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프런티어] "일 즐길수 있을때 인정받고 존중받아요" 이경숙 GS건설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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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6-2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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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국내 정유사상 최대 규모인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제3중질유분해 탈황시설(No.3 HOU 프로젝트) 공사 현장.

그곳에는 왠만한 남자직원 못지 않은 우렁찬 목소리로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여성이 있다. 바로 GS건설 국내정유수행담당을 맡고 있는 이경숙 상무(43)다.

그는 이곳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중질유 업그레딩 설비인 No.3 HOU 프로젝트의 설계·구매·건설 등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높은 기술역량이 필요한 고도설비 공사현장에서 원가절감, 공사기간 단축, 공사안정성 확보 등을 위한 고품질 코디네이션이 그의 책임하에 진행되고 있다.

이 곳에서 그는 통 크고 시원시원한 여장부로 통한다. 남자들만의 영역으로만 여겨져온 건설 업종, 그것도 플랜트 공사현장에서 그가 여장부로 통하는 비결은 뭘까.

"스스로가 난 여자인데, 이런 일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두려움, 선입견 같은 것을 버려야해요. 또 일에 대해 전문성을 갖도록 하고, 거기에 파고 들어야 하죠. 그 일을 즐길 수 있을 때 인정받고 존중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상무는 최근 일주일에 3일을 여수에서 지낸다. 그나마 임원 승진 후 본사에 회의가 많아 출장 횟수가 줄어든 것이 이 정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정된 일 외에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스스로 깬 것이다. 

그런 이 상무의 이름과 직함 앞에는 특별한 수식어가 하나 붙어 다닌다. 바로 '우리나라 건설회사 사상 첫 여성임원'이라는 수식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크게 증가했다.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해온 건설업계에도 여성들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하지만 대형건설사에서 공채출신 여성 임원을 배출한 것은 GS건설이 처음이다.

이 상무로서는 사실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냥 부장일 때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거의 안했어요. 그런데 임원 자리에 오르니 많은 사람, 여러 곳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더군요. 주위에서 '당신은 다른 여성직원들의 롤모델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을 심어주기도 해요."

하지만 남성중심 사회에서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1990년 처음 LG그룹에 입사했는데, 여성들의 월급은 남자의 83% 수준 밖에 안되는 거예요. 더 놀라웠던 것은 여직원은 승진을 해도 직원명단에 남자 평사원보다 이름이 아래에 기재되더라구요. 당시 총무부장한테 가서 따져물었죠. 그랬더니 전산상 남성의 이름이 먼저 올라가게 돼 있다고 하더군요. 일부러 차별을 한 것은 아니지만 본인들이 당하는 것이 아니니 문제라는 생각을 못한거죠. 바로 건의해 그 때 수정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상무는 "회사가 고의적인 차별을 했다기보다는 조직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남성 위주였다"며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도 조직사회에서 여성 직원들이 일 외적인 문제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산재해 있다.

이 상무는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집안일, 특히 육아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 또한 육아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상무는 20여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두번의 슬럼프를 겪었다. 이 중 한번이 육아문제로 인한 것이었다.

"입사 9년차였을 때일 거예요. 첫 아이가 4살 때 시골 할머니댁에 있던 아이를 데리고 올라왔는데, 봐줄 사람이 없는거죠. 어린아이를 유치원에, 또 이웃집에 맡겨놓을 수 밖에 없었는데, 아이가 출근하는 엄마를 보며 매일 우는 거예요. 그 때 정말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죠."

또 한번의 슬럼프는 조직적응 문제에서 왔다. 하지만 그는 일로서 이 문제를 극복했다. "이보다 먼저 입사 2년 때 힘든 적이 있었어요. 아는 것도 없고, 사업부 분위기가 약간 딱딱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컸어요. 회사 그만두고 공부를 계속할까 고민도 했죠. 하지만 새로운 일을 맡게 되면서 거기에 집중하다보니 슬럼프를 극복하게 되더군요."

이 상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3가지를 주문했다. 우선 다른 사람들한테 관심을 가지라고 그는 조언한다. "혼자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에요.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상대방의 업무에도 관심을 갖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하죠."

두번째는 직장내에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친한 동료를 확보하라는 것. "무슨 일이라도 나를 믿고 도와줄 수 있는 지지자 3명 정도 확보할 필요가 있어요.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어려울 때가 있죠. 그럴 때 정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내 편이 돼 줄 수 있는 동료가 분명 필요하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만의 시간, 취미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직장 스트레스로 시달리고 집안일에 매달리다보면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어요. 이럴 때 과감히 하루 정도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할 필요가 있어요. 모든 것을 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는 거죠. 자기자신에게 시간을 줄 필요가 있어요."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 상무는 자신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올해를 새로운 전환기로 생각하고 새로운 비전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직은 제가 후배들의 진정한 롤모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올해는 명확한 비전을 세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롤모델이 될 계획이랍니다."

js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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