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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섭 미술평론가 |
이전에 비해 그만큼 생산자인 작가나 중개자인 화랑보다 소비자인 고객(애호가)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미술 분야만의 기현상은 아니다. 웬만한 유통시스템에서는 이미 보편화되었다. 그런데 이런 미술계의 시장성 부각으로 가장 고충을 겪는 곳이 바로 미술대학이다.
미술대학 본연의 의무는 아무래도 순수하고 창의적인 예술가를 육성하는데 있지만, 보다 치열해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예술전사로 단련시켜야 한다는 부담도 동시에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학과 대학생이 졸업 이후에 취업하는 것이 사회진출 방식이라면, 미술대학생은 졸업 후에 예술가로 입문하거나 현장 종사자가 되는 것이 바로 취업인 셈이다.
예술에 있어 순수성과 상업성의 공존은 동전의 양면처럼 무척 가깝고도 먼 존재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은 그 둘을 동시에 충족시켜야만 시대적 트렌드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진작가들의 전문양성소인 미술대학의 행보가 바빠지고 있다. 이미 일부 대학에서는 실전형 현장중심 교육시스템으로 적잖은 성과를 거둔 예도 있다. 상아탑으로서의 기본적인 인문교육과 취업(화단 진출)을 위한 실전교육을 병행하는 형식이다.
울산대학교 미술대학(학장 김섭)의 경우를 보자. 지난 10월 말 이 대학 서양화과 대학원생 전원은 북경 따산즈798의 현실공간갤러리(대표 쟝타오)에서 전시를 가졌다.
전시 기간엔 현지의 여러 매체 기자와 평론가, 작가, 애호가, 갤러리 관계자가 참여해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일부 작품들이 판매되기도 했다. 또한 전시기간엔 여러 미술관은 물론 양첸과 첸웬링, 허진웨이 등 주요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해 급변하는 중국 현대미술과 작가적 입장에 대한 현장감 넘치는 증언을 접했다.
이외에도 이번 달에 열리는 미국 마이애미 레드닷 아트페어에 독립부스가 마련되어 재학생과 대학원생 10여 명이 정식 초대 출품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성과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평소 실전 위주의 현장중심 교육시스템 덕분이다.
실제 4학년생은 졸업전시를 국내전시(5월)와 해외전시(11월) 두 번을 갖는다. 일부 특출한 재학생은 3~4학년부터 일반 프로무대의 전시에 참여하며, 대학원 재학시절에 이미 수회의 개인전이나 국내외 아트페어 경험을 쌓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작가들의 연령층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매년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권 대학 대학원생 중심의 신진작가 발굴 프로젝트인 아시아프 미술축제 역시 그런 현상의 연장선이다.
또한 청바지 작가로 잘 알려진 최소영 역시 20대의 젊은 나이에 국제적인 인지도를 구축했으며, 많은 30~40대 작가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이젠 중진 혹은 원로작가가 중심축을 이뤘던 연령 위주의 수직구조가 아니라, 작가의 대중 혹은 시장 인지도가 우선되는 수평적 구조가 보편화된 셈이다.
일부에선 대학시절부터 현장성이 너무 강조될 경우 많은 부작용이 뒤따를 것으로 우려한다. 하지만 미술대학은 일반전공학과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실기전공의 경우 창의적인 사고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다양한 표현능력을 구비하는 것은 물론 현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효과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마케팅 능력, 일정 수준의 인지도를 얻지 전까지 스스로 고객을 창출하고 관리해야하는 현실에 당면해 있다. 미술학도에게 취업은 어떤 조직에 들어가 안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과연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홀로서기를 하는가에 달린 것이다.
얼마 전에 대학평가에서 전문 예술대학인 추계대학교가 낙제 점수를 받았다는 것은 매우 큰 시사점을 보여줬다. 소위 ‘21세기 문화대국’을 꿈꾼다면서도,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모든 예술가는 백수’로 보고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사회를 탓하기 전에 그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대학도 먼저 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현장성에 비중을 둔 미술대학 교육체계의 변화바람은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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