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의 아트人>③ 5년만에 개인전 연 문성식

  • 기억의 우물에서 퍼올린 '풍경의 초상'전..국제갤러리 4월 7일까지

 
25세에 베니스베인날레 작가로 참여,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고 일약 유망작가로 떠오른 문성식 작가가 5년만에 개인전을 열고 쑥쓰러운 표정으로 작품설명을 하고 있다.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변했다. 작가 문성식(31)이 5년만에 내놓은 신작은 감성적이다.
마치 무대처럼 한정된 공간을 설정하고 그 위에 인공적 느낌의 정원을 그렸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기억의 우물에서 퍼올린 감정의 촉수가 민감하게 전이된다. 밀도높은 사실 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손맛의 내공을 보였던 이전 작품과 달리, 붓질의 형태와 구성도 확연히 달라졌다.

나이로만 치자면 변화무쌍한 시기지만, 미술시장이 그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만만치 않은 이력 때문. 2005년, 스물 다섯살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 주목받았고, 2007년 바젤아트페어에도 출품, 비평가와 딜러들에게 독특하고 신선한 작품으로 호평받으면서 일약 유망작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보기 쉽지 않았다. 국제갤러리측이 “작품을 기다리는 예약자가 많았다”고 할 정도로 작품을 내놓지도, 전시도 없었다. 자의식과 고집이 강한 진지한 태도로 한 작품에 보통 5~6개월가량 걸리고 철학적인 성찰로 3년간 붙들고 있는 작품도 있다.

이 때문에 5년만에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2월 24일부터 열리는 문성식의 ‘풍경의 초상’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회화와 연필드로잉 50여점을 내건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모든 것을 털어낸 듯 침착했고 한편 진지했다.
“표현방식은 달라졌지만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요. 저는 도시와 자연의 접점에 있는 서울 근교의 풍경처럼 약간 불편한 느낌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풍경 같은 것들처럼 불편해져서 오히려 리얼리티가 극명해지는 순간 같은 불편한 풍경을 그리고자 하는 의식은 그대로입니다.“

1층 전시장에는 이전 작품들에서보다 더 스케일이 커진 페인팅과 드로잉 작품들이 전시됐다. 세필화 기법의 페인팅 신작 ‘숲의 내부’는 가로 428cm의 긴 화면이다. 뫼비우스 띠처럼 시작과 끝을 알수 없다. 캔버스 대신 사용한 장지도 눈길을 끈다.
“딱딱했던 것을 버렸다고나할까요. 이전 작업이 벽돌처럼 쌓아서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터치였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진흙을 뭉개듯 그렸어요. 장지를 선택한 것도 평면위에 깊이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전시 제목 ‘풍경의 초상’이 나타내듯 주변에서 마주친 풍경과 애잔함이 서린 어릴적 경험을 담았다.
어둠의 두려움, 할머니의 죽음, 고라니의 울음소리, 아버지와 사냥등 자신을 둘러싼 복잡다난한 삶의 표정과 오랜 감정을 캡쳐해냈다.

밤 (부분)2008/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65 x 287 cm/“Courtesy of Sungsic Moon and Kukje Gallery”

“시골에 살던 어린시절 밤이되면 검은 산속에서 들리는 고라니의 우는 소리가 무서웠지만, 깜깜한 밤에 무슨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었어요. 검은 산속에서 들렸던 과거의 기억을 관념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산에 대한 경험, 어둠의 두려움이 담긴 ‘밤’은 전시 준비기간 작업의 변화에 큰 계기를 가져온 작품이다. ‘밤’이라는 제목과 달리 ‘백야 현상’처럼 하얀 배경에, 올무에 걸려 발버둥치는 고라니와 무심히 바라보기만 하는 사슴들이 대조적이다.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의 두려움과 신기함은 ‘밤의 물질’에서 숭고함으로 드러난다. 인왕산을 그렸다는 작품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검은 입을 벌린 것 같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어둠’을 눈에 보이는 존재로 표현해내기 위해 애쓴 작품은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모든 사물들이 밤이 되면 완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풍경에서 어둠의 존재에 대해 일종의 신비감을 느꼈어요. 어둠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물질화 시키고 싶어 노동력을 바치고 각오를 하고 그렸지요.” 

별과 소쩍새 그리고 내 할머니.pencil on paper.48.5 x 106 cm / “Courtesy of Sungsic Moon and Kukje Gallery”

 2층은 연필드로잉으로 채웠다. 페인팅에서 드러나지 않는 소소한 사건들이 한편의 시처럼 펼쳐있다. 그는 “연필은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는데 탁월한 매체”라며 “연필이 주는 간결한 맛과 정서가 좋아 연필드로잉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서른을 갓 넘긴 젊은작가는"깨달음은 단박에 온다"며 "순식간에 한번에 그린 그림이 가장 좋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곤두선 삶의 비늘들’을 관찰한 이번 작품은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생성과 파괴의 간극에 대해 끝없이 질문한다. 전시는 4월 7일까지. 문의.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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