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진의 육조거리24시] 검찰의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

(아주경제 정경진 기자) 임기를 겨우 한달 반 남겨둔 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 4일 공개적으로 사퇴를 표명했다.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보장하고 검사의 수사지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항의성 사직서를 낸 것이다.

국무총리실에 이어 청와대까지 나선 막판 중재로 어렵게 합의안이 도출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결국 국회에서 검찰측에 불리하게 내용이 바뀌었다는 게 김 총장이 옷을 벗은 이유다. 정부와 검찰, 경찰 사이에 이뤄진 약속이 깨진 것에 대한 분풀이를 한 셈이다.

그런데 검찰 수장이 옷을 벗겠다는데도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도 누구 하나 검찰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수뇌부가 집단 사의표명을 하는 등 당장 무슨 일을 낼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검사들도 김 총장의 사퇴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끓던 냄비가 불길을 벗어나면 순식간에 식어버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나온 말인 듯 싶다.

최근 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하면서 무소불위로 서슬퍼런 사정 칼날을 휘두르던 검찰의 체면이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검찰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법적 구속력은 없다지만 수사권을 놓고 이뤄진 당사자들 간의 합의안이 깨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검찰의 항의표시는 외견상 수긍이 가는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검찰이 궁지에 몰린 현실은 결국 검찰 스스로 초래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살아있는 권력에는 침묵하고 죽은 권력은 난도질하는 검찰의 과거 행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에 대한 역풍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국민 입장에서는 수사권을 누가 갖고 누구의 지휘를 받느냐 하는 문제는 관심 밖 일일 뿐이다. 행복하게 살 권리를 침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잘 살 수 있게만 해준다면 그것이 경찰이든 검찰이든 상관없다.

한 청와대 출신 인사는 "검찰의 수사지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하든 법무부령으로 하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 입장에서 달라질 게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 갈등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경찰은 더 많은 권리를 가지려고 할 것이고, 검찰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울 것이다.

문제는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검찰이 스스로 개혁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될 경우 그 원인은 분명 경찰이 예뻐서가 아니라 검찰이 밉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의 진짜 위기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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