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만한 책>상처받은 아이들의 슬프고도 잔혹한 기도

  • 달과 게/미치오 슈스케 저/김은모 옮김/북폴리오 펴냄


(아주경제 김나현 기자)암에 관한 다큐를 본 후 게(라틴어로 cancer)의 형상을 한 암(cancer)이 아버지를 먹어치우는 환영에 시달리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신이치. 신이치의 할아버지인 쇼조가 몰았던 배의 사고로 엄마를 여의고 그 죽음의 이유를 찾아 헤매는 나루미.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시작된 부모의 학대에 방치된 하루야. 세 아이는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상처를 끌어안고 산다.

그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소라게를 불로 지져가며 소원을 비는 일뿐이다. 그 주술적인 의식은 단순한 놀이에서 벗어나 암묵적으로 서로의 바람을 청하고 들어주는 형태로 변한다. 500엔 정도의 돈을 가졌으면 한다는 바람은 같은 반 아이의 사고를 바라는 것으로, 그리고 급기야 엄마의 애인이 없어졌으면 하는 잔혹한 바람으로까지 이른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몬 암이라는 병에서 게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집게발로 엄마의 애인을 해치는 상상을 하는 등 ‘게’는 소년의 마음 안에 내재된 죽음과 파괴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그리고 달은 파괴와 죽음이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소년을 붙들어주는 구원의 이미지다. 달빛이 만든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는 게처럼 신이치는 제어되지 않는 자신의 섬뜩한 바람이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혼자만 내쳐질 것 같은 공포로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게 되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섬세한 감정선이 이러한 상징성과 어우러지며 작품의 감동을 더한다. 작품은 미스터리에 강점이 있는 작가답게 세 아이가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일들이 반전의 요소로 작용해 이야기를 더욱 흡인력 있게 끌어준다.

작가는 대중문학의 부흥을 이끌어 온 나오키 산주고를 기리는 뜻에서 탄생한 문학상 ‘나오키’에서 다섯 차례 연속 노미네이트된 끝에 드디어 수상이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어두운 소재들을 다루면서도 그 뒤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과 배려를 드러내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약한 본성에 대해 탐구해온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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