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진의 육조거리 24시] '천안함'과 '천수이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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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6-2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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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정경진 기자) 2004년 3월 19일. 대만 총통 선거를 하루 앞두고 발생한 '천수이벤 저격사건'은 열세에 몰렸던 천 후보가 판세를 뒤집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하지만 저격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상대 야당 후보가 선거결과에 불복하면서 대만 사회는 천수이벤 지지자와 반대파로 나뉘어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총격 사건이 천수이벤 총통의 자작극이라는 여론이 한동안 빗발쳤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대세는 승자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 사건에 대해 일말의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은 '대만을 사랑하지 않는 공공의 적'으로 분류돼 비판의 대상이 됐다. 천 총통의 권위에 흠집을 낼 수 있는 문제제기는 이유를 불문하고 나라를 멸망시키려는 책동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야당의 선거무효소송 역시 기각됐다.

그러나 천수이벤은 퇴임 후 부패로 얼룩진 참담한 몰락을 맞는다. 천수이벤 전 총통 부부는 부패와 돈세탁 등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 최근 징역 20년으로 감형됐지만, '대만의 수치'라는 오명은 씻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천수이벤 지지자들의 '빗나간 사랑'이 그들의 사고와 판단력을 마비시켜 대만 사회에서 객관적인 연구와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 결과였다.

홍콩 출신의 시사평론가 량원다오(梁文道)는 그의 칼럼집 '반편이들의 상식'에서 천수이벤 저격사건을 둘러싼 애국논쟁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그는 "천수이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병폐는 모든 문제를 (애국의 의제로) 단순화해 모든 판단을 하나의 가치관으로 바꿔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 사회는 46명의 해군이 희생당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잇따라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론 분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와 민관 합동조사단은 이번 사건을 북한의 도발로 결론짓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촉구하고 있지만,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측의 의혹은 속시원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참여연대를 비롯한 진보단체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보수와 진보세력은 접점을 찾을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면서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의견도 양분돼 있다. 많은 국가들은 한국 정부와 조사단의 결정에 동조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불분명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가지 사안을 놓고 주장이 엇갈릴 경우, 해결 방법은 양측의 의혹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의견개진과 소명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쪽이 승복하면 결과는 명확해진다. 하지만 사건 발단부터 조사과정, 발표에 이르기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번 사건이 한 점 의혹없이 해소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역사가 진실을 규명하기까지는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양측의 주장은 모두 일리있는 가능성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인 의문조차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스스로 정당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인류학자인 클리퍼드 기어츠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엄연한 '폭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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