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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산업에디터겸 IT미디어부장 |
LG전자가 105만대의 드럼세탁기를 리콜하기 시작했다. LG전자는 리콜 조치와 함께 신문에 어린이 보호 캠페인을 벌이는 등 소비자 마음 달래기에도 나서고 있다.
이번에 리콜되는 제품은 2003년 8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생산된 10㎏와 12㎏급 드럼세탁기 가운데 세탁조 내부에서 문을 열수 없도록 만들어진 일부 모델 약 105만대다. 이렇게 많은 세탁기가 일시에 리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LG전자의 세탁기 안에서는 지난 2008년 8월 전주에서 7세 남자 아이가, 같은 해 9월에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8세 남자 어린이가 질식해 숨졌다. 이들은 세탁기에 들어갔다가 안에서 문이 열리지 않아 숨졌다. 최근에는 대전에서 7세 남자 어린이가 숨졌다.
이번 사고는 예고된 것이었다. 2년 전 연속으로 질식사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사고 방지대책 없이 지내다 이번에 또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에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했다면 같은 사고가 되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LG전자로서는 할 말도 있을 것이다.
제품의 결함이라기보다 안전의식의 문제를 앞세울 수도 있다. 어린이가 세탁기 안에 들어간 게 문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 정부 규격에 맞췄기 때문에 억울하다는 항변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위야 어쨌든, 사고가 발생해 문이 열리지 않아 어린이가 사망했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장치를 만들든지, 만일의 경우 들어갔더라도 안에서 문이 열리도록 해야만 했다.
LG전자는 3명이 사망하고 나서야 대대적으로 리콜을 하고, 어린이 보호 운동에 나선다고 했는데 너무 때늦은 감이 있다. 소비자들은 LG전자가 사고를 키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LG가 결함이 있는 제품을 리콜한 것은 다행이라고 말한다.
LG전자가 대전 질식사 이후 바로 대대적인 리콜에 나선 것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사례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도요타가 사고를 빨리 인정하지 않고, 미적거리다가 큰 고통을 치르고 있는 것을 전 세계는 목격하고 있다.
가전제품의 사고는 숨길 수가 없다. 당장은 숨길 수 있어도 같은 사고가 또 생길 수 있다. 이번 대전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LG전자는 리콜 조치보다는 각 언론에 질식사 사고가 보도되지 않도록 뛰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LG는 사고 내용이 일부 언론과 인터넷 등에 보도되고, 리콜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리콜 문제를 급히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많다.
LG전자는 이번 사고를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우선 안전한 제품 개발을 위해 기존의 패턴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LG라는 이름만 믿고 지금처럼 해서는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LG는 그동안 미국·캐나다·일본·호주 등 해외에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비교적 신속하게 리콜을 단행했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겐 쉬쉬하는 데 급급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구본무 LG 회장의 ‘고객가치 제고’ 경영 방침이 앞으로 더욱 뿌리깊게 현장 구석구석 스며들어야 하는 이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고가 난 세탁기는 해외에 수출되지 않던 모델이었다. LG는 더욱 까다로운 미국 규격에 맞춰 수출했지만, 한국에는 미국 기준이 아니라 좀 더 느슨한 한국 기준에 맞춰 생산했던 것이다.
반면 경쟁사가 한국시장에 내놓은 제품은 미국과 한국 기준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같은 제품이라도 안전도와 수익성의 기로에서 어떤 쪽을 더 우선시하느냐의 경영철학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품을 만드는 기업과 소비자들 사이에 감독 역할을 할 정부의 역할도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지식경제부·기술표준원 등 관련 정부 부처도 전자·자동차 제품의 하자로 인한 사고가 나면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재발하지 않을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드럼세탁기 사고의 경우 2008년 2명이 희생됐을 때 정부는 ‘안전캡을 나눠주면 될 것’이라는 LG의 설명에 허수아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정부라도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어린이가 다시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글로벌 소비시장은 제조업 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에는 일정 품질보증기간만 문제가 없으면 됐다. 그러나 이제는 제품마다 최소한 안전면에 있어서는 ‘무제한적 책임’이 강조되는 분위기로 바뀌어버렸다.
이번 사고는 LG전자는 물론 다른 기업에도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 그것은 제품을 내놓을 때는 안전 설계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한다는 점, 또 무슨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신속하게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가 24일 자체 점검에서 쏘나타 일부 차종의 문 잠금잠치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자 곧 바로 리콜 조치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만일 도요타 폭풍이 휘몰아치는 요즘, 미국의 소비자들이 큰 사고를 당해 여론에 끌려 리콜로 이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도요타 파문과 맞물리면서 ‘일본-한국차’ 평가절하 움직임이 확산될 것이 뻔하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일이다.
이번 LG 세탁기 리콜을 계기로 기업과 소비자 모두 새로운 자세를 다질 필요가 있다. 최선을 다해 안전한 제품을 만들고 결함이나 문제가 있을 때는 즉각 보완하는 자세는 기업의 몫이다. 반면 소비자들도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아무리 안전한 가전기기, 자동차라도 그 기기가 안전을 담보해줄 수는 없다. 내 안전, 우리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소비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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