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금)[기자수첩] CEO의 말이 가진 무게감

   
 
 
(아주경제 김병용 기자) 영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수의학과를 갓 졸업한 젊은이가 정치 초년생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그런데 상대는 쟁쟁한 다선 의원이었다. 합동 선거 유세장에서 현역의원이 젊은 후보를 제압하기 위해 "당신 수의학과 출신이라면서요?"라고 물었다. 짐승들의 병이나 고치지 무슨 정치냐는 투의 비아냥거림이었다.

하지만 젊은 후보는 당황하지 않고 "왜요? 어디 편찮으십니까?"라고 말해 청중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결국 이 한마디는 젊은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말 한마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얘기다.

말의 힘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영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특히 최고경영자(CEO)의 말 한마디는 그 자체가 경영이다. 회사 경영이 살얼음판을 걷는 요즘 같은 시절에는 경영자가 먼저 메시지를 명확히 하고 말을 하는 조심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도대체 일하는 사람이 없어!"라고 던진 CEO의 한마디가 명예퇴직을 예고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하고, 누군가를 칭찬했더니 임원후보로 거론되는 식의 일이 심심찮게 빚어지는 곳이 회사 사회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지난 12일 열린 당진 후판 공장 준공식에서 "브라질 일관제철소를 고로 방식으로 건설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으며, 이달 중으로 결론을 낼 것"이라며 "일본 JFE와 포스코의 참여 여부도 이달 말까지 완전히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5월의 마지막인 오늘. 동국제강은 장 회장이 언급한 사안에 대해서 확정한 것이 없다. 그의 '공언'이 '허언'이 된 것이다. 장 회장은 이전에도 브라질 일관제철소의 착공시기 등을 대내외에 공표했지만 그때마다 지켜지지 않았다.

김영철 동국제강 사장은 지난해 12월 브라질 북동부 세아라주 '페셍 제철소' 기공식에서 "연금술사의 양치기 산티아고처럼 반드시 세아라주에서 한국과 브라질 미래를 밝혀줄 철강 생산 기지를 만들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치기 산티아고는 파울로 코엘료의 저서 '연금술사'의 주인공으로, 험난한 여정 끝에 자신이 양을 돌보던 낡은 교회건물 무화과 나무아래에서 보물을 찾는다.

'연금술사의 양치기소년'을 꿈꾸고 있는 동국제강 CEO들. 하지만 현실은 '이솝우화의 양치기소년'의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ironman17@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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