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하늘 높이 두둥실 떠오르며 기분 좋은 해방감이 밀려왔다. 날갯짓 아래로 에게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고도를 계속 높여가던 이카루스의 마음 속에는 슬며시 오만함이 머리를 쳐들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대로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잊어버렸다. 강렬한 태양에 깃털을 이어붙인 밀랍이 녹아내렸다. 후회해도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 이카루스는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교만과 자만심에 눈이 멀어버리는 순간 어느새 파멸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로 캐나다 경영학자 대니 밀러(Danny Miller) 토론토대 교수가 주창한 '이카루스의 역설(Icarus Paradox)'이다.
밀러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이카루스 패러독스'에서 이카루스의 예를들어 성공이 결국 파멸을 낳고 가장 소중한 자원이 나중에 자신을 망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세계 7위 조선사인 성동조선해양 마저 채권단 관리에 들어갈 처지에 놓였다.
이런 위기의 표면적인 원인으로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선주들의 발주 취소 및 선박인도 등이 꼽힌다. 하지만 시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현재의 성공에 도취해 무턱대고 시설 투자에 나선 것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다. ‘묻지마식 투자’가 결국 화를 부른 셈이다.
다른 조선사들도 상황이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STX조선해양ㆍ한진중공업 등 대형 업체들도 너도나도 호황기에 도크를 늘렸다.
덕분에 국내 선박건조능력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늘었다. 1999년 393만DWT(재화중량t수)에 불과하던 건조능력은 지난해 기준 3995만DWT로 10배 증가했다. 이제는 남아도는 시설과 장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외국에도 있다.
미국 대형 할인점 K마트는 대규모 매장을 확보하고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구매자들을 끌어 모으는 전략으로 단기간에 유통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K마트는 과거의 전략만 답습, 성장의 원동력을 단순히 확장전략에 있었던 것이라고 믿고 점포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했다. 결국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은 K마트는 지난 2002년 1월22일 100여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우의제 하이닉스반도체 전 사장은 지난 2007년 연임을 앞두고 돌연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재임기간 동안 온갖 부실을 걷어내며 회사를 14분기 연속 흑자기업으로 돌려세운 그였기에 시장의 충격은 더욱 컸다.
우 사장의 변(辯)은 이렇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경영환경 급변으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성공의 기억과 경험'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우 사장이 이카루스를 꿈꾸는 이들에게 던진 말이기도 하다.
아주경제 김병용 기자 ironman17@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