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형욱 기자) 정주영은 지금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 현대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 6개 이상 그룹사를 아우르는 범 현대그룹의 창업주다. 그는 1915년 강원도의 농사꾼 자식으로 태어나 200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모든 것을 맨손으로 이뤄냈다.
기자는 최근 그의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본지 ‘현대 100년 DNA’ 시리즈 연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경영 이력과 그 속에 담긴 일화를 공부하고 있다. 또한 낙동강 고령교, 한강 인도교, 소양강댐, 울산의 조선소 등 그의 국내 주요 사업도 둘러볼 기회도 가졌다.
그리고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보면 그가 문득 그리워진다. 아니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의 경영자 정신만이라도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몸을 사리고 있다. 자신의 안위와 주위의 눈치를 봐 가며 ‘안전한 경영’을 미덕으로 삼는다. 주주들의 눈치도 있고, 정부의 눈치도 보고만 있다. 마치 공무원 같이. 그런 그룹에 속한 직원도 개인만 돈 많이 받고 편하면 그만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돼 버린 한국 경제는 신흥시장·친환경·미래 사업을 막연하게 운운하며 방황하고 있다.
젊은 구직자·직장인도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길이 없다고 한다. 소위 ‘88세대’라며 자조한다. 물론 정주영 때 시절과 지금을 직접 비교하는 건 이들에 가혹하다. 대학 혹은 대학원을 졸업한 고급 인력이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하지만 기억하자. 정주영 때라고 막막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때라고 뭐든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엄연히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이 현대 같은 ‘벤처기업’을 누르려 했고, 몸뚱아리 온전한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해외 진출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정주영은 맨손으로 해 냈다. 경기의 부침 속에, 정권의 부침 속에, 숱한 어려움을 이기고 어떻게든 버텨내 왔다. 이 시대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1958년 현대건설 당시 채용공고를 한 번 보자. 당신 같으면 이런 조건의 ‘중소기업’에 입사해 뭔가를 해 낼 자신이 있는가. “활동적이며 진취적인 인물이 필요하다. 샌님 같은 타입은 다른 회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기술자건 관리직이건 간에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사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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