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열 리덤 & 세인트 앤스GC |
아주경제 김경수 기자= 1995년 여름인가.
영국 관광청 초청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골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타사 기자 2명을 포함, 3명이 8박9일 일정으로 여덟군데 유명 골프장을 돌아봤다. 모두 브리티시오픈을 열만큼 이름난 곳이었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턴베리, 글렌 이글스…. 올해 개최지인 ‘로열 리덤 & 세인트 앤스’도 그 중 하나다.
최경주가 연습라운드 후 그랬다던가. “하루에도 4계절을 다 경험한다”고. 그 때에도 한결같이 폭우, 강풍, 햇볕, 추위가 교차되는 날씨였다. 오전에 라운드하고, 오후엔 이동해서 다음 골프장에 딸린 숙소에서 자고, 다음날 오전에 라운드하고…. ‘오전에 치고 오후에 이동하는’ 단조로운 일정이 9일간 계속됐다. 동료들은 지친 기색을 보이기도 했으나, 기자는 가는 곳마다 새삼스럽고 재미있었다. 골프입문 3년차정도였기에 그랬을 법하다.
로열 리덤& 세인트 앤스는 여정 후반부에 끼여 있었다. 링크스코스라고는 하지만, 코스와 바다 사이에는 동네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도 바람은 세찼다. 라운드 직전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첫 홀 티잉그라운드에 갔다.
파3였다.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생경했다. 그 때까지 라운드한 골프장 가운데 첫 홀이 파3인 곳은 처음이었다. 티잉그라운드에서 보니 ‘항아리 벙커’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모두 수직으로 깊에 파였기 때문에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벙커에 개의치 않고 모두 그린을 향해 티샷을 했던 기억이 난다.
코스 가장 자리를 따라 서 너 홀 쯤 지났을까. 갑자기 바람이 불고 폭우가 내렸다. 속으로 ‘둘 중 하나만 오지’라고 뇌었으나 들어줄 리 없었다. 대부분의 링크스코스처럼 이곳도 ‘고잉 아웃-커밍 인’으로 돼있다. 9번홀과 10번홀이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레이크사이드CC 서코스를 생각하면 된다. 비바람이 거세도 쉽사리 클럽하우스로 돌아올수 없었다. 비바람 핑계로 잠깐 플레이를 멈추고 ‘볼 일’을 보는데 소변이 날려 바지가 젖을 정도다. 링크스코스의 바람은 이렇다. 턴베리에서도 그랬었다. ‘그래도 어떤 기회인데’라며 라운드를 강행했다. 어떤 러프는 그냥 풀이지만, 대부분 러프는 가시덤불이다. 볼이 그 곳에 들어가면 찾기도 힘들거니와 가시에 찔리기 일쑤다. 찾았다 해도 그 곳에서 친다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
스코어 적기를 포기하고 날씨와 싸움을 하며 들어오는데 후반 마지막 몇 홀은 클럽하우스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어 기억을 되살릴 수가 없었다. 흠뻑 젖은 몸으로 18번홀에서 홀아웃한 후 뛰다시피 인접한 클럽하우스로 가 몸을 녹였다. 입술은 파래지고 몸은 오들오들 떨리고…. 물론 스코어는 엉망이었다. 그 며칠 전 처음간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88타를 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듯했다. 100타 가까이 치지 않았나 한다. 그래도 링크스코스의 변덕스런 날씨, 사람 키 깊이의 벙커, 질긴 러프는 다 경험했다. 5시간 가까이 걸린 18홀 플레이를 다 마쳤으니 덤으로 ‘인내심’까지 키우고 돌아왔다.
지금도 이 곳을 생각하면 1번홀, 클럽 하우스, 최고급 숙소, 골프장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 멀리 보이는 바다 등이 떠오른다. 골프기자가 브리티시오픈 개최코스에 가본 것, 더 나아가 그곳에서 라운드해본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가. 집에 가면 옛날 기록을 뒤져 그날 스코어부터 확인해봐야겠다.
평생 잊지못할 경험을 하게 해준 영국 관광청과 브리티시에어웨이에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