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은 지난 2006년에도 외환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고배를 마셨다. 당시 국민은행과 맞붙었으나 불과 400억원 차이로 협상권을 내줬다.
김 회장으로서는 이번에 외환은행을 품에 안으면서 숙원을 이룬 셈이다.
◇ 타고난 승부사의 'M&A'
하나은행이 탄생한 것은 1991년. 당시 정부 방침에 따라 제2금융권 단자회사였던 한국투자금융이 하나은행 간판으로 바꿔 달았다. 초대 행장은 나중에 우리금융회장을 지낸 윤병철씨, 그리고 김승유 회장은 당시 전무였다.
대형 시중은행(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외환)의 높은 벽 앞에서 ‘후발은행’꼬리표가 붙어 다니던 하나은행은 외환위기를 통해 도약의 전기를 맞았다. 1998년 부실은행 정리과정에서 충청은행을 인수한 데 이어, 1999년엔 단자사 출신으로 같은 시기에 탄생한 보람은행까지 합병함으로써 본격적인 몸집불리기에 나섰다. 그리고 2002년 말에는 자신보다 몸집이 컸던 서울은행까지 인수, 마침내 대형은행 반열에 올라섰다.
김 회장은 이 모든 인수ㆍ합병(M&A) 과정을 주도했다.
은행권에선 그를 ‘치밀한 전략가’이자 ‘타고난 승부사’로 평하고 있다. 부드럽고 온화한 스타일이고, 최근 미소금융 탄생과정에서도 확인됐듯이 ‘따뜻한 시장경제’ 신봉자이기도 하지만, 판단과 실행에 관한 한 철저하게 ‘냉정한 카리스마’라는 것. 2005년에는 대한투자증권(현 하나대투증권)을 인수하며 지금의 은행-증권-보험 체제를 갖춘 지주사의 기틀을 마련했다.
물론 좌절도 있었다. 2006년 외환은행 1차 인수전에서 국민은행에 패했고, 뒤이은 LG카드 인수경쟁에선 신한금융에 졌다. 잇딴 M&A 실패 이후 하나금융을 보는 시장의 시선은 싸늘해지기 시작했고, ‘은행권 빅4’에서 탈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았다.
이런 김 회장은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는 내내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했다. 하나금융은 올해를 인수합병(M&A)를 통해 몸집을 불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김 회장도 "올해가 인수합병을 할 수 있는 적기로 해를 넘기면 어려울 것"이라며 M&A 의지를 다져왔다.
당초 우리금융지주 인수를 준비했으나 빠른 시일 내에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고 규모 면에서도 특혜 시비 등의 논란에서 부담이 적은 외환은행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김 회장은 론스타와 호주 ANZ은행 간의 협상이 답보를 거듭하자 재빨리 인수전에 참여했다. 지난달 말부터 동남아 등지에서 론스타 경영진과 협상을 시작해 한 달 만에 인수를 확정지었다.
협상의 빠른 전개를 위해 금융당국에도 알리지 않은 채 속전속결 전략을 추구한 것이다.
이번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하면서 김 회장의 리더십은 더욱 공고해졌다.
사실 김 회장은 2006년 외환은행 인수전과 2007년 LG카드 인수전에서 잇따라 패배하면서 명예가 크게 실추됐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M&A 향방은 자금력과 최고경영자(CEO)의 전략 및 정부와의 관계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의 지도력이 한계에 달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이 비등했다. 특히 LG카드를 인수한 신한금융지주가 최근 내홍을 겪기 전까지 승승장구하면서 김 회장과 하나금융의 좌절감을 갈수록 커져 왔다.
그러나 김 회장은 4년을 와신상담한 끝에 결국 외환은행을 가져 갔다. 단자회사였던 하나은행을 4대 은행의 반열에 올려놓은 뚝심이 다시 한 번 발휘된 것이다.
그동안 숙적이었던 신한금융을 제치고 국내 3위의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게 됐다
이로써 연임 가도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김 회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결국 이번 M&A 성공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며 "내년 초 임기가 끝나지만 주총에서 연임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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