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의 도란도란] 대한민국 부동산 50년, 변화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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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5-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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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정수영 기자)‘당신은 태어나 몇번이나 이사를 다녔습니까?’

지난 12일 도시재생 법제개편 일몰제에 대한 공청회가 열린 서울교육문화회관. 뉴타운 전면 취소를 요구하며 공청회장을 점거한 한 무리속에 백발의 노(老)신사가 눈에 띈다.

그에게 가서 “일몰제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기자의 질문이 한심한듯 혀를 차던 노신사는 오히려 기자에게 묻는다. “태어나 이사를 몇번이나 다녔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는 기자를 바라보던 그는 한숨을 내뱉는다. 그리곤 더 이상 이사 가기가 지긋지긋하단다. 그는 손가락을 세어보더니, “열 손가락이 모자라네…”라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의정부뉴타운 정비구역에 살고 있다는 이 노신사는 고향이 충청남도 천안이다. 경부고속도로 개발사업으로 쫓겨나듯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온 그는 가까스로 서울 변두리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단지 아파트 건설계획으로 그는 다시 둥지를 옮겨야했다. 이후 비슷한 상황에 처해 몇 차례 더 이사를 해야 한 그가 10년전 가까스로 자리를 잡은 곳이 의정부였다.

이 곳도 결국 뉴타운으로 개발을 하게 됐고, 분담금을 낼 형편이 안되는 주민들은 전셋값도 모자라는 보상비를 받고 또다시 어딘가로 쫓겨나야 할 판이다.

“더 이상 이사를 가고 싶지 않다”는 그는 “정부가 주민들이 반대하는 개발은 하지 않겠다며 입모양만 뻐끔거리고 있다”고 울부짓듯 말했다.

단연 이 노신사만의 일이 아니다. 종전 이후 대한민국 50년은 부동산 개발과 궤도를 같이 했다. 1950년대 후반 국가가 우선해야 할 일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기능을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이 같은 정부의 정책 앞에 선 이들은 조직폭력배를 등에 업은 건설업자들이었고, 그 뒤를 부동산 투기꾼들이 따랐다.

여기에 ‘빨리빨리’라는 부사어로 표현되는 국민성은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데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 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로 재개발·재건축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1960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망치소리는 끊어질 수가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더 이상 막가파식 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정부가 나선 것이다. 대신 보존과 재생이 공존하는 정비사업을 하겠다고 한다. 개발중심의 대한민국 부동산 50년 지도가 바뀌긴 바뀔 모양이다. 일부에서는 개발지상주의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말하는 개발논리에 대한 ‘자성’이 진심인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뉴타운을 비롯한 개발계획 대부분이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공약에서 나오거나, 그로 인해 속도가 빨라졌다.

정부와 정치권이 개발속도를 늦추겠다고 하는 것도 자칫 최근 나오는 불만들을 무마해보려는 술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침체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온 대책은 아닐까.

대한민국 개발역사에 분명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또 다시 고향을 잃고 헤매는 난민이 생기지 않도록, 하우스푸어가 양산되지 않도록 대한민국 50년 부동산 개발지도가 수정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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