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시대 핵심100인]<1>시진핑-③두번째 만남에서 “저는 일이 많습니다” 우직한 프로포즈


(베이징 = 조용성 특파원) 시진핑(習近平)의 인맥은 크게 세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태자당인맥을 꼽을 수 있다. 태자당은 중국 공산당 혁명과정에서 공로가 있거나 고위관료의 후손을을 일컫는 말로 실체가 있는 집단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오쩌둥(毛澤東) 시절 베이징4중이나 베이징6중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성장과정을 함께 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강한 유대감이 형성돼 있다. 시진핑의 어린시절 교분을 쌓았던 태자당들은 그의 정치적인 자산이다.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서기와 위정성(兪正聲) 상하이(上海)시 서기 등은 태자당 핵심멤버로 시진핑과 상당한 교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은 지난해 11월 충칭을 찾아 보시라이를 만나 면담을 진행했다. 당시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명성을 드높이고 있던 보시라이에 지원사격을 해 준 것으로 해석됐다. 또한 위정성은 시진핑의 후임 상하이서기로 일찍이 “시진핑 동지를 배우자”고 주창한 바 있다. 보시라이와 위정성 모두 2012년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인사들이다. 류샤오치(劉少奇) 전 총서기의 아들로 인민해방군에서 정치력이 있는 류위안(劉源) 총후근부 정위도 시진핑과 가까운 인사다.

두번째로 그는 공산당 내의 인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2007년부터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를 역임하고 있다. 중앙서기처는 공산당 내부의 사무를 총괄하는 조직이다. 그는 공산당 내부의 입장을 정하는 수많은 회의를 주재하면서 숱한 당내인사들과의 스킨십을 가져왔다.

또한 공산당 관리들을 재교육하는 기관인 중앙당교의 교장직을 맡고 있다. 중앙당교 교장으로서 그는 과학발전관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주도해 오고 있다.

◆지방관료시절 쌓인 탄탄한 인맥

세번째는 지방관료시절 구축한 인맥이다. 시진핑은 1982년부터 1985년까지 허베이(河北)성에서, 이후 2002년까지 푸젠(福建)성에서, 2007년까지 저장(浙江)성에서, 그리고 2007년 6개월여 상하이시에서 근무해왔다. 때문에 지방정부에서의 25년동안의 공직자생활 중에 함께 일했던 인사들도 시진핑의 측근으로 볼 수 있다.

우선 황싱궈(黃興國) 천진시장은 시진핑이 저장성 서기를 역임하던 시절에 부서기를 지냈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2년여동안 시진핑과 손발을 맞췄다. 황 시장은 현 천진시 서기인 장가오리(張高麗)의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푸젠성정부 판공청 부주임으로 시진핑과 함께 일을 했었던 링웨밍(凌月明) 현 충칭시 부시장도 동일 인맥으로 분류된다. 특히 링웨밍은 1962년생으로 차차기 지도부에서의 역할도 기대되고 있는 유망주중 한명이다.

2003년부터 저장성 부성장을 역임하고 있는 천자위안(陳加元)도 시진핑과 5년여 호흡을 맞춰왔다. 1953년생으로 시진핑과 동갑내기인 천부성장 역시 뤼주산(呂祖善) 저장성장의 후임자로 올라설 가능성이 있다.

현 푸젠성 부성장인 장창핑(張昌平) 역시 시진핑과 푸젠성에서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00년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이었으며 2002년 시장으로 올라섰다.

2005년부터 국무원 대만판공실 부주임을 맡고 있는 정리중(鄭立中)도 푸젠성에서 시진핑과 함께 일했던 인물이다. 정리중은 1979년부터 2005년까지 푸젠성에서 근무했으며 특히 1980년대 중반 시진핑이 샤먼 부시장을 역임할 때 그는 샤먼에서 함께 손발을 맞췄었다.

2008년부터 상무부 부부장에 재직중인 중산(鍾山)은 2003년부터 저장성 부성장으로 근무했었다. 5년동안 시진핑과 저장성에서 함께 일했던 경험이 있다.

중량급 인사인 장더장(張德江)도 시진핑과 신뢰관계가 구축돼 있다. 장더장은 2002년 시진핑이 저장성 성장으로 부임해 올 때 전임 저장성 서기였다. 장더장은 시진핑에 고마움을 갖고 있었으며 나중에 시중쉰 자선전의 서문을 직접 쓰기도 했다. 장더장은 2012년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공산당 중앙조직부 부부장인 션웨웨(沈跃跃)도 시진핑과 저장성에서 함께 근무해 신뢰관계를 쌓아놓은 인사로 꼽힌다. 션웨웨는 차기 중앙조직부장으로의 승진이 점쳐지고 있다.

재계인사로는 지리(吉利)자동차의 리슈푸(李書福)회장이나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 등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칭화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던 시기에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의 초빙교수였던 저우샤오촨(周小川) 현 인민은행장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저우 은행장과의 친분도 각별하다.



◆차기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

시진핑의 부인인 펑리위안(彭麗媛, 1962)은 중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드문 인기 가수다. 그는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가무단 예술감독, 해방군 소장, 전국정협위원 등 여러 직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중국 당대 민족 성악의 대표 가수’로 꼽히는 국가1급 가수다. 민족 성악이란 민요 창법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중국 특유의 음악 장르. 산둥(山東) 성 출신인 펑은 산둥예술학원을 졸업한 뒤 18세 때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소속 가무단 단원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는 스무 살이던 1982년 중국 CCTV가 춘제(春節)를 맞아 주최한 가요대회에서 ‘희망의 들판에서(在希望的田野上)’라는 노래를 불러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인기 가도를 달리던 펑리위안은 1986년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이던 시진핑을 만났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 시진핑을 만난 펑리위안은 일부로 군복을 입었다. 시진핑을 처음 만난 순간 펑리위안의 마음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고 한다. 첫마디가 예상밖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한번 무대에 서면 벌이가 얼마나 되나요" "노래를 한번 불러주실수 있나요"등을 물어보는데 비해 시진핑은 “성악에는 몇가지의 창법이 있습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TV를 거의 안봅니다. 당신은 무슨 노래를 불렀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두번째 만났을 때 시진핑은 “나는 공무원입니다.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일을 해야 합니다”라며 넌지시 프로포즈했고, 펑리위안은 “사업이 잘되야 가정도 잘 꾸려지는 법”이라며 우회적으로 승락의 뜻을 표했다.

1987년 9월1일 둘은 검소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4일 후 펑리위안은 샤먼(廈門)에서 베이징으로 출장공연을 갔고 이후 곧바로 캐나다 미국을 차례로 방문했다. 3개월 후에야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둘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시진핑은 “국가가, 특히 군이 당신에게 이렇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고, 많은 관중들이 당신을 좋아하니, 당신에게 무대를 떠나라는 말을 할 수가 없겠다”며 “내가 은퇴를 강요한다면 그건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며 펑리위안의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시진핑과 펑리위안 부부 사이에는 시밍쩌(習明澤)라는 딸이 있다. 시밍쩌는 항저우(杭州) 외국어학원을 거쳐 올해 미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자매들

시진핑의 형제자매는 7, 8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3, 4명은 이복 형과 누나다. 그밖에 친누나는 두 명 친동생이 한명 있다. 큰누나 치차오차오(齊橋橋)는 현재 베이징중민신(北京中民信)부동산개발유한공사의 이사장으로 남편 덩자구이(鄧家貴)와 함께 베이징에 거주한다.

외교학원을 졸업해 불어에 능한 둘째누나 치안안(齊安安)은 캐나다에서 산다는 설이 있다. 이들은 모두 당초 성이 시(習)였으나 고교에 입학하면서 모친 성인 치(齊)로 바꿨다. 당시 부총리였던 아버지 시중쉰이 주위 사람들이 부친을 알아볼 수 없도록 성을 바꿨다는 것.

두 살 아래인 시위안핑(習遠平)은 문화대혁명으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선반공으로 일하다 군에 입대했으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시위안핑은 국제에너지 보존 및 환경보호 협회(國際節能環保協會.IEEPA)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과 각별한 인연

시 부주석은 3차례 방한을 통해 한국측 인사와도 상당한 교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9년 12월 방한시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고,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김형오 전 국회의장 등과도 만났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박준영 전남지사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경제계 인사로는 한•중우호협회 회장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삼성그룹과는 상당한 신뢰관계가 구축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진핑은 삼성전자 쑤저우(蘇州)공장이 있는 저장성에서 성장과 서기를 역임했다. 당시 쑤저우 공장을 여러 차례 방문해 현지상황을 점검하기도 했었다. 지난해에는 2월과 10월 두차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을 직접 만나 면담을 했다. 양측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삼성그룹이 쑤저우 LCD 공장건설 허가를 받는데 시진핑이 막후에서 지원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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