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자력발전소 |
원전과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공기업, 민간기업, 관료 출신이 인증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등 그들만의 ‘검은 카르텔’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
원전 설계부터 시험평가까지 특정 출신들간 담합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원전 비리'라는 총체적 인재(人災)의 결과물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원전 비리가‘원전 국산화 원년’초창기 부터 싹트기 시작해 최근 들어 곪아 터지기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원전 국산화 작업은 지난 1979년 발생한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로 미국이 신규 원전 건설을 전면 중단하면서 본격화됐다.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다가 국내 원전에 사용될 부품 국산화를 무리하게 진행하다 보니 기술력은 떨어지고 이는 곧 안전 결여로 이어지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원전 1기에 들어가는 부품만 300만개인 이 노다지시장에 국내 부품 업체는 쾌재를 부르며 너도나도 뛰어든 결과, 부실부품마저 눈 감아주는 본격적인 담합의 시대가 태동하기 시작했다는 진단이다. 원전이 국산화되는 30년 동안 이들은 정보와 규제 독점 등 기득권을 유지해 ‘원전 마피아’라는 검은 부패 고리를 광범위하게 형성한 셈이다.
실제 한국전력공사가 최대 주주로 있는 한국전력기술은 원전 설계를 비롯해 원전 부품 및 설비의 시험성적서 승인까지 맡고 있는 등 국내 원자력발전소 설계를 독점하고 있다.
이번에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새한티이피에는 이러한 한전기술 출신들이 지분의 절반에 가까운 47%를 보유 중이다. 이처럼 한전기술이라는 든든한 甲을 배경에 둔 새한티이피는 지난 10년간 2백건 이상의 검증 프로젝트를 도맡으며 민간 업계 1위로 부상했다.
원전 부품 검증업체를 인증하는 대한전기협회도 이들과 단단한 유착관계를 형성했다. 현재 전기협회장은 조환익 한전 사장이며, 5명의 비상근 부회장과 이사 28명 가운데는 지난 6일 면직된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같은 날 해임된 안승규 한전기술 사장 등 대부분 원전과 관료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원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부품 검증 서류를 위조한 새한티이피를 인증해 주는 과정을 보면 발주처와 납품업체가 성능검증업체를 인증한 꼴”이라며 “사실상 이번 원전비리는 일치감치 예고돼 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원전 마피아들은 특정 학맥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내 대학 가운데 원자력 관련 전공을 개설한 곳은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양대 등 9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원자력학회장을 맡은 10명 중 강창순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은철 원안위 위원장 등 모두 8명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이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한국 원전 정책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졸업자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셈이다.
한수원 퇴직자들이 원전 업계로 옮겨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지난 10년간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 퇴직자 중 30%가 원전 관련업체에 재취업 했으며, 이들을 영입한 국내 원전 업체 13곳이 지난 2010년부터 2012년 8월까지 한수원과 맺은 계약 금액은 총 1조6785억원에 이른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수원 임원 출신이 업체 대표나 협회로 이동해 그들만의 모임을 만드는 등 유착관계가 오랜시간 형성됐다”며 “미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들처럼 원전을 감독하고 규제하는 민간 외부 감시기구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