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직원들은 머리가 하얗게 샌 70대 노인이 자기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의원들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쉽게 목격하곤 한다. 국토해양위가 열리는 날이면 언제나 나타나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식상한 표현으로 일명 '간첩'이다.
국토해양부, 기획재정부 복도에서도 그의 모습은 심심찮게 목격된다. 굳이 장관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만나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청한다.
그가 바로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통합·출범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지송 초대사장이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잘 나가던 대기업 CEO, 대학 교수에 이어 거대 공기업 사장이라는 명함이 맞는지 어리둥절해진다.
눈은 볼 때마다 빨갛게 충혈돼 있고 하얗게 샌 머리카락은 그나마 듬성듬성 빠져 있다. 주말 근무는 물론 평상시에도 밤을 지새다시피 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라고 LH 직원들은 말한다.
그에게도 돈 많이 벌고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충남 보령 출신인 이 사장은 2003년 2월 한양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는 건설부(현 국토해양부), 수자원공사에서 공직생활을 한 뒤 76년 현대건설 현장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전무, 부사장 , 대표이사 등을 지내고 경인운하(주) 사장, 포천 경복대 교수를 거쳤다.
한마디로 폼나는 자리에서 폼나는 인생을 살아온 그다. 거대 공기업인 LH 사장직도 폼나는 자리이긴 하다. 분명 예전 같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통합 초대사장' 자리는 처음부터 예고된 고생길로 들어서는 문이었다. 그리고 현실이 됐다.
이 사장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고생문을 활짝 열어제치고 들어섰다. 이유는 뭘까. 그는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어느 자리에선가 고백했다.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가장 먼저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부채를 줄이는 일이다.
사장직에 앉자마자 천문학적인 부채를 해결해야하는 숙제를 떠안은 것이다. LH의 총 부채 규모는 118조원, 하루 이자만 85억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통합 1년(10월1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당초 LH는 출범 1년이 되는 시점에 재무개선을 위한 자구대책과 사업 재조정 등의 기본방향을 밝히기로 했으나 이를 연기했다.
하지만 이 사장에게 돌팔매질을 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이 시점에서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어린 손녀의 재롱을 보고 있으면 출근 안하고 그 아이와 하루종일 놀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이 사장. 그도 가정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할아버지다.
그런 그에게 '나라를 위한 일'이라며 자신들이 과거 만든 빚덩이를 왕창 던져주고 단시간에 풀라고 하니, 제갈공명이 살아 돌아오면 가능할까.
모두들 손만 놓고 그가 잘하나 못하나 지켜만 볼 일이 아니다. 진정 '나라를 위한 일'을 위해 다 함께 혜안을 제시할 때다.
jsy@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