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인들은 700년 주기로 찾아오는 세계국가 ‘중화(中華)’시대를 열어간다는 자긍심에 가득차 있다. 7세기의 당(唐)시대와 14세기의 명(明)시대에 구가했던 세계국가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중화시대 회복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결하고 있다.
중화주의의 부활(復活)은 이웃국가인 한국에 기회이자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지난 92년 8월 한중수교 이후 중국시장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왔다.
‘알다가도 모를 나라’로 각인되고 있는 중국시장에서 당초 예상대로 성공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의 간판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LG전자도 올들어선 경쟁업체의 저가(低價)공세에 고전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값싼 노동력과 낮은 원자재 가격에 힘입어 모처럼 활기를 찾았던 중국진출 중소기업들도 시장 철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으로선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도, 중국시장의 냉랭한 변화에 두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13억 인구의 내수시장이라고까지 여길 수 있는 중국을 포기하고서는 더 이상의 국가도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기회에서 위기로' 다가오고 있는 중국시장의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인재들이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중국을 근본부터 다시 배우고, 다시 연구해야 한다. 중국의 관습과 법률, 기업시스템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환경은 물론 그들이 감추고 있는 속내와 공산당의 속성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
중국을 정확하게 아는 것. '지중국(知中國)'은 한국경제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생존의 과제다. 우리에게 ‘중국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700년 주기 '중화시대' 온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신성한 용(龍)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간다. 그래서 왠만한 대기업들은 창립기념식 때마다 용놀이로 행사를 시작하곤 한다. 용의 후손들이 새로운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 속에서 700년을 주기로 찾아왔던 세계국가 ‘중화시대(中華時代)’를 21세기에 열어가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10월초 국경절 당시 건국 기념 리셉션 모습.
중국이 ‘중국의 영토’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향해 용트림을 했던 것은 7세기 당(唐) 시대와 14세기 명(明)시대로 기록되고 있다. 당나라 시대에는 중국의 화려한 문화가 이슬람 세계를 건너 유럽에까지 전해졌다. 명나라가 자랑하는 ‘무적의 정화함대’는 동남아와 이슬람 세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진출해 중화문명을 전파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세운 진정한 중화국가는 바로 당과 명, 그리고 오늘의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21세기의 중화인민공화국이 700년만에 돌아온 세계국가 ‘중화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들은 몽고족이 세운 12세기의 원(元)나라와 만주의 여진족 출신 누르하치가 세운 청조(淸朝)는 진정한 중화국가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이민족들에 의해 국가를 유린당한 중국민족들은 19세기말 서방열강의 침략과 청일전쟁의 패배로 용의 자존심이 바닥까지 추락했었다고 자탄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진정한 중화시대가 명나라 이후 다시 부활한다는 역사적 자긍심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다. 20년 넘게 경제발전을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해온 그들은 세계를 향해 용의 후손임을 외치기 시작했다.
역사의 흐름도 중화시대의 부활을 예고하는 듯 하다. 21세기를 선도해온 역사의 주인공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리라는 전망이 나오곤 한다. 역사 속에서 영원한 파워나 국가는 없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팍스아메리카의 쇠락’을 예견하면서 ‘아시아 시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그들은 기약 없는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쇠락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오만한 외교전략과 방만한 재정운용, 과도한 대확장은 역사적으로 제국몰락의 공통요인이었다. 로마와 몽골제국의 몰락도 그러했다. 유럽연합은 고령화와 인종 갈등, 탄력성 상실로 주춤거리고 있다. 러시아 역시 21세기의 주역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시아 시대의 견인차로는 경제력과 과학기술면에서 세계정상급인 일본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아시아인들을 전쟁의 늪에 빠뜨렸던 역사적 과오를 사죄하지 않는 뻔뻔함 탓에, 아시아 시대를 선도하기에는 도덕적으로 자격 미달이다. 이웃 국가들의 마음을 얻지 않고서는 아시아의 리더가 될 수 없는 게 자명하다. 한국인과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 시민(Civil Asian)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일본은 리더는 커녕 왕따당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 역할에 그치지 않고 21세기의 키워드인 ‘자원과 문화’ 분야에서 아시아와 세계 시장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중국이 소비하는 에너지와 원자재의 볼륨은 가공할 만큼 위협적이다. 세계 각국으로 흩어졌던 화상(華商)들은 중국경제의 또다른 견인차가 되고 있다. 2020년에는 일본과 유럽을 제치고 2050년이 되면 미국과 세계경제대국 1, 2위를 다툴 게 분명하다.
■"향후 50년간은 미국과 싸우지 말라"
치욕의 19세기 말과 빈곤의 20세기를 거친 중국인들은 이제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원대한 국가운용 전략에 13억의 꿈을 결집시키고 있다. 그들은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민주적 리더십과 유연한 외교력, 단단한 사회 시스템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경시대의 '만만디'적인 폐쇄성을 던져버리고 몽골 유목민의 기동성과 개방 마인드로 체질을 변화시키고 있다.
중국인들은 중국의 붕괴론과 분열론을 주장해온 서방학자들을 향해 과감하게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의 권력층은 한국의 삼권분립보다도 훨씬 더 권력 배분이 잘짜여져 역사 속의 황제(皇帝)문화 폐해를 극복하고 있다. 대면회의(對面會議) 문화를 중시하는 의사결정 시스템은 몽골제국의 코릴타를 연상시킨다. 지도자들의 태반은 정치꾼이 아닌 현장 기술관료 출신이다.
신중한 견제와 균형, 논의를 거쳐 나온 정책은 강력하고도 일사분란하게 추진된다. 공산당의 세포조직은 몽골제국을 지탱했던 천호(千戶)제도처럼 13억 인구를 거미줄처럼 엮어주고 있다. 서방학자들은 공산당의 일당독주를 지적하곤 하지만 중국 지도층은 13억 인구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선진화된 개방시스템으로 공산당이 변모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선거로 선출되지 않는 지도층은 굳이 정치자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급관리들의 부패상과는 달리 적어도 중국의 최고 권력층은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국가의 외교력도 경제발전과 현대화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와 외교란 오로지 국민들을 잘살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실사구시(實事求是)로 무장하고 있다.
'빛을 감추고 어둠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기본으로 하는 외교전략 역시 철저하게 국가와 국민의 실리를 중시한다. 실사구시와 도강양회로 무장한 고위외교관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명분과 감성에 의존하는 한국의 상당수 외교관들과는 외교 철학에서부터 경쟁력이 엇갈린다.
덩샤오핑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향후 50년간 미국과는 싸우지 말라’는 유훈(遺訓)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2050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과 경제대국 1, 2위를 다투리라는 세계 경제학자들의 예견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그들은 소수민족을 결집시키는 데도 철저하게 외교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소수민족들과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00년 내다 본 통치 시나리오
국무원 산하 소수민족 연구기관인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는 덩샤오핑의 지시에 따라 지난 90년대 이후 소수민족 문제를 ‘분열의 불씨’로 인식하고 집중연구해 왔다. 역사적으로는 물론 정치와 문화, 교육 차원에서 그들을 한데 묶는 ‘하나의 중국’ 시나리오를 모색해 왔다. 그들의 입장에서 고구려사 문제는 일과성이 아닌 광범위 통치전략 중의 하나인 것이다.
♦'중화시대'의 선봉에 선 후진타오 국가주석.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티베트를 비롯한 소수민족 중심의 서남부지역에서 성장(省 長)을 지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중국을 지배했던 이민족의 본산인 동북3성(省)과 불교의 본산인 티베트 지역의 통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거대한 로드맵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원의 보고이자 교통요지인 신장 위구르 지역에 최정예군단을 배치한 것도 그렇다.
중화시대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인들은 전문가 중심의 교육제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들은 19세기 말 청조가 몰락한 것은 서방의 과학기술과 경제 시스템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19세기 초반 중국과 러시아는 서방의 군함과 무기를 도입해 전선에 배치한 반면 일본은 미국과 유럽으로 인재들을 유학보내 과학기술을 익혔다.
“일본이 전문적인 교육열에 힘입어 머지않아 중국과 러시아를 제치고 동아시아의 맹주가 될 것”이라는 독일의 초대총리 비스마르크의 예견을 중국인들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세계 최고 대학을 지향하는 청화대학과 북경대학의 끊임없는 면학열기와 생동감은 바로 역사의 교훈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21세기 중국의 성패는 교육에 달려있다고까지 말한다.
중국인들은 공산당의 하부청년교육기관으로 ‘공산청년단’을 운용하고 있다. 몽골제국의 ‘케식텐’과 같은 것이다. 후진타오 국가 주석은 공청단 주석 출신이다. 중국은 몽골제국의 국가 시스템을 원용해 세계국가를 건설하려는 듯 보인다. 인류 최초의 세계국가인 몽골제국은 코릴타와 천호제도, 케식텐을 삼각축으로 해서 번영을 구가했었다. 그래서 유럽에선 중국의 부활을 12세기의 황화론(黃禍論)에 빗대기도 한다.
이제 21세기는 역사의 주인공을 바꾸려 하고 있다. ‘팍스아메리카나’ 대신 ‘중화시대’로 키워드를 변경할 조짐이다. 물론 주인공의 교체는 전적으로 중국인들과 미국인들의 마음과 자세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란 돌고 돈다’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를 감안할 때 우리는 중화주의의 부활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와 기업, 국민들은 중국을 후진국이요, 배울 것 없는 나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지금과 같은 안일한 자세로는 과거 5000년 동안 겪었던 '치욕의 역사'를 21세기에 다시 쓰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곽영길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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