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이 작품, 참 특이하다. 도자기도 아닌 것이 도자기 같기도하고, 멀리서보면 극사실화같 기도하다.
'예상을 뛰어넘은 예상'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작가 이승희(55)의 작품은 '예상의 예상을 뛰어넘어' 경탄을 선사한다.
도자기도, 회화도 아닌 작품은 '도자기와 회화가 융합된 21세기 '도자회화'다. 입체적인 도자기들이 평면으로 압축됐다.
온전히 도자 기법으로 탄생된 작품은 세라믹 특유의 존재감을 발한다.
수백년전의 전통 도자기가 현대적인 옷을 입고 세련되어졌다고나 할까. 캔버스같은 편편한 판에 도자기가 솟을 듯 말 듯 도드라져 있다. 얼핏 스치다가도 "이게 뭐지?" 하고 눈을 끌어당긴다. 익숙한 미감에 시각적 감흥을 자극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제일 먼저 갖는 의문이다.
작가는 "말로 설명해도 100%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전문적인 도자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그의 기법을 더욱 믿지 않는다. 최근 뉴욕 월리 핀들리(Wally Findlay) 갤러리의 전속 작가가 된 그는 11월부터 열린 개인전에서도 서양인이나 동양인이나 기법에 대한 질문이 많다고 했다. 갤러리측의 요구로 작가는 말로는 다 표현못할 제작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만들 계획이다.
작업은 반복의 연속이다. 널판에 흙물을 쌓는 일을 계속해야 끝난다. 중국 장시성 징더전(景德鎭) 사람들은 이같은 작업을 하는 그를 보고 '바보같은 사람'으로 부른다.
6년째 징더전에서 작업하고 있지만 그가 왜 이렇게 일을 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각을 하거나 눌러서 찍고 쉽게 하면 되는데 왜 어렵게 하느냐"는 핀잔만 들기 일쑤다.
그가 흙물이나 계속 끼얹고 시간을 떼울때 징더전은 속전속결, 바삐 돌아간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자기 도시로 순식간에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모방의 두려움따위'는 없다. 모방이야말로 창조의 근원으로 여기며 소위 중국 도자기 가짜는 이곳에서 만들어질 정도로 분업화와 시스템이 갖춰졌다.
역사와 도도한 흐름을 간직하고 있는 징더전을 작가는 '보물창고'라고 했다.
"중국은 서양미술에 주눅들었던 내가 컴플렉스를 해소하고 '동양인'이라는 느낌을 처음 받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한 곳입니다".
특히 이전 설치미술에만 몰두했던 작가에게 전통(동양)과 현대(서양)의 조화를 눈뜨게 한 '인생 고향'이 됐다. 없는 것 빼고는 다 만들어낼수 있는 곳, 징더전에 작업실 세군데를 운영하며 도를 닦듯 작업을 진행한다.
흙으로 만든 도판 위에 묽은 흙물을 바른다. 한나절 때로는 이틀을 꼬박 기다렸다가 흙물이 마르면 그 위에 또다시 흙물을 바른다.
오로지 감각에 의존해 그렇게 수십 차례 한겹한겹 흙물을 바르는, 지루하고도 외로운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미세한 도자기의 형태가 드러난다.
거의 70여회의 반복속에 드러난 건 불과 5∼8㎜ 정도의 두께다. 언뜻 보면 평면 같지만 손으로 더듬어보거나 빛을 받아야 미세한 입체감이 느껴질 정도다.
휘지않고 구워내는법을 찾아내는게 어려웠다. 초반에는 온도나 습도가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작품이 깨지고 뒤틀리기 일쑤여서 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분청기법'에 착안해낸게 지금의 작업의 시작이 됐다.
시간과의 싸움, 그는 몸을 혹사시킨다고 했다. 중국에 가기전 산악자전거 마니아였던 그는 징더전에서도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다. 작업이 진행되면 숨이 턱까지 차 죽을 지경이 될때까지 자전거를 타 정신적 고통을 육체로 털어내기도 한다.
그는 "내 작업은 절하기와 유사하다"고 했다.
" 첫번째 절과 108번째 절은 분명히 다릅니다. 하고나면 달라지는 걸 느끼죠. 그 미세한 차이가 내 작품입니다. 그런 믿음이 내게 계속 도전할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감동을 줄수 있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수백년을 거쳐 박물관에 박제된 조선의 도자들을 '세상 어디에도 없는' 2D 도자회화로 재현해낸 그는 진짜 도자기와 그의 작품이 같이 전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스턴박물관에서 2014년과 2017년에 여는 한국 문화 프로젝트에 원본과 제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게 목표입니다."
서울 청담동 박여숙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는 30점을 선보인다.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거친 도자 평면과 반짝이는 부드러운 면을 가진 작품을 통해 미술의 권위를 해체하고 싶은 욕망도 담았다.
작가는 "내 작품은 도자 그릇과 똑같아 때가 타도 씻어내면 된다. 앞으로 보고 만질수 있는 전시를 하고싶다. '작품을 만지면 안됩니다'가 아니라 "이 작품 만지세요'라는 전시타이틀로 전시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매일 쓰는 도자기에 무감각하지만, 작품을 만져보고 나중에 집에 가면 집에서 쓰는 그릇을 다시 보게 되겠죠. 그만큼 내 작품(예술)은 일상 생활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을 겁니다." 전시는 내년 1월8일까지. (02)549-7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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