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 47회 저축의 날' 시상식.
지난 1973년 처음 제정된 이 행사는 경제개발을 위한 초기 투자금이 부족했던 정부가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지정했다.
목적이야 어찌됐든 지난 38년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사는 민초들의 감동 스토리를 전하며 대표적인 '서민의 상'으로 자리잡았다.
올해도 가난 속에서 독거노인과 결손아동을 도우며 자신의 식당을 개업한 유정자(60) 씨, 한국전쟁 고아 출신으로 20년 동안 주차관리원을 하며 내집 마련에 성공한 김우일(58) 씨 등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졌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이 행사가 가진 자를 위한, 일부 대형은행의 홍보를 위한 자리로 변질되고 있다.
올해 상을 받은 91명 중에서 4명이 유명 방송·연예인이었다. 이들은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을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3명의 연예인이 상을 탔으며, 지난 2008년 3명, 2007년 2명, 2005년에는 4명이 상을 받아갔다.
이 상을 받은 연예인들은 고급 외제차를 끌며 호화 주택에 사는 부유층이다. 올해 상을 받은 연예인 중 한명은 과거 한 방송에서 고가의 희귀 수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들이 저축을 많이 했기 때문에 상을 받았을 것이다. 때문에 상을 받은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선정 방법에 있다.
저축상은 각 금융회사가 고객 중 적절한 인물을 추천하고 금융위원회가 심사를 통해 선정한다.
그런데 대형 금융회사일수록 유명 연예인을 추천하는 경향이 강하다.
올해는 국민·우리·IBK기업은행 등이 연예인을 추천했다. 지난해 저축상을 수상한 연예인 2명은 모두 우리은행의 추천을 받았다.
지난 2004~2008년 상을 받은 연예인들 대다수도 우리·신한·기업·한국씨티은행 등 대형 금융회사가 추천했다.
유명인이 주요 고객인 것을 강조해 공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행사 주무기관인 금융위원회도 연예인을 수상자로 선정하면 저축의 날 행사를 홍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금융위는 또 저축의 날 담당 부서를 지난 2008년 중소서민과에서 은행과로 바꾸었다.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의 이 같은 태도가 자칫 저축의 날 행사를 가진 자를 위한 행사로 변질시킬까 우려된다.
올해 행사에 참석한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저축은 부자들의 사치'라고 생각할 만큼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으며, 저축의 중요성과 건전한 소비생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의 본디 취지를 되새기자는 의미의 발언이었다.
기자는 전적으로 진 위원장의 말에 동감한다. 겨울철만 되면 세금공제를 위해 사회단체 기부에 나서는 일부 부유층과 평생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테레사 수녀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저축의 날 행사가 가진 자를 칭찬하는 자리가 될 것인가, 없는 사람의 꿈과 의욕을 북돋는 행사인가 될 것인가는 금융당국과 대형은행들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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