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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포커스) "한국인들 민주화 신념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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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1-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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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청학련 연루 억울한 옥살이 '무죄' 다치가와 마사키 아주경제 편집위원

   
 
 
"취재 답례로 준 20 달러가 반정부 자금으로 둔갑했다" 1973년 한국 민주화운동 취재차 서울에 왔던 한 일본인 기자가 겪은 사연이다. 주인공은 본지 글로벌 편집위원으로 있는 일본 닛칸겐다이(日刊現代)의 다치가와 마사키(사진) 기자.

당시 그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심층취재하고 있었다. 그는 유인태 전 의원을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20 달러를 사례비로 건넸다. 그는 사례비는 당시 관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 전 의원은 이듬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마사키 위원도 연루돼 20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돼 10개월만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는 "당시 기소장엔 '반공법ㆍ국가보안법 위반, 긴급조치 1ㆍ4호 위반, 내란선동"이라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담겨있었다"고 회상했다. 재미있는 것은 마사키 위원을 내란 선동범으로 만든 '20 달러'라는 문구가 기소장에는 담겨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당시 중앙정보부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7일 재심 법정에 선 마사키 위원에게 적용됐던 내란선동과 반공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면소를 각각 선고했다. 마사키 위원이 36년만에 명예를 회복한 순간이다.

이날 만난 마사키 위원은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민청학련 사건은 공산주의와 무관한 순수 민주화운동이었다"며 "이는 한국 정부도 이미 인정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작된 사건으로 구속된 회생자로서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재심을 위해 한국 법정에 서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36년간 억울한 삶을 강요한 한국이 싫지 않다고 했다. 10개월간 옥살이를 시키고 구속집행정지로 풀어 준 뒤 10년간 재입국을 불허했던 한국이다.

마사키 위원은 한국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들의 민주화 신념을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위해 희생된 젊은이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국의 민주화 영웅들과 내가 명예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 한국 친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1988년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올림픽을 취재하고 1992년과 1997년 대선도 지켜봤던 그다.

마사키 위원은 또 "아직 실감은 나지 않지만 오랜 노력 끝에 보답을 얻게 됐다"며 "다방면에서 가까워지고 있는 한ㆍ일 양국 관계의 발전상을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김재환 기자 kriki@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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