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 집값이 비싸다는 서울 강남에서도 웬만한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금액이지만, 정작 이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은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의 고가주택 기준인 9억원보다 비싼 전셋집을 찾는 VVIP(초고액 자산가) 수요는 꾸준한 반면 세를 내놓는 집주인들은 많지 않은 까닭이다.
서울 성수동 일대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입주한 주상복합아파트 '갤러리아 포레'의 경우 전세 대기자만 10여명에 이른다. 가장 싼 전용면적 168㎡형의 전세보증금은 16억~17억원을 웃돈다. 이 단지 전용 241㎡형은 전셋값이 무려 22억원에 이르지만 전세를 찾는 수요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인근 한 공인 "쾌적한 주거환경과 뛰어난 조망권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집 한 채 값이 넘는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전세 수요자들이 많다"며 "특히 도곡동·삼성동·압구정동 등 강남에서 거주하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오래 돼 새 집으로 이사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전세로 나와 있는 물건은 단 한 건도 없다. 입주민 10명 중 8명이 집주인일 정도로 계약자 대부분이 실거주하고 있어서다. 직접 입주를 못한 계약자들도 이미 전세 거래를 마쳐 추가로 물건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황지훈 갤러리아포레부동산 실장은 "갤러리아 포레의 경우 한강 조망권을 갖춘 것을 넘어서 돈과 성공 등을 상징하는 물길이 들어오는 입지이다 보니 개인사업, 병원 운영 등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며 "하지만 계약자들도 같은 이유로 분양을 받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직접 거주해 전세 물건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아 포레 등장 이전 최고가 아파트로 군림했던 삼성동 아이파크도 전세난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싼 집이 12억원(전용 144㎡)에서 시작해 전용 195㎡의 경우 전셋값이 18억~19억원 이른다.
그런데도 전세 물건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돈을 더 주더라도 좋은 층에 들어가려는 고가 전세 수요자의 특성상 저층 위주로 간간이 매물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원하는 층과 향은 항상 품귀 현상을 빚는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아파트 외 고급 빌라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강남구 청담동 '상지카일룸'(51가구)의 경우 현재 부동산 중개업소에 나와 있는 전세 물건은 1건에 불과하다. 전용 244㎡ 규모로 전셋값이 무려 35억원에 달한다.
또 연예인 장근석이 계약한 곳으로 유명세를 탄 논현동 '아펠바움' 역시 고급 마감재와 철저한 보안시스템 등을 갖춘 덕분에 사업가나 고액 자산가들에게서 인기를 끌고 있다.
고가 전세를 주로 취급하는 청담동 H공인 관계자는 "자기 집이 있는데도 더 좋은 여건의 새 집으로 옮기고 싶어하는 사람,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일단 전세로 들어와 살다 향후 거래를 하겠다는 사람 등 불황 속에서도 비싼 전셋집을 찾는 수요는 다양하다"며 "일반주택의 경우 집주인들이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난을 겪는 반면, 고가 주택은 주인들이 직접 거주하는 비율이 높아 물건 부족으로 전세난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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