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트렌드브리핑> 아시아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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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3-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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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 1970~90년대 한국·대만·싱가포르 등의 경제·정치적 약진 그리고 1990~2010년대 중국의 눈부신 발전이 현대 세계 부(富) 창출 체제의 원천이었다. 1990년대 자유주의를 기치로 세계 금융을 휩쓸고 디자인과 정보시장을 풍미한 미국과 유럽의 풍요도 모두 아시아의 경제성장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런 점은 앨빈 토플러와 같은 석학들이 모두 인정하는 바다.

이런 세월이 물경 50년, 그 반세기 동안 미국이 달러를 팔고 유럽이 이미지를 팔 때 아시아는 오염물질 뒤집어 쓰고 자동차와 석유화학·철강·생활용품 등을 생산했다. 아시아 지역의 국가와 기업들은 거기서 번 푼돈을 모아 철도와 도로를 깔고 아파트도 짓고 정보 인프라도 구축했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꼴을 갖추어 갔다.

땟국물 흐르던 사람들의 몰골이 정장에 배 내밀고 백화점 구경하는 신사숙녀로 바뀌었고, 재주 좋은 뺀질이들은 비행기 타고 세계를 돌아 여행이나 출장을 다니고, 언감생심 미국 달러도 사고 유럽 이미지도 기꺼이 사는 글로벌 소비자가 되어 갔다. 일본은 아시아의 작은 유럽으로, 한국은 일본식 제도가 믹스된 작은 미국으로, 대만과 싱가포르는 서구식이 가미된 특유의 화교풍으로 하루하루 달라져 갔다. 중국은 위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받아 피둥피둥 자라는 나무줄기처럼, 그 잎새처럼 귀족인민을 주렁주렁 달아매고 바보 천자의 위세를 떨며 올림픽도 치러냈다.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미국식 ‘구조개혁’의 풍파에 몸을 실은 일본은 ‘변해라. 사무라이식 품격의 문화를 잊어라’ 소리치는 오마에 겐이치의 목소리를 왕따 시키며 안으로 파고 들고, 한국은 중구난방 좌충우돌 앞으로 앞으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고, 보지 않아도 될 꼴을 봐가며 겨우겨우 세계 자본주의 중심의 일원이 되고, 중국의 엘리트들은 화교권을 아우르는 패주로 전체 인민을 소외시키면서도 경제성장률에 부른 배를 두드리게 됐다.

아시아는 가히 격랑에 휩싸였고 자체 제작의 로컬 드라마를 찍고 있다.

그 중심에 일본이 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의 어마어마한 횡포를 딛고도 세계 제일의 품질과 원가절감 노하우로 자본주의의 격을 한 단계 높인 경제동물 일본. 축소지향과 혼네 다테마에, 기쿠바리의 나라 일본, 그 일본이 있다. 아시아는 일본을 우대하거나 견제하거나 둘 중 하나의 태도로 눈치를 봐야 했고, 일본은 특유의 전략지능으로 열도를 벗어난 아시아공동체 구상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트렌드에 둔감한 국민성이 정권을 너무 늦게 바꿔놓은 탓에 연습생 신분의 얼간이들이 너무 중한 책임을 맡았고,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하늘은 열도의 한축을 허물었다. 축만 허물었다면 일본은 재앙의 슬픈 무게를 견딜 심리적 지지선만은 유지했을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지. 인류사에 딱 두 번 있는 핵 재앙이 하필 65년 전 그 열도였을까? 서울에서 1000km가 됐건 수백km가 됐건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 눕고 사는 땅이 더 이상 사람이 살수 없는 우주의 섬처럼 되고, 그 수십km 인근에서 자라나는 동식물과 어류가 죽음의 먹을거리가 되었다니, 바람이 불어 재끼는 일본 열도 전체가 더 이상 삶의 안전지대가 아닐 수 있다니… 오, 가슴아픔의 극치여!

핵 재앙과 그로 인한 경제의 블랙홀이 일본과 한국, 아시아 전체의 에너지를 얼마나 빨아 들여 소진시킬지 알 수 없는 이 마당. 원전폭발이라는 일본의 참극이 결과적으로 아시아 전체의 비극으로 번지고 있는 이 상황.

지금 모든 아시아인들이 일본 국민들의 처지를 동정하고 악착 같고 깔끔한 그들의 근성마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고 있다. 아시아 전체에 아시아 특유의 인지상정 문화의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도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들을 기꺼이 하고 있다. 33인 칠레 광부의 기적은 저리가라, 기쿠바리 문화가 오랜 역사적 유산으로 일본의 품격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세계가 감동하며 아픈 눈물을 쏟고 있다. 세계인이 감동하니 마지 못한 한국민 일부도 함께 울먹거릴 기세다.

자, 우리 이제 20세기 낡아빠진 국가간 경쟁의 틀을 한번 깨부수고 나설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가장 가까운 이웃, 한국민들이 먼저 나서 19~20세기 국가간 경쟁이 만들어 낸 낡은 틀을 깨부수고 일본인과 일본의 문화, 그들의 역사를 보듬어 안아 아시아 전체의 관점에서 그들을 파트너로 맞아들일 수는 없을까?

부품 소재와 각종 산업에서, 어린이 만화영화와 장난감, 거의 모든 디지털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긴밀하지만 정작 건전한 역사적 이웃으로는 마음에 흔쾌하지 못한 일본. 우리 이제 그들을 마음으로 마주 안아 다시 한번 아시아의 파워를 드러내기 위한 건전한 동지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같이 노래할 수 없을까?

‘나를 기다리지 마라’ 눈물도 흘리지 않고 후쿠시마 원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가미가제 일본 사나이여!’ 그대와 나는 어느 시대 어느 조상으로부터인가 유래된 한 뱃속 한 형제의 후손일지 모른다. 당신의 길이 나의 길이었을지 모른다. 다만 당신은 거기 오래 살고 나는 여기 오래 살아 우리가 근본 없이 서로 으르렁거렸을지 모른다. 형제여! 이웃이여! 파트너여! 동지여! 제발 살아서 돌아오라!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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