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식품 인플레이션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 주요 곡물 산지인 러시아는 연말까지였던 밀 수출 금지조치를 내년 수확기까지 연장했고 모잠비크에서 일어난 식량 폭동은 주변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오는 24일 긴급 식량위기 대책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주말판 옵서버는 5일 곡물과 육류 등 국제 식품가격 급등으로 향후 수개월간 식품 소매가가 10% 이상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옵서버는 특히 이번 식량 대란이 영국 식품물가를 15% 가까이 끌어올렸던 2008년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급성장하고 있는 아시아지역의 입맛이 서구화하면서 밀과 육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데다 상품시장에서는 투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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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O 국제식품가격지수(위)-밀 가격 추이(출처:FT) |
러시아 정부는 밀 수출 금지조치를 내년까지 1년 연장키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 2일 "밀 수출 금지령의 해제 여부는 내년 작황과 국제 곡물시장 상황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올해 밀 수확량이 예년보다 4분 1 감소한 데 따른 것으로 수출 금지 항목에는 보리와 호밀, 옥수수, 밀가루도 포함된다.
세계 4위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밀 수출 금지조치를 연장하자 지난주 국제 상품시장에서 밀을 비롯한 주요 곡물의 선물가격은 근 2년래 최고치로 뛰어올랐다.
애브돌레자 아배시언 FAO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곡물수출시장에서 러시아가 2년 연속 자리를 비우면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한 식량 의존도가 컸던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지역이 미국과 유럽지역으로 공급처를 옮겨야 해 불균형이 심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일어난 폭동도 2007~08년 식량위기의 공포를 상기시키고 있다. CNN에 따르면 모잠비크 정부가 지난 1일 빵 가격을 30% 올리면서 촉발된 폭동으로 수도 마푸토에서는 이날까지 10명이 죽고 400여명이 다쳤다.
아배시언은 기초 식품가격의 급등세가 이어지면 식량 폭동이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아프리카지역에서 군부가 다시 득세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30년래 최악의 식량 공급 부족사태를 겪었던 2007~08년에는 방글라데시에서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식량 폭동이 발생, 마다가스카르와 아이티 정부가 붕괴됐다.
◇2007~08년 식량위기 재현되나
전문가들은 최근 식품 가격이 급등한 것은 상품 선물시장에 유입된 핫머니(단기투기자금)보다는 수급 불균형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밀의 경우 폭염과 가뭄, 홍수로 인한 작황 부진이, 육류는 신흥국의 수요증가와 미국과 호주 등 주요 수출국의 공급 부족이 맞물려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영국 축산업계를 대변하는 에블렉스(EBLEX)의 마크 토플리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수년간 소고기값이 하락하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미국 등지에서 소 사육두수가 줄었고, 유럽연합(EU)의 보조금 철폐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지역의 양 사육두수도 크게 줄었다"며 조만간 육류 가격을 끌어내릴 재료는 없다고 지적했다.
FAO의 국제 육류자격지수는 8월 전년 동월 대비 16%로 뛰며 2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밀은 아르헨티나와 호주 등 크리스마스께 수확기를 맞는 남반구 주요 산지의 작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재고가 두 시즌 분량에 불과했던 2007~08년의 위기는 다시 겪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각국이 재고를 푸느냐가 관건이 되겠지만 밀 가격 급등세에 힘입어 농가에서 생산량을 늘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데이비드 도 FA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밀시장의 펀더멘털은 2007~08년과 달리 매우 견고하다"며 "최근 밀 가격은 상당히 과도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곡물시장은 날씨 탓에 언제나 불확실성이 지배하게 마련"이라며 "2년 전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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