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조선사의 영업담당 A 임원이 유럽발 금융위기를 가리키며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세계 신조 수주량이 전년동기대비 500%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였던 조선시황이 유럽발 악재라는 암초를 만났다.
선박의 경우 일반적으로 80%의 건조자금을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해 차입한다. 때문에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유럽 은행들의 돈줄이 마르고 있어, 선박금융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선박시장의 공급과잉을 뜻하는 해운사들의 높은 정박 비율 역시 대규모 발주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선 경기를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유럽 선주 "돈 어디서 구하나"
영국 조선ㆍ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신조선 인도에 따른 건조자금은 2009년 1250억 달러에서 2010년 1820억 달러로 증가한다.
특히 현대중공업ㆍ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의 주요 고개인 유럽 선주들은 올해 신조선 인도를 위해 가장 많은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 총 970억 달러 규모.
하지만 자금을 빌려줄 유럽 은행들의 상황은 좋지 않다. 선박의 자산가치를 담보로 선박금융에 나섰던 유럽 은행들. 조선시황이 지난해 급락하면서 선박자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쳐 이들의 대출 여력은 줄었다.
게다가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유럽 은행들에 5000억 달러 이상의 단기자금을 제공, 돈줄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의 주요 펀드들이 자금 회수에 들어갔다. 유럽시장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대출 축소와 조기회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주요 은행들의 자금줄이 급격히 메마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그리스를 비롯해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은행들에 국한됐던 자금경색이 최근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의 은행들에도 파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유럽은행 간 단기차입의 기준이 되는 리보금리(Libor)가 상승하고 있다. 이는 미국 내 모기지 금리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 파장이 유로존을 넘어 미국으로 확대되고 있다.그동안 미국은 물론 북ㆍ서 유럽 은행 등에서 자금을 마련했던 유럽 선주들의 자금줄이 막히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조선공업협회(CANSI) 관계자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유럽 선주들이 직면한 유동성 위기가 올 연말까지 약 90척에 달하는 발주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유럽 주요 금융기관의 대출정책이 보수적인 전략을 추구하고 저자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과잉도 문제
지난 2006~2008년 기간 중 대부분 선종에서 과잉 발주됐던 물량들이 선주들에게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인도된다. 비록 일부 선박들이 발주 취소되거나 인도가 연기됐지만 해운업계의 높은 정박 비율을 고려하면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역부족이다.
클락슨은 올해 인도량을 1억4300만 dwt(재화중량t수)로 예상했다. 전년대비 22.2% 증가한 수치다. 2009년보다 증가한 수준의 인도량을 예상하는 이유는 호황기동안 조선사별로 건조능력을 대부분 확장했기 때문이다.
인도량 수준을 낮추지 못하면 조선업체에 불리한 환경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늘어난 건조 능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면 고정비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조선사 입장에서는 답답한 상황이다.
올해 예상 수주량(5900만 dwt)가 비슷한 2002년과 비교하면 글로벌 신조선 건조능력은 4600만 dwt에서 1억1700만 dwt로 약 2.5배 늘었다.
이정환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신규 수주의 개선없이 급격하게 증가한 건조능력에 따른 인도량 증가가 지속된다면 글로벌 조선업계의 불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ironman17@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