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인터넷뉴스팀) 지난달 4일 오전 11시 박인국 유엔 대사가 두툼한 봉투를 들고 클로드 헬러 안보리 의장실 문을 두드렸다.
봉투 안에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임이 조사결과 명백히 드러났다"며 "북한의 무력공격이 국제평화와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는 만큼 유엔 안보리가 이번 사안을 논의해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엄중하게 대응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서한과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영문 요약본이 들어있었다.
이후 9일 오전 9시48분 안보리에서 천안함 의장성명이 채택될 때까지 35일 동안 유엔을 무대로 한.미.일, 북.중.러간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됐다.
특히 지난달 14일 합조단의 안보리 브리핑과 북한측의 반박 설명회, 15일 북한 신선호 대사의 공식 기자회견은 천안함 논의의 하이라이트였다.
합조단은 안보리 비공개 회의에서 동영상과 파워포인트 등 최첨단 장치를 동원해 조사 결과의 객관성과 과학성을 보여준 반면, 곧이어 벌어진 북한의 설명회에서는 시종 자신들은 "피해자(victim)"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유엔 관계자는 "그 때 이미 (북의) 기선을 제압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양측의 브리핑을 받은 안보리 이사국 대사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심지어 중국 대사도 "남북 양쪽의 의견을 잘 들었다.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우리측의 설명을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이 와중에 한국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우리 정부 합동 조사단의 천안함 사건 진상 조사결과에 의문이 있다고 지적하는 서한을 보내면서 한국측 협상팀을 곤혹스럽게 했다.
한 협상 참여자는 "국가 차원의 논의이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주장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면서도 "그러나 중국측이 협상이 어려운 고비 고비에서 한국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 조사결과라는 점을 슬며시 흘리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다"고 말했다.
천안함 논의는 안보리 대사들이 지난 19일부터 열흘간 아프가니스탄 현장 시찰을 떠나면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물론 실무선에서 다각적인 접촉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주요국들간의 비공식 논의는 지난달 말이 돼서야 재개될 수 있었다.
그동안 협상 자체를 꺼리던 중국이 국제사회의 압력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판단에서 협상에 응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중국측은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의 공격을 명시적으로 표시하는 용어나 문구가 포함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북한 편들기로 일관했다.
북한이 이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문안에 `북한'을 넣어서 비난한다거나, 공격(attack) 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선 안된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중국 측은 `공격' 대신 `사건(incident)'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7일 밤과 8일 오전 회의에서 중국은 `공격'이라는 단어 사용에 결국 합의했다. 대신 `우리는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한 북한의 입장이 반영됐다.
협상에 참여한 관계자는 "한.미.일과 중.러간에 정치적 타협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인국 대사가 합의문안이 도출된 직후 "(합의문 11개항)한 줄 한 줄이 역사가 있다"고 한 것은 어떤 단어와 문구를 넣을지를 놓고 양측간 밀고 당기는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됐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한 달을 넘긴 이번 협상은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때 유엔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하기까지 6일, 지난해 4월 로켓 발사 때 8일, 같은 해 6월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 결의 도출까지 16일이 소요됐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산통을 겪은 셈이다.
유엔 관계자는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둘러싼 팩트 자체를 놓고 한쪽이 반박하는 상황인데다, 핵이나 로켓 발사와는 달리 안보리 회원국들이 양자적 분쟁의 성격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힘든 싸움이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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