다’. 독특하면서도 탄탄한 시나리오에 여러 스타급 배우들의 관심도 컷을 듯한데.

“개인적으로 처음 영화 구성 당시부터 스타급 배우들의 출연은 생각지 않았다. 스타보다는 흔히 말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생각했다. 박원상이 가장 먼저 떠오른 배우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강동원, 원빈, 장동건 등의 배우들이 출연해 준다면야 감독 입장으로선 정말 고마운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처음 ‘수상한 이웃들’ 연출을 하면서 전제 조건으로 달았던 부분이 바로 ‘드러나지 않고 묻혀 갈 수 있는 배우’였다. 물론 출중한 연기는 기본이었다.”

-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출연해 ‘배우 보는 맛’도 참 크다.

“출연 배우 대부분이 첫 번째 만남에서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 줬다. 솔직히 참 신기했다. 캐스팅 과정 당시 모두 내 눈에 띄던 분들이 모두 출연했다. 박원상씨만 해도 ‘별순검’이란 드라마에서 상당히 터프하게 나왔는데, 난 그 안에서 코믹스런 부분을 발견해 캐스팅을 추진했다. 그 외에 다른 배우들도 정말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분들이다. 이런 배우들이 내가 쓴 대사들을 맛깔나게만 해 준다면 정말 금상첨화라 생각했다. 나중에 배우들에게 출연 결정 이유를 물어보니 하나 같이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하더라. 결국 감독이나 배우나 도전이란 단어에 큰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입장에선 정말 100% 만족한 캐스팅이다.” 


수상한 이웃들 한장면

- 특별한 반전이나 사건 없이도 스토리가 이어지는 힘이 크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오히려 이 영화의 약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을 듯 한데.

“난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대중적이라기 보단 독특함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 앞 뒤 말이 안 맞는 것 같은데 솔직한 그냥 심정이다. 처음엔 장르 영화로서의 시나리오 수정도 했었다. 장르 영화라면 해당 장르에 대한 공식을 따라가야 하는 점이 있다. 그런 점을 따라가 봤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맛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처음에 생각한 부분을 밀고 나갔고, 현장에서 연출을 할때도 처음 생각을 고집했다.”


- 황량한 도시에 맨발의 실성한 여자, 첫 장면은 지금도 이해가 불가능하다. 어떤 의미인가.

“관객들을 속이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 봐 달라. 영화의 전체적인 틀을 놓고 봤을 때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싶었다. 코미디 영화인데 공포스런 부분을 넣어서 ‘이게 뭘까’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만약 이 영화 장르가 무엇인지 모르고 관람했다면 정말 큰 반전이 되지 않겠나. 그런데 이번 인터뷰에서 공개가 됐으니 큰일이다.(웃음).”


- 제목이 비슷해 헛갈리는‘수상한 고객들’과 극장가에서 대결 중이다.

“참 당혹스럽다. 비슷한 제목에 같은 장르에 같은 날 개봉을 했다. ‘수상한 고객들’은 규모(30억)로만 보자면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영화 아닌가. 뭐 판단이야 관객 분들이 해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내 영화를 믿어야 하지 않겠나.(웃음)” 


사진=홍정수 기자

- ‘수상한 이웃들’에 대한 한 줄 정리를 하자면.

“어떤 네티즌이 썼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묘한 영화’.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구성이나 배우들에 있어서 특별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영화. 다양한 시도를 한 영화. 10명 중 7~8명이 ‘재미있다’ 보다는 ‘골 때린다’ ‘어처구니없다’란 소리를 하고 나오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 구상 중인 차기작이 있나.

"멜로드라마다. 나만의 장점인 풍자적 유머가 녹아든 얘기가 될 것 같다. 올해 안에 촬영을 들어가는 방향으로 잡고 있다. 느와르도 한 편 있는데 그것도 코믹적인 부분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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