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은 외로운 자리"

201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하루 앞둔 12일 오후 6시 30분 도쿄 국립경기장.

5-2 공 빼앗기 훈련을 시작한 성남 일화 선수들은 하나같이 긴장하는 표정없이 환호성을 지르고 웃고 떠들며 놀이하듯 훈련에 펼쳤다.

신태용 성남 감독(40)은 팔짱을 낀 채 예전 바로 이곳에서 연달아 프리킥 골을 넣은 장면이 생각났는지 당시 프리킥 지점 근처를 외로이 뱅뱅 돌고 있었다.

이젠 감독으로 아시아 정벌에 나섰지만 그라운드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이틀 후 신태용 감독은 13일 결승전을 끝내고 바로 그곳에서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았다. 마흔 살, 데뷔 2년차 감독은 어느덧 아시아 최고 명장이 됐다.

신태용 감독은 성남 사령탑에 오른 뒤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내보내고 이른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떠나 보낸 이동국과 김상식이 전북 현대로 넘어가 제2전성기를 호령하며 우승을 차지했지만 신 감독은 아랑곳없이 선수들에게 이름값을 떼어내고 무한경쟁을 시켰고 결국 '큰일'을 냈다.

신태용 감독의 성격은 거침이 없다. 있는 그대로 솔직히 풀어놓는 스타일이다. 가끔은 자화자찬하는 발언도 스스럼없이 건넨다.

"제가 봐도 전 참 대견해요. 이 나이에 벌써 팀을 아시아클럽 정상에 올려놨으니 말이죠"

13년간 K-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최다 우승(6회), 최다 MVP(2회), 신인왕, 득점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던 탓에 일찌감치 우쭐대는 마음이 들었을 법하다.

이젠 K-리그 축구의 자존심을 세계에 다시 한번 세웠으니 두 어깨엔 힘이 더욱 실리는 것도 당연하다.

우승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13일 밤 신태용 감독은 얼굴이 벌건 상태로 말문을 열었다.

"이렇게 감독직이 외로운 자리인지 몰랐다. 언제나 돌아서면 혼자였다.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게 너무 부담돼 중간에 그만둘까라고 생각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신 감독의 평소 모습과는 색달랐다.

그간 '자뻑' 감독이란 질시를 받으면서도 굳이 그 모양새를 이어갔던 건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한 자기 주문이었다.

수원과 대회 4강전을 치를 땐 위가 쓰릴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신태용 감독은 이내 결승전 이야기를 꺼냈다.

선제골을 넣으면 무조건 이긴다는 시나리오를 짰다는 신 감독은 2-0으로 앞선 상황에서 만회골을 먹었을 땐 눈앞에 빨간불이 들어왔다고 한다.

1996년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1로 이기고 있다가 2-6으로 완패당한 기억이 다시 되살아 났던 것이다.

"그때 지금 코치로 있는 (김)도훈이가 첫 골을 넣고, 내가 두 번째 골을 넣었다. 하지만 공은 둥글었고 생각하기도 싫은 이변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신태용 감독은 "당시 선수들이 동요하고 흥분하게 패착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흥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게 오늘 주효했다"고 말했다.

우스갯소리도 곁들였다.

"사실 조바한이 알 힐랄을 이기고 와서 한결 수월했다. 대진운이 기가 막혔다. 난 정말 운이 좋은 놈이다"라고 말하고는 "내가 요주의 인물로 꼽았던 조바한 9번 칼라트바리가 너무 탐이 나더라. 경기 마치고 영입을 시도하려 했는데 그라운드에서 울고 있길래 말을 못 걸었다"라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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