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천의 재계 엿보기> 기업하기 힘든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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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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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임재천 기자) 지난 주말, 한 기업인에게서 소주 한 잔 하자는 전화가 왔다.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기에 별 생각 없이 집 앞 부침개 집에서 만났다.

술을 한 잔 마시자 그는 대뜸 “이번 총선에 자신이 출마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미 해당 정당의 최고위층 공천 담당자를 만나 지역구까지 정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평소 정치라면 고개를 흔들었기에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었지만 지역구까지 정했다는데 애써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말만 전해주고 헤어졌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가 정치에 입문하려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바로 기업하기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기업 현장에서 그나마 기업인들을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기자는 자괴감이 들었다.

매일 ‘대기업 때리기가 심각하다, 반기업정서 최고, 공산주의식 물가 통제, 출총제 부활’이라는 보도를 접하지만 그날만큼 피부에 와 닿은 적도 없었다.

사실 그 기업인은 탄탄한 기업체를 경영하고 있어 직원들 월급 걱정할 일도 없고, 사양 사업을 영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그가 기업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면 우리나라 ‘기업 환경’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뜻이다.

생각이 대기업으로 이어졌다. 기업 규모만큼 외풍도 많은 삼성을 비롯한 LG, 현대차, SK그룹 등 굴지 기업의 경영자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기업만 두둔할 일도 아니다. 애초부터 투명하게 경영했다면 선거철이라고 해서 권력 기관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재계가 소리 없이 술렁이고 있다. 오너 리스크가 있는 기업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보여주기식 기부’로 이미지 반전을 꾀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앞다퉈 과잉 충성하는 모양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에서 기업하기는 정말 힘든 것 같다.

몇몇 기업인은 자식들에게 기업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본인 생전에 기업을 정리해서 자식들에게 돈으로 나눠주는 게 차라리 맘 편하다고 토로할 정도다. 기업의 존재 이유와 가치마저 부정하는 것이다. 정치인·기업인·관료 등 먹이사슬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누구의 잘못이라고 타박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 기업과 기업인들이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내몰렸는지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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