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화원, 中 샤먼(하문)>중국의 숨겨진 보석 ‘샤먼(厦門 Xiamen)’

  • <바다의 화원, 中 샤먼(하문)>중국의 숨겨진 보석 ‘샤먼(厦門 Xiamen)’

 

일광암에서 내려다본 샤먼.

 

[샤먼=김진영 기자] ‘바다 안에 도시가 있고, 도시 안에 바다가 있다.’

푸젠성(福建省) 복건성 남부의 아름다운 해양도시 샤먼(厦門·하문)을 일컫는 말이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 담백한 먹을거리, 아름다운 미인의 도시, 아열대 기후지만 부지런한 사람들. 중국의 샤먼이다. 거리엔 느긋하게 차를 즐기는 사람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수많은 볼거리를 가진 중국 속에서 샤먼은 아직 한국 관광객에게는 낯설다. ‘조개 속 진주’처럼 숨겨진 샤먼의 아름다움을 3회에 걸쳐 취재했다.

 

△눈이 즐거운 섬 고랑서(鼓浪嶼)

유람선 매표소.
고랑서의 과일가게
사진 왼쪽은 1층, 오른쪽 2층, 2층은 1원씩 더 걷는다.

‘백로의 섬’으로도 불리는 ‘고랑서’는 중국 푸젠성 남동부에 있다.

항구에서 유람선을 타면 5분 정도 거리다. 유람선은 관광객으로 넘쳐나며 1,2층으로 나뉘어 있다. 전망을 즐길 수 있는 2층은 요금 외 1원(한국 돈 170원)을 더 내야 한다.

고랑서는 거리 곳곳에 이국적인 건축물이 보이는데, 영국의 식민지라는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1.78㎢ 밖에 안 되는 이곳에 서방 13개국 영사관이 들어서 있다. 해변과 맞닿은 전망 좋은 자리에 있는 예전의 미국 대사관은 현재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에 자리잡은 강제 노역자를 실어 나르던 ‘노예 부두’. 현재 드나드는 배가 없이 역사의 한 가닥으로만 남아있다.

고랑서에는 원주민이 약 2만 여명 정도 거주하고 있으며, 상권의 대부분은 대만인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과 일광암(日光岩), 백조원(百鳥圓), 숙장화원(피아노 박물관)은 고랑서의 자랑거리.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즐기는 커피 한잔에 입과 눈이 즐겁다.

 

 

△일광암(日光岩) 발아래 고랑서가 한눈에

해발 92.68미터의 일광암(日光岩) 전망에 가슴이 트인다. 4대 경제특구로 지정된 항구도시 답게 바닷가는 활기로 가득하다. 중국의 문화와 서양식 건물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데 어우러진 풍경도 이색적이다. 



일광암(日光岩)은 첫 아침햇살을 비추는 바위라는 뜻으로 하문의 심벌이다.

항구에서 일광암 정상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 셔틀버스에 몸을 맏기면 고랑서 곳곳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올라가는 길목에 소원을 비는 제단과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커다란 나무들이 이국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열대 기후인 하문은 여름이 길고 덮다. 봄과 가을을 포함해 20~40℃가 일반적이다. 겨울 기온이 5℃로 우리나라 봄 날씨와 비슷하다. 이 ‘따뜻한 겨울’에도 현지인들은 “춥다”며 손사래를 친다. 더워서 직장인들은 2교대로 일한다. 점심시간에 낮잠을 즐기며, 퇴근 시간은 5시다. 일기예보에 ‘40℃ 불볕더위’라고 발표라도 되면 일을 쉰다.



△새들과 사람이 하나 되는 곳 백조원(百鳥圓)







백조원은 일광암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한다.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에 넋이 빠질 즈음이면 백조원에 도착 한다. 백조원에서는 100여 종 새를 자연 상태에서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입장료는 나이로 따지지 않고 키로 정한다.

새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더라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입구에서 공작새가 손님을 맞이한다. 백조원 들어오면 학, 앵무새, 홍학, 백조, 원앙 등 흔치않는 희귀 새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만지면 안된다. 안내인은 새를 만지려던 어린아이가 크게 다친 사건이후 ‘새를 만지지 못하도록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유일의 고대 피아노 박물관 ‘숙장화원’

 

대만 부호 허우위 선생의 집. 린얼자(林尔嘉)로도 불리는 이 사람은 세계 각국에서 70여 대의 고대 피아노를 수집했다.
그는 1895년 ‘마관조약’으로 대만이 일본에 넘어가자 이곳 고랑서로 건너와 자리를 잡았다. 고향을 잊지 못해 자신이 살던 집을 축조해 숙장공원을 건립했다. 바닷물을 끌어와 호수처럼 정원을 꾸몄다. 이렇게 만든 장해원(藏海園)엔 본인이, 보산원(補山園)엔 그의 아들이 머물렀다.
고랑서에는 예로부터 음악가, 특히 피아노 연주가를 많이 배출했으며, ‘음악가의 요람’,‘피아노의 섬’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건물 벽 한 면에 설치된 유리창이다. 수집해 놓은 피아노는 해안을 바라보고 있다. 매달 보름날 밤이면 환한 달빛이 출렁이는 파도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내곤 한다. 달콤한 피아노 연주가 귓가에 아른 거린다.
1945년 일본이 퇴각한후 허우위 선생은 대만으로 돌아갔고 뒤에 남은 그의 친지가 1955년 헌납 형태로 국가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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